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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7)
2007-09-11 19:15:52
[157차] 설악산 정기산행
2007. 9. 11. / 박광용
산행일 : 2007. 9. 8~9. (1박2일), 맑고 높은 구름.
코 스 :
• 1일차 : 백담사-영시암-수렴동-쌍폭-봉정암-소청-(대청-소청)-희운각 (1박)
• 2일차 : 희운각-공룡능선(신선대-1275봉-마등령고개)-오세암-만경대-영시암-백담사
참가자 : 광용, 재일, 새우, 인식. (총 4명)
<프롤로그>
서총은 10월초에 있을 설악산 비경능선 산행과 중복된다며 이번 정기산행을 예정대로 집행할지, 어쩔지를 고민하고 있었나 보다. 설악산이 어디 동네 산이냐? 그때는 그 코스로 가면 되고 이번에는 가고픈 곳으로 가면 되는데 싶어, 그냥 예정대로 집행하겠다고 공지를 올려버렸다. 모두 추석을 앞두고 바쁜 일정 때문인지, 아니면 이틀간의 산행이 부담스러웠던지 참가 신청하는 사람이 없다.
애~라 모르겠다. 아무도 신청하지 않으면 내 혼자라도 간다. ‘이 참에 마나님이나 함 데불고 가볼까?’ 하는 생각에 미쳤으나, 메뚜기 한 철 운운하던 재일이가 생각나 바로 전화하니 메뚜기 철 지났으니 같이 갈 수 있겠단다. 목요일이 되어서야 새우가 전화로 참가를 표해왔고, 그날 저녁에 있은 기팔이 송별회에서 공식적으로 3명의 참가자를 확인한다.
금요일 아침, 덜 깬 술기운에 잠시 쉬러 밖으로 나간 사이 전화벨은 열씸히 울어댔던 모양이다. 펭귄이 참가하겠다고 주장하며 상기된 목소리로 뭘 준비해야 하는지 물어본다. 내 대답은 항상 같다.
“블로그에 모든 것 다 올려놨으니 잘 보고 준비해 온나. 침낭은 내가 준비해 가께.”
“그래도 처음으로 설악산 가는데, 뭔가 특별히 준비할 게 있을 거 아이가?”
“특별할 게 뭐 있노? 잠잘 거 먹을 거 조금 준비하면 안 되겠나? 나도 지금 밖에 있으니 블로그 니가 읽어보면 다 알 수 있다. 내일 아침 6시30분까지 수서역으로 온나.”
“그래. 그러면 내가 집에 가서 읽어보고 준비해 가께. 내일 보자.”
이거 펭귄이 설악 공룡을 타겠다면 분명히 센세이셔널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덜 깬 술김에 아무 감정 없이 통화하고 나서, 저녁이 되니 슬슬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속으로 어떤 믿음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하더라고...... ‘그래. 그렇게 믿는 거야. 그렇게 해야 돼’ 하며 내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펭귄 체력은 기본적으로 가능할 것이고, 속도 조절 잘 하고 또 마음만 잘 다스리면 못할 게 없지 않느냐?’ 생각하니 내 마음이 편해진다.
토욜 아침, 제일 멀리서 오는 재일이는 6시가 되기도 전에 수서역에 도착했다고 전화가 오고, 6시30분에 새우가 차를 몰고 나타나고, 6시40분 펭귄이 길을 건너오며 ‘6번 출구로 올라왔는데 나와보니까 5번 출구더라’며 특유의 너스레를 떤다. 주저할 것 없이 곧바로 출발이다. 모두들 아침을 먹지 않고 왔기에 어디서 밥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백담사에서 아침 먹고 도시락까지 싸달라 하자’고 합의까지 했으나, 양평을 지나면서 핸들 잡은 새우의 손이 오른쪽으로 꺾이고 7시에 설렁탕집에서 시장한 배를 채운다.
양평 시내에서 차가 밀리는가 싶더니 시가지를 우회하는 6번 국도에 올라서니 쭉쭉빵빵이다. 두어 시간을 새우 혼자 운전하며 산행의 코스에 대한 문답을 이어가다 보니, 드디어 가장 많은 차량이 주차돼있는 백담순두부 집에 도착하고, 점심으로 먹을 도시락을 챙긴다. 쥔 아줌마 아주 친절하게 우리가 내민 빈 도시락에 밥을 담아준다. 이왕이면 반찬도 좀 담아달라고 했더니 비닐봉지까지 준비해서 건네주며 잘 다녀오라는 인사까지 전해준다.
주차장까지 약 500미터 되는 포장길을 걷기가 싫어 차를 몰고 올라간다. 널따란 주차장에는 이미 관광버스 예닐곱 대가 주차돼있다. 아이고 오늘 사람들이 많구나. 아마도 봉정암으로 오르는 불자들일 게다. 그러고 보니 대부분이 아줌마 부대다. 옛날에는 주차장이 꽉 차서 주차가 곤란할 때도 있었는데 금강산에 뺏긴 건지, 아니면 작년 수해 때문인지, 요즘은 설악으로 찾아 드는 산객이 많이 줄어든 모양이다.
이제 침낭도 나눠 갖고 버스 타러 간다. 어이구! 버스 승강장이 아래로 내려와 있네. 작년에는 공원입장료를 내고 승강장까지 또 100미터를 걸어가야 했다. 버스 요금도 2천원에서 1,500원으로 내렸다. 살다 보니 좋은 일도 많네. 이상하게 문화재관람료도 안 받는다. 최근 불거진 불교계 갈등 때문인가? ‘공금횡령’ 같은 잡음이 끊이질 않더니, 뭔 일이 있나 보다.
아이쿠! 올라갈 때는 왼쪽 편에 앉아야 백담계곡을 음미할 수 있는데 좌우로 나눠 앉아 버렸다. 작년 수해 직후 규빈이랑 왔을 때 시멘트 포장도로를 걸어 7킬로를 보너스로 더 걸어 갔었는데, 도로 위에 나뒹굴던 나무덩굴이나 돌멩이는 깨끗이 치워졌다. 버스에는 입석손님까지 작은 배낭을 하나씩 메고 있고, 배낭에는 자신들이 소속된 절 이름을 하나씩 붙여놨다. ‘대한민국의 힘이 아줌마 힘’이라더니, 어쩌면 ‘불심’인지도 모를 일이다.
<1일차 (9/08, 토), 맑고 높은 구름 약간>
“펭귄 : 설악을 날다”
백담사 일주문을 지나고 법당으로 들어가는 수심교 옆 공터에서 버스를 내린다. 신발끈 조여 매고 10:35 산행은 시작된다. 봉정암에 들를 아줌마들은 모든 게 준비된 상태인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뒤돌아볼 것도 없이 휑하니 올라가버린다. ‘여기서 수렴동산장까지는 아주 평탄하고 쌍폭을 지나면서 경사가 급해지니 그때는 천천히 올라가자’며 모두에게 일러둔다. 특히 펭귄에게는 한 가지만 주문했다.
“펭귄, 오늘은 어떤 한이 있어도 내 앞으로는 나가지 마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제?”
“그래, 내 다 안다. 나도 마음을 단단히 묵고 왔다 아이가?”
초반부터 새우의 걸음이 범상치가 않다. 저녁에 마나님과 저녁 산책을 자주 한다는 새우가 정신 없이 올라간다. 속도 늦추라고 몇 번을 일러도 막무가내다. 알고 보니 저녁에 마나님과의 산책이 보통 걸음으로 걷는 게 아니라 속보로 다닌단다. 습관이 돼서 그런지 속도조절이 잘 안 된단다. 물론 속보가 건강에 좋기는 하겠지만, ‘산행에서 초반 속보는 곧 죽음’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나도 고집을 꺾지 않고 속도 늦출 것을 재차 주문한다. 그제서야 펭귄도 조금 흐뭇해 하며 여유 있는 표정이다.
한 시간 남짓 오르면 영시암이다. 작년보다 건물이 더 들어선 것 같다. 사과 하나 나눠먹고 맛 좋은 물로 물통을 채우고, 경사가 없는 평탄한 고속도로(?)를 오른다. 아직은 힘든 줄 모르고 있지만 이때 조심해야 한다. 모든 계곡길이 다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완만하지만 나중에 정상부근에서는 급한 경사를 오르게 돼있다. 그러니 나중을 위해서라도 체력을 비축해야 되고, 특히 설악이라는 거산에서 만용은 용서되지 않는다.
지난번 설악 산행에서 오색에서 올라 공룡을 타려던 계획은 우리에게 조금은 무리한 코스였는지 모른다. 물론 바람을 핑계 삼기도 했지만 실제는 오색에서 오르는 급경사길을 너무 서둘러 오르겠다고 계획하였던 것 같다. 그러니 조금은 지친 상태에서 공룡을 만나니 바람이라는 핑계거리를 찾은 셈이었을 게다. 항상 여유가 있어야 나중에 낭패를 당하지 않는 법, 그 여유를 배워간다.
수렴동 계곡의 푸르고 맑은 물과 하얀 바위가 아침 햇살에 반짝반짝 빛난다. 길 떠나기 전 우리의 애간장을 태우며 계속된 비로 불어난 물 소리가 우리들의 얘기소리까지 삼켜버린다. 오세암 갈림길에서 수렴동쪽으로 오르고, 많은 이들이 휴식하고 있는 수렴동대피소를 지나친다. 이제부터는 용아장성의 밑줄기를 왼쪽으로 끼고 구곡담 계곡을 오르게 될 것이다.
10분을 올랐을까? 너무도 정확한 새우의 배꼽시계가 12시를 가리킨다. 하얀 바위 옆 굵은 모래 밭에 점심상을 차린다. 상추, 마늘, 된장, 멸치볶음, 묵은지, 어묵조림, 젓갈, 깻잎, 우엉무침, 등등,,, 백담순두부 집에서 준비해온 잡곡밥을 상추에 싸먹으면 그 자체가 황홀경이다. 멀리서 바라보던 아줌마의 침 삼키는 소리가 우리를 공연히 미안하게 한다.
펭귄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준비물을 내놓았다. 바닥깔개도 가져왔고, 마나님이 새벽에 일어나서 준비해줬다는 김치볶음도 그 정성이 고맙다. 펭귄이 지금까지 원정산행에 많이 참석치 못한 것도 유림이 돌봐줘야 하는 것 때문이기도 했단다. 그런데 이번 설악산에는 마나님이 ‘그런 좋은 코스를 왜 안 가느냐?’며 적극적으로 펭귄을 내몰았단다. 지금까지 그런 이유도 모르고 펭귄을 다그치기만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고 미안하다.
12:45 점심상을 정리하고 조금은 졸립기도 한 오후에 길을 가려니 힘이 많이 든다. 그래도 비교적 평탄한 길이라 안심은 된다. 고도를 올리며 몇 개의 폭포를 지나치지만 그 이름들을 잘 모르겠다. 단지 하나 아는 것은 ‘쌍용폭포(쌍폭)’인데 이건가 저건가 하며 오른다. 널따란 나무 데크를 설치해놓은 곳에 여러 사람이 쉬고 있어 우리도 여기서 물 마시며 쉬어간다. 물소리가 너무 요란하여 몸을 밖으로 내밀어 확인해보니 안쪽으로 한 줄기의 폭포수가 더 있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 이 길을 몇 번 다녔지만 ‘쌍폭’을 쌍폭으로 확인하기는 처음이다.
‘지금부터는 경사가 급해지니 조심해서 천천히 가자’고 주문하고 급한 계단길을 오른다. 여러 등산객들과 불자들이 뒤섞여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간다. 펭귄의 호흡이 급해지긴 하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다. 작년 수해로 씻겨나간 철 계단과 다리를 보수해뒀다. 목재로 설치한 게 옛날 철제보단 훨씬 좋아 보인다. 25~30년 전의 얘기가 오고 간다.
“그때는 지금 이 길에 계단이 없었거덩. 이 길을 네 발로 기어 올라갔던 기라. 청바지 입고 운동화 신고도 참 잘도 올라갔는데…”
“내가 그때 여기 말고 봉정암 오르는 길에서 배낭무게가 너무 무거웠던지 낙오하고 말았다 아이가? 그냥 펄썩 주저 앉아�지 머.”
“니도 낙오를 했더나? ㅎㅎㅎ 우째 그런 일이 있노? 으이?”
봉정골로 접어들자 경사는 더 급해진다. 한참을 올라 숨이 깔딱깔딱하는 어느 능선 안부에서 사람들이 휴식하고 있다. 배낭 벗어놓고 사자바위로 올라간다. 잠시 30미터만 오르면 그 전경이란? 지금까지 올라온 수렴동, 구곡담 계곡이 눈 아래 펼쳐지고 반대쪽으로는 봉정암 큰법당 기와집이 눈에 띈다. 저 위로는 중청의 물탱크가 반짝반짝 빛나고 둥그스럼한 소청이 ‘빨리 오라’ 손짓한다.
참! 오늘처럼 좋은 날씨는 처음이지 싶다. 3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 비 오기 직전의 어둠만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전망이라고 해봐야 골짜기만 볼 수 있었고 소청 중청은 볼 수 없었다. 꼭대기 쪽으로는 뵈는 게 있어야지 하는 아쉬움만 남겼다. 오늘 이렇게 높은 구름이 적당히 햇살을 가려주고 사방팔방을 다 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 아마도 펭귄이 멀리서 왔다는 걸 아는 것일 게다. 앞으로 펭귄하고 늘 같이 산행 다녀야 할지 모를 일이다.
다시 20분을 나아갔을까? 15:00 봉정암 큰법당이다. 모두들 사리탑을 보고 싶다 하여 배낭 내려두고 사리탑으로 올라간다. 많은 신도들이 예불 중이고 그 옆에서 잠시 합장하고 뒤에 난 능선안부로 오른다. 여기서의 전망이 최고다. 용아장성의 시발점이기도 한 이곳, 휘어져 내려가는 용아 상단부를 한눈에 볼 수 있고, 건너편에는 공룡이 춤을 춘다. 여기서 보는 공룡은 보통 사진에서 자주 보던 공룡과는 그 생김새가 많이 다르다. 자칫하면 잘못 인식할 수도 있겠다.
공양시간에 관심이 많은 새우가 시간을 못 맞춰 왔다며 많이 안타까워한다. 대신 양갱, 귤 등을 먹으며 충분히 휴식하고, 물 담아 다시 오름길을 재촉한다. 이곳도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걸음을 천천히 하여 16:00 소청산장에 당도한다. 여기가 설악산 전체에서 가장 조망이 빼어나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고 특히나 석양이 황홀하기까지 하다는 그런 곳이다. 고도가 높아져서 봉정암에서 보는 공룡과는 또 다른 모습이고, 용아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힘들게 올라온 펭귄, 그래도 아직은 생생한데, 갑자기 고향의 맛이 생각났나 보다. 산장매점 앞으로 다가가더니 아이스케키를 찾는다. 사먹으라고 해도 머뭇거리기만 할 뿐, 냉장고(?)를 열지 않는다. 돈이 모자라 그러나 싶어 돈을 줘도 오늘은 안 먹겠단다. 뭔가 각오를 단단히 한 모양이다. 알고 보니 냉장고 안에 펭귄이 찾는 아이스케키는 없고 사이다 같은 음료만 있었던 모양이다.
다시 급한 경사 길을 천천히 오른다. 큰 돌이 깔린 길을 힘들게 오르고 나면 16:20 소청봉이다. 아이쿠! 바람이 대단하다. 몸이 살짝 밀려날 정도다. 땀에 젖은 윗도리가 땀이 마르며 추위를 느낀다. ‘얼른 사진 하나 찍고 내려가자’ 하니 펭귄의 얼굴에 아쉬운 표정이 역력하다. 재일이가 펭귄을 대청까지 안내하기로 한다. 1진 나와 새우는 먼저 희운각 내려가서 잠자리 확보하고 밥해놓고 기다리겠다고 하고, 2진 펭귄과 재일이는 대청으로 오른다.
희운각 가는 내림 길, 작년 수해 이후 잘 정비된 산길은 주로 돌을 깔아 놓았다. 간간히 계단이 있긴 한데 나무로 만들어 철제계단보다 훨씬 좋아 보인다. 15분을 내려가면 아주 전망 좋은 바위가 있다. 여기서 보는 외설악이 압권이다. 고도도 적당히 높아 공룡과 화채를 내려볼 수 있다. 저기 울산바위가 늠름하고 달마봉도, 속초 앞바다까지 훤하게 보인다. 저곳 화채는 금지구간이라 아쉬움만 남는다.
이 길은 지난 8월 혼자 설악을 찾았을 때 올라온 길인데 그 경사가 장난 아닌 그런 길이다. 지도를 보면 거리는 1.3킬론데 오름길로 2시간을 잡아둘 정도로 험하다면 험한 그런 길이다. 지금은 잘 정비된 길 덕분에 오히려 상당한 시간을 절약할 수도 있겠다.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소청봉에서 한 시간 남짓 걸려 17:30 희운각 산장에 도착한다.
우선, 예약이 안 되는 산장이라 침상을 배정받으려 하지만, 얼씨구! 침상이 없단다. 정원 77석인데 12시반에 모두 매진되었단다. 어쩌란 말인가? 근데 나이 값을 하는 모양이다. 산장지기 젊은이의 말 뒤끝에 여운이 남아 있음을 직감한다. 기다리면 되겠다 여기고 일단 물수건으로 몸을 좀 닦아내고 발도 씻고 세수도 하고 옷을 갈아 입는다. 밥할 준비도 해가면서 2진이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예정으로는 7시면 도착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변수(?)가 있다는 걸 모두가 안다.
다시 산장으로 가서 확인하니 침상을 내어준다. 쌀 씻고 밥을 안치는데 쌀이 모자라겠다. 3끼분 밥을 한꺼번에 해야 하는데 두 사람만 쌀을 들고 왔으니 그럴 수 밖에. 그냥 다음날 아침까지만 먹기로 하고 밥을 안친다. 밥물이 넘치고 한 번 휘저어 불을 약하게 해두면 밥이야 지가 알아서 될 것이다. 3층 밥이든 2층 밥이든 뭐가 대수겠는가? 돼지고기를 좀 구워 먹으려 하니 버너가 하나 뿐이라 밥이 다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직 열씸히 오고 있을 친구를 생각하며 고픈 배를 참아본다.
밥이 다 된 것 같아 내려 놓고, 고기를 굽는다. 옆을 지나던 산객 한 분이 기름진 구수한 냄새에 홀려 소주 한 팩을 들고 와서 권한다. 마침 우리는 소주를 재일이가 갖고 있었기로 고기 한 점을 안 줄 수가 없다. 손님 접대부터 하는 게 우리의 상식이라, 아직 입에 대지도 못하고 있는데, 다리 위에서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선다.
예상보다 10분이나 빠르게 18:50 펭귄과 재일이가 도착한 것이다. 얼메나 반갑던지??
“어! 펭귄, 벌써 왔나? 억수로 빨리 왔네?”
“어~ 그래, 와~~ 설악산~~ 무슨 말을 못하겠다. 근데 산이 억수로 크데~!!”
“대청봉 좋더나?”
“어. 우와~ 웅장하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근데 말로 잘 못하겠다.”
“바람 안 불더나?”
“와 안 불어. 바람 세더라. 추워서 얼른 사진 찍고 빨리 내려왔다 아이가.”
난생처음으로 설악산 제일 긴 등산로 중의 하나인 백담사 코스로 올랐고, 아울러 대청봉까지 한꺼번에 올라본 펭귄, 아마 할 말이 억수로 많을 거다. 이제 하나하나 정리가 되었을 테니 그 후담을 들어보는 것도 아주 재밌을 것 같다. 아무래도 펭귄에게 역사적인 날임에 틀림 없다.
재일이가 갖고 온 소주 한 잔에 맑은 수렴동과 푸른 대청봉이 지나가고, 막 구워낸 돼지고기 상추에 싸서 묵은지와 볶음김치, 마늘까지 얹어서 한 입 가득 머금으면, 그저 행복하다는 느낌에 오늘의 피로가 다 풀린다. 특히 재일이가 준비한 된장찌개, 으~~음 환상이었다. 마나님이 하나씩 갖추갖추 준비해줬는데 그 정성이 너무 고맙다. 내일 먹을 끼니를 산장 밖에 가지런히 놓아두고 저녁 9시 소등시간에 맞춰 하루를 마감한다.
산장에서 자는 잠이 개운할 리는 없겠지만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내일 공룡을 타려면 조금이라도 자둬야 하는데 10시쯤에는 난방까지 들어온다. 다리를 침낭 밖으로 내어 뻗어보려 하지만 반대편 사람 다리에 걸려 잘 움직일 수가 없다. 3D 스테레오로 합주하는 코고는 소리가 가히 입체음향이다. 소리가 좌에서 우로 움직이기까지 한다. 람보가 타고 가던 헬기 소리의 움직임이 연상되면서 가면에서 깨어나고, 이튿날 04:00 옆에서 자고 있는 새우를 깨운다.
<2일차 (9/09, 일), 맑고 높은 구름>
“펭귄 : 공룡을 일격에 퇴치”
산장 밖으로 나와 하늘을 보니 구름 사이로 보이는 별이 가득하다. 처마 밑에는 침낭 하나로 잠자는 사람들로 여기저기 시체가 늘려 있는 것 같다. 랜턴 빛이 얼굴에 비춰지자 눈살을 찌푸리며 깨어나는 산객도 있다. 산장 식탁이 자기들 전용인양 온갖 준비물들을 그대로 올려두고 있고, 그 중 비어있는 식탁에 우리의 조찬을 준비한다. 어제 밥을 좀 많이 했기로 누룽지 삶아 먹을 거다. 원래는 좀 더 많이 해서 점심까지 차질이 없어야 하는데 걱정스럽다. 다시 밥을 안치기가 번거롭다.
살짝 타버린 누룽지가 구수하고 따뜻한 숭늉이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어제 먹다 남은 된장찌개 처리가 걱정이다. ‘애~라 모르겠다. 된장라면 끓여먹자.’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버너는 다시 가동하고 물을 좀 더 붓고 끓인 라면도 된장과 볶은 김치 맛과 어우러져 까칠한 입안을 개운하게 한다. 하지만 점심을 어떻게 할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모든 정리를 끝내고 물통을 채우고 배낭을 메어보니 가벼워져 있어야 할 넘이 오히려 무겁게 느껴진다. 펭귄의 상태도 괜찮은 것 같고, 05:30 설악산행 이틀째 공룡을 향한 첫발을 땐다. 랜턴 불을 밝히고 출발했지만 곧 더 이상 랜턴은 필요 없게 돼버렸다. 신선대를 곧바로 오르는 길을 버리고 좋게 다져놓은 우회길을 택한다. 바람이 드세니 지난번 후퇴한 산행이 새삼스럽다. 잠시 전망 좋은 곳에 올라 뒤를 돌아보니 아직 어둠에서 깨지 못한 산하가 아련하다.
잠을 설친 탓인가? 동서남북 분간이 안 된다. 대청봉을 보고 북쪽이라 우겨댄다. 신선대를 완전히 우회하며 돌아 나오고, 앞에는 1184봉과 노인봉, 다음이 1275봉인데, 그 모양이 내 기억과 달라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러다가 사고 나지’ 싶은 생각에 내 의지를 다진다. 지난번 김총이 알려준 대로 여기 공룡도 길을 잘 다듬어놓았다. 아마도 펭귄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나 보다. 날씨도 그렇고 길도 그렇다.
1184봉도, 노인봉도, 지나치는 줄 모르고, 오르락내리락 하며 바로 옆을 지나가버린 모양이다. 멀리서 보이는 봉우리가 그 오르막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이넘이 1275봉인가 보다. 그 길도 돌을 깔아 비교적 잘 다듬어놓았다. 길 다듬기 공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인부들의 숙소로 쓰이는 막사 텐트가 곳곳에 널려있다. 가끔은 공사 자재를 쌓아둔 점보 백에는 등산객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들이 늘려있기도 하다.
힘든 오르막 1275봉을 향해 오른다. 펭귄의 뒤를 바짝 따라 붙었는데 점점 숨소리와 동작이 커지며 발걸음 보폭이 옆으로 벌어진다. 로프는 손으로 잡고 공사 중인 철제 난간은 발로 밟으며 급한 오르막을 힘겹게 오른다. 중간에 한 번 쉬면서 사탕도 먹고 충분히 물도 마셔둔다. 아무래도 이 순간 한 마디 거들어야 할 시점인가 보다.
“펭귄아! 니 힘들제? 보폭을 줄여라.”
“아~아~ 알았다. 그리 하께.”
이제는 내가 먼저 올라가고 재일이가 펭귄과 함께한다. 바싹 다가 온 다른 산객들을 먼저 보내면 마음이 편해지는데 같은 속도로 앞서 가려다 보니 늘 쫓기는 기분에 마음이 편치 못한 거다. 천천히 쉬며 마지막 오름에 박차를 가하니 07:50 공룡의 심장부 ‘1275봉’인가 보다. 근데 내 기억 속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 양 봉우리 중간에는 아주 평평하고 널따란 공간이 있었는데 길 보수하느라 그랬는지 언덕 같은 게 하나 만들어져 있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며 기억을 더듬어서 여기가 ‘1275봉’이라고 확신한다. 이정표에는 ‘1275봉’이란 이름이 떨어져 나가버린 것일까?
뒤따라 오던 재일이가 먼저 올라오며 펭귄을 걱정한다. 하지만 힘들게 올라온 펭귄, 약간 지친 표정이긴 하지만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아니, 어쩌면 아예 공룡을 날아다닐 기세다. 몇 번을 물어봐도 괜찮단다. 힘들기는 펭귄이나 나나 모두가 마찬가지일 터, 걱정은 접어두기로 한다. 지금에서 다른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함께 같이 내려가야 하는 것이고, 나한봉까지만 가면 그때부터는 내리막이니까 비교적 힘은 덜 들 것이기 때문이다.
희운각에서 지나온 길이 3킬로, 마등령까지는 2.1킬로 남았다. 여기가 나한봉인가, 저기가 긴가? 중간에 작은 봉우리를 몇 개 지나고 나한봉에 도착하니 주변이 확 트인다. 이제 바로 앞이 마등령이다. 세존봉이 코 앞에 우뚝하고 설악골 겹겹이 골짜기가 깊어진다. 반대편으로는 우리가 내려갈 오세암이 저 부근에 있을 것이다. 바람이 너무 강해 오래 머무를 수가 없다. 빨리 마등령으로 달려가자.
500미터 남은 마등령 고개가 왜 이리 힘든지? 오늘따라 배낭의 무게가 느껴지며 어깨가 뻐근하게 아파온다. 다져진 돌길이 반가울 즈음 10:10 어느덧 마등령 고개 오세암 갈림길이다. 출발한 지 4시간40분 만에 마등령에 도착한 것이니, 이만하면 빨리 온 거다. 근데 독수리는 어디로 간 것일까? 마등령 지킴이 독수리 모형을 보려면 아마도 비선대 갈림길 쪽으로 올라가야 할 모양이다. 전에는 이곳 오세암 갈림길에 있었는데......
새우가 시간 개념이 굉장히 발달돼있는 데 놀란다. 길을 가다가 시각을 물어보면 오차가 보통 5분을 넘지 않는다. 이런 새우가 절에서 점심공양 시간이 몇 시인지 자꾸 물어본다. 엇비슷하게 시간 맞출 수 있겠다며 오세암에서 점심 먹으면 되겠단다. 한 시간 정도 내려가면 오세암에 닿을 것이라 생각하고, 여기서 충분히 휴식한 후 행장을 꾸린다.
내림길에도 공사는 진행 중이고 위에서 숲 사이로 본 기와집을 찾아가는데 왜 그리 더딘지 모르겠다. 동기와를 입혔는지 반짝반짝 빛이 났었는데 그 거리감각이 보통 때와는 다른 모양이다. 펭귄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거의 한 시간을 내려 왔나? 11:15 오세암이다. 먼저 내려와서 기다리고 있던 새우와 재일이가 계곡물에 몸을 씻고 나서 법당이 있는 마당으로 내려간다.
아무래도 공양 시간에 잘 맞춰 오긴 했나 보다. 5분을 기다리고 있으니 처사님 한 분이 종을 울리며 11:30 공양시간을 알린다. 기다리던 일이라 공양간으로 들어가니 고소한 주먹밥을 김에 싸두었다. 미역국 한 그릇에 주먹밥을 베어먹고 나니 뱃속이 든든하다. 보통보다는 조금 이른 점심이지만 우리가 아침을 5시에 먹은 것을 생각하면 허전할 때도 된 것이다. 공양을 먹었으니 시주도 해야 하는 법, 모두들 법당으로 올라가 삼배를 올리고 배낭에 남겨둔 공양미를 부처님께 올린다.
법당 벽에 걸려있는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끈다. 어디서 본 듯하기는 한데 기억할 수가 없다. 아마도 부처님 얼굴 옆면으로 보이는데 어디 있는 바위인지 모르겠다. 법당 뒤편 바위도 아니고 주변을 둘러보지만 닮은 꼴을 찾기가 쉽지 않다. 다시 앞 쪽을 바라보니 어~~ 바로 그 바위네. 우리가 가보자고 했던 바로 그 만경대! 만경대 제일 앞으로 돌출한 바위가 부처님 이마인 모양이다. 사진의 바로 그 바위인 것이다.
저기 꼭 가보자 하며 길을 나선다. 물을 반만 채우고 배낭을 울러 메는데 초가을의 햇살이 너무나 따갑고 하늘은 그 푸르름을 더해간다. 하얀 구름도 더 높아만 가고, 이렇게 시간은 흘러가나 보다. 그 유난했던 여름도 계절의 변화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나 보다. 이제 2주 후면 추석을 맞을 것이다. 열씸히 벌어야지......
비스듬한 사면길을 10분 정도 돌아 오르면 능선안부에 허연 머리에 모자를 꾹 눌러쓰고 계신 할아버지 한 분이 60리터가 됨직한 배낭을 내려 놓고 우리를 반긴다.
“저기가 만경대지요?”
“예, 맞습니다. 우리도 저리 함 가보려 합니다.”
“마침 잘 됐네. 혼자서 가기가 좀 뭣하더니 같이 함 가봅시다.”
배낭을 내리고 펭귄이 오기를 기다리며, 곱게 늙으신 할아버지께 가벼운 질문을 던진다.
“어르신,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데, 그렇게 큰 배낭을 메고 다니십니까?”
“ㅎㅎㅎ 내 나이 이제 일흔인데 친구들이 이제는 같이 안 갈려고 해. 그래서 혼자 이렇게 다니는 거지 뭐.”
“어디로 가실 겁니까? 오늘은 봉정암에서 주무실 겁니까?”
“아이구! 오랜만에 큰 배낭 한번 메어 봤더니 힘드네. 오늘은 그냥 가야동으로 올라 희운각으로 바로 가야겠어. 봉정암으로 가려니 너무 힘들 것 같아.”
곧 펭귄이 도착하고 자기가 배낭을 지킬 테니 다녀오란다. 내가 먼저 올라본다. 급경사로 10분을 오르면 이름 그대로 내설악 ‘만경대’다. 날카로운 능선길에 오금이 저리고 잠시 서있는 동안에도 식은 땀이 흐른다. 하지만 이름값은 하는 건지, 감탄사가 절로 난다. 정상부에는 소청과 중청이 햇살을 반짝인다. 공룡의 뒷모습이 앞과 다르고 용아의 모습이 한눈에 잡힌다. 저 끝이 옥녀봉인가 보다. 저 옥녀봉 너머에 수렴동산장이 있을 것이고, 출입이 금지된 가야동 계곡의 천황문을 그때는 몰랐다. 지도 한 번 꺼내 봤으면 그 자리에서 설명해 줄 수 있었을 텐데 게으른 탓에 그만...
어르신이 찍어주는 사진을 하나 남겨두고, 우리는 어르신 사진을 하나 찍어 드렸다. 이제 내려가자. 다시 안부로 내려와 어르신과 인사한다.
“어르신, 실례되게 어르신 연세만 여쭙고 저희들 인사가 빠졌습니다. 저희들은 이제 쉰 된 고등학교 동창들입니다.”
“아이구, 제일 중요하고 좋은 나이구만. 조심해서 다니시게.”
“예, 어르신도 조심해서 잘 다녀 오십시오.”
다시 한 시간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내려 왔나 보다. 13:45 영시암이다. 이제는 다녀본 길이니 그저 빨리 백담사로 가고픈 생각 밖에 없다. 영시암에서 잠시 쉬며 남겨둔 사과 한 개를 찾아보지만 어디다 뒀는지 찾지 못하고 사탕 하나 물 한 모금으로 보충한다.
헌데 조금 전 만경대를 같이 올랐던 어르신이 자꾸 생각난다.
“우리가 나이 들면 저렇게 다닐 수 있을까? 20년 뒤에 말이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산에 다니면 가능할 끼이라.”
“니는 그리 생각하나?”
“와? 안 되겠나? 부지런히 다니기로 해야지 뭐.”
“친구가 있어야 같이 다니지. 니도 나도 같이 다니기로 해야지.”
“그래 맞다. 친구가 중요한 거 아이겠나?”
“그분 같이 갈 친구 없다는 말이 한편 마음 아푸더라.”
다시 백담사로 향하는 길, 이제는 지루한 길이다. 너무 평탄해서 지루하고 계곡의 물소리가 너무나 일정해서 지루하다. 지친 몸들이 이제는 얘기할 힘도 없나 보다. 스스로 알아서 앞으로만 간다. 한 시간이 넘게 내려왔나, 이제야 통화권역에 들어왔다. 이틀 동안 불통지역만 다녔기로 곁님에게 문자로 알려준다. 옆에 가던 새우도 마나님과 통화하고, 15:00 백담사 물다리에 배낭을 내리며 이틀 간의 설악산 산행을 마친다.
몸이라도 좀 씻고 가야지 하는 마음에 이리로 왔는데 뒤따라 오던 펭귄과 재일이가 수심교를 건너 버스승강장까지 가버린 모양이다. 땀을 씻어내고, 웃옷을 갈아입고, 양말도 갈아 신고 나니 한결 개운하다. 여러 친구들의 부재통화, 문자들이 날아든다. 무엇보다 청계산을 다녀온 김총과 기팔, 솔욱, 정호, 길래, 선달 일행이 펭귄과 통화한 모양이다. 펭귄의 설악산 완등을 누구보다 기뻐할 친구들이다.
이제 다시 버스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오고, 도시락을 싸준 백담순두부 집엘 들렀으나 순두부가 다 팔리고 없단다. 이를 어째? 그렇다면 황태 먹으러 용대리 용바위식당으로 가자. 조금만 운전하면 되니까 가보자. 시장이 반찬이라 조금은 짜다 싶은 구이와 국밥으로 이른 저녁을 먹어둔다. 서울로 가는 길이 너무 멀고 차량이 많이 밀릴까 아예 목욕이나 하고 가자.
오던 길에 봐둔 한계삼거리 찜질방으로 간다. 근데 7천원이나 한다. 너무 비싸다. 돌아가며 운전하기로 하고 내가 운전대를 먼저 잡는다. 양평에서 밀리는 김에 막국수까지 한 그릇 먹고 수서역에 도착하니 22:10이었던가? 모두들 너무 수고했습니다. 펭귄과 재일이는 우리보다 한 시간을 더 가야 했을 텐데...... 잘 들어갔제???
<에필로그>
내게 처음으로 설악을 만나게 해준 사부가 있다. 5만분의1 지형도 하나 믿고 자신도 가보지 못한 길을 헤집고 다니는 그런 사부였다. 지금은 부산에서 교편을 잡고 있어 함께 할 수 없어 안타깝기도 하지만 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지금 부산의 사부께 인사 드리고자 한다. 30년 전에 이 길로 올랐다가 천불동으로 내려왔다. 그때는 공룡을 탈 수 있다고 믿지도 않았고, 백담사 가는 버스가 없어 지금보다 7킬로를 더 걸어야 했다. 봉정암을 오르는데 계단이 없던 시절이라 네 발로 기어 오르며, 뭣 하러 이런 곳에 왔느냐며 투정을 넘어 원망을 했던 때가 있었다.
3년 전인가 10월1일, 한 친구와 함께 지금과 똑 같은 코스로 가자고 여길 왔었다. 첫날 조금 흐려지긴 했지만 큰 걱정은 아니다 싶어 감행했던 산행, 봉정암에서 비를 만났는데 대청을 거쳐 희운각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비는 바람의 힘을 얻어 친구의 무릎을 강타했던 모양이다. 다음날 타려던 공룡은 눈앞에서 사라지고, 절뚝거리며 내려온 천불동이 왜 그리도 먼 길이었던지? 그 무릎 상처가 상당히 오래 갔고, 한 동안 그 친구는 산을 잘 다니지 못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도 미안함을 전하려 한다.
그때 계획했던 바로 그 코스로, 이제 막 다녀 온 것이다. 그것도 펭귄 한 분(?)을 대동하고 말이다. 내가 생각한 시간대로 거의 맞춰가며 다녀왔다. 계획된 시간에서 30분을 벗어나지 않았다. 펭귄이 참가할 거란 생각은 별로 안 했던 터라, 참가의사를 밝힌 펭귄에게 친절히 답해주지 못한 것도 나의 옹졸함 때문이겠지. 이런 걸 감안하더라도 여유 있게 계획한 산행,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음에 모두에게 감사한다.
설악을 처음으로 소개해준 나의 사부, 재중아, 고맙다.
설악에서 미숙한 나를 믿고 따라 왔다가 무릎 부상이 심각했던, 민영아, 미안하다.
그리고, 펭귄아, 너무너무 고맙다. 나의 말을 그대로 따라 준 니가 정말 고맙다.
재일아, 그 먼 길을 제일 먼저 달려온 니가 고맙다.
새우야, 차량 제공에 운전까지, 너무 고맙다.
펭귄아, 재일아, 새우야, 담에도 또 갈래?? ㅎㅎㅎ
157차 설악산 사진
재일이가 사진 원본을 보내왔는데...
그 중에서 잘 된 넘 18장을 올립니다.
클릭하몬 큰 넘 사진을 볼 수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함 씩 열어보기 바랍니다...
* 수고했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