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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봉산
위봉산(威峰山,524.3m)
▶개요 및 자연경관
백두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분기된 금남호남정맥이 서북으로 63.3km를 뻗어가면서, 북으로 금강, 남으로 섬진강의 분수령을 이루며, 장안산. 사두봉. 수분령. 신무산. 팔공산. 진안 성수산. 마이산. 부귀산을 지나 완주 주화산에 이른다. 이곳에서 산줄기는 삼분수(三分水, 북쪽 금강, 남쪽 섬진강, 서쪽 만경강)를 이루며 두 갈래를 친다. 이곳에서 남으로 호남정맥(398.7km)을 보내고, 실질적인 금남정맥(107km, 금강과 만경강의 분수령)이 북으로 뻗어가며 입봉, 보룡고개를 지나 황조치 못미쳐, 1.2km지점에서 지맥 하나를 나뉘어 놓다. 이 지맥은 실질적인 금남정맥과 헤어져 서북으로 방향을 바꾸어 율치, 청량산(원등산), 송곳재, 귀뚤봉, 위봉산 서문을 지나 되실봉 아래에서 산성을 따라 동쪽으로 1.5km쯤 가는 곳에 위봉산을 솟구쳐 놓았다. 위봉산의 모든 물줄기는 동상.대아리 저수지를 통하여 고천산을 이루며 만경강에 합수되어 서해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와 동상면 수만리에 경계하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역이었고, 조선시대 성리학계의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를 구분 짓는 학풍적 경계를 이루기도 했다. 전국의 8대 오지로 일컬어졌던 수만리까지 길이 뚫리고 포장이 되었고, 옛적에 나룻배로 왕래하였던 [수만리-대아리]까지 순환도로가 개설되었다. 또 전주에서 동상저수지와 대아리 저수지를 구경할 수 있는 소양과 동상면, 대아리, 고산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뚫려서 가족들의 드라이브 코스로 이용되며, 등산객과 관광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정상에서 조망은 북으로 동상저수지, 대부산. 학동산이 지척이고, 동으로 연석산, 운장산(주줄산), 남으로 원등산, 마이산, 만덕산, 서로는 종남산, 서방산 등이 다가온다. 또 위봉산성 서문을 지나 0.5km쯤 내려가면 고찰 위봉사가 나온다. 사찰 앞에서 1백여 미터 아래에 있는 위봉폭포가 장관이다. 절벽사이로 비류직하 하는 60여 미터의 폭포와 빼어난 경관은 그 아래로 펼쳐진 골짜기, 그리고 대아댐 호반이 절경인데다가 근래에는 말끔히 포장되어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관광차량이 줄을 잇고 있다.
▶문화유적 및 명승지
[위봉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이며, 전주에서 동북쪽으로 26km 지점에 위치한 위봉사의 일주문에 \추줄산 위봉사( 山 威鳳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추줄산은 위봉사 바로 뒷산이고, 위봉산은 우측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산이다. 위봉사는 백제 무왕 5년(604년) 서암대사(瑞岩大師)가 최초 산문을 열었으며, 신라 말 최용각이 봉황의 자취를 보고 위봉사를 중창했다고 전해진다.
그 뒤 고려말 공민왕 8년에 나옹스님이 중건했고, 조선 세조때는 선석, 석잠 두 스님이 중수하였으며, 조선시대 말엽 포련대사에 의한 60여컨의 건물중수를 거쳐 1912년에는 전국 31본산(本山)중의 하나로 전북일원의 50여 말사를 관할하기도 하였으나, 8.15해방 후 6.25동란을 거치면서 급속히 퇴락했다.
1911년에는 \선교삼십일본산\의 하나로 건물이 20여동이나 되는 대사찰이었으나, 여러번의 화재로 인하여 지금은 건물 3동만 옛모습으로 남아 있다. 당우로는 법당인 보광명전(普光明殿)과 칠성각, 명부전, 진영각, 정혜원 등이 있다. 조선 세조때 포효대사가 지은 \보광명전 현판기\에는 이 절의 당우 수가 32개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대사찰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 보물 제608호인 보광명전은 내부중앙에 석가여래좌상과 여러 구의 입불이 있는데, 이중에서도 육환장을 든 지장보살이 눈길을 끌고, 거대한 후불탱화가 있으며, 뒷벽의 문을 열면 3m의 인자하고 아름다운 백의관음상이 있다.
1988년 법중스님이 부임, 퇴락한 보광명전과 관음전을 보수하고, 100여칸의 건물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위봉산성]송광사에서 더 깊이 골짜기를 타고 4km쯤 위봉산 고개길을 오르면 있는 위봉산성 서문은, 조선 숙종원년(1675년)에 7년의 세월과 7개 군민을 동원하여, 관찰사 권대재가 축조하였다. 성곽은 폭 3m, 높이 4-5m, 길이 16km나 되었고, 3개의 성문, 8개의 암문(暗門), 성안에 4-5개의 우문과 9개의 못이 있었다. 현재는 일부 성벽과 동.서.북 3개 중 전주로 통하는 서문만 유일하게 남았다. 이 역시 문위에 있었던 삼간의 문루는 붕괴되어 없어지고, 높이 3m의 아치형 석문만 남아있다.
이 곳에 산성을 쌓은 것은 전주에서 가까운 험한 지형을 골라 유사시 전주 경기전 태조 영정과 조경묘의 시조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함이었다. 갑오동학혁명시는 전주부성이 동학군에게 함락되자, 태조의 영정과 시조의 위패를 피난시킨 일이 있다. 지금도 산성에서 위의 산능선을 따라서 돌로 쌓은 산성이 길게 2-3km가 남아 있으며, 등산코스로 이용되고 있어, 가족산행이나, 자녀들의 역사교육의 코스로 한번 들려 봄직하다.
▶산행안내
[제1코스]위봉산성-되실봉 어깨-동능-사거리-정상-사거리-안부-위봉사-위 봉사 입구도로/2시간10분/3.5km/
[제2코스]위봉산성-되실봉 어깨-정상-위봉산성/4.6km/3시간
[제3코스]위봉산성-되실봉-북능-우무재-동능-안부-표고버섯재배지-예인촌 입구-동광초교/3시간50분/6.5km/
위봉산성 서문 안내문이 있는 곳에서 하차하여, 북쪽으로 난 산성을 따라 15분쯤 오르면 임도의 고개마루에 이른다. 서문에서 임도를 따라 10분쯤 올라도 이곳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전신주에 빨간색으로 등산로라고 쓰여있는 동쪽의 돌로 쌓은 석성을 따라 오른다. 석성을 오르다보면 위봉사 방향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몇 군데 만난다.
석성을 따라 오르내림길을 가노라면 수목이 울창하여 여름에도 햇볕이 들지 않아 시원하고, 길 주변에는 산죽길이 계속된다. 25분쯤이면 전망대바위에 이르고, 남으로는 위봉사 전경이 내려다보이고, 위봉폭포로 가는 도로도 보인다. 20여분쯤 더 가면 산성이 끝나는 되실봉에 이른다. 위봉산을 가려면 되실봉 못미처에서 독도에 유의하여 우측(동쪽)의 석성을 따라 급경사 너덜을 내려가야 한다. 바로 이어 사용미상의 원두막이 있는 사거리다. 좌측은 수만리, 우측은 위봉사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동쪽의 산죽터널이 시작되고 20분쯤 가면 사거리이다. 우측은 위봉사, 좌측은 수만리로 빠진다. 이곳부터는 석성이 끝나고 정상은 동쪽으로 10분쯤 오르면 있다. 정상에서 위봉사로 가려면 사거리로 되돌아와 남쪽으로 30분쯤 내려가면 된다. 위봉산성 서문까지는 1시간30분이 소요된다.
정상에서 하산은 원점회귀, 또는 남쪽의 위봉사가는 코스가 있고, 위봉산 분기점에서 되실봉을 지나 우무재를 지나 동쪽의 수만리 동광초등학교로 빠지는 코스가 있다. 그리고 오도치를 지나 서방산과 종남산으로 가는 장거리코스도 있다.
▶교통안내
전주-진안방면 26번 국도(구도로 진입)-소양(15분)-마수교 삼거리(5분)-송광사(5분)-위봉산성
*대중교통 이용
[전주-위봉사]앞멀 및 학동행 시내버스를 타고 위봉산성에서 하차해야하며, 전주대에서 1시간, 전동에서 40분이 소요된다.
▶먹을거리
수려한 위봉산 일대의 경관을 바라보며, 수만리 주변의 음식점에서 맷돼지구이, 토종닭 백숙을 맛보는 즐거움이 그만이다. 이 음식점들은 민박시설도 갖추고 있어서 여름철에는 피서지로 각광을 받기도 한다.
예인촌:234-1012, 우리동네:243-4811, 민속산장:243-1001
위봉산(威峰山,524.3m)
▶개요 및 자연경관
백두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분기된 금남호남정맥이 서북으로 63.3km를 뻗어가면서, 북으로 금강, 남으로 섬진강의 분수령을 이루며, 장안산. 사두봉. 수분령. 신무산. 팔공산. 진안 성수산. 마이산. 부귀산을 지나 완주 주화산에 이른다. 이곳에서 산줄기는 삼분수(三分水, 북쪽 금강, 남쪽 섬진강, 서쪽 만경강)를 이루며 두 갈래를 친다. 이곳에서 남으로 호남정맥(398.7km)을 보내고, 실질적인 금남정맥(107km, 금강과 만경강의 분수령)이 북으로 뻗어가며 입봉, 보룡고개를 지나 황조치 못미쳐, 1.2km지점에서 지맥 하나를 나뉘어 놓다. 이 지맥은 실질적인 금남정맥과 헤어져 서북으로 방향을 바꾸어 율치, 청량산(원등산), 송곳재, 귀뚤봉, 위봉산 서문을 지나 되실봉 아래에서 산성을 따라 동쪽으로 1.5km쯤 가는 곳에 위봉산을 솟구쳐 놓았다. 위봉산의 모든 물줄기는 동상.대아리 저수지를 통하여 고천산을 이루며 만경강에 합수되어 서해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와 동상면 수만리에 경계하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역이었고, 조선시대 성리학계의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를 구분 짓는 학풍적 경계를 이루기도 했다. 전국의 8대 오지로 일컬어졌던 수만리까지 길이 뚫리고 포장이 되었고, 옛적에 나룻배로 왕래하였던 [수만리-대아리]까지 순환도로가 개설되었다. 또 전주에서 동상저수지와 대아리 저수지를 구경할 수 있는 소양과 동상면, 대아리, 고산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뚫려서 가족들의 드라이브 코스로 이용되며, 등산객과 관광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정상에서 조망은 북으로 동상저수지, 대부산. 학동산이 지척이고, 동으로 연석산, 운장산(주줄산), 남으로 원등산, 마이산, 만덕산, 서로는 종남산, 서방산 등이 다가온다. 또 위봉산성 서문을 지나 0.5km쯤 내려가면 고찰 위봉사가 나온다. 사찰 앞에서 1백여 미터 아래에 있는 위봉폭포가 장관이다. 절벽사이로 비류직하 하는 60여 미터의 폭포와 빼어난 경관은 그 아래로 펼쳐진 골짜기, 그리고 대아댐 호반이 절경인데다가 근래에는 말끔히 포장되어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관광차량이 줄을 잇고 있다.
▶문화유적 및 명승지
[위봉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이며, 전주에서 동북쪽으로 26km 지점에 위치한 위봉사의 일주문에 \추줄산 위봉사( 山 威鳳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추줄산은 위봉사 바로 뒷산이고, 위봉산은 우측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산이다. 위봉사는 백제 무왕 5년(604년) 서암대사(瑞岩大師)가 최초 산문을 열었으며, 신라 말 최용각이 봉황의 자취를 보고 위봉사를 중창했다고 전해진다.
그 뒤 고려말 공민왕 8년에 나옹스님이 중건했고, 조선 세조때는 선석, 석잠 두 스님이 중수하였으며, 조선시대 말엽 포련대사에 의한 60여컨의 건물중수를 거쳐 1912년에는 전국 31본산(本山)중의 하나로 전북일원의 50여 말사를 관할하기도 하였으나, 8.15해방 후 6.25동란을 거치면서 급속히 퇴락했다.
1911년에는 \선교삼십일본산\의 하나로 건물이 20여동이나 되는 대사찰이었으나, 여러번의 화재로 인하여 지금은 건물 3동만 옛모습으로 남아 있다. 당우로는 법당인 보광명전(普光明殿)과 칠성각, 명부전, 진영각, 정혜원 등이 있다. 조선 세조때 포효대사가 지은 \보광명전 현판기\에는 이 절의 당우 수가 32개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대사찰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 보물 제608호인 보광명전은 내부중앙에 석가여래좌상과 여러 구의 입불이 있는데, 이중에서도 육환장을 든 지장보살이 눈길을 끌고, 거대한 후불탱화가 있으며, 뒷벽의 문을 열면 3m의 인자하고 아름다운 백의관음상이 있다.
1988년 법중스님이 부임, 퇴락한 보광명전과 관음전을 보수하고, 100여칸의 건물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위봉산성]송광사에서 더 깊이 골짜기를 타고 4km쯤 위봉산 고개길을 오르면 있는 위봉산성 서문은, 조선 숙종원년(1675년)에 7년의 세월과 7개 군민을 동원하여, 관찰사 권대재가 축조하였다. 성곽은 폭 3m, 높이 4-5m, 길이 16km나 되었고, 3개의 성문, 8개의 암문(暗門), 성안에 4-5개의 우문과 9개의 못이 있었다. 현재는 일부 성벽과 동.서.북 3개 중 전주로 통하는 서문만 유일하게 남았다. 이 역시 문위에 있었던 삼간의 문루는 붕괴되어 없어지고, 높이 3m의 아치형 석문만 남아있다.
이 곳에 산성을 쌓은 것은 전주에서 가까운 험한 지형을 골라 유사시 전주 경기전 태조 영정과 조경묘의 시조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함이었다. 갑오동학혁명시는 전주부성이 동학군에게 함락되자, 태조의 영정과 시조의 위패를 피난시킨 일이 있다. 지금도 산성에서 위의 산능선을 따라서 돌로 쌓은 산성이 길게 2-3km가 남아 있으며, 등산코스로 이용되고 있어, 가족산행이나, 자녀들의 역사교육의 코스로 한번 들려 봄직하다.
▶산행안내
[제1코스]위봉산성-되실봉 어깨-동능-사거리-정상-사거리-안부-위봉사-위 봉사 입구도로/2시간10분/3.5km/
[제2코스]위봉산성-되실봉 어깨-정상-위봉산성/4.6km/3시간
[제3코스]위봉산성-되실봉-북능-우무재-동능-안부-표고버섯재배지-예인촌 입구-동광초교/3시간50분/6.5km/
위봉산성 서문 안내문이 있는 곳에서 하차하여, 북쪽으로 난 산성을 따라 15분쯤 오르면 임도의 고개마루에 이른다. 서문에서 임도를 따라 10분쯤 올라도 이곳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전신주에 빨간색으로 등산로라고 쓰여있는 동쪽의 돌로 쌓은 석성을 따라 오른다. 석성을 오르다보면 위봉사 방향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몇 군데 만난다.
석성을 따라 오르내림길을 가노라면 수목이 울창하여 여름에도 햇볕이 들지 않아 시원하고, 길 주변에는 산죽길이 계속된다. 25분쯤이면 전망대바위에 이르고, 남으로는 위봉사 전경이 내려다보이고, 위봉폭포로 가는 도로도 보인다. 20여분쯤 더 가면 산성이 끝나는 되실봉에 이른다. 위봉산을 가려면 되실봉 못미처에서 독도에 유의하여 우측(동쪽)의 석성을 따라 급경사 너덜을 내려가야 한다. 바로 이어 사용미상의 원두막이 있는 사거리다. 좌측은 수만리, 우측은 위봉사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동쪽의 산죽터널이 시작되고 20분쯤 가면 사거리이다. 우측은 위봉사, 좌측은 수만리로 빠진다. 이곳부터는 석성이 끝나고 정상은 동쪽으로 10분쯤 오르면 있다. 정상에서 위봉사로 가려면 사거리로 되돌아와 남쪽으로 30분쯤 내려가면 된다. 위봉산성 서문까지는 1시간30분이 소요된다.
정상에서 하산은 원점회귀, 또는 남쪽의 위봉사가는 코스가 있고, 위봉산 분기점에서 되실봉을 지나 우무재를 지나 동쪽의 수만리 동광초등학교로 빠지는 코스가 있다. 그리고 오도치를 지나 서방산과 종남산으로 가는 장거리코스도 있다.
▶교통안내
전주-진안방면 26번 국도(구도로 진입)-소양(15분)-마수교 삼거리(5분)-송광사(5분)-위봉산성
*대중교통 이용
[전주-위봉사]앞멀 및 학동행 시내버스를 타고 위봉산성에서 하차해야하며, 전주대에서 1시간, 전동에서 40분이 소요된다.
▶먹을거리
수려한 위봉산 일대의 경관을 바라보며, 수만리 주변의 음식점에서 맷돼지구이, 토종닭 백숙을 맛보는 즐거움이 그만이다. 이 음식점들은 민박시설도 갖추고 있어서 여름철에는 피서지로 각광을 받기도 한다.
예인촌:234-1012, 우리동네:243-4811, 민속산장:243-1001
위봉산(威峰山,524.3m)
▶개요 및 자연경관
백두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분기된 금남호남정맥이 서북으로 63.3km를 뻗어가면서, 북으로 금강, 남으로 섬진강의 분수령을 이루며, 장안산. 사두봉. 수분령. 신무산. 팔공산. 진안 성수산. 마이산. 부귀산을 지나 완주 주화산에 이른다. 이곳에서 산줄기는 삼분수(三分水, 북쪽 금강, 남쪽 섬진강, 서쪽 만경강)를 이루며 두 갈래를 친다. 이곳에서 남으로 호남정맥(398.7km)을 보내고, 실질적인 금남정맥(107km, 금강과 만경강의 분수령)이 북으로 뻗어가며 입봉, 보룡고개를 지나 황조치 못미쳐, 1.2km지점에서 지맥 하나를 나뉘어 놓다. 이 지맥은 실질적인 금남정맥과 헤어져 서북으로 방향을 바꾸어 율치, 청량산(원등산), 송곳재, 귀뚤봉, 위봉산 서문을 지나 되실봉 아래에서 산성을 따라 동쪽으로 1.5km쯤 가는 곳에 위봉산을 솟구쳐 놓았다. 위봉산의 모든 물줄기는 동상.대아리 저수지를 통하여 고천산을 이루며 만경강에 합수되어 서해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와 동상면 수만리에 경계하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역이었고, 조선시대 성리학계의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를 구분 짓는 학풍적 경계를 이루기도 했다. 전국의 8대 오지로 일컬어졌던 수만리까지 길이 뚫리고 포장이 되었고, 옛적에 나룻배로 왕래하였던 [수만리-대아리]까지 순환도로가 개설되었다. 또 전주에서 동상저수지와 대아리 저수지를 구경할 수 있는 소양과 동상면, 대아리, 고산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뚫려서 가족들의 드라이브 코스로 이용되며, 등산객과 관광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정상에서 조망은 북으로 동상저수지, 대부산. 학동산이 지척이고, 동으로 연석산, 운장산(주줄산), 남으로 원등산, 마이산, 만덕산, 서로는 종남산, 서방산 등이 다가온다. 또 위봉산성 서문을 지나 0.5km쯤 내려가면 고찰 위봉사가 나온다. 사찰 앞에서 1백여 미터 아래에 있는 위봉폭포가 장관이다. 절벽사이로 비류직하 하는 60여 미터의 폭포와 빼어난 경관은 그 아래로 펼쳐진 골짜기, 그리고 대아댐 호반이 절경인데다가 근래에는 말끔히 포장되어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관광차량이 줄을 잇고 있다.
▶문화유적 및 명승지
[위봉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이며, 전주에서 동북쪽으로 26km 지점에 위치한 위봉사의 일주문에 \추줄산 위봉사( 山 威鳳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추줄산은 위봉사 바로 뒷산이고, 위봉산은 우측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산이다. 위봉사는 백제 무왕 5년(604년) 서암대사(瑞岩大師)가 최초 산문을 열었으며, 신라 말 최용각이 봉황의 자취를 보고 위봉사를 중창했다고 전해진다.
그 뒤 고려말 공민왕 8년에 나옹스님이 중건했고, 조선 세조때는 선석, 석잠 두 스님이 중수하였으며, 조선시대 말엽 포련대사에 의한 60여컨의 건물중수를 거쳐 1912년에는 전국 31본산(本山)중의 하나로 전북일원의 50여 말사를 관할하기도 하였으나, 8.15해방 후 6.25동란을 거치면서 급속히 퇴락했다.
1911년에는 \선교삼십일본산\의 하나로 건물이 20여동이나 되는 대사찰이었으나, 여러번의 화재로 인하여 지금은 건물 3동만 옛모습으로 남아 있다. 당우로는 법당인 보광명전(普光明殿)과 칠성각, 명부전, 진영각, 정혜원 등이 있다. 조선 세조때 포효대사가 지은 \보광명전 현판기\에는 이 절의 당우 수가 32개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대사찰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 보물 제608호인 보광명전은 내부중앙에 석가여래좌상과 여러 구의 입불이 있는데, 이중에서도 육환장을 든 지장보살이 눈길을 끌고, 거대한 후불탱화가 있으며, 뒷벽의 문을 열면 3m의 인자하고 아름다운 백의관음상이 있다.
1988년 법중스님이 부임, 퇴락한 보광명전과 관음전을 보수하고, 100여칸의 건물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위봉산성]송광사에서 더 깊이 골짜기를 타고 4km쯤 위봉산 고개길을 오르면 있는 위봉산성 서문은, 조선 숙종원년(1675년)에 7년의 세월과 7개 군민을 동원하여, 관찰사 권대재가 축조하였다. 성곽은 폭 3m, 높이 4-5m, 길이 16km나 되었고, 3개의 성문, 8개의 암문(暗門), 성안에 4-5개의 우문과 9개의 못이 있었다. 현재는 일부 성벽과 동.서.북 3개 중 전주로 통하는 서문만 유일하게 남았다. 이 역시 문위에 있었던 삼간의 문루는 붕괴되어 없어지고, 높이 3m의 아치형 석문만 남아있다.
이 곳에 산성을 쌓은 것은 전주에서 가까운 험한 지형을 골라 유사시 전주 경기전 태조 영정과 조경묘의 시조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함이었다. 갑오동학혁명시는 전주부성이 동학군에게 함락되자, 태조의 영정과 시조의 위패를 피난시킨 일이 있다. 지금도 산성에서 위의 산능선을 따라서 돌로 쌓은 산성이 길게 2-3km가 남아 있으며, 등산코스로 이용되고 있어, 가족산행이나, 자녀들의 역사교육의 코스로 한번 들려 봄직하다.
▶산행안내
[제1코스]위봉산성-되실봉 어깨-동능-사거리-정상-사거리-안부-위봉사-위 봉사 입구도로/2시간10분/3.5km/
[제2코스]위봉산성-되실봉 어깨-정상-위봉산성/4.6km/3시간
[제3코스]위봉산성-되실봉-북능-우무재-동능-안부-표고버섯재배지-예인촌 입구-동광초교/3시간50분/6.5km/
위봉산성 서문 안내문이 있는 곳에서 하차하여, 북쪽으로 난 산성을 따라 15분쯤 오르면 임도의 고개마루에 이른다. 서문에서 임도를 따라 10분쯤 올라도 이곳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전신주에 빨간색으로 등산로라고 쓰여있는 동쪽의 돌로 쌓은 석성을 따라 오른다. 석성을 오르다보면 위봉사 방향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몇 군데 만난다.
석성을 따라 오르내림길을 가노라면 수목이 울창하여 여름에도 햇볕이 들지 않아 시원하고, 길 주변에는 산죽길이 계속된다. 25분쯤이면 전망대바위에 이르고, 남으로는 위봉사 전경이 내려다보이고, 위봉폭포로 가는 도로도 보인다. 20여분쯤 더 가면 산성이 끝나는 되실봉에 이른다. 위봉산을 가려면 되실봉 못미처에서 독도에 유의하여 우측(동쪽)의 석성을 따라 급경사 너덜을 내려가야 한다. 바로 이어 사용미상의 원두막이 있는 사거리다. 좌측은 수만리, 우측은 위봉사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동쪽의 산죽터널이 시작되고 20분쯤 가면 사거리이다. 우측은 위봉사, 좌측은 수만리로 빠진다. 이곳부터는 석성이 끝나고 정상은 동쪽으로 10분쯤 오르면 있다. 정상에서 위봉사로 가려면 사거리로 되돌아와 남쪽으로 30분쯤 내려가면 된다. 위봉산성 서문까지는 1시간30분이 소요된다.
정상에서 하산은 원점회귀, 또는 남쪽의 위봉사가는 코스가 있고, 위봉산 분기점에서 되실봉을 지나 우무재를 지나 동쪽의 수만리 동광초등학교로 빠지는 코스가 있다. 그리고 오도치를 지나 서방산과 종남산으로 가는 장거리코스도 있다.
▶교통안내
전주-진안방면 26번 국도(구도로 진입)-소양(15분)-마수교 삼거리(5분)-송광사(5분)-위봉산성
*대중교통 이용
[전주-위봉사]앞멀 및 학동행 시내버스를 타고 위봉산성에서 하차해야하며, 전주대에서 1시간, 전동에서 40분이 소요된다.
▶먹을거리
수려한 위봉산 일대의 경관을 바라보며, 수만리 주변의 음식점에서 맷돼지구이, 토종닭 백숙을 맛보는 즐거움이 그만이다. 이 음식점들은 민박시설도 갖추고 있어서 여름철에는 피서지로 각광을 받기도 한다.
예인촌:234-1012, 우리동네:243-4811, 민속산장:243-1001
위봉산(威峰山,524.3m)
▶개요 및 자연경관
백두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분기된 금남호남정맥이 서북으로 63.3km를 뻗어가면서, 북으로 금강, 남으로 섬진강의 분수령을 이루며, 장안산. 사두봉. 수분령. 신무산. 팔공산. 진안 성수산. 마이산. 부귀산을 지나 완주 주화산에 이른다. 이곳에서 산줄기는 삼분수(三分水, 북쪽 금강, 남쪽 섬진강, 서쪽 만경강)를 이루며 두 갈래를 친다. 이곳에서 남으로 호남정맥(398.7km)을 보내고, 실질적인 금남정맥(107km, 금강과 만경강의 분수령)이 북으로 뻗어가며 입봉, 보룡고개를 지나 황조치 못미쳐, 1.2km지점에서 지맥 하나를 나뉘어 놓다. 이 지맥은 실질적인 금남정맥과 헤어져 서북으로 방향을 바꾸어 율치, 청량산(원등산), 송곳재, 귀뚤봉, 위봉산 서문을 지나 되실봉 아래에서 산성을 따라 동쪽으로 1.5km쯤 가는 곳에 위봉산을 솟구쳐 놓았다. 위봉산의 모든 물줄기는 동상.대아리 저수지를 통하여 고천산을 이루며 만경강에 합수되어 서해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와 동상면 수만리에 경계하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역이었고, 조선시대 성리학계의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를 구분 짓는 학풍적 경계를 이루기도 했다. 전국의 8대 오지로 일컬어졌던 수만리까지 길이 뚫리고 포장이 되었고, 옛적에 나룻배로 왕래하였던 [수만리-대아리]까지 순환도로가 개설되었다. 또 전주에서 동상저수지와 대아리 저수지를 구경할 수 있는 소양과 동상면, 대아리, 고산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뚫려서 가족들의 드라이브 코스로 이용되며, 등산객과 관광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정상에서 조망은 북으로 동상저수지, 대부산. 학동산이 지척이고, 동으로 연석산, 운장산(주줄산), 남으로 원등산, 마이산, 만덕산, 서로는 종남산, 서방산 등이 다가온다. 또 위봉산성 서문을 지나 0.5km쯤 내려가면 고찰 위봉사가 나온다. 사찰 앞에서 1백여 미터 아래에 있는 위봉폭포가 장관이다. 절벽사이로 비류직하 하는 60여 미터의 폭포와 빼어난 경관은 그 아래로 펼쳐진 골짜기, 그리고 대아댐 호반이 절경인데다가 근래에는 말끔히 포장되어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관광차량이 줄을 잇고 있다.
▶문화유적 및 명승지
[위봉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이며, 전주에서 동북쪽으로 26km 지점에 위치한 위봉사의 일주문에 \추줄산 위봉사( 山 威鳳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추줄산은 위봉사 바로 뒷산이고, 위봉산은 우측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산이다. 위봉사는 백제 무왕 5년(604년) 서암대사(瑞岩大師)가 최초 산문을 열었으며, 신라 말 최용각이 봉황의 자취를 보고 위봉사를 중창했다고 전해진다.
그 뒤 고려말 공민왕 8년에 나옹스님이 중건했고, 조선 세조때는 선석, 석잠 두 스님이 중수하였으며, 조선시대 말엽 포련대사에 의한 60여컨의 건물중수를 거쳐 1912년에는 전국 31본산(本山)중의 하나로 전북일원의 50여 말사를 관할하기도 하였으나, 8.15해방 후 6.25동란을 거치면서 급속히 퇴락했다.
1911년에는 \선교삼십일본산\의 하나로 건물이 20여동이나 되는 대사찰이었으나, 여러번의 화재로 인하여 지금은 건물 3동만 옛모습으로 남아 있다. 당우로는 법당인 보광명전(普光明殿)과 칠성각, 명부전, 진영각, 정혜원 등이 있다. 조선 세조때 포효대사가 지은 \보광명전 현판기\에는 이 절의 당우 수가 32개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대사찰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 보물 제608호인 보광명전은 내부중앙에 석가여래좌상과 여러 구의 입불이 있는데, 이중에서도 육환장을 든 지장보살이 눈길을 끌고, 거대한 후불탱화가 있으며, 뒷벽의 문을 열면 3m의 인자하고 아름다운 백의관음상이 있다.
1988년 법중스님이 부임, 퇴락한 보광명전과 관음전을 보수하고, 100여칸의 건물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위봉산성]송광사에서 더 깊이 골짜기를 타고 4km쯤 위봉산 고개길을 오르면 있는 위봉산성 서문은, 조선 숙종원년(1675년)에 7년의 세월과 7개 군민을 동원하여, 관찰사 권대재가 축조하였다. 성곽은 폭 3m, 높이 4-5m, 길이 16km나 되었고, 3개의 성문, 8개의 암문(暗門), 성안에 4-5개의 우문과 9개의 못이 있었다. 현재는 일부 성벽과 동.서.북 3개 중 전주로 통하는 서문만 유일하게 남았다. 이 역시 문위에 있었던 삼간의 문루는 붕괴되어 없어지고, 높이 3m의 아치형 석문만 남아있다.
이 곳에 산성을 쌓은 것은 전주에서 가까운 험한 지형을 골라 유사시 전주 경기전 태조 영정과 조경묘의 시조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함이었다. 갑오동학혁명시는 전주부성이 동학군에게 함락되자, 태조의 영정과 시조의 위패를 피난시킨 일이 있다. 지금도 산성에서 위의 산능선을 따라서 돌로 쌓은 산성이 길게 2-3km가 남아 있으며, 등산코스로 이용되고 있어, 가족산행이나, 자녀들의 역사교육의 코스로 한번 들려 봄직하다.
▶산행안내
[제1코스]위봉산성-되실봉 어깨-동능-사거리-정상-사거리-안부-위봉사-위 봉사 입구도로/2시간10분/3.5km/
[제2코스]위봉산성-되실봉 어깨-정상-위봉산성/4.6km/3시간
[제3코스]위봉산성-되실봉-북능-우무재-동능-안부-표고버섯재배지-예인촌 입구-동광초교/3시간50분/6.5km/
위봉산성 서문 안내문이 있는 곳에서 하차하여, 북쪽으로 난 산성을 따라 15분쯤 오르면 임도의 고개마루에 이른다. 서문에서 임도를 따라 10분쯤 올라도 이곳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전신주에 빨간색으로 등산로라고 쓰여있는 동쪽의 돌로 쌓은 석성을 따라 오른다. 석성을 오르다보면 위봉사 방향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몇 군데 만난다.
석성을 따라 오르내림길을 가노라면 수목이 울창하여 여름에도 햇볕이 들지 않아 시원하고, 길 주변에는 산죽길이 계속된다. 25분쯤이면 전망대바위에 이르고, 남으로는 위봉사 전경이 내려다보이고, 위봉폭포로 가는 도로도 보인다. 20여분쯤 더 가면 산성이 끝나는 되실봉에 이른다. 위봉산을 가려면 되실봉 못미처에서 독도에 유의하여 우측(동쪽)의 석성을 따라 급경사 너덜을 내려가야 한다. 바로 이어 사용미상의 원두막이 있는 사거리다. 좌측은 수만리, 우측은 위봉사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동쪽의 산죽터널이 시작되고 20분쯤 가면 사거리이다. 우측은 위봉사, 좌측은 수만리로 빠진다. 이곳부터는 석성이 끝나고 정상은 동쪽으로 10분쯤 오르면 있다. 정상에서 위봉사로 가려면 사거리로 되돌아와 남쪽으로 30분쯤 내려가면 된다. 위봉산성 서문까지는 1시간30분이 소요된다.
정상에서 하산은 원점회귀, 또는 남쪽의 위봉사가는 코스가 있고, 위봉산 분기점에서 되실봉을 지나 우무재를 지나 동쪽의 수만리 동광초등학교로 빠지는 코스가 있다. 그리고 오도치를 지나 서방산과 종남산으로 가는 장거리코스도 있다.
▶교통안내
전주-진안방면 26번 국도(구도로 진입)-소양(15분)-마수교 삼거리(5분)-송광사(5분)-위봉산성
*대중교통 이용
[전주-위봉사]앞멀 및 학동행 시내버스를 타고 위봉산성에서 하차해야하며, 전주대에서 1시간, 전동에서 40분이 소요된다.
▶먹을거리
수려한 위봉산 일대의 경관을 바라보며, 수만리 주변의 음식점에서 맷돼지구이, 토종닭 백숙을 맛보는 즐거움이 그만이다. 이 음식점들은 민박시설도 갖추고 있어서 여름철에는 피서지로 각광을 받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