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탈출 30,14)
수녀원에 들어오니 크고작은 잔치 행사가 많았고, 젊은 예비 수녀들은 노래와 춤으로 예능을 감당해야했다. 동기중에 성악을 전공한 00 자매는 그때마다 돋보였다. 성악에 대해 아는 바가 없지만, 젊고 힘찬 그녀의 노래는 내가 들어도 일품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손재주도 꽤 있었다. 그러니 하늘 같은 양성장 수녀님 앞으로 수시로 불러다녔다. 그때마다 그녀의 카리스마는 빛나 보였으며, 겸손해 보이지 않는 그녀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듯 보였다.
그녀에 비해 나는 여러 가지로 한미했다. 입회 전엔 나도 이만하면 나도 괜찮은 청춘이라고 자화자찬했는데. 비교가 장성한 즉 열등감과 반감이 되었고, 열등감과 반감이 장성하니 혐오와 분노로 튀었다. 우선 나에게는 밥만 축내고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식충이’ 같다는 자기혐오 돌아왔다. 자매에게는 분노로, 심지어 하늘 같은 선생 수녀님의 편애에 실망을 넘어 공격적인 환멸로 튀었다. 생활 면담이 잡혀 있는 날, 부르시는데 마주뵙기가 싫어 늑장을 떨며 빙빙 돌았다. 무례로써 화를 돋우려는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수녀님의 분노는 예상보다 더 했다. 축구로 말하면 자살 골을 넣고 있었다. 어쩌다 이 광경을 목격하신 큰 어른 수녀님 한 분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큰 걱정을 하셨다. 그 날 그 시간과 한동안...이 일이 빌미가 되어 퇴회당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에 잡혀 있어야 했다.
그런데 섬광같은 천우신조 한 자락(우리는 이것을 성령이라고 한다) ‘이것? 비교 질투?’ 이 하찮고 사소한 감정 때문에 내가 성소를 잃는다면, “천상천하에 가장 못난 사람이 바로 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심한 나를 이성과 신앙으로 깨우시는 성령의 바람이었다. 이후 나는 겨우겨우 그분께서 주신 성소를 지켜 내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질투하시는 하느님이라니...어마어마한 하느님께서 불초한 나를 두고 질투라니...,그런데 왜 마음이 기분이 나쁘지 않지? 오히려 괜찮고 좋지?’
그 때 나의 질투는 나를 망쳐 놓을 뻔했다. 그런데 하느님의 질투는 그분의 가늠할 수 없는 사랑과 품위를 오히려 고양시킨다. 또한 질투로서 나를 무한히 성장시키고 완성할 것이니 고맙고 감사하다. 그런 나의 하느님을 질투하시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기도: 에스텔의, 하느님 저가 더욱 순정한 사랑과 희망과 믿음을 봉헌하게 도와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