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굵직굵직한 사건들의 제목만 대충 훑어봐도 사이비 종교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보다 엄청 많은 데다, 그 중에서도 재림예수가 너무 많다는 사실에 고소(苦笑)를 금할 수 없을 지경인데...그리고 그들 재림예수들이란 사기꾼들은 한결같이 자칭 예수요, 시도 때도 없이 헌금을 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예수 정도 올마이티한(almighty) 능력을 가졌다면 그깟 돈이 뭔 대수라고 날이면 날마다 돈 내놓으라고 신도들을 협박하고 얼르는지 도통 알 수가 없을 정도이니...
대형 여객선 침몰과 함께 무너진 재림예수 Y모씨, 예수와 동격인이자 코로나 유행에 크게 기여한 L모씨, 맨날 공중부양으로 하늘나라로 출장간다는 H모씨, 영원을 산다는 종교 교주로 박근혜 정부 붕괴에 일조한 C모씨, 아예 교회 이름부터 재림예수교회의 K모씨...어느 대담 프로에서 대전신학대학교의 허호익 교수는 우리나라에 재림예수가 무려 50명이라고 하더만, 이 정도면 심각한 재림예수 인플레이션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
장편소설『망루』(주원규, 문학의문학, 2010)는 이야기의 큰 줄거리 속에 또 하나의 이야기를 담은 액자소설의 형태를 취하여, 기업화된 거대교회의 횡포와 이에 맞서는 철거민들의 갈등이 주가 되면서 재림예수의 출현을 둘러싼 고대 로마시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물론 벤 야살이란 인물을 중심으로 한 로마시대 유대교인들의 투쟁사는 허구에 바탕하지만, 현재의 주된 사건들과 촘촘하게 교직(交織)되어 묘사되고 있다.
소설 속의 세명교회 담임목사 세습(世襲)과 같은 횡포는 현실세계에서도 S교회, M교회처럼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으나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하니 정의로운 작가가 겪는 아픔이야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지만...목사 안수를 목전에 두고 불의가 난무하는 교회권력에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주인공 민우의 심정은 또 어떤가. 아들 하나 키우면서 모든 재산 교회에 갖다 바치면서 오직 아들이 훌륭한 성직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어머니의 족쇄에 갖힌 그에게 선택지가 따로 없는 벽 그 자체의 삶이니...
2,000년의 시차를 두고 두 개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재림예수의 모습은 꽤나 인간적인데, 자신들이 처한 안타까운 현실은 아랑곳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친절과 인술을 베푸는 그의 모습에 벤 야살이나 철거민 행동대장 윤서는 크게 실망한다. 내가 보기에 소설 속의 타칭 재림예수야말로 시혜의 대상을 가리지 않고 베풂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 않는 성인(聖人) 그 자체라 하겠지만, 기독교인들에게 그런 행위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기껏 헌금하고 열심히 기도한 그들이 무신론자들과 동등하게 대접받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현상일 건 뻔한 일일 터.
작가는 "지금도 계속해서 사람들은 추방의 언덕, 생존의 망루 위를 오르고 또 오른다"면서 "수원 성남 서울 곳곳에서 도시의 이름, 인간의 이름으로 어떤 이들은 살아남거나 또 어떤 이들은 짓밟히는 둘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고 말하는데...윤서를 중심으로 한 재래시장 철거민들이 건물의 옥상에 쌓아올린 망루는 그들의 절체절명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주는 두레박을 타고 천국으로 오르는 계단이 아니라 거대 세력에 무너지는 기나긴 항쟁의 마지막 여정으로 상징되어지는 것으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