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장 26-28절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라 260729 원주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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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아멘.”
1. 이단들의 구속사적 곡해와 복음의 분별력
오늘 본문의 축복과 은혜가 성도 여러분과 교회, 가정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축복합니다.
한국의 수많은 이단(박태선, 신천지, 통일교 등)은 창세기 1~3장의 에덴동산 및 타락 경위,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구속사적 맥락 없이 자의적으로 풀고 곡해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성도가 창세기 1~3장의 원리만 명확히 알아도 이단의 미혹에 빠지지 않으며, 피 묻은 십자가 복음의 본질을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가까운 이들이 이단에 미혹되는 시대 속에서, 말씀 위에 바로 서서 영적 분별력을 갖추는 신앙인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형상'에 담긴 청지기적 통치권과 인간존엄
하나님은 1~4일차에 해, 달, 육지, 바다를 만드시고 직접 이름을 지으시며 통치하셨습니다. 그러나 5~6일차 생물과 사람을 만드신 후에는 6일째 지음받은 사람에게 모든 만물의 이름을 직접 짓도록 맡기셨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이름을 짓는 행위'는 대상에 대한 소유권과 통치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주 자연은 직접 다스리시대, 이 땅의 모든 생물은 인간에게 위임하신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통치권의 위임:
고대 이집트에서 오직 파라오만 신의 형상으로 여겨졌던 것과 달리, 성경은 모든 인간에게 세상을 다스릴 청지기적 통치권을 부어주셨다고 가르칩니다.
성품과 인격의 닮음:
하나님을 닮은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품과 인격을 모든 인간에게 부여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신분과 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존엄한 가치와 형상을 부여하셨습니다.
3. 에덴의 안식과 미리 준비하시는 부모의 사랑
하나님은 6일간 만물을 지으신 후 제7일에 안식하셨습니다. 8일째 이후로 새로운 창조를 거듭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완벽하게 조성된 창조 세계 속에서 인간이 누리는 모든 날이 곧 '성부·성자와 성령 안에서의 안식'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모습은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는 부모의 사랑과 같습니다. 과거 가난한 신학생 시절, 한 달 사례비 25만 원으로 달세방을 각오하고 결혼을 아뢰었을 때, 어머니께서는 몰래 들어둔 적금을 터물어 전세금과 패물 비용(3,000만 원)을 선사해 주셨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으나 부모가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 두었던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 에덴의 모든 환경과 안식을 완벽히 조성해 두시고 선물로 안겨주셨습니다.
4. 잘못 이해된 형상: 최제우와 동학운동의 한계
하나님의 형상에서 근대적 '천부인권 사상'이 유래했습니다. 조선 말 경주 현곡의 최제우는 천주교 서적 《천주실의》를 통해 인간 평등사상을 접했으나, 복음의 본질인 십자가 구속 대신 '하나님의 형상(인간 존엄성)'이라는 개념만 단편적으로 수용했습니다.
그는 이를 동양의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다)' 및 '홍익인간' 사상과 결합하여, 인간이 수양과 금욕을 통해 하늘과 하나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평등사상이 전라도 곡창지대로 넘어가 지주의 수탈에 시달리던 농민들의 가슴에 불을 지펴 '동학농민운동'으로 번졌으나, 조정의 청나라 군사 요청과 톈진 조약에 따른 일본군의 개입(청일전쟁)으로 수많은 민초가 학살당하는 역사적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인간의 수양이나 노력이라는 인간적 방식으로는 타락한 하나님의 형상을 스스로 회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5. 예수의 피와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참된 형상 회복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은 오직 '예수의 피'와 '성령의 역사'로만 회복됩니다.
인간은 [흙 + 생기(성령, 루아흐) = 생령]으로 지음받았으나, 범죄함으로 성령이 떠나 한낱 '흙'으로 전락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흙을 먹으라" 하신 것은 성령을 잃고 흙이 된 인간이 사탄의 밥과 종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 피 흘림으로 죄를 사하셨고, 부활 후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하셨습니다. 잃어버린 생기를 다시 불어넣으신 것입니다. 통성기도의 성령 불길이든, 말씀 읊조림(하가)을 통한 묵상기도든 핵심은 '회개와 성품의 정결함'입니다. 내면의 회개와 삶의 변화가 없다면 어떠한 은사도 무익하며, 성도는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형상을 닮아가야 합니다.
6. 이기심을 넘어 사명을 따라가는 삶
타락한 인간은 성령을 잃고 짐승과 같은 정욕과 이기심으로 살아갑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이러한 이기심을 바탕으로 효율을 내지만, 이러한 세속적 논리가 교회 안에 들어오면 신분과 물질에 따른 차별이 생기고 공동체가 무너집니다.
성도의 삶은 이기심이 아닌 사명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부귀나 장수가 아닌 백성을 잘 다스릴 '지혜(사명)'를 구했을 때 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광까지 더해주셨듯이, 우리가 사명을 우선순위에 두면 하나님이 필요한 모든 환경과 물질을 채워주십니다. 반대로 솔로몬이 훗날 사명을 버리고 정욕과 이기심에 빠졌을 때 모든 영광을 빼앗겼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7. 십자가 사랑과 사명자의 길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 + 성령의 생기 + 사명]을 되찾아 주시려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은사나 인간적 재능만으로는 담임목회와 성도의 삶을 완주할 수 없습니다. 은사는 사명을 위한 도구일 뿐이며, 중요한 것은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명의 길을 걷는 성도를 고난의 광야로 몰아가시며 교만과 혈기를 깎아내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다듬으십니다. 재능이 뛰어났던 동료 목회자들도 광야의 시련을 거치며 자신을 깨뜨린 후에야 비로소 참된 사명자로 쓰임받았습니다.
우리가 속한 교회와 가정, 삶의 터전을 하나님의 안식이 넘치는 '에덴동산'으로 만들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나 자신과 가정, 교회를 향한 사명을 붙들고 기도하십시오. 은사나 물질보다 주님의 성품을 닮은 하나님의 형상 회복을 먼저 구할 때,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를 넉넉히 더해주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세상의 이기심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생기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주님의 성품을 닮아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끝까지 붙들고 나아가는 거룩한 사명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와 가정이 에덴동산의 복을 누리게 하실 줄 믿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