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어 책망하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13).
“책망을 받는 모든 것”(13)이란,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한 11절과 결부되는 것으로 함께 다뤄야합니다. “책망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드러난다” 하는데 무슨 뜻인가? “책망하라”! 그러면 그들도 빛이 될 수 있으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책망하는 것인가?
첫째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않는” 것인데, 이는 소극적인 면이요,
둘째로, “도리어 책망하라” 합니다. 이는 적극적인 면인데 어떤 차이인가? 이점에서 “참예하지 말라”는 것과, “사귀지 말라는 말”을 혼동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것은 전연 다른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고린도교회를 향해서,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전 5:10) 합니다. 우리는 베드로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한 변화산상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산 아래로 내려와야 하는 것입니다.
내려오되, “참여하지 말라” 하시면서 “도리어 책망하라”, 즉 어둠을 물리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책망하는 것인가? 그들이 하는 일들을 꾸짖고 정죄하고 비난하라는 말씀인가? 아닙니다. 주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는”(8), 이것이 “책망하라”는 뜻이요, “빛을 비추는” 삶이 책망하는 것입니다. 빛을 비추고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빛의 자녀”들을 어둠의 세상에 머물러 두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거나 가담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세속화요, 타락이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책망하라는 의미
주님께서는,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이것이 “도리어 책망하라”는 의미입니다. 어둠 속에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모습이나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일들을 당연시 못하는 그들에게, 빛을 비추어 어둠을 드러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경험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만리장성에서 있었던 일인데 어린이를 데리고 온 어떤 중국인 자매가 계란 껍질을 휴지통에 던져 넣는다는 것이 그만 옆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녀는 그냥 돌아섰습니다. 제가 다가가 그것을 휴지통에 집어 넣고 일어서는데 그 자매가 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쎄쎄”하고 진심으로 사의를 표했습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나는 작은 빛을 비추었던 것입니다.
말 한 마디하지 않았는데도 그는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그녀는 두번 다시 그런 일을 되풀이 하지 않을 것입니다. 도리어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저처럼 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도 그렇게 하라 너희 빛을 그들을 향해 비추어라, 이것이 진정한 책망입니다. 이렇게 한다는 것은 꾸짖고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보다 적극적인 일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적인 책망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13), 즉 그렇게 행함으로 모두 빛이 되게 하라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빛을 받으면 먼지까지도 빛을 반사합니다. 어둠에 처한 자들에게 빛이 비치면 어둠의 정체들이 밝히 드러납니다. 밝히 드러나는 것은 빛이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들의 어둠만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른 어둠을 향해 빛을 비치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빛은 다른 사람을, 다른 사람은 또다른 사람을 빛으로 인도하여 빛은 퍼져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이런 빛의 삶을 살아갈 것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14).
“잠자는 자와, 죽은 자”가 대조되어 있습니다. “잠자는 자”란 그리스도인이지만 빛을 비치지 못하고 있는 어두어진 심령들을 가리키고, “죽은 자들”이란 불신자를 가리킵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빛을 비추지 못하고 “잠자는” 상태에 머물러있는지요. 그들을 향해서,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시리라”, 즉 “깨어 일어나라”고 용기와 격려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어느 교회 설립예배 때, “서울 시내에 가로등이 몇 개나 되는지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검색해 보니 약 14만 개쯤 되었습니다. 이 가로등이 정전이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가로등 이야기가 아닙니다. 서울에 가로등과 같은 역할을 감당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몇 명이나 될 것 같습니까? 그들이 “너희는 빛이라” 하신 빛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사사기 시대가 어찌하여 암흑했는가? 빛의 역할을 하라고 48성읍에 분산하여 거주하게 하신 레위인들이 제 구실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밤하늘에 별들과 같은 존재들인 것입니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을지라도 밤하늘의 별들은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한 명의 그리스도인이 태어난다는 것은 밤하늘에 별 한 개가 태어나듯 빛이 증가하는 것이요, 상대적으로 어둠은 그만큼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죄악의 밤이 아무리 어둡다 해도 태양 빛을 받아 반사하는 보름달과 같은 교회가 지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유일한 소망인 것입니다. 저 크고 작은 별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결단해야 마땅하겠습
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