배경: 포항의 한 중국집
주연: 장풍 형님
조연: 중국집 주인 아저씨
엑스트라: 그외 마을 사람들
소품: 엽차잔
감독 및 연출: 완계 마을
그러니까 고헌 형님이 울릉 서중에 있던 두 번째 해인 1997년 여름의 일이었다.
매년 동기(同氣) 모임이 고헌 형님의 임지에 따라 결정되었으므로
당연히 그 전해에 울릉도에서 모임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부임 첫해는 손님을 치는 방법을 몰라서 그냥 넘어가고
드디어 이 해에 동기 모임 최초로 해외(?)에서 모임을 가질 수가 있었다.
도동에서 담벼락에 기대어 버스를 기다리던 일이며, 통구미의 그 긴 왕복 1차 교차로, 짚차 관광,
실개천 건너 시원한 나무 밑, 옥수수, 염소 등등 정말 잊을 수 없는 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때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포항의 중국집 습격 사건이었을 것이다.
들어갈 때는 28명이 배표를 끊어 들어가서 아지매를 남겨두고 나오니 27명이었다.
포항에 내린 시간이 대략 1시 반 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배가 고프니 식사를 근처서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예로부터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점심으로는 짜장면이 최고라는 생각에서였는지 근처의 중국집을 찾았다.
우리가 들어갈 때는 마침 아무도 없었다.
졸지에 들이닥친 28명이 왁지지껄 목청을 높이며 각기 자리를 잡은 후
엽차를 한 잔씩 먹고 신문도 보며 떠들썩하게 굴다가 드디어 주문할 때가 되었다.
음식이 너무 늦게 나올 것이라는 것과 주인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짜장면과 짬뽕,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주문을 받기로 했다.
각기 협조를 잘 하여 짜장면과 짬뽕으로 나누어 주문을 하였는데 주인이 대뜸 말하기를
"한 가지로 좀 통일을 해주시죠."라는 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적막감이 감도는 정적이 있은 후 이내 다시 왁자하니 시끄러워졌다.
그러자 서울 형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검지손가락을 펴서 공중을 찌르며 큰 소리로
"야! 가자."
더이상의 말이 필요없는 순간이었다.
빈 중국집을 꽉 채웠던 그 시끄러운 27명이 일시에 썰물 빠지듯이 우루루 빠져나가버렸으니
중국집 주인은 완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던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서울 작은형의 해석이 더 좋았다.
"그 집에서는 한꺼번에 20명 이상을 쳐낼 능력이 없었어."
그 더웠던 여름 포항의 한 중국집.
그 주인 아저씨가 실제 30명 가까운 손님을 한꺼번에 쳐낼 힘이 없었는지,
설마 나가겠나 하는 안이한 생각에 객기에 가까운 배짱을 부려본 것인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여력이 없었다면 우리가 주인 아저씨의 꾀에 넘어가 도와준 꼴이 될 것이고,
후자의 경우였다면 봉을 놓친 심정으로 땅을 쳤을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지금은 그 중국집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찾아가래도 못찾겠지만
인근의 칼국수집 주머니만 채워주었던 그 사건은
그때 울릉도에서 함께 했었던 마을 사람들은 죽는 그날까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첫댓글 우하하!!! 어제 나누었던 이야기...
그럼 어제 사월이 울산을 갔단 말인가? 가까우니까 자주 가고 좋구만. 회도 충분히 먹었을테고, 우린 토요일에 농수산 시장가서 사와서 먹었는데... 울산을 한번 가긴 가야할텐데... 집안이 더 어지럽혀지기 전에 말이지. 그런데 너무 멀어서...편도만 최소 5시간은 걸리는 판이니. 멀리 떠나오긴 온것 같구만.
5빠도 울산에서 몇 년 살았지? 누나 따라 왔다갔다... 벽산 아파트까지 갔었는데...
울릉남중이 아니라(남중은 없음) 울릉서중
예~
그렇지!울산에서 제법 살았지.아직 울산에 있었으면 가장 많은 수혜를 누렸을 판인데.아쉽구만.처음 집은 누나집에서 50m 정도의 거리에 구했고.벽산 아파트에 동반입주하여 8-9개월쯤 살고서 전주로 이사를 했지.울산에서 5년 10개월쯤 산 것 같군.대구에서를 제외하면 전주에 가장 오래 살고 있지.만 9년이 다 되어가네.
화동:64~71년7월(7년 5월), 대구:71년 8월~85년 11월(14년 3월), 경기도 연천:85년 11월~88년 2월(2년 3월), 다시 대구:88년 3월~90년 1월(1년 10월), 울산:90년 1월~95년 11월(5년 10월), 전주:95년 12월~현재(8년 11월).
오빠는 정말 유난히도 여러군데를 전전하며 살았네? 이제 대충 전주를 뜰 때도 된 거 아냐? 전주에서야 오래토록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대구에서 산 기간중엔 경산에서 자취한 기간도 2년쯤은 포함되어 있을 걸.그러면 실제로 대구에 산 것은 13년 정도가 되는데 아마도 전주에서 가장 오래살 것 같은 생각이 드네.앞으로 4년정도면 13년이 되니....
다음에 옮겨갈 장소라면 아마도 경기도 화성이나 평택,수원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궁극적으로 현대자동차 연구소가 총 집결한다면 전주 상용연구소도 화성군 남양면에 있는 남양연구소로 옮겨 가겠지.아마 거기서 현대자동차에서의 직장 생활을 마감하겠지.몇년 후가 될지 정확히 알 순 없겠지만.
화성...무서바(우리 둘째 시숙 이름...) 마지막 정착지는 울산이 되면 딱 좋겠구만..내가 이 일을 얼마나 오래 할지 모르겠지만 가까이 살면 나눌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