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포레> 신간 서평/ 이명진의 물색없는 사랑
기행수필의 공간성
신재기(문학평론가, 경일대학교 교수)
1.
이명진의 <물색없는 사랑>을 읽었다. 표지에서 작가는 ‘기행수필집’이란 수식을 미리 내세우고 있다. ‘기행수필’이란 개념이 어느 정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터라 이 같은 수식은 작품집을 읽는 데 좋은 참조점이 되어준다. 기행수필의 고정된 개념을 적용하여 수록 작품을 분석하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이긴 하지만, 우선 이 작품집의 작품 모두가 ‘기행수필’의 범주 속에 무리 없이 포함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물론 이는 작품의 질적 측면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다. 전체 작품이 넓게는 기행수필 속에 포함되긴 하지만, 그것의 고정된 울타리 안에 갇히지 않으려는 속성이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작품집은 기행수필이란 이름을 두고 원심력과 구심력이 팽팽하게 맞서는 지경에 자리 잡고 있다. 작품 대부분은 기행수필의 경계로부터 자유로워 지고자 하는 성향을 드러낸다. 이명진의 <물색없는 사랑>은 기행수필이면서 그 울타리에 고정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이것이 그의 수필집이 지니는 특징이다. 그런 까닭에 이 작품집을 읽으면서 ‘기행수필’이라는 길 안내를 받지 않아도 색다른 느낌과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기행문 형식의 글쓰기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현대수필에 와서는 전통적인 기행문 틀에서 벗어나 ‘기행수필’이라는 유사 형식으로 발전하여 활발하게 창작되고 있다. 수필 전문지나 문예지에 꽤 많은 기행수필을 만난다. 특히, 현대인의 생활에 여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여행기 혹은 기행문학은 점점 확대되는 추세라고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기행 형식의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간’이다. 여기서 공간은 일상의 익숙한 공간이 아니라 새롭고 낯선 공간이다. 익숙한 일상의 공간을 떠나 낯선 공간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장소를 체험하는 것이 여행이다. 따라서 기행의 글쓰기에서 ‘공간’은 단순히 실재하는 물리적 ‘공간’보다는 주체의 체험공간을 뜻한다. 이러한 체험공간을 일반적인 ‘공간’ 개념과 구분하여 ‘공간성’이라고 한다면, 기행 형식의 핵심 요소는 바로 이‘공간성’일 것이다. 인간의 구체적인 일상이 이루어지는 현장으로서 공간은 주체와 분리된 추상적 공간이 아니라, 주체와 소통하면서 관계하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현존재는 공간과의 관계에 의해 규정된다. 인간의 삶은 공간과의 관계 안에서 영위된다는 말이다. “공간은 인간 삶의 방식을 표현하는 보편적인 형식이 된다.”(오토 프리드리히 볼노, <인간과 공간>, 에코리브르, 2011.)고 할 수 있다. 인간 삶과 공간의 관계에 무게를 두는 것이 공간성이라는 개념이다. <물리적 공간 ↔ 체험공간(공간성)>의 상반되는 두 지점을 설정했을 때, 기행문학으로서 기행수필은 당연히 ‘공간성’을 지향한다. 이를 <대상으로서의 물리적 공간 ↔ 공간체험에서 오는 주체의 생각과 느낌>의 도식으로 바꾸어 놓으면 기행수필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더욱 선명해진다. 이렇게 볼 때, ‘기행’의 고정된 영역을 벗어나려는 원심력이 강하고 드러나는 이명진의 <물색없는 사랑>은 기행수필의 이상적인 도달점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기행 대상인 물리적 공간을 극소화하고 그것에 대한 주체의 주관적인 반응을 극대화한다면, ‘기행수필’의 본질적인 요소가 소멸하고 말 것이다. ‘기행수필’이란 용어에는 ‘기행’과 ‘수필’이라는 두 개의 개념이 결합하여 있는데, 이 두 개념은 모두 사실의 기록이나 증언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주체의 느낌이나 생각보다는 객관적 대상이 지닌 속성과 상태를 드러낸다는 점에 방점이 찍힌다. 원칙적으로 기행수필은 공간과 주체의 관계, 즉 공간성이란 관점에서 보더라도 대상으로서의 ‘공간’을 강조하는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기행수필은 앞에서 언급한바, <대상으로서의 물리적 공간 ↔ 공간체험에서 오는 주체의 생각과 느낌>이라는 구조에서 양자를 조합하는 자기 나름의 고유한 미학적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명진의 <물색없는 사랑>은 후자로의 쏠림을 보이긴 하지만, 작가의 감상과 느낌을 풍성하게 담아내는 기행수필로서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2
이명진의 수필집 <물색없는 사랑>에서 표제인 ‘물색없는 사랑’에 주목해 본다. ‘물색없다’는 말의 사전 풀이는 “말이나 행동이 형편에 맞거나 조리에 닿지 아니하다.”이다. 이 같은 사전적인 의미에 기대면, ‘물색없는 사랑’은 현실적인 형편이나 조건에 맞지 않는 사랑을 뜻한다. 하지만 이 말의 의미는 매우 함축적이고 다의적이다. 즉,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사랑, 현실의 불가능을 뛰어 넘은 무조건적인 사랑, 이상적이고 순수한 사랑, 시작하지 말았어야 할 어리석은 사랑 등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다양한 변용이 가능한 다성적인 이 말을 작가 이명진은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구체적인 작품에서 그 의미를 탐색해 본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는 일을 강조하지만, 자잘한 일상에 힘들어 하고 괴로워 하는 우리들 아니던가. 그냥 그만큼의 사랑을 조건 없이 베푼다면 한결 가벼워지려나. (중략) 아이의 유년시절 기억 중 엄마표 도시락을 심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또한 물색없는 사랑 아니겠는가. -<물색없는 사랑·3>에서
화자가 캐나다에서 유학하는 딸아이한테 가서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는 심정을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자식을 위하는 어머니의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이 잘 드러난다. 여기서 ‘물색없는 사랑’은 무조건의 희생적인 사랑이란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작가가 <고슴도치 사랑>이란 작품에서 말하고 있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이기도 하다. ‘고슴도치 사랑’이란 말이 암시하듯이,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맹목적인 사랑도 ‘물색없는 사랑’에 해당한다.
한편 작가는 <물색없는 사랑·2>에서 인어공주 이야기를 한다. 인어공주는 땅 위의 왕자를 너무 사랑하여 인간이 되기 위해 아름다운 자신의 목소리를 마녀에게 내어주고 만다.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는 자신의 사랑을 왕자에게 전할 길이 없다. 사랑을 얻으려면 사랑의 필수적인 부분을 버려야 하는 숙명적인 모순과 비극성이 잘 드러난다. 작가는 이를 직접 가리키며 ‘물색없는 사랑’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황산 정상의 ‘연심쇄’를 보고 “천 길 낭떠러지 어딘가에 뒹굴고 있을 열쇠들을 주어 와 연심쇄에 걸려 있는 자물쇠들을 모두 풀어 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세상은 물색없는 사랑으로 돌고 돈다 했거늘.”이라고 한다. 사랑의 언약을 물질적인 자물쇠로 잠가 놓는다고 영원히 유지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어떤 원칙이나 현실적인 장치에 의해 시작되거나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원칙을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물색없는 사랑’은 이 작품집 전체를 지배하는 주제는 아니다. 책 출간과 함께 작품이 선택한 표제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이 주는 다변적인 의미는 이명진 수필의 지반에 깔린 기조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신은 “길가의 작은 돌 하나, 들판의 엉그러진 풀 무더기, 바람에 흩날리는 들꽃향기, 후박나무 부딪히는 소리까지 모두 사랑하고 싶다.”와 같은 표현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이 관계하는 공간, 그 공간에 있는 모든 존재, 이 세상에 나와 호흡을 같이하는 사람, 그리고 가족들을 긍정하고 사랑한다. 긍정과 관용의 정신은 이명진 작품이 자리 잡고 있는 터전이다. 그는 세상과 사물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허물을 캐내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밝고 긍정적인 것에 무한한 사랑을 쏟는 것이 그의 창작 정신이다. 그래서 낯선 공간과 사물을 만나고도 친밀감을 가지고 접근하여 존재하는 그대로의 가치를 인정한다. 그래서 이명진의 기행수필은 설명적이고 해석적인 언어를 될 수 있는 대로 아낀다. 가능하면 여행지의 공간체험을 독자에게 제시하는 선에서 멈춘다. 이는 작가가 대면하는 공간과 대상에 대한 끝없는 신뢰감을 가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의 기행수필이 추상적인 체험공간, 즉 공간성을 극대화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
이명진의 <물색없는 사랑>은 ‘물색없는 사랑’이란 작가정신과 공간성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기행수필집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