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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차: 2016년 8월 2일(화)
숙소는 히드로 공항 근처에 위치하며 1급 호텔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호텔에 비해 규모는 작아 보인다. 시차적응이 안 되어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아침 7시에 제공되는 호텔식사(빵 위주)를 마치고, 9시에 전세버스에 올라 첫 번째 런던 일정을 시작한다. 잠시 후 런던에 거주하는 한국인 현지가이드(남자)가 우리 버스에 올라와서 영국 런던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국 런던의 주택은 대략 3층이 주를 이루는데 ‘타운 하우스’(Town House)라고 부르며 한 건물을 두 세대가 좌우로 나누어 사용한다고 한다. 영국 런던은 세계 최초로 지하터널에 기차가 달릴 수 있는 이른바 지하철(地下鐵)을 갖춘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하에 전기철도를 세계 최초로 갖춘 곳은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라고 한다. 런던 시내의 가로수는 대부분 플라타너스인데 이 나무는 공기를 정화(淨化)시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런던 시내를 흐르는 테임즈 강은 우리나라 한강에 비해 훨씬 폭이 좁은 강이지만 조수간만(潮水干滿)의 영향을 받는 이른바 감조하천(感潮河川)에 해당함을 확인할 수 있다. 런던은 북해(北海)에서 약 65km 정도 떨어져 있다고 하는데, 여기까지 바닷물이 들어온다니 놀랍다. 이러한 지리적인 조건으로 런던의 테임즈 강은 바다와 연결되어 영국이 세계적인 해양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런던을 관통하는 테임즈강과 강변에 위치한 국회의사당 그리고 빅벤
런던 시내관광의 첫 번째 지점은 런던의 상징이자 랜드 마크인 빅벤(Big Ben)이다. 테임즈 강을 끼고 서있는 국회의사당 건물의 종탑에 해당하며, 시계 원의 지름이 7m에 달한다고 한다. 강 건너편에서 바라보니 너무 멀어서 그런지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빅 벤’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데, 벤자민 홀(Benjamin Hole)이 설계하여 만든 큰 시계라는 뜻이다. 또한 테임즈 강 주변에는 런던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바퀴 모양의 전망대로 런던아이(London eye)가 있는데, 2000년 밀레니엄을 기념하여 만들어졌으며 자전거 바퀴의 200배 크기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영국 런던 도심에 위치한 웨스트민스터사원(영국성공회와 관련되는 종교시설)
런던의 명물, 2층버스
두 번째로 간 곳은 구 시가지에 위치한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이다. 화려한 고딕양식의 영국 성공회(聖公會) 건물이다. 우리나라의 국립묘지에 해당하는 시설이며, 영국 국왕의 대관식(戴冠式)이 열리는 곳이다. 영국 작곡가인 엘가(Sir Edward Elgar)의 ‘위풍당당 행진곡’도 이곳에서 울려 퍼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여기에 묻힌 사람들은 왕족과 영국을 빛낸 유명 인사들인데 뉴튼, 리빙스턴, 바이런, 헨델, 다윈 등이 여기에 모셔져 있다고 한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기독교 교회로는 영국국교회(성공회: 구교와 신교 접목) 외에 개신교(改新敎)에 해당하는 감리교회, 구세군교회 등이 있다고 한다. 부근에는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인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 수상의 동상(銅像)이 서있었다. 처칠은 무상급식과 무상교육을 세계최초로 실시하며,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영국은 국민무상의료제도를 실시하며 이른바 ‘요람에서 무덤까지’ 라는 구호에 걸 맞는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영국 국왕이 거주하는 버킹엄 궁전의 모습
세 번째로 간 곳은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2세(Elizabeth II: 1926~ : 1952년부터 재위)가 살고 있는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이다. 이곳에서 격일제로 행해지는 근위병 교대식은 관광객들에게 특별한 볼거리라고 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한다. 하지만 관광객은 오늘도 여왕이 사는 궁궐 정문 앞에서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룬다. 근위병(近衛兵)들의 전통적인 복장은 곰 털로 만든 검은색 모자에 스코틀랜드산 빨간색 캐시미어(cashmere) 상의라고 한다.
입헌군주제를 인정하는 영국과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국왕(國王)의 의미가 특별하겠지만 민주공화제를 채택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왕의 존재가 크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현재의 영국인들에게 국왕은 그야말로 상징적인 존재이지만 전쟁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하니,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사결정권을 지닌다 하겠다. 영국은 직업군인제이지만 왕족은 특별히 군대 복무의 의무를 지니며, 전시에는 가장 먼저 전쟁터에 달려가는 것이 그들의 전통이라고 한다. 또한 평시(平時)에는 사업을 통해 얻은 수익금을 국민들에게 베푸는 자선사업을 실시한다고 하니, 이거야말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회적 실천을 통해 영국왕실은 국민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을 수 있으며, 입헌군주제에 대한 일부 국민들의 반감(反感)도 줄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관광하는 동안 계속해서 이슬비가 흩뿌리는데도 런던 시민들은 대부분 우산을 사용하지 않는 모습이다. 흐린 날씨가 일상적이기 때문에 웬만한 비에는 우산을 쓰지 않는 것 같다. 기온은 서늘하여 우리나라 가을 날씨로 착각할 정도이다. 버킹엄 궁전은 넓은 녹지공간을 가지고 있으며, 바로 앞쪽에는 19세기 이른바 ‘해가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을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한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의 기념동상이 위치하고 있다.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은 알버트 공(1819~1861)이며 41세까지 살다가 여왕보다 먼저 죽었는데, 사는 동안 부부금실(夫婦琴瑟)이 참 좋았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결혼선물로 부부 찻잔세트가 일반적이며, 출산기념 선물로는 아이의 정서교육을 위해 개를 포함한 반려(伴侶) 동물이 이용된다고 한다.
점심식사로는 현지식인 쇠고기(beef)를 먹었는데, 예상과 달리 무척이나 짠맛이었다. 어지간한 짠 음식도 잘 먹는 나에게도 짜다는 느낌이 강하였는데, 이곳 사람들은 왜 이렇게 염분을 많이 섭취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결과적으로 짠 음식 때문인지 성인병 발생이 높다고 하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토마토 캡슐 등 보조식품이 발달하였다고 한다.
런던 시내에는 곳곳에 녹지공간인 공원이 배치되어 있는데 그중의 하나인 하이드 파크
오후에는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하이드 파크(Hyde park)를 둘러보았다. 공원 하나의 면적이 우리나라 여의도 면적(88만평)에 근접한 70만평의 넓이를 가지고 있다. 푸른 잔디밭에 우람한 플라타너스 고목이 줄지어 서있으며, 런던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한때 이곳에서는 귀족들의 여우사냥이 이루어졌을 만큼 넓은 곳이라 하겠다.
하이드 파크 입구에는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알버트 공(公)의 기념 조형물이 위치한다. 온갖 장식으로 만들어진 대형 기념물인데, 대영제국의 위풍당당함이 느껴진다. 공원 앞쪽에는 로열 알버트 홀(Royal Albert Hall)이 있는데, 19세기에 지어진 대형 건물로 5,000명의 관객이 음악공연을 즐길 수 있는 실내 공연장이라고 한다.
로열 알버트 홀의 외부모습
알버트홀에서의 공연 모습(중국의 피아니스트 랑랑이 연주하는 리스트의 피아노협주곡1번)
런던 시민들은 개를 반려동물로 즐겨 기른다. 집 밖으로 외출할 때는 반드시 줄에 묶어야 하며, 공원 안에서만 풀어서 뛰놀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런던의 구 시가지는 역사적으로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도시로, 마차를 감안하여 만든 도로망은 오늘날 자동차 시대에는 비좁게 느껴진다. 그리고 주차장이 따로 조성되지 않았기에 관광버스는 승객을 내려주고 그 승객이 다시 탈 때까지 주변을 맴도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당장 건물을 허물고 대형 주차장을 조성하였겠지만, 이곳 구도심의 건물들은 역사가 깊은 문화재급 건물이기에 함부로 허물 수 없는 상황일 것 같다. 눈앞의 이익보다는 역사와 전통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유럽인들의 사고방식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유럽의 도시들은 어딜 가나 고색창연(古色蒼然)하고 아름다움이 물씬 느껴진다. 왜 그럴까 생각해본다. 유럽의 도시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첫째 건물을 지을 때 석회석이나 대리석 등 석재를 주 재료를 사용하였으며, 여기에 조각과 그림 등 온갖 예술적 장식을 가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도시미관(都市美觀)을 해치지 않도록 상업용 간판을 1층만 허용하고 간판과 글씨 크기까지 규제하였다는 점이다. 또한 전기나 통신용 배선을 보이지 않게 처리함으로써 건물의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감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건물 창마다 예쁜 꽃이 피어있는 화분을 기르고 있으니 사람들의 아름다운 심성(心性)까지 느껴진다. 여기에 비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도시미관(都市美觀)과는 무관하게 편리함과 기능성만 추구하여 규제를 풀어주는 것이 오히려 미덕(美德)이라고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더욱 대조를 이룬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그동안 경제적으로 고도성장을 해오면서 생활 속에 미적인 감각을 발휘하고 예술을 즐길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유럽의 도시를 돌아다녀보니 우리나라 도시풍경이 얼마나 무질서하고 살풍경(殺風景)한지 저절로 느껴진다. 이런 고풍(古風)스럽고 깔끔하게 단장된 도시풍경에 매력을 느끼고 유럽을 즐겨 찾는 우리나라 여행객들은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 같다. 미(美)를 추구하고 그것을 감상하고 싶은 욕망은 인류가 가진 보편적인 욕망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잠시 후 우리 여행 팀은 예정된 쇼핑센터에 들러 영국의 특산품을 구매하기도 하였다. 이곳에서 팔리는 물건 중에는 스코틀랜드에서 만든 캐시미어 양모 제품이 유명하다고 한다. 모직제품 캐시미어(cashmere)는 인도의 지명 ‘카슈미르’에서 나온 말로 아마도 식민지시대에 값싼 인도의 양모(羊毛) 원료를 가져다가 영국에서 제품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비가 자주내리는 나라답게 우산이 발달하였는데, 가방 속에 휴대하기 간편한 접이식 우산 제품이 주로 판매되고 있다.
런던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 관람이었다. 주로 대영제국 시절에 해외에서 수집한 문화재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들은 약탈이 아닌 합법적 매입에 의해 문화재를 가져왔다고는 하지만 상대편 국가의 입장에서는 빼앗긴 느낌이 강할 것 같다. 대영박물관에 현재 전시되고 있는 수많은 해외 문화재는 결과적으로 영국인들 덕분에 더 이상 훼손되지 않고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행해진 침략과 약탈에 대해서는 비판하면서도 그들의 인류문화 유산의 보존 노력에 대해서는 일정부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대영박물관의 문화재는 이제 특정 나라의 소유가 아닌 인류 공동의 유산(遺産)이라 할 수 있다.
대영박물관의 전시관을 둘러보는 관광객들의 모습
대영박물관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바티칸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이라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 이 모두를 관람하게 되니 축복받은 느낌이다. 1753년에 시작된 대영박물관은 1,300만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우선 박물관의 외관은 고대그리스 이오니아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어 그 자체가 문화재급이다. 영국의 귀족들이 기부한 유물이 모이면서 시작된 대영박물관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세계 박물관 규약에 의하면 소장하고 있는 유물 중에 자국(自國)의 유물 비중이 일정 기준 이하일 때는 입장료를 받을 수 없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만큼 대영박물관은 자국의 문화재보다는 해외에서 가져온 문화재가 더 많다는 증거이다. 다만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탐방객들은 관행상 박물관 운영에 도움을 주기위해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내고 입장을 한다고 한다. 우리 일행도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한국화폐로 1만 원 정도씩 가족별로 모금함에 돈을 넣고 입장하였다.
대영박물관은 평소에도 탐방객들로 넘쳐나 전시관에서 이동하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이곳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역시 이집트문명 및 그리스·로마문명과 관련된 전시실이었다. 이집트 문명 전시관에서는 최고 5천년 무렵의 ‘미라’(mirra)를 포함하여 다수의 미라를 볼 수 있었다. 사후세계를 믿고 만들어졌던 고대 이집트인들의 시신들은 안식(安息)을 포기하고 낯 설은 이국땅에 옮겨져 오늘도 수많은 탐방객들에게 박제(剝製)된 동물처럼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유물은 이집트 문명의 비밀을 풀어주었던 고대 상형문자가 새겨진 ‘로제타스톤’이다. 탐방객들이 너무 많아 사진촬영 조차 힘든 상황이다.
*로제타스톤(Rosetta Stone): 고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5세(B·C 210-B·C 181)때에 만들어진 검은색 비석이다. 1799년 7월 15일 나일 강 어귀의 로제타에서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군 장교인 피에르 부샤르가 발견하였는데, 1802년부터 영국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다음은 고대 그리스문명과 관련된 유물을 전시해놓은 그리스 전시관을 가보았는데 놀랍게도 파르테논(Parthenon) 신전과 관련된 유물들이 즐비하였다. 도리아식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그 상단 외벽에 사용되었던 부조(浮彫)의 일부인 ‘엘긴 마블’(Elgin marbles)이라 불리는 대리석 부조가 탐방객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17세기(1687년) 베네치아왕국이 오스만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할 때, 파르테논 신전 안에 보관하고 있던 오스만의 화약이 대포에 맞아 폭발하면서 안타깝게도 신전은 상당부분 훼손이 되었다. 그 후 오스만제국이 그리스를 지배하던 19세기에 영국대사 ‘엘긴’은 그 파편이라고 할 수 있는 파르테논신전의 부조 상들을 합법적으로 매입하였던 것이다. 163m에 이르는 부조군 중에 거의 반절을 가져왔다고 하는데, 나머지 반절은 현재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최근 영국 의회에서는 이 유물을 그리스에 반환시키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인류의 공동 자산인 파르테논 신전과 관련된 유물은 당연히 원래의 위치에서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 여겨진다.
이곳 전시실에는 그 외에도 고대 그리스시대에서 헬레니즘시대까지 만들어진 조각품이 즐비한데,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을 소재로 하얀 대리석을 사용하여 표현한 작품들이다. 대리석(大理石)의 장점을 살려 신체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들이었다. 황금비율(黃金比率)을 적용한 예술적 표현 그리고 인체에 대한 정교한 세부 묘사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대리석이라고 하는 돌을 이용하여 인체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조각가들이 해부학적 지식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눈으로는 조각품을 감상하고 귀로는 무선 수신기로 전달되는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게 되니, 고대인들이 남긴 예술작품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곳에 전시된 인체를 소재로 한 조각품들의 대부분은 두상(頭狀)이 없고 성기(性器) 부분이 훼손되었는데 아마도 이민족들의 침입과 종교간 갈등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그리스인들에게 민족적 수치감을 주기위한 의도로 파괴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아쉬운 점은 우리 여행이 패키지(package)로 이루어진 단체여행이었기에 인솔자의 동선(動線)에 따라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빠르게 이동해야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자유여행이었다면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유물을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인간들은 끊임없이 돌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역사를 기록하고자 노력해왔다. 돌의 특성은 불변성과 영원성인데 유한한 생명을 갖는 인간들이 그 한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최선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돌을 다루는 기술은 모든 문명의 기본이 되는데, 서양의 경우 이집트-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로마 문명으로 이어지며 돌을 재료로 한 수많은 유물과 유적을 남기게 되었다.
이곳에는 한국기업의 기부(donation)를 바탕으로 서기 2000년에 개관한 한국관이 운영되고 있었다. 다른 전시관과 차별되는 점은 최근에 만들어진 시설이기에 에어컨 시설이 가동된다는 점이다. 250여 점의 유물 중에 고려 철불, 달 항아리 백자 등이 눈길을 끌었고 전반적으로 유물이 많지 않아 아쉬웠지만, 우리 문화가 이곳에서 인정받고 있음에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함이 느껴졌다. 이곳에서 아들과 난 잠시 일행을 놓쳐 당황하기도 하였지만 함께 온 중년부부가 있었기에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미리 가이드가 일러준 대로 우리는 이곳에서 기다렸다. 예상대로 잠시 후 인솔자가 우리를 찾으러 왔었고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우리 때문에 일정에 차질을 주게 되면 민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후에는 대오(隊伍)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나름 노력하였고, 오히려 보호를 받아야 할 아들이 아빠를 더 챙기는 형국이 되었다. 아빠를 못 믿어서인지 아니면 아빠를 챙겨주고 싶은 효심(孝心)의 표현인지 모르겠다.
런던에서의 빠듯한 하루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프랑스로 건너가기 위하여 런던 교외의 기차역인 ‘세인트 판크라스 역’(St Pancras railway station)으로 향하였다. 이제는 국경을 통과하기 때문에 역내에서 세밀한 입국심사를 받게 되었다. 최근 프랑스와 벨기에에서도 불특정 다수를 향한 테러 범죄가 발생하였기에 입국심사는 더욱 까다로워졌고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하였다. 무장경찰들이 삼엄한 분위기에서 순찰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을 떠나기 직전에 발생했던 프랑스 내 테러사건은 유럽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하였을 것 같다.
이곳에는 우리 일행을 포함하여 한국인 여행객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국의 여행사들은 대개 비슷한 코스를 진행하기 때문에 어디를 가나 한국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해외에서 동족(同族)을 만났을 때 한편으로 반갑기도 하지만 유적지와 식당 등 이동하는 곳마다 자주 겹치다보니 내가 한국의 어느 관광지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입국수속을 마친 우리 일행은 인솔자의 안내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우리는 도시락을 미리 가족별로 분배받아 ‘유로스타’라고 불리는 고속전철의 객차에 올라탔다. 프랑스에서 만든 떼제베(TGV)라서 그런지 객차의 내부시설은 무척이나 세련되어 보였다. 2층 구조로 된 객차에서 우리는 1층에 자리를 잡았다. 저녁 6시 35분에 출발한 고속전철은 런던을 벗어나 영국의 농촌지역을 달린다. 과거 빙하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 구릉지(丘陵地)가 물결처럼 펼쳐진다. 그곳엔 푸른 초지와 밀밭이 조성되어 있고 양이나 염소 등 초식동물이 풀을 뜯는 전원(田園)적인 풍경이 차창 밖으로 전개되었다. 목축업과 곡물농업을 결합한 이른바 혼합농업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기차는 2시간 15분을 달려 프랑스의 수도 파리(Paris)의 북쪽에 위치한 ‘파리 북 역’에 도착하였다. 이동구간 중에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Dover)해협을 통과하였는데 그 구간 길이만 해도 약 50km 라고 한다. 해저터널을 만들어 선박 대신에 기차로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도 이런 해저터널을 건설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비용문제와 더불어 양국 간 화해 무드가 선결 과제일 것 같다. 역사적으로 영국과 프랑스는 100년 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전쟁을 통하여 양국 간에 국민감정이 크게 악화되었겠지만, 서로의 이익을 위하여 이런 시설을 함께 만든 사실을 보면서 서양인들은 역시 명분(名分)보다는 실리(實利)를 중시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밤늦은 시각에 드디어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 도착하였다. 한반도의 약 3배 면적을 갖는 프랑스는 영국과 달리 좀 더 자유분방(自由奔放)함이 느껴졌다. 파리 북 역(驛) 주변에는 예상대로 외국인들의 출입이 많았고, 흑인을 비롯한 이주민들이 많이 정착하여 사는 곳이라고 한다. 도시 미관은 영국의 런던과 달리 어수선한 분위기였으며, 절도범들이 활동하는 우범지역이라고 한다. 이곳에 외국 관광객들이 혼자서 배회한다는 것은 마치 어린 양이 늑대 소굴에 들어가는 형국이 될 것 같다. 유럽은 어느 도시를 가나 절도범들이 있어 관광객들의 가방과 지갑을 노린다고 하는데, 우리는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가이드가 신신당부한대로 언제나 양떼처럼 함께 몰려다녔다. 정글에서 초식동물이 생존하는 방법처럼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함께 이동하였다.
역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예약된 호텔(Premiere Classe)에 도착하였다. 유럽에서는 객실 방과 화장실 바닥의 높이가 같아서 샤워는 반드시 샤워부스(shower booth) 안에서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래서 화장실에는 배수구가 따로 없었다. 건물의 층수를 정할 때도 우리나라와 기준이 다르다. 지상에서 0층으로 시작하여 층수를 세는데, 아마도 수학에서 사용하는 ‘0의 개념’을 중시하는 관습인 것 같다. 여행기간 중 초반이긴 하지만 정신적으로 긴장하고 육체적 피로 때문인지 눈 속의 실핏줄이 터져 한쪽 눈이 붉어지기도 하였다.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은 탓이리라 생각한다. 호텔에 오면 샤워하고 카메라 및 수신기를 충전해서 내일을 대비한다. 시간상 좀 여유가 있어도 외출할 생각은 못하고 그냥 잠을 청하게 된다. [다음회에 계속]

첫댓글 프린트해서 읽어야겠어요. ^^
나중에 기회되면 한꺼번에 파일로 보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