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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의 길 33코스 역방향 제2부
대진중고등학교-화진포해양박물관-
화진포광장-금구교-화진포해수욕장-
화진포교-이승만별장-죽정생태습지
20251022
1.코스소개 : 생략. 제1부 참조.
◆이용방법 : 방문 전 반드시 읽어 보세요! 33코스는 일부구간(건봉사에서 송강쉼터)이 군통제지역으로 차량 이동은 가능하나 도보 이동이 불가합니다. 우회로(32-1코스 및 33-1코스)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5.15.~10.31. 매주 목, 토요일 걷기 프로그램 운영. 운영일 기준 3일 전까지 전화예약이 가능하며 5인 이상 모집시에 운영됨. 예약방문 시 참가비 무료, 간식 제공, DMZ 평화의 길 기념뱃지 증정, 완보인증서 발급) 이용문의 : 강원 고성 DMZ 평화의길 송강쉼터 033-682-6822 / 고성군청 033-680-3365
2.화진포둘레길, 이승만별장과 죽정생태습지
제2부(대진중고등학교~죽정생태습지) : 대진중고등학교 후문 앞에서부터 평화의 길은 '화진포 둘레길'을 따라간다. 드넓게 펼쳐진 화진포호는 시계 방향으로 현내면 초도리, 거진읍 화포리와 원당리, 현내면 죽정리와 초도리에 걸쳐 북에서 남으로 길게, 동에서 서로 폭을 이룬다. 북에서 남으로 길게 이어지는 화진포호는 거진읍 화포리와 현내면 죽정리를 이어주는 화진포교(花津浦橋)를 경계로 하나의 넓은 호수가 둘로 나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화진포교 북쪽의 화진포호를 북화진포호, 그 남쪽을 남화진포호라 불러주고 싶다. 화진포호의 담수(淡水)는 서쪽 호안(湖岸)에서 유입되는데 서남쪽의 중평천과 원당천(월안천)이 중심 하천으로 이 유입지역에 죽정생태습지가 형성되어 있다. 화진포호의 염수(鹽水)는 현내면 초도리 금구교(金龜橋) 아래에서 동해 바다의 물길이 이어지는 곳에서 유입된다. 이곳에 드넓은 사주(沙洲)가 형성되어 원래 바다였던 화진포호가 바다와 분리되어 석호(潟湖)가 되었고 화진포호 해변의 넓은 사주(沙洲)에는 화진포광장과 화진포해수욕장이 조성되었다.
DMZ 평화의 길 33코스 역방향은 화진포호 동안(東岸) 호변을 따라 화진포길을 남진한다. 그리고 현내면 초도리 화진포광장에서, 초도해변에서 작별했던 해파랑길과 반가이 재회하여 동행한다. 화진포광장 서북쪽의 화진포해양박물관 앞에 '관동별곡팔백리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 기념비는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7~1594)의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웠더니/ 관동 팔백리에 방면을 맡기시니/ 어와 성은(聖恩)이야 갈수록 망극(罔極)하다"로 시작되는 기행가사(紀行歌辭) <관동별곡>(1580년)을 기리기 위해, 2009년 10월 18일에 건립되었다. 화진포광장 서쪽 화진포 호변공원에는 여러 조형물과 안내판을 비롯하여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노래비가 조성되어 있다. "황금물결 찰랑대는 정다운 바닷가/ 아름다운 화진포에 맺은 사랑아~" 어린 시절 라디오로 들었던 이씨스터즈의 음성이 가을비 내리는 화진포호에 출렁출렁, 귓가를 울린다.
금구교를 건넌다. 금구교 북단과 남단 교명주 위에는 화진포호의 명물 철새를 형상화한 고니 조형물이 두 마리씩 각각 마주보고 있다. 사랑과 평화를 소망하는 마음이 절로 느껴진다. 금구교를 건너 화진포해수욕장 출입구를 지나간다. 화진포길에는 벚나무들이 가로수로 조성되어 줄지어 서 있다. 봄날 벚꽃이 필 무렵 이 길은 환상의 호변길이 될 것 같다. 고성군 토성면 출신의 이성선 시인은 '아름다운 사람' 작품에서 나무 같은 사람을 소망한다. "바라보면 지상에서 나무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없다.// 늘 하늘빛에 젖어서 허공에 팔을 들고/ 촛불인듯 지상을 밝혀준다./ 땅속 깊이 발을 묻고 하늘 구석을 쓸고 있다.// 머리엔 바람을 이고 별을 이고/ 악기가 되어온다.// 내가 저 나무를 바라보듯/ 나무도 나를 바라보고 아름다워할까./ 나이 먹을수록 가슴에/ 깊은 영혼의 강물이 빛나/ 머리 숙여질까.// 나무처럼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나무처럼 외로운 사람으로 살고 싶다.// 혼자 있어도 놀이 찾아와 빛내주고/ 새들이 품속을 드나들며 집을 짓고/ 영원의 길을 놓는다./ 바람이 와서 별이 와서 함께 밤을 지샌다." - 이성선(李聖善, 1941~2001)의 '아름다운 사람' 전문. 나무 같은 사람들이 사랑과 평화 그 자체이다.
화진포교 삼거리에서 평화의 길은 해파랑길과 헤어진다. 해파랑길은 김일성별장을 향해 남동진하고, 평화의 길은 이승만별장을 향해 화진포교를 건너 남서진한다. 화진포교(花津浦橋) 교명주 위에는 화진포호의 철새를 조형화한 가창오리 조형물이 각각 두 마리씩 마주향하지 않고 동과 서를 향하여 앉아 있다. 한 쌍은 동해 바다를 향하고, 다른 한 쌍은 서쪽 숲을 향한 각각의 가창오리 조형물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화진포 전설의 인색한 이화진(李花津) 인물을 경계하고 착한 며느리를 수호한다는 뜻이 있을까?
북화진포호와 남화진포호를 가르는 화진포교를 건너 현내면 죽정리 이승만별장으로 이어간다. 별장 아래 뜰에는 화진포 전설의 착한 며느리 여인상과 화진포전설을 새긴 책자 모양의 동판이 세워져 있고, 그 위 언덕에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李承晩, 1875~1965) 별장이 있다. 오래 전 이 지역 연대장으로 근무하는 친구 덕분에 어느 해 겨울날 이승만별장에서 하룻밤을 묵은 추억이 있다. 아련한 추억이 남아 있는 이승만별장은 화진포 역사안보 전시관으로 개관하였는데, 현재 리모델링 공사 중이어서 전시관을 관람할 수 없다. 언덕의 이승만별장으로 올라가 추억의 흔적을 살필 수 없어 아쉽지만 출입구에서 그날의 추억을 더듬었다. 그때 함께 묵었던 동료 얼굴들이 살포시 살아온다. 그때 이승만의 행적에 대하여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충돌은 없었다. 그런데 현재 이승만에 대한 평가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대한민국을 분열시키고 있다. 이승만 찬양론자들의 평가는 영화 '건국전쟁'을 통해 절정에 도달하였다. 길손은 이 영화를 관람하였는데, 이승만의 부정적인 면마저도 미화시키는 것에 아연실색하였다. 그래서 이승만 비판론자들의 의견을 '나무위키'에서 살펴본다.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는,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이다.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아직 나라를 찾기도 전에 팔아먹은 놈이다."라고 이승만을 평가했고, 함석헌(咸錫憲, 1901~1989)은, "6.25전쟁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이승만과 소련·중공을 배경으로 한 김일성의 싸움이었지 민중이 한 싸움은 아니다. 그러니까 서울을 빼앗겼을 때 저 임진왜란 때 선조가 그랬듯이 이승만도 국민을 다 버리고 민중 잡아먹고 토실토실 살이 찐 강아지 같은 벼슬아치들과 여우 같은 비서 나부랭이들만 끌고 야밤에 한강을 건너 도망을 간 것이다. 밤이 깊도록 서울은 절대 아니 버린다고 공포하고 슬쩍 도망을 쳤으니 국민이 믿으려 해도 믿을 수 없다. 저희끼리만 살겠다고 도망을 한 것이지 정부가 피난간 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함석헌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박정희(朴正熙, 1917~1979)는, "이승만 노인은 눈이 어두운 독재자다. 지난날 이승만 씨가 꾸며 놓았던 자유당이야말로 자기 파(派)만의 수지타산을 제일로 치는 정당의 본보기였으며, 세계 선거 역사 가운데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으리만큼 부정과 불법의 흉계를 꾸미고 이를 국민에게 강요했던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 남한에서는 이승만 자유당 독재 정권이 12년 동안 기간산업의 토대가 되는 전력 문제 하나 제대로 해결짓지 못하는 사치스런 소비경제로 말미암아 농촌은 메말라 갔으며, 메마른 농촌의 피와 살을 깎아서 도시만이 지나치게 비대해져 썩고 그릇된 일만이 극심해져 갔다. 자유당 독재 12년에 농촌의 경제는 파탄되고 관기는 문란해졌으며, 부정축재자들은 건전한 국가 경제의 성장은 제쳐 놓고, 그릇되고 썩어빠지기만 했다. 해방 16년에, 남한에서는 이승만 노인의 어두운 독재와 썩어빠진 자유당과 관의 권리를 중심으로 한 '해방 귀족'들이 날뛰어 겨레의 장래는 어려워만 갔던 것이다."라고 이승만을 평가했다. (박정희의 <우리 민족의 나갈 길>) 또한 전두환(全斗煥, 1931~2021)의 신군부는, "반공과 반일을 앞세워 정적을 타도하고 권력기반을 확장하는 일에 더 신경을 쓴 반면, 진정한 의미의 자주독립국가 건설 작업에는 소홀했다."라고 이승만을 평가했다. (전두환의 신군부가 기록한 <제5공화국 전사(前史)>)
가을비답지 않게 비는 세차게 내린다. 비옷을 입고 우산을 받쳐들고 걷지만 등산화는 빗물이 스며들어 질퍽거리고, 바지는 비에 젖어 축축하다. 비 내리는 날의 트레킹을 만끽하며 이승만별장길을 따라 소나무숲 고개를 넘어 서북진한다. 이 길은 바다의 곶(串)처럼 화진포호 동남쪽으로 돌출한 구릉의 중턱을 넘어간다. 고개를 넘어 내려가면 모정1길 갈림길이 나온다. 평화의 길은 이승만별장길과 헤어져 모정1길을 따라 화진포 서안(西岸)의 현내면 죽정리 들녘을 가로지른다. 화진포호는 동쪽 호안(湖岸)을 따라 남안(南岸)으로 이어지는데 행정구역을 확인하면 남화진포호 동쪽은 거진읍 화포리, 남쪽은 거진읍 원당리, 서쪽은 현내면 죽정리 지역으로 대별할 수 있다.
옛 바다였던 화진포호 서안(西岸)은 화진포호로 돌출한 곶(串) 같은 지형을 꼬불꼬불 돌아 현내면 죽정리 들녘을 지나간다. 화진포 호변은 낮아서 화진포호의 물이 넘치고 습지가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죽정생태습지로 이어지는 호변의 마지막 곶(串) 지형에서는 호변(湖邊)으로 이어가지 못하고 호안(湖岸)의 숲길로 들어가 고개를 넘어 내려간다. 화진포 둘레길은 중평천의 나무다리를 건너 죽정생태습지 북출입구로 들어간다. 중평천(仲坪川)은 죽정리를 동쪽의 1리 지역과 서쪽의 2리 지역으로 나누며 흘러 화진포호에 유입된다.
죽정습지는 화진포 호변에 형성된 습지이다. 이 습지는 현내면 죽정리 중평천과 원당천(源塘川)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데, 월안천(月安川)이라 불렸던 원당천은 현내면 죽정리와 거진읍 원당리의 경계를 이루는 것 같다. 두 소하천 사이의 화진포 호변에 드넓게 형성된 죽정습지를 유입부, 침강지, 얕은습지, 깊은습지, 침전못, 유출부 등을 갖춘 죽정생태습지로 조성하고, 관찰길, 관찰뎈, 관찰대, 정화식물 관찰장, 쉼터파고라 등을 설치하여 죽정생태습지를 관찰할 수 있도록 하였다. 관찰대에 올라 죽정생태습지를 살피며 주변 풍경을 조망하지만 가을비는 멈출 줄을 모르며 짙은 안개와 함께 내린다. 이 풍경을 누구는 곰탕 풍경이라 이른다. 곰탕 풍경은 그 나름의 아름다움으로 수묵화를 그린다. 고성산과 노인산을 가늠하며 서쪽에 길게 이어지는 큰까치봉과 작은까치봉 능선을 살피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 남쪽에 건봉사가 자리한 건봉산도 보이지 않는다. 관찰대에서의 수묵화 조망을 마치고 관찰길을 따라간다. 좀작살나무 보랏빛 열매들이 빗물에 씻겨 더 투명하게 빛난다. 세상의 일이란 일장일단이 있다. 일단에 실망하지 않고 일장을 기뻐하며 일장에 그치지 않고 일단의 개선에 힘쓰는 게 인생일 것이다.
3.탐방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5.1km
전체 소요 시간 : 3시간 43분
평화의 길은 대진중고등학교 정문 앞에서 왼쪽 건너편 화진포길을 따라 화진포호 방향으로 이어간다. 오른쪽 금강산로는 국도 제7호선 동해대로의 초도교차로 방향으로 이어진다.
교화는 '아름다운 얼굴'이라는 꽃말을 가진 해당화, 교목은 '영원함'이라는 꽃말을 가진 해송, 교훈은 슬기롭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
금강산로 동쪽 보도를 따라 대진중·고등학교 정문 앞으로 와서 화진포길 횡단보도를 건넜다.
화진포길은 현내면 초도리 대진중·고등학교를 서쪽으로 돌아 화진포호 동쪽으로 나간다.
오른쪽에 화진포호, 왼쪽에 대진중·고등학교를 두고, 그 사이로 화진포길이 달린다.
전성국 작사, 이시우 작곡의 교가 1절은 푸르른 동해 바다 화진포의 아침~, 2절은 줄기찬 설악산 진부령의 정기~로 시작되는데, 2절을 금강산과 향로봉으로 시작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대진중·고등학교 후문 앞에 화진포 둘레길 문주가 있다. 이곳을 통과해 화진포호 북쪽 둘레를 돌아간다.
천혜의 자원인 화진포는 동양 최대의 자연 호수이다. 화진포 둘레길은 이를 걷기 및 자전거를 이용하여 화진포와 주변의 관광지를 탐방할 수 있도록 조성한 둘레길이며 전체 길이는 11km(산책로 구간 1km)이다.
화진포(화진호, 열산호)는 큰 호수로 옛날 열산현 자리인데, 홍수로 인해 호수가 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바람이 자고 물결이 일지 않을 때는 물 속에 담과 집이 보인다고 한다. 또 이 호수는 땅 밑으로 동해와 서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 고성문화원
화진포길은 현내면 초도리 대진중·고등학교 정문 앞 금강산로에서 갈라져 거진읍 화포리(花浦里)를 거쳐 봉평리(蓬坪里)로 이어진다.
화진포호의 녹조 발생 및 부영양화의 주요 원인인 질소, 인 등의 제거를 목적으로 수초재배섬을 설치하여 수질 오염을 방지하고 어류 등 수생식물의 서식공간 제공 및 생태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수초재배섬을 설치하였다.
화진포길 서쪽의 화진포호 동안(東岸)에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맨 오른쪽 끝에 화진포교와 이승만별장이 어림된다.
화진포호는 현내면 초도리와 죽정리, 거진읍 화포리와 원당리에 걸쳐 펼쳐져 있다.
●바다와 호수를 담은 해당화가 어우러진 화진포 : 화진포는 해당화가 만발하여 화진포(花津浦)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호수의 둘레가 16km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석호(潟湖)이며, 염분 농도가 높은 전형적인 기수호(汽水湖)로 생태적 보전 가치가 매우 높은 자연 호수이다. 해수와 담수가 공존하고 먹이가 풍부하여 숭어, 황어, 도미 등 다양한 어류가 서식하고 있다. 김일성별장, 이승만별장 등이 위치하고, 바다를 담은 진기한 볼거리로 가득한 화진포해양박물관과 생태박물관이 있어 국민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석호(潟湖)의 보전 : 지구의 역사와 같이한 동해안 석호는 약6,000~8,000년 전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면서 해수면의 상승과 연안부의 침수 그리고 파도에 의한 사주(沙洲)가 만(灣)의 입구를 막으면서 형성되었다. 석호는 해수와 담수가 공존하는 호수로서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고 독특한 자연환경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 보존 가치가 매우 높으나, 화진포호, 송지호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 훼손의 정도가 심하다. 석호의 수질 및 생태계 보호를 위해서는 외부 오염원의 차단과 호수 주변 완충습지 조성, 호수 자체 자정능력 향상 등이 필요하다. 석호는 인간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며 생명이 공존하는 곳으로 과도한 인위적인 간섭보다는 자연에 의한 개선과 생태계를 고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화진포호가 현내면 초도리 지역의 북안(北岸)과 서안(西岸)에 둘러싸여 있다.
화진포길은 남쪽으로 거진읍 화포리 방향으로 이어가고는 초도항길 갈림길 삼거리에 화진포해양박물관이 자리한다.
화진포길의 초도항 출입로에서 초도항으로 이어지는 초도항길이 시작된다.
화진포길은 남쪽 거진읍 화포리 방향으로 이어가고, 화진포해양박물관 남쪽에 화진포광장이 넓게 조성되어 있다.
화진포해양박물관은 화진포 관광지구 내에 위치한 해양박물관으로 세계적으로 희귀한 각종 조개류, 갑각류, 산호류, 화석류, 박제 등 다양한 수중생물들을 볼 수 있는 패류박물관과 어류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은 어류전시관으로 180도 머리 위를 지나는 물고기들을 관람할 수 있고, 2층은 오션 비치, 동해 바다, 무척추 동물관과 입체영상관을 볼 수 있다. 특히 2층에서 상영하는 입체 영상을 통해 화진포의 호수와 바닷속 생태계를 공부할 수 있다. 고성군의 명물인 명태를 비롯해 동해 바다 돌고래, 고성 대진항, 거진항 어부들의 고기잡이 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 대한민국구석구석
화진포광장 서쪽 화진포해양박물관 앞에 '관동별곡8백리 기념비(紀念碑)'가 세워져 있는데, 이 기념비(紀念碑)는 송강 정철이 기록한 <관동별곡>을 기리기 위해 2009년 10월 18일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평화의 길은 해파랑길과 재회하여 화진포길을 따라 금구교를 건너는데, 잠시 오른쪽 호변 공원을 들른다.
2006년 4월 6일 건립된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노래비가 호변 공원에 있다. 작사·곡/ 황우루, 노래/ 이씨스터즈, 음반발매일/ 1967년
황금물결 찰랑대는 정다운 바닷가/ 아름다운 화진포에 맺은 사랑아/ 꽃구름이 흘러가는 수평선 저 너머/ 푸른 꿈이 뭉게뭉게 가슴 적시면/ 조개껍질 주어모아 사랑을 수놓고/ 영원토록 변치말자 맹세한 사랑// 은물결이 반짝이는 그리운 화진포/ 모래 위에 새겨놓은 사랑의 언약/ 흰 돛단배 흘러가는 수평선 저 멀리/ 오색 꿈이 곱게곱게 물결쳐 오면/ 모래성을 쌓아놓고 손가락 걸고/ 영원토록 변치말자 맹세한 사랑
화진포 호변 공원에서 바로 앞의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노래비'와 건너편 화진포광장을 뒤돌아본다.
화진포 호변공원 호숫가에 철새와 돌고래가 앉아 있는 조형물과 화진포호 철새도래현황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현내면 초도리에 펼쳐진 화진포호 북쪽을 살핀다.
화진포호가 거진읍 화포리 지역의 동안(東岸)과 현내면 죽정리 지역의 서안(西岸)에 걸쳐 펼쳐져 있다.
화진포 호변공원을 살피고 화진포길 금구교로 이어간다. 오른쪽 맨 뒤에 화진포교(花津浦橋)와 이승만별장이 흐릿하게 보인다.
화진포호와 동해 바다를 잇는 물길 위에 놓인 금구교를 건넌다. 금구교 교명주(橋銘柱) 위에 고니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금구교에서 화진포호와 동해 바다를 잇는 물길을 바라본다. 물길 옆에 사주(沙洲)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사주(沙洲)는, 해안이나 호안 근처의 수면상에 나타난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진, 석호(潟湖)를 가진 퇴적 지형을 이른다.
금구교에서 화진포호 물길과 사주(沙洲), 사주(沙洲)에 조성된 화진포광장, 오른쪽 뒤의 금구도(金龜島)를 확인한다.
금구도(金龜島)는 초도(草島), 초진도(草津島), 거북섬이라고도 하는데 이 섬의 거북머리 부분이 동남쪽 대양을 바라보고 나가는 형용이라서 초도리(草島里)가 흥하지 못한다는 전설도 있으며 어느 때인지 연대는 모르나 섬 주위에 돌담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큰 성터와 같은 돌 구조물이 있다. 또 높이 5m와 길이 13m 자연석이 섬의 북서쪽에 잘 남아 있다. 또 돌굴이 있는데 속에는 태극형의 큰 바위가 있었으며 한쪽은 없어지고 현재는 반쪽만 남아 있다. 굴 위에는 넓은 돌방석이 있는데 약 20년 전까지도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그리고 거북섬에서 죽는 사람이 생길 경우 거북섬에 있는 명당자리에 묘를 썼다는 전설도 있다. 섬에는 소나무와 전죽으로 덮여 있고 두릅과 머루, 칡 등과 물고기 화석, 말 발자국, 축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고성문화원
왼쪽 화진포 호변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화진포광장 화진포해양박물관 앞에 관동팔백리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화진포 물길 남쪽의 드넓은 사주(沙洲)가 형성된 화진포 해변에 해수욕장이 조성되어 있다.
화진포호 물이 동해 바다로 이어지는 물길 위에 금구교가 놓여 있고 교명주(嬌銘柱) 위에 고니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비 내리는 화진포호에 물새 떼들이 유영하고, 중앙 뒤에 고성산이 가늠된다. "고성산(古城山)은『신증동국여지승람』의 간성군 고적조에는 “열산현(烈山縣) 북쪽 1리에 있는데 곧 현의 남산이다. 군과의 거리는 35리이다.”는 고성산의 기록이 있다.『여지도서』에는 “군의 북쪽 30리에 위치한 산으로 열산현의 진산이며 금강산(金剛山)의 주맥이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성문화원)
화진포길을 따라 화진포해수욕장 출입구를 지나간다.
화진포 해수욕장 출입구를 지나 돌아본다. 중앙 뒤 바다에 금구도가 보인다.
화진포길은 벚나무 가로수가 조성되어 있다. 화진포호 아래에 화진포교, 그 오른쪽 숲에 이승만별장이 가늠된다.
화진포교 삼거리에서 화진포길은 왼쪽으로 이어가고, 평화의 길은 직진하여 이승만별장길을 따라 화진포교를 건넌다.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화진포호에서 폭이 가장 좁은 곳 위에 놓인 화진포교는 거진읍 화포리와 현내면 죽정리를 이어준다. 화진포교 교명주(橋銘柱) 위에 오리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화진포길을 따라 대진중고등학교, 화진포해양박물관, 금구교, 화진포해수욕장을 거쳐 화진포교 삼거리로 내려왔다.
화진포교 북단에서 화진포교 삼거리 건너편의 화진포콘도 출입구를 돌아본다. 화진포길은 셔우드홀 문화공간 앞으로 이어간다.
화진포길이 화진포호 중앙 뒤의 화진포 셔우드홀 문화공간 건물 앞으로 이어진다. 김일성별장은 왼쪽 뒤 산자락에 있다.
화진포호가 거진읍 화포리에 걸쳐 펼쳐져 있으며, 중앙 왼쪽 뒤에 응봉이 솟아 있다.
화진포교는 화진포를 남북 두 곳으로 나눈다는 느낌이 든다. 화진포교 남단에서 화진포호 북쪽을 바라본다. 화진포호가 북쪽의 현내면 초도리에서 남쪽의 거진읍 화포리 지역에 걸쳐 펼쳐져 있다.
화진포호 서쪽은 현내면 죽정리 지역으로, 화진포호가 북쪽의 현내면 초도리와 서쪽의 죽정리, 남쪽의 거진읍 화포리에 걸쳐 있다.
화진포 호수의 전설 : 지금의 호수 화진포에는 옛날 이화진(李花津)이라는 성질이 고약한 시아버지와 착한 며느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건봉사 스님이 찾아와 "시주 좀 하십시오" 하니 구두쇠인 이 노인은 하인을 시켜 좁쌀 한 홉 정도를 주었다. 스님은 "고맙습니다" 하고 돌아갔고, 그 후 3년이 지나 스님이 또 시주를 청하자 이번엔 좁쌀 한 숟가락을 주었다. 스님은 역시 "고맙습니다" 하면서 염불을 외며 집안의 평안을 축원하였다. 3년 후 스님이 또 "시주 좀 하십시오" 하고 목탁을 두드리며 독송을 하자 3년마다 찾아오는 스님이 얄밉다는 생각이 든 이 노인은 외양간으로 가서 소똥(牛糞)을 한 삽 퍼내 "이거나 가져가거라" 하니 이번에도 스님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이 광경을 지켜본 착한 며느리는 고약한 시아버지의 행동으로 미안한 마음에 쌀 몇 되박을 퍼서 스님을 찾아 따라나섰으나 스님의 모습은 자취 없이 사라지고 이상한 느낌으로 뒤를 돌아보니 며느리가 살던 집과 툇밭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시퍼런 호수로 변해 버렸다. 갑자기 오갈데가 없어진 며느리는 순간에 일어난 일이 너무 허망하고 애통하여 그만 돌이 되어 버렸다. 그 후 온 나라에 큰 홍수와 흉년, 전염병까지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고 이에 마을 사람들은 뜻을 모아 이 노인의 착한 며느리 시신을 찾아 분묘를 만들어 주었고 일 년에 한 번 서낭굿을 해 준 뒤로는 농사도 잘되고 전염병도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이승만별장길을 따라 이승만별장으로 이어간다. 왼쪽 주차공간 뒤에 화진포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화진포(花津浦)는 동해 연안의 석호(潟湖)의 하나로, 둘레는 약16km, 수심은 1.5~2m이다. 석호(潟湖)는 사주(沙洲)가 발달하여 만(灣)이 바다에서 분리되어 생긴 호수이다. 화진포는 석호 지형의 원형으로 훌륭한 해수욕장이 발달하였으며, 해안선을 따라 바다와 호수, 송림과 백사장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중평천(仲坪川)과 월안천(月安川) 등이 흘러들어와 담수호를 이루고 있다. 주변에는 적송·곰솔이 주로 분포되어 있으며, 수중에는 가래·줄말·나자스말·실말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희귀조류로 큰고니·민물가마우지 등이 있으며, 검둥오리·괭이갈매기·쇠오리·흰죽지검둥오리 등이 떼를 이루고 있다. 어류로는 도미·숭어·연어 등이 있다. 특히 호수 주위에 피어있는 해당회는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고성군의 꽃으로 지정되어 있다.
화진포 안내판이 있는 현내면 죽정리 화진포호 언덕에서 동남쪽 거진읍 화포리의 화진포와 오른쪽 뒤의 응봉을 확인한다. 맨 왼쪽 건너편에 '화진포 셔우드홀 문화공간' 건물이 보인다.
오른쪽에 주차장이 있고, 왼쪽 길가에 DMZ 평화의 길 안내판과 이정목, 숲 뒤에 이승만별장이 있다.
화진포설화 여인상 출입구 옆에 DMZ 평화의 길 안내판과 33코스 안내판, 그 옆에 이정목 세워져 있다.
평화의 길 33코스 : 19.2km, 5시간 소요. 고성 33코스는 건봉사에서 출발해 명파해변에 도착하는 노선이며 위험 구간이 없고 물리적 난도가 쉬운 편에 속해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걷기 여행길입니다. 건봉사를 지나 송강저수지 등을 조망하며 걸을 수 있으며 갓길 및 인도가 없는 2차로 구간 등이 포함 되어 있으나, 차량 통행이 많지 않은 구간으로 위험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다만, 차도 구간인 만큼 이용자들의 주의와 안전성 개선을 위한 후속 조치가 필요합니다. 본 노선의 종점부인 명파해변은 부산에서 시작한 장거리 걷기 여행길 해파랑길과 만나는 지점으로 명파해변 이후 통일전망대 구간은 해파랑길과 'DMZ 평화의 길'이 중복됩니다.
화진포설화 여인상 출입구에 이정목이 세워져 있고, 그 오른쪽에 이승만별장 출입구, 언덕에 이승만별장이 있다.
현내면 죽정리 화진포호 서안(西岸)의 이승만별장길 남쪽 뜰에 화진포설화 여인상과 화진포설화 안내 동판이 설치되어 있다.
책자 모형의 동판에 화진포 전설이 적혀 있는데 화진포 호변의 안내판 전설 내용에 비해 인과관계가 부족하다.
옛날 이 마을에 '이화진'이란 부자가 살았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인색하고 성격이 고약했다. 어느 날 스님이 시주를 왔는데 곡식 대신 소똥을 퍼주었고, 스님은 소똥을 들고 말없이 돌아서 나갔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며느리가 얼른 쌀을 퍼서 스님께 드리며 시아버지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스님은 시주를 받으며 "나를 따라 오면서 무슨 소리가 나더라도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는데 며느리는 고총고개에 이르러 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돌아보니 이화진이 살던 집과 논밭은 모두 물에 잠겨 호수가 되어 있었다. 며느리는 애통해 하다 그만 돌이 되어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착한 심성을 가진 며느리의 죽음을 안타까이 여겨 고총서낭신으로 모셨는데 이후로 농사도 잘 되고 전염병도 사라졌다고 한다. '화진포'는 이화진의 이름 '화진'에서 유래되었다. 지금도 청정한 날에는 화진포 한가운데에 잠겨있는 금방아 공이에서 누런 광채가 수면에 비친다고 한다. - 동판 안내글
본 건물은 1954년, 27평 규모로 신축하여 1960년까지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으로 사용했으나, 이후 건물을 방치하여 폐허로 철거되었던 것을 새로 지어 육군관사로 사용해 왔다. 그후 1999년 7월, 육군에서는 현재의 위치에 본래의 모습대로 별장 건물을 복원하여 역사적 자료와 유품을 전시해 오다가 2007년 2월에 고성군과 육군복지단에서 본래의 별장터에 세워진 본 건물을 보수하고, 별장에 있던 일부 유품과 이화장에서 역사적인 자료를 추가로 기증 받아 2007년8월,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 기념관으로 개관하였다.
1999년 7월 15일 화진포 역사안보전시관 개관을 기념하는 표석이 전시관 출입구 아래에 세워져 있다.
리모델링 공사(2025.10.13~2026.5.31.)로 인하여 화진포 역사안보 전시관이 폐쇄되어 있다.
화진포교를 건너 이승만별장길을 따라 화진포설화 여인상을 보고 화진포 역사안보 전시관 앞을 거쳐왔다.
이승만별장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 내려간다.
오른쪽 언덕에 화진포 역사안보 전시관이 있지만 현재 리모델링 공사 중이어서 전시관을 관람할 수 없다.
화진포 동쪽으로 내민 현내면 죽정리 구릉지 중턱을 지나는 이승만별장길의 고개를 넘어 모정1길 갈림길로 내려간다.
이승만별장길은 현내면 죽정리 국도 제7호선의 화진포교차로 방향으로 이어지고, 평화의 길은 왼쪽 모정1길로 이어간다.
평화의 길은 화진포둘레길 구간 '모정1길'을 따라 죽정생태습지로 이어간다. 왜 모정1길일까? 1916년 중평리(仲坪里), 도발리(道發里), 죽림리(竹林里), 모정리(茅亭里)를 통합할 때, 죽림리(竹林里)의 '죽(竹)'자와 모정리(茅亭里)의 '정(亭)'자를 합쳐 죽정리(竹亭里)라 하였으며, 중평천을 경계로 동쪽은 죽정1리(옛 茅亭里) 지역이므로, 모정1길이라 명명하였을 것이다.
이승만별장길에서 모정1길로 들어와 모정1길을 따라왔다. 전신주 왼쪽 뒤에 모정1길 출입구가 보인다.
현내면 죽정1리 들녘에서 바라보면 왼쪽 구릉지 뒤쪽에 이승만별장이 있고, 화진포호 건너편 중앙의 응봉이 가늠된다.
화진포호는 맨 오른쪽 현내면 죽정리 호안(湖岸)을 돌아간다. 건너편은 거진읍 화포리 지역이 남쪽으로 이어진다.
화진포호가 동쪽 거진읍 화포리, 서쪽 현내면 죽정리, 남쪽 거진읍 화포리와 원당리 지역에 펼쳐져 있다. 모정1길은 건너편 중앙 호변에 하얀 볏짚 묶음인 곤포사일리지가 보이는 곳에서 호변으로 돌아가지 않고 오른쪽 숲길로 이어간다.
평화의 길과 화진포둘레길은 모정1길을 따라간다. 모정1길은 화진포 호변을 따라가다가 왼쪽 건너편 하얀 곤포사일리지가 보이는 곳에서 호변을 벗어나 오른쪽 숲길로 이어간다.
현내면 죽정1리 농가 앞 왼쪽 모정1길을 따라간다. 화진포둘레길 시점 2.4km 지점으로, 종점 7.4km가 남아 있다.
현내면 죽정1리 농가 뜰에 하얀 도라지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
화진포둘레길 구간 모정1길은 현내면 죽정1리 농가 앞을 지나 왼쪽으로 이어간다.
죽정1리 농가 앞쪽에서 화진포 건너편 왼쪽 뒤의 응봉을 가늠한다. 모정1길은 맨 오른쪽 건너편에서 오른쪽 숲길로 이어간다.
모정1길을 따라오다가 지나온 죽정1리 농가와 비닐하우스를 뒤돌아보았다.
중앙에 비쭉 돌출한 구릉지 뒤에 이승만별장, 그 뒤 건너편 산자락에 김일성별장이 있다. 화진포 호변이 굽이돈다.
화진포호를 서쪽으로 돌아가는 모정1길이 맨 오른쪽으로 이어가며 건너편 오른쪽 뒤에 응봉이 가늠된다.
화진포둘레길 구간 모정1길은 호변에서 호변을 벗어나 숲길로 올라간다.
모정1길은 숲길 고개를 넘어 죽정생태습지로 내려간다.
화진포 호변을 굽이돌아 호변에서 숲길로 올라가다가 걸어온 화진포 호변을 뒤돌아본다.
모정1길을 따라 숲길로 들어가 낮은 고개를 넘어 내려간다.
모정1길 고개를 넘어 내려오면 중평천 나무다리가 있다. 중평천(仲坪川)을 경계로 동쪽은 죽정1리, 서쪽은 죽정2리 지역이라고 한다. 화진포둘레길 시점 3.2km 지점으로, 종점은 6.8km, 원당리쉼터는 1.6km 거리에 있다.
현내면 죽정1리에서 중평천의 나무다리를 건너 죽정2리 죽정생태습지로 넘어간다.
중평천 나무다리 서단에 설치된 화진포둘레길 안내판에 화진포 주변 볼거리가 소개되어 있다. "천혜의 자원인 화진포는 동양 최대의 자연 호수이다. 화진포둘레길은 걷기 및 자전거를 이용하여 화진포와 주변의 관광지를 탐방할 수 있도록 조성한 둘레길이며 전체 길이는 11km(산책로 구간 1km)이다." (안내판)
중평천 나무다리를 건너 이정목과 안내판이 세워진 곳에서 직진하여 죽정생태습지를 가로지른다.
죽정생태습지를 가로질러 정화식물 관찰장 방향으로 이어간다.
쉼터파고라가 양쪽에 설치되어 있는 곳에서 왼쪽 죽정생태습지 관찰대로 올라가 죽정생태습지를 조망하고 되돌아온다.
죽정생태습지 관찰대 출입구에 '자연과 사람이 함께하는 죽정습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습지란? ●담수 기수 또는 염수가 영구적 또는 일시적으로 그 표면을 덮고 있는 지역. ▶습지의 기능 ●다양한 생물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을 제공. ●습지의 정수식물 및 미생물 등에 의한 유역내 오염원을 정화하는 역할. ●습지식물의 광합성 작용으로 지구 온난화 완화 기여 생태. ▶생태습지 처리절차별 기능 ●침강지 : 유입부에 설치되어 유입량 조절 및 오염원 전처리시설. ●얕은습지 : 수심 1m 이내로 갈대, 부들 등 정수식물의 생육을 통해 수질정화. ●깊은습지 : 수심 1.5m 정도의 연못 형태로 생물서식처 공간 조성 및 수질정화. ●침전못 : 방류수역의 퇴적물과 오염물질 최소화, 후처리시설.
죽정생태습지 관찰대에 올라서 방금 걸어온 모정1길과 건너온 중평천의 나무다리, 아래의 죽정습지 침강지를 조망한다.
동쪽을 조망하면 습지 유출부 뒤에 화진포호가 펼쳐지고 그 건너편 중앙에 솟은 거진읍 화포리 응봉이 가늠된다.
남쪽을 조망하면 죽정습지 깊은습지와 건너편에 거진읍 원당리 지역이 자리하고 있다. "거진읍 원당리(源塘里)는 동쪽으로 화진포가, 서쪽으로 용하리와 산북리 노인산이 자리 잡고 있으며, 남쪽으로 송정리가, 북쪽으로 현내면 죽정2리가 각각 위치하고 있다. 마을 앞에 큰 못이 있었다고 하여 원당리(源塘里) 또는 원댕이라고 하였고, 뒷산이 반달형이라 하여 부르던 동반월동(東半月洞)과 서반월동(西半月洞)을 합친 월안리(月安里)는 1916년 8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 때 원당리(源塘里)에 편입됐다." (고성문화원)
바로 아래에 죽정습지 정화습지 관찰장과 관찰뎈이 있고, 서쪽의 구릉지 뒤쪽은 거진읍 산북리 지역으로 맨 뒤에 노인산이 가늠된다.
거진읍 산북리(山北里)는 동쪽으로 원당리, 서쪽으로 수동면, 남쪽으로 용하리를, 북쪽으로 현내면 화곡리를 각각 접하고 있다. 노인산(老人山)이 뒤에 있으므로 ‘산뒤’가 ‘산두’로 모음 탈락현상으로 추정되며, 산북이라고도 하였다. 노인산 밑에서 토기를 구워 생계를 이어오던 마을인 토기점 마을과 거진면에서 북쪽에 위치하였다고 부르던 웃산두 또는 상산북리(上山北里)라고 하였으며, 흩어져 살다가 후에 합쳐서 산북리라고 불렀다.『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산북리(山北里)로,『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상산북리(上山北里), 웃산두로 기록되어 있다. 산 이름은 오동곡산(梧桐谷山, 오동골), 고개 이름은 고진령(古津嶺)과 고직령(高直嶺)이 있고, 보 이름은 산북보(山北湺)로 기록되어 있다. - 고성문화원
서쪽 지역을 조망하면 현내면 죽정리 마을이 펼쳐지고 왼쪽 뒤는 거진읍 산북리 지역으로 맨 왼쪽 뒤에 노인산이 가늠된다.
죽정리(竹亭里)는 동쪽으로 화진포(거진읍 화포리 옛 장평長坪)와 접하고 서쪽으로는 거진읍 산북리, 남쪽으로는 거진읍 원당리, 북쪽으로는 산학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마을은 동북쪽으로 열산현(烈山縣) 때의 고성산(古城山), 서북쪽으로 노인산(老人山) 정상을 경계로 마을은 중산평야지대로 중평천이 화진포로 흘러내려 마을 앞에는 문전옥답의 1,000석 두루가 있어 예부터 재해가 없는 부촌으로 이름나 있었다. 마을 남쪽에는 초록빛 수려한 화진포가 있고 마을에는 작은 야산이 밀림을 이루고 있어 골을 이룬 곳에 여러 개의 자연 부락을 형성하고 있다. 조선 연산군 때에는 화진포 주변의 '마장뿌리' 산봉우리에 세운 모화정(茅花亭)이 있어 화전(花煎)놀이와 휴식처로 활용한 관계로 현 죽정1리를 모정리(茅亭里)로 불러왔다. 1916년 8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현 죽정2리에 해당하는 중평리(仲坪里), 도발리(道發里), 죽림리(竹林里) 등 3개 리와 모정리(茅亭里)를 합쳐 죽림리(竹林里)라는 '죽(竹)'자와 모정리(茅亭里)라는 '정(亭)'자를 합쳐 죽정리(竹亭里)로 개칭하였다. 현재 본 마을 중간으로 흐르는 중평천을 경계로 동쪽은 죽정1리, 서쪽은 죽정2리로 개편되었다. 죽정1리(옛 모정리茅亭里) 일대에는 선사시대나 고구려 때의 북방식 지석묘로 보이는 고인돌이 2㎞에 걸쳐 산재해 있으며 용수구미라는 곳에서는 10여 년 전 돌도끼, 기왓장, 돌칼 등의 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 - 고성문화원
서북쪽을 조망하면 현내면 죽정리 지역 뒤에 현내면 산학리가 자리하고 고성산이 중앙 뒤에 보인다.
현내면 산학리(山鶴里)는 동쪽으로 초도리, 서쪽에 화곡리, 남쪽에 죽정리, 북쪽에 철통리가 각각 위치하고 있다. 산학리는 원래 두 모퉁이로 나뉘어져 있어 옛 운근리(雲根里)를 고쳐서 산학리(山鶴里)와 열산리(烈山里)가 있었다. 고려 때 여산현(驪山縣) 다음인 열산현(烈山縣)의 소재지가 열산리(烈山里)에 있었고 운근역(雲根驛)이 위치한 마을을 학산리(鶴山里)라고 불렀는데 조선시대 관제개혁으로 폐현(廢縣)되는 동시에 간성군에 속하고 현내면으로 개칭된 후 1916년 8월 1일 행정구역 폐합으로 두 마을의 '산(山)'자와 '학(鶴)'자를 따서 산학리(山鶴里)로 불렀는데 1914년까지는 현내면 소재지이기도 하였다. 여지도서에는 운근역리(雲根驛里)라는 기록이 있다. 마을 뒤에는 고려 초기에 만든 것으로 전하는 주위 약 12m 정도의 성지(城址)의 흔적이 남아 있었으며 전하는 바에 의하면 쑥고개 봉화봉(烽火峰)에서 횃불로 신호하면 이곳에서 간성 고성산으로 연락하였다고 한다. - 고성문화원
죽정생태습지 관찰대에서 내려와 관찰대를 뒤돌아본다. 출입구 양쪽에 죽정습지 안내판과 죽정습지 식물 안내판이 각각 설치되어 있다.
죽정생태습지 관찰대 출입구에서 쉼터파고라를 지나면 곧바로 정화식물 관찰장과 관찰뎈가 있다.
죽정습지 관찰길에 좀작살나무 진보랏빛 열매들이 비에 젖어 더 맑게 빛난다.
죽정생태습지 동쪽의 깊은 습지를 지나간다. 깊은습지 물은 뒤쪽의 침전못과 습지 유출부를 통과하여 화진포호로 흘러든다.
죽정생태습지 관찰길을 따라 죽정생태습지 남쪽 출입구로 이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