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소식 가득했던 주일이었는데~
하늘은 무심하게 흰구름 뭉게뭉게 입니다~ 하아;;;
20년전(?ㅋ) 추부에 있던 회사에 근무를 했었지요~
아마 금계교회는 금산 가는 차 안에서 무던히 스쳤을 수도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이번 주일도 어김없이 동행.해 주시는 귀한 성도님들...
국 목사님의 마지막 질문......
"이 일을 감당하시는 여러분들의 마음은 [기쁨]이십니까? 아니면 [일]이십니까?
그러나... 너무나 귀한 헌신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금계교회 이야기를 시작해 볼게요~
금계교회는 황선봉 장로님의 사랑방에서 시작됩니다.
귀한 헌신으로 교회 부지를 얻고,
학생들과 성도님들과 장로님이 직접 건축하신 교회...
요~ 아래 사진에 귀한 장로님과 권사님 성도님들의 모습을 보실 수 있으십니다~ ^^
저희와 함께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기다리신 금계교회 성도님들~
[통]해야 산다~는 설교는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가 않습니다 ㅋㅋ
이번엔 온유가 엄청 크게 웃었습니다~
살짝 물었지요? " 온유야 무슨 얘기인지 알아??" " 웃겨요~~ 하하하하~ 웃겨~~~"
안다고 믿을랍니다~
함께 동행해 준 겸, 담, 온유, 주안~
힘을 다해 찬양하고,
힘을 다해 기도합니다...
목사님의 마음에 위로를 드리고,
성도님들을 응원하고,
그냥.. 그렇게 우리가 늘 하던대로 화려하지 않지만 마음을 다합니다..
금계교회 국중영 목사님
시골교회의 목회가 (부임하신지 12년 정도 되십니다.) 힘들지 않느냐 물으시는 분들께...
보내신 하나님의 뜻과 은혜가 커서 감사로 감당이 됩니다.. 고백하시는 목사님
상신,중신, 하신 세 부락중에 중신리..
이곳에는 아이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꽃과 같은 청년 잘 키워서 금산군 공무원이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이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다고 웃음지으며 말씀해 주셨습니다.
목사님이 처음 부임하셨을 때는 3~4명의 성도님들만 계셨지요.
부지런히 전도하고 가르치고 성도님들 30명이 채워졌을 때,
교회를 세우시고 열심을 다해 섬기신 분들 임직식을 하셨고,
학생들과 청년들로 성가대도 하셨다고 합니다.
청년 학생부 사역에 달란트가 있으셔서 사모님 몰래 모아둔 비자금으로(이 자리에서 말씀하심 ㅋ)
전국투어, 대만대학교 방문등을 통해 꿈과 비젼을 심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지금은 아이들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이지만,
그래도 다문화 아이들을 전도하면 주일학교가 있는 옆 큰 교회로 보내주신답니다.
아이들은 크면 도회지로,
성도님들은 연로하시면 요양원으로.... 이게 농촌교회의 현실입니다...
한 가정 단위로 빠져 나간 빈 자리.... 그곳에 찾아오는 낙심 대신 목사님은 농촌교회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십니다..
농촌교회는 못자리다...!!
목사님의 자녀는 딸 둘과 아들 하나...
큰 딸 하은이는 자폐아 임에도 불구하고, 반주자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하은이로 인한 은혜...
농촌 지역의 열악함에 방치되는 장애아동을 위한 길을 개척해 나가십니다.
1. 법인을 설립하셔서 80여명 장애아의 치료시설을 운영하시고
2. 졸업 후 다시 방치되는 아이들을 위해 컨테이너를 개조해서 7~8명이 같이 공동생활도 하시고
3. 금산군이 지원하여 지어준 보호작업장의 원장님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낮엔 작업장으로 출근하시고, 홍삼액.케익. 빵 등을 판매하여 년 1억정도의 매출을 일으켜서
장애우들에게 월급도 주시고, 생활기반을 돕고 계십니다.
4. 고물로 내 놓은 기계를 싼 값에 인수하셔서 화장지도 만들어 한국타이어 등에 공급하고 계시다가
지금은 더 어려운 교회의 목사님이 맡아서 운영해 주고 계시다고 합니다.
금계교회의 성도님들 ( 교회를 세우신 장로님과 권사님들... 아직도 정정하신 90 넘으신 성도님들... 고맙습니다)
환하게 웃으시는 장모님
그 뒤에 사모님~
다과 시간에 잠시 사모님의 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 신학교 시절에 사모님은 또 심방전도사로 봉사하시느라 하은이를 잘 돌보지 못해서 오게 된 장애.....
피아노를 가르치게 된 사연...
농촌교회로 올 때 엄청 우셨다고 (^^ 백만번 이해 합니다~)
귀한 막내딸 이야기..
아~ 사모님이셨기에 감당하셨겠구나...
짦은 시간이었지만 가슴으로 전해지는 그 이야기를 통해 속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도시 교회와 자매 결연을 맺어서,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교류와 섬김의 꿈을 꾸셨던 목사님..
바쁜 농촌에 필요한 미용, 식사봉사, 농사도우미가 선교방법으로 너무 좋겠다 싶으셨지만~
여러가지 형편상의 어려움을 아시기에 접었던 꿈 속으로 전화를 건 우리 은평교회..
어젯밤은 주님이 오시는 꿈을 꾸시기도 하셨다네요...
또 저희의 자리에서 [기쁨]으로 감당할 일들이 생기면 우리 성도님들 언제든 함께 해 주시겠지요~
강대상 옆에 있던 조그만 책상...
목사님께서 새벽마다, 시간마다, 삶의 모퉁이 마다 낙타 무릎이 되어 기도하셨을 자리입니다..
[ 농촌교회는 못자리다...]
자꾸 이 말씀이 메아리되어 울립니다...
저도, 그곳에서 자란 모입니다.. ^^ 고맙습니다
PS)
금계교회도 다음에 카페가 있습니다.
들어가셔서 못다한 금계교회의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http://cafe.daum.net/goldhench/D9GU/298
첫댓글 어김없이 귀한 포스팅을 해주셨네요,..
사진과 글로나마 농촌교회를 보며 응원해봅니다.
시골교회에서 10 여년 목회하시기가 쉽지 않으실텐데,
정말 여러가지 사역으로 농촌에 큰 힘을 주시는 교회입니다..
늘 꺼내 봐야하는 농촌 교회의 정체성~ 그 안에 아픔도 있고 정답도 있더라구요
금계교회 이야기를 자세히 실어 놓으셨네요.
따님의 아픔이 훈장이 된 이야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활달하신 사모님이 감당해야 하셨던 일들도 책 한 권이 넘을 것 같았지요.
함께 하셔서 응원하신 우리교회 성도님들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샬롬^^
네~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책 한권 넘는다고 ^^
@민서엄마 아하 그래요! 히야! 사모님이 하고 싶으신 말이 너무 많으신 것 같았지요.
ㅎ 금계교회 이야기를 다시 듣게 해주어서 감사^^
언니의 이야기로 더 마음을 나눌 수있어 감사^^
부족한 나 이지만 있는자리에서 기도로 응원하겠습니다^^
담에 사모님만 모셔서 이야기듣는 시간 꼭 한번 가져야겠는데요~~^^
그날 그자리의 감동을 글로 고스란히..^^
목사님 이야기듣는 동안..
두번이나 눈물을 훔쳤네요..ㅠㅠ
귀한 후기 감사해요 집사님~^^
그르게요 사모님이 가슴에 품었던 이야기가 많으신듯! 눈가가 촉촉하신게 마음이 아팠네요
늘 함께 하고 싶은 맘이었는데
요리 자세히 올려주시니 그 자리에 있었던 착각을 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샬롬!!
제가 금계 교회 목사님께 처음 전화했을 때, 너무 미안해 했다고 하셨는데
그건 혹시라도 우리는 돕는 교회이고 그쪽은 도움 받는 교회라고 오해하실까봐
그리고 죄송스러운 마음 때문에 그리했지요.
우리교회 성도님들은 다 이해해 주시는 일이지요. ㅎㅎㅎ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