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2000년 초반에 선교지를 다니면서 가히 무적의
담력으로 에너지를 뿜어내며 병든 자를 위해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로마서를 발표한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제게 베푸신
긍휼로 인해 생명의 성령이 제 몸에 나타나는 증험으로 보이신 거라고 여깁니다.
열악한 선교지에서 어둠의 영으로 말미암아 정신병자가 된 여자 선교사를
99일 만에 온전하게 치유하여 자신의 발로 한국에 돌아가도록 한 일과
중국에서 똑같은 증상의 자매를 2주 만에 고쳐 이메일을 쓰는데 까지 이른 일,
뇌경색으로 말문이 닫힌 선교사에게 복음을 증거하여 입이 열려 아멘 할렐루야가
이 세상에서 그분의 마지막 언어가 되게 한 일 등 많은 치유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다가 2005년부터 문서선교를 하면서 직접 손을 대는 일은 가급적 피합니다.
그건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거듭난 자로 발견이 되어 진리를
따라 하나님께 그 영과 혼2이 닿으면 기도한 것과 같은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허구한 날 병하고 싸우고만 있으면 말이 안 되는 거죠.
제가 40일 금식하고 난 다음에 폐암이든 뇌암이든 자궁암이든 닥치는 대로
기도해 주니 교회에 찾아오는 분들이 다 병 낫기를 원하는 분들뿐이었습니다.
저는 그게 몹시 싫어서 그 일을 중단하고 오직 말씀사역만 주력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확신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충분한 면역력이 되는데
왜 병을 두려워하고 또 그 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느냐 하는 겁니다.
문제는 복음인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활과 함께 죽고 다시 산 자로
하나님의 의를 얻어 그 의에 임하는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인해 성령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실상의 믿음 곧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인한 면역력에 대한 관건입니다.
우선 사람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고 말하는 그 자체가 이미
성령과 진리 안에서 예배하는 실재가 없다는 다른 표현이며 음식이나 약을
의존하는 삶의 태도가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표현입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 비친 한 유명한 목사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저건 그리스도 안에서 그 생명을 만끽하고 완성되어 가는 얼굴이 아니란 생각을
가지면서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이 그와 같이 신음하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문서사역만이 아닌 영성과 치유센터를 세우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 이윱니다.
영성이라면 그리스도 안에 의를 얻어 하나님께 닿는 예배를 빼고 말할 수 없으며
치유라면 그렇게 되지 못했던 이들에게 하늘 문이 열리면 뻥 뚫리듯 몸이 회복되는 겁니다.
이건 기도원에서 어쩌다 일어나는 기적이 아니라 반드시 되고 마는 신앙공식입니다.
그래서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약5:14)하십니다.
약한 자나 병든 자가 있으면 교회 장로(현재는 목사)를 청하여
주의 이름(말씀) 안에서 성령의 기름부음에 의한 기도를 하라 하십니다.
우리 몸이 성전이 되었다면 법궤가 또한 그 안에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각종 병든 자를 고치시는 건
그분이 바로 지성소 안에 있던 그 법궤이신 언약의 말씀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주님을 우리 안으로 모신 의인이라면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 부활과
생명의 떡이신 말씀이 우리의 영과 혼 안에서 내주 역사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약5:16)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기도는 주의 이름 안에서 성령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곧 하나님께 닿은 기도(프로스유케)이며 은혜의 보좌를 터치하는 영의 기도입니다.
사실 병은 그 보좌에 닿지 못하는 무지와 불신의 죄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행위의 잘잘 못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죄 때문에 녹초가 됩니다.
또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구원을 이루다 보면 피곤하고 녹초가 됩니다(히12:3)
따라서 자신을 위한 기도도 중요하지만 다른 형제를 위한 중보 기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기도를 하면 주께서 그 사람을 연약과 병에서 일으키십니다.
혹시 이미 지은 죄도 사함을 주시리라고 하십니다.
진정한 영성이란 방언이나 입신같은 정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진리의 지식을 따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가는 지성이 포함이 된 영성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5:16)
이러므로 죄를 서로 실토하라 하십니다. 이건 고해성사 하듯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요즘 말씀을 나누다보면 지금까지 내가 신앙생활을 한 것이 다 틀렸다고
고백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죄에서 돌아서는 참 회개입니다.
우리가 이건 죄다 하고 밖으로 나타나는 것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건 스스로도 고칠 수가 있는 행위의 것입니다. 무서운 죄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아담 안에 감추어 있던 죄는 사망을 부릅니다. 그 사망이 연약하게 하고 병으로 갑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주여주여 한 불법을
고백하고 진리를 따라 주님과 한 영이 된 후 병 낫기를 위해 서로 기도하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의인의 기도는 내적인 역사를 하는 힘이 많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의라고 하심은 내가 아버지께서 가니(요16:10)라고 하십니다.
진리를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 의를 얻으면 하늘에서 굽어보시다가 바로 행차하십니다.
(시85:11-13) 이를 알고 있는 자들이 바로 의인이며 그 의인들의 심령은 언제나
성령의 기름부음을 초청할 수 있고 그 성령의 능력에 의해 내공이 강하게 됩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의롭다 함 곧 칭의를 얻었을 때는
갈팡질팡했지만 그에게 약속의 말씀이 무르익어 모리아 산으로 갈 때는
없는 것도 있게 하시고 죽은 자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는 의인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 믿고 죄 사함 할렐루야 예수 부활 나도 장차 부활... 하는 젖만 먹는
자들의 수준이 아니라 히브리서를 알고 성전의 기능을 그림처럼 파악하여
그 기능을 자신 안에 진리의 성령에 의해 실현해 낼 수 있는 의인이란 말입니다.
이런 영성을 회복하면 몸에 달라붙은 연약과 질병에서 해방이 될 뿐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에 의한 면역력으로 에너지가 넘치고
자신만만하며 대인관계가 너그럽고 풍성한 삶을 살다가 주님 품에 안기게 될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땅에서 하향평준화가 된 신학과 영성에 의하여 피해자들이신
많은 분들을 위해 말씀과 기도를 나누는 사역을 다시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습니다.
첫댓글 한 십년전쯤 하시지요 이제늦었다. 하는때가 가장 빠른 때라니까 눚진 않은것 이지요. 아멘,,!
십년 전에는 하나님의 능력은 나타났으나 제 영성이 미흡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