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후의 천주교
민족의 광복과 완전한 종교의 자유는 천주교에게도 마음껏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광복 직후의 민족사는 교회의 기대대로 전개되지는 못하였다. 광복은 되었으나 정부는 수립되지 못한 채 3년간 미군정이 실시되었다. 이 시기에 천주교는 개신교와 더불어 우대를 받으며 교세를 더욱 발전시켜 나갔다.
즉, 언론·출판 분야에서 『경향신문』이 창간되고, 『경향잡지』와 『가톨릭 청년』이 속간되었다. 『경향신문』은 한말의 『경향신문』의 제호를 이어받았으나, 엄격한 의미에서 그 속간은 아니었다. 교육사업으로는 종래의 초등기관들이 중·고등교육기관으로 개편되었고, 또한 성직자 양성기관인 신학교가 성신대학(聖神大學)으로 승격되었다.
교회조직면에서는 충청남도가 서울교구에서 분리되어 대전교구로 독립, 파리외방전교회에 위임되었다. 수도회로는 최초의 방인 여자수도회로써 복자수녀회가 창설되고, 샤르트르의 바오로수녀회가 일본관구에서 분리되어 독립관구로 승격되었다. 또한, 한국교회에 교황사절이 부임하였다.
천주교는 당시 대한민국의 건국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는데, 총선거에 대비하여 가톨릭시국대책위원회를 조직, 신자와 청년들을 단합시키는 한편, 교구장들은 연합교서를 발표하여 신자들에게 국가와 민족을 위한 특별기도와 희생을 당부하였다.
정부수립 후에도 주교들은 신자들에게 조국의 통일을 위해 기도를 계속하고, 나아가 공산주의에 대해 순교정신으로 대항하도록 권고하였다. 이는 공산주의에 대한 간접적인 투쟁선언을 의미한다. 당시 천주교는 남한의 좌익분자들과 투쟁을 계속하면서 북한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교회학대에 대해 결사적으로 항거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공산주의에 못지않게 국내의 사회부조리의 제거가 조국통일의 전제조건임을 역설하였다. 국토분단의 비극은 결과적으로 북한 교회의 전멸을 초래하였다. 북한에서는 소련군이 주둔하면서부터 토지개혁·화폐개혁을 거쳐 점차 종교말살정책을 강행하였다.
6세 때부터 종교를 밝혀야 하였고, 종교가 드러나면 차별대우를 받아야 했으며, 심지어는 직장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더구나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종교말살정책이 노골화되고 본격화되었다.
1949년 5월 공산주의자들은 덕원의 분도회수도원을 습격하고, 그 곳에 있던 주교 사우어(Sauer, B., 辛神父)를 비롯하여 함경남북도에 거주하는 모든 외국인 신부·수사·수녀들을 체포하였다.
이에 대해 평양교구의 주교 홍용호(洪龍浩)가 항의하고 나섰는데, 공산주의자들은 오히려 그를 체포하는 동시에 평안남북도의 모든 한국인 신부들까지도 체포하였다.
또한 황해도와 강원도에 남아 있던 신부들도 6·25전쟁을 전후하여 모두 체포되어 북한에는 한 명의 신부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한편, 남한의 천주교는 6·25전쟁의 시련속에서도 발전을 거듭하였고 휴전 후에는 비약적으로 발전되어, 휴전 당시 16만 명에 불과했던 신자수가 1962년에는 53만 명으로 급증하였다.
1962년은 한국 천주교회에 교계제도가 설정되었고, 또한 이 해에 개최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한국교회의 발전과 쇄신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교계제도의 설정으로 자립교회로 승격함으로써 교구가 많이 증설되는 등 발전을 이룩한 반면, 제2차 공의회 결과로 교회의 미사는 모국어로 집전되고 전례와 예식이 종전과는 달리 대단히 간소화되었으며, 평신도의 활동이 활성화되고, 갈라진 형제들과의 대화·기도회 등이 빈번해졌으며, 신구약 성서가 공동으로 번역되기까지 하였다.
바티칸공의회는 이렇듯 한국교회에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현상의 하나는 교회 안의 사회참여의식이 고조되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즉, 경제제일주의에서 비롯된 인간경시·황금만능의 풍조, 각종의 사회부조리와 대항하여 그리스도의 정의와 사랑에 입각해서 인간 존엄성의 회복과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등,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교계제도의 설정과 공의회는 한국교회의 발전을 가속화시켜 1969년에는 서울대교구의 교구장 김수환(金壽煥)이 추기경에 서임되는 결실을 가져왔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천주교회는 스스로의 쇄신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면서 1981년 조선교구설정 150주년 기념과, 이어 1984년 교회창설 2백주년 기념을 연이어 맞게 되어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1984년 5월 초에 한국천주교 2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로마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내한하여 2백주년을 맞는 한국천주교회를 축복하였고, 이어 오늘의 한국천주교회를 있게 한 순교복자 103위에 대한 시성식(諡聖式)을 집전하여 그들을 모두 성인품(聖人品)에 오르게 하였다.
103위 성인 중에는 10명의 외국인 선교사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들은 한국인의 구원을 위해 순교한 자들이므로 당연히 한국교회에 속하는 성인으로 시성된 것이며, 나머지 93명은 한국인으로 순교한 사람들이다.
순교시기로 구분하면, 1839년 기해박해 때의 순교자가 정하상·유진길 등을 포함하여 모두 67명이고, 1846년 병오박해 때의 순교자가 김대건을 비롯하여 모두 9명, 1866년 병인박해 때의 순교자는 남종삼 등 모두 합해 17명이다.
이들 중 기해박해와 병오박해 때의 순교자는 이미 1925년 7월 5일 로마교황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으며, 병인박해 때의 순교자는 1968년 10월 6일에 로마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諡福)되었다가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인데, 한국 천주교회는 성인을 배출함으로써 세계만방에 한국 천주교인의 영광을 빛냈다.
한편 한국천주교회는 1980년대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해외선교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1981년 한국외방선교회에서 파푸아뉴기니아에 4명의 신부를 파견한 것을 시발로 하여, 현재는 대만, 필리핀, 파푸아뉴기니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멕시코, 페루 등의 나라에 한국인 선교사들이 파견되어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1989년에는 제44차 세계성체대회가 한국에서 개최되어 한국천주교회를 세계천주교회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 한국천주교회는 민족의 화해와 재일치를 위해 북한선교에 각별한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으며,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주로 부각되었던 사회정의와 사회복지의 신장을 위한 사회적 활동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문제와 더불어 한국의 전통적 문화와 가치를 존중하는 방향에서 복음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을 보다 강화해 나갈 것을 새로운 과제로 부여받고 있다.
1968년 4월 27일 제5대 서울대교구장에 취임한 이래 한국천주교회의 최고 장상으로서 교계 내외에서 존경과 신망을 받던 김수환 추기경이 퇴임함에 따라 청주교구장이었던 정진석 대주교가 1998년 6월 29일 제13대 서울대교구장에 취임하였다. 정진석 대주교는 2006년 2월 추기경에 서임되는 영예를 안았다. 2012년 5월 정진석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났으며, 같은 해 6월 염수정 대주교가 제14대 서울대교구장에 취임하였다. 이후 염수정 대주교는 2014년 2월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세 번째로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2013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천주교회의 총 신자수는 544만 명 정도이며, 교구수는 서울·인천·수원·의정부·춘천·원주·대전(이상 서울관구,) 대구·부산·마산·안동·청주(이상 대구관구), 광주·전주·제주(이상 광주관구) 등 15개 교구가 있으며, 그 중 서울·대구·광주의 3교구는 대교구이다.
본당수는 1,051개, 공소는 1,242개이고, 신부는 2,538명(외국인 221명포함)이며, 수도회는 모두 127개로서 39개의 남자 수도회에 소속된 수사가 1,095명, 88개의 여자 수도회에 소속된 수녀는 7,574명이다.
천주교에서 경영하는 교육기관으로는 가톨릭대학교를 비롯하여 대학교가 10개교, 전문대학 1개교, 고등학교 37개교, 중학교 28개교, 초등학교 6개교가 있으며, 그 밖에 많은 특수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의료사업으로는 성모병원을 비롯해서 종합병원 20개소, 의원 15개소, 의료연구소 8개소, 무료병원 11개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그 밖에 사회사업으로는 수많은 양로원·고아원·요양원·나환자수용소 등을 세워 불우어린이와 노인 및 근로여성을 보살펴주고 있다.
참고문헌
『정조실록(正祖實錄)』
『순조실록(純祖實錄)』
『헌종실록(獻宗實錄)』
『철종실록(哲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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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급외교사』(이능화, 기독교창문사, 1928)
「사학징의」(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한국교회사연구자료』 7, 불함문화사,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