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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나 만의 휴가(두 번째 갈리시아 방문)
인야는 여태껏 '여행'과 '휴가'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 그저 짐을 꾸려 어딘가로 떠나기만 하면 그것이 휴가인 줄로만 알았다. 특히 낯선 스페인 땅에서 보낸 지난 4년 동안, 휴가철마다 텅 비어가는 산동네를 지키며 느꼈던 부러움과 열등감은 그에게 '휴가'라는 단어를 사치처럼 여기게 했다.
돈 한 푼이 아쉬워 뜨거운 작업실을 지켜야 했던 그에게, 떠남이란 늘 무리해서 감행해야 하는 고단한 '여행'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림이 팔린 직후, 그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아, 이제 9월이면 땅끝(Finisterre)으로 휴가를 갈 수 있겠구나!'
그 순간 인야는 멈칫했고,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내가 방금 휴가라고 했나?'
그것은 놀라운 전환점이었다.
쪼들리는 돈에 의무감처럼 해치우던 이동이 아니라,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한 곳에 머물며 쉬어가는 행위.
비로소 그는 스페인 사람들처럼 한 달여의 시간을 온전히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휴가를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비록 그 전환의 계기가 경제적 여유였다는 사실이 조금 씁쓸하긴 했지만, 인야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유독 지독하게 낀 역마살 덕분에 그 차이가 더 선명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휴가를 마친 사람들의 일상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9월 1일.
시내는 북적였지만 인야는 백지 앞에 앉아 텅 빈 머리를 부여잡았다.
‘나는 지금 내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화가인가? 난 언제쯤 나만의 방법으로 내 세상을 그릴 수 있는 화가가 되어 있을까?’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갈망은 커져만 가는데, 정작 자신의 작업은 자책으로 가득했다.
제출 기한이 임박한 과제와 논문 번역은 인야를 옥죄었다.
‘과제 문제’는 이제 시작 단계라, 번역하랴 편집하랴 갑자기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빠졌고,
자기 혼자 할 수 없었던 '논문 번역 문제'는 휴가에서 돌아온 스페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춰야 하는 일이다 보니,
지난밤에야 겨우 인쇄에 들어가리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러다 보니, 본인이 원해서 하는 일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그는 늘 갈등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어떤 날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걱정만으로 하루를 보냈고, 혼자 사는 삶에 너무 익숙해진 자신이 두려워지기도 했다.
비 내리는 가을의 초입, 그는 학교 도서관에서 서툰 스페인어로 과제물을 두드려 맞추며 고군분투했다.
학교에서 산동네로 돌아오는 길에, 여름 휴가에서 돌아온 호아낀씨를 만났다. 그는 인야를 태워주더니,
"인야, 혼자서 어떻게 여름을 보냈어?" 하고 물으면서, 끝내 비노 두 병을 인야의 손에 쥐어주었다.
인야는 그의 선의가 동정이 아닌, 본연의 착한 심성임을 잘 알기에... 거부감 없이 받아 올라왔다.
하루는 휴일인 줄도 모르고 장을 보러 나섰다가, 굳게 닫힌 시장 문 앞에서 허탈하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놈의 나라는 도대체 축제가 왜 이렇게 많은지!' 하고 툴툴대며 언덕길을 올라오는데,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매듭짓지 못한 논문 걱정이 먹구름처럼 따라붙었다.
타고나길 학구적인 기질과는 거리가 먼 자신이, 왜 이 낯선 땅에서 글자들과 씨름하며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텅 빈 장바구니만큼이나 쓸쓸한 회의감이 그를 무겁게 짓눌렀다.
지루하게 이어지던 논문 번역과 인쇄 작업은 결국 막바지에 이르러 사달이 났다.
다 됐다는 말을 듣고 약속 시간인 오후 두 시, 인야는 혹여라도 일이 어긋날까 싶어 인쇄소 근처를 한 시간 반이나 서성대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렇게 간신히 손에 쥔 인쇄물이었으나, 집에 돌아와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인야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문장은 비문투성이었고, 공들였던 논문은 엉망진창이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참다못한 인야는, 인쇄소에 다리를 놓아주었던 앙헬라를 통해... 그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를 넘겨받자마자 인야는 가슴 속에서 들끓던 분노를 터뜨렸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기세에, 곁에서 지켜보던 앙헬라가 놀랄 정도였다.
“인야, 이제 보니 너 꽤나 성깔이 있네!”
“그럼 내가 이 상황에서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으란 말야?”
인야는 여전히 씩씩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결국 밤늦게까지 문장을 수정했고, 밤늦게까지 이어진 고된 작업에 미안함을 느낀 앙헬라가 찾아와 손을 보탠 끝에야... 겨우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시련은 끈질겼다.
이튿날에도 인야는 온종일 그 지긋지긋한 문장들에 매달려야 했다.
선금을 챙길 때만 해도 세상 모든 친절을 다 베풀 것 같던 인쇄소 여자는, 약속 시간이 한 시간 반이나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속이 타들어 가다 못해 포기하고 싶어질 찰나에야 나타난 여자는, 구차한 변명들만 쏟아내기 시작했다.
인야는 이제 화를 낼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여자의 입술이 만들어내는 영혼 없는 말들을 무시한 채 인쇄물을 낚아채듯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더는 엮이고 싶지 않아,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스페인, 특히 이곳 까딸란 사람들의 묘한 기질에 인야는 다시 한번 혀를 내둘렀다.
겉으로는 웃음을 띠고 세련된 척 행동하면서도 정작 속내를 알 수 없고, 명백한 잘못 앞에서도 비굴할 정도로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무책임함. 사람을 교묘하게 골탕 먹이는 그들의 방식에 인야의 속은 시커멓게 타버린 듯했다.
그래도 자정이 넘도록 보완 작업을 마치고 나니 차가운 새벽 공기가 오히려 달콤했다.
이제 다음 날 교수에게 제출만 하면, 그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비로소 해방될 수 있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모든 과업을 마친 뒤 찾아온 평화는 엉뚱한 곳에서 어긋났다.
성당 작업실을 들러 신부님께 인사를 건네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아랫집 아말리아네 집이 고요했다.
그저께 사리아에서 올라오는 길에 만나 점심 초대를 받았었지만, 기척이 없기에... 인야는 내심 다행이다 싶어, 서둘러 올라와 혼자 점심을 해결해 버렸다.
그런데 숟가락을 놓기가 무섭게 전화가 울렸고, 아말리아였다.
“인야! 왜 점심 먹으러 안 내려오는 거야? 빨리 와!”
이미 배는 불렀지만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인야는, 다소 무거운 발걸음으로 아랫집으로 내려갔다.
식탁 중앙에는 먹음직스러운 '빠에야'가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고 있었다.
성급하게 점심을 먹어버린 자신을 탓하며, 이미 가득 찬 위장을 무시한 채... 억지로 빠에야를 밀어 넣었다.
한참 동안 이어지는 수다 소리를 배경 삼아 그는 남몰래 긴 한숨을 삼켰다.
그리고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논문 계획서는 아예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어차피 1년 내로 끝내기 어려운 일이었고, 어쩌면... 다시는 손대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가 어머니와 협의를 한 뒤, 최종결정을 내려야 할 일이라서......
약속 지키기에 태만한 교수 또한 자신의 부담을 덜고 싶었는지, 인야의 제안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통화를 끝내고 나니 비로소 온몸의 긴장이 탁 풀리며 맥이 빠졌다.
그리고 이내 마음속에서 강렬한 갈망이 치솟았다.
‘어서 떠나자!’
당장이라도 짐을 꾸리고 싶었지만, 마지막 정리를 위해 하루의 시간을 더 두기로 했다.
2주 남짓한 휴가, 목적지는 갈리시아였다.
지난봄 여행했던 그 '땅 끝(Finisterre)'의 풍경들이, 인야의 머릿속에서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떠났다.
‘휴식’의 의미를 가진 ‘여행’이었다.
그건 따지고 보면, 어쩌면 인야에게는 평생 처음으로 갖는(시작해 보는) ‘휴가’이기도 했다. 더구나 남들은 이미 한참 전에 돌아와 일상생활에 접어들어, ‘지나간’이라거나 ‘잊혀져가는’ 휴가로 자리 잡을 9월도 말경에 떠난......
장장 14시간 반의 버스 여행.
바르셀로나에서 출발할 때 내리던 비는 갈리시아에 들어서자 거짓말처럼 그쳤다.
인야는 비고(Vigo)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시에 군도’의 최정상 등대로 향했다.
지난봄 P와 왔을 때 결항으로 가지 못했던 그 섬.
유라시아 대륙의 끝에, 거기서 또 배를 타고 온 마지막 섬.
수평선만 보이는 망망대해 대서양의 바람이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유라시아 대륙의 끝, 신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머물렀다는 '신들의 섬'.
'이처럼 좋은 날에 내가 여기에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못했던 일인데(비와 함께 다녔던 지난 봄 여행을 떠올린다면),
언젠간 한 번은 꼭 가보리라고 늘 생각했고 그럴 때마다 비오는 날이 떠올려지곤 했었는데,
아, 맑고 깨끗한 날에 여기에 있을 수 있다니!'
인야는 그 맑고 깨끗한 날씨 속에서 신들께 감사를 올렸다.
9시가 넘도록 밤이 오지 않는 대륙의 끝자락에서,
시에 섬에서 돌아와 우선 기차 시간을 알아보려고 역까지 걸었는데, 생각보다 먼 거리였고 등에 짊어진 배낭의 무게가 보통 무거운 게 아니었다.
기차 시간을 알아보는데 어떤 영감님이 불러서 얘기가 시작됐고, 결국 그 집에서 하룻밤 묶기로 했다.
비고(Vigo)에서 눈을 뜬 아침, 인야의 마음은 이미 저 멀리 땅 끝에 가 닿아 있었다.
서둘러 기차에 몸을 싣고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Santiago de Compostela) 역에 내렸을 때, 도시는 여전히 활기찼다.
'까미노' 행사가 한창인지 배낭을 멘 순례객들과 관광객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미 한 차례 머물렀던 곳이기에 익숙한 은행에 들러 여비를 조금 찾고, 지난번 가보지 못했던 골목들을 잠시 거닐었다.
하지만 대성당의 웅장한 고적들도, 북적이는 거리의 활기도 지금의 인야에겐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일 뿐이었다.
그의 영혼은 더 깊은 곳, 더 외딴곳을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인야는 예정되어 있던 오후 4시 버스를 기다리지 못하고 한 시간이나 일찍 버스 터미널로 달려갔다.
그곳엔 마침 갈리시아의 해안선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가는 버스 한 대가 막 시동을 걸고 있었다. 목적지는 피니스떼레였으나, 지도를 보니 여기저기 굴곡진 해변 마을을 다 훑고 지나가는 완행 노선이었다. 인야는 주저 없이 그 버스에 올랐다. 그의 생애에 이토록 달콤하고도 즉흥적인 선택이 또 있었을까.
버스가 출발하자 갈리시아의 속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바닷가 출신인 인야에게 바다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었다.
바다만 보면 가슴이 설레고 이유 없이 흥분하는 그 '바다쟁이'의 본능이 깨어났다.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점점이 박힌 마을들, 그리고 강물과 바닷물이 몸을 섞으며 내륙 깊숙이 밀려 들어오는 갈리시아 특유의 '리아(Ria)'가 창밖으로 펼쳐졌다. 거울처럼 맑고 깨끗한 바다 위에 점처럼 떠 있는 배들을 보며 인야는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참 잘 찾아왔다. 정말 잘 왔다!”
차가 있었다면 맘에 드는 모퉁이마다 차를 세우고 한참을 머물렀겠지만,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황홀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이름들—노이아(Noia), 무로스(Muros), 리라(Lira), 오 삔도(O Pindo), 세(Cee). 보석처럼 박힌 그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들을 지나며 인야는 행복한 상상에 잠겼다.
‘아, 나중에 돈을 많이 번다면 이런 언덕 위에 깨끗한 집 한 채 짓고 살고 싶다. 길 가던 사람들에게 넉넉한 인심을 베풀고, 인생의 행복을 나누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사이, 버스는 드디어 대륙의 끝 피니스떼레에 도착했다.
지난봄 친구 P와 함께 묵었던 그 여관, 이번엔 한 층 더 높은 방을 계약하고 짐을 풀었다.
창을 여는 순간, 항구와 마을 전체가 발아래로 쏟아져 들어왔고, 움푹 파인 만 건너편의 이웃 마을까지 훤히 보였다.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세상의 수많은 곳 중 어떻게 이곳을 알게 되었고, 또 어떻게 결국 이곳에 다시 돌아와 자리를 잡게 된 것일까.
인야는 창가에 서서 자문했다.
'나는 왜 이 땅 끝을 이토록 좋아하고, 또 기어이 찾아오고야 마는 걸까.'
그런 뒤 인야는 여관 주인이 일러준 식당으로 향했다.
접시 가득 담겨 나온 싱싱한 맛조개 요리와 이름 모를 생선의 고소한 튀김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여기에 차갑게 식힌 '비노 블랑꼬(백와인)'를 곁들이니, 이 한 끼의 식사를 위해 그 험난한 과제와 번역의 고통을 견뎌왔나 싶은 보상 심리가 짜릿하게 차올랐다.
이것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허락한 첫 번째 '진정한 휴가'의 축배였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인야는 방의 테라스에 앉았다.
방파제를 느릿하게 산책하는 사람들과 낚싯대를 드리운 이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내륙 쪽으로 움푹 파인 바다 너머, 저 멀리 바위산 아래에서 하나둘 반짝이기 시작하는 마을의 불빛들을 인야는 우두커니 지켜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시간,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행복이 그곳에 있었다.
인야는 어둠이 내려앉는 바다를 보며 스스로에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무런 부담도 갖지 말자. 그동안 나를 옥죄던 그 지독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자. 여기 머무는 동안만큼은 정말 내 맘 내키는 대로, 오직 나만을 위해 지내보는 거야.”
땅 끝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확실히 서쪽 나라의 끝이라선지 해도 늦게 뜨는 것 같았다.
이튿날 아침, 인야는 남아있던 빵 한 조각으로 아침을 때우고, 수퍼에 가서 과일하고 우유 등을 사왔다.
그런 뒤 방안에서 내려다보았던 항구로 내려가, 방파제 쪽을 걷다가... 소년 둘이 낚시하는 걸 보았다.
그들은 인야를 보자 호의적인 표정으로, 조그만 오징어를 방금 낚았다며... 보라고 하기에 가서 보니,
신기하기도 했고, 더구나 인야 자신도 낚시를 하고 싶던 차라, 가지고 있던 자신의 낚싯대를 펴 보이며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얘들아, 어딜 가서 미끼를 사야 하는지 가르쳐 줄래?” 하고 묻자,
큰 아이가, 살 필요가 없다며 바로 그 자리에서 바위에 붙어있는 조그만 벌레를(갯방구) 잡아 낚시에 끼우더니 물에 던지며 시범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자 금방 조그만 물고기가 잡혀 올라왔다.
너무 신기했고 재미도 있어서 인야도 그런 식으로 낚시를 시작했다.
비록 조그맣긴 해도 던질 때마다 물고기가 잡혀 올라오니, 인야는 마치 아이처럼이나 즐거워하고 있었는데,
형제인 그들 중 동생 아이는 아예 벌레를 잡아 계속 인야 낚시 바늘에 끼워주는 조수 역할을 해주니, 인야는 너무나 재미있어서... 그렇게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정말 즐겁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점점 바람이 세지고 물살도 조금씩 거칠어지기에,
“그럼, 내일 다시 할까?” 하고 낚시대를 챙겼더니,
“내일은 미끼 걱정을 마세요. 내가 집에서 가져올 게요!” 하고, ‘후안(Juan)’이라는 소년이 약속을 했고,
인야는 기분 좋게 호텔로 돌아왔다.
그런 뒤 낮잠을 잤고, 일어나 보니 날씨가 좋아져 있어서... 오후에도 낚시하러 나갔다.
그랬더니 그 아이들도 나와 있어서 함께 오전처럼 다시 낚시 삼매경에 빠졌다.
비록 조그만 물고기가 낚여오긴 했지만 인야는 시간 가는 건 물론 배고픈 줄도 모르고 낚시에 열중했다.
그리고 밤에는, 후안이란 소년에게 부탁하여 그가 사다 준 야광물고기 미끼로 오징어 낚시로 바꿔 쌀쌀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곳에 낚시만 하러 온 사람처럼 그 일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오징어 낚시는 눈이 좋아야 했고, 또 기술도 필요했다.
오징어 낚시가 처음인 인야는 계속된 헛손질에 실망을 했지만, 그러다 우연히 재수가 나빠 잡힌 한 마리 오징어에... 너무 기뻐 낄낄대다가, 날이 쌀쌀해져서 밤 9시에 올라왔다.
물론 그 오징어 한 마리를 버릴 순 없어서, 떠나올 때 준비해 온 초장이 있어서 찍어 먹었다.
그러니까 생각지도 않았던 오징어 회까지 먹은 것으로,
너무 적은 양이었지만 그래도 꿀맛이었다.
그렇게 그 마을의 아이들은 모처럼 보는 생김새가 다른 이방인(동양인)에게 호기심과 호의를 갖고 접근하는데, 성인들은 무뚝뚝하기 그지없었다.
'허긴, 여기 ‘갈리시아 사람’들이 원래 그렇다고는 하다지만...... 여기 어딘가 갈리시아가 고향인 우리 동네 ‘마놀로(Manolo. 라울의 아버지)’만 해도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사람인데 뭐. 그런데 왜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렇게 변하는 것일까?'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순간에도 인야는 바르셀로나에 사는 마놀로를 떠올렸던 것인데, 그 순간에는 그저 웃어 넘겼던 일이었지만 먼 훗날 그 마놀로네 고향 가족들과 벌어지는 '인생 이야기'가 바로 이 지방 갈라시아에서 시작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다음 날도 인야는 바다에 나갔고, 낚시 몇 갠가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물려오는 고기들도 다 볼품없는 것들이다 보니, 다소 지겨워지기도 했다. 그래도 항구에서의 시간은 잘만 갔다.
오후에 낮잠을 잤고, 저녁 무렵에 빵으로 저녁을 때운 뒤 다시 오징어 낚시에 나섰다.
그런데 야광미끼에 너덧 마리씩 몰려드는 오징어를 눈이 피곤하도록 집중해서 바라보며 낚시에 빠져있었는데,
어젯밤에 썸머타임이 종료된 덕에 한 시간이 늦춰져(인야는 모르고 있었는데 후안이 알려줘서), 그만큼 더 낚시를 즐길 수 있었다.
전 날 단 한 마리를 낚아서 그 날은 두세 마리만 낚아도 성공이리라며 시작했던 게, 결국 열 댓 마리의 오징어를 낚는 성과를 보았다.
물론 오징어가 조그맣기는 했지만, 기술 부족으로 낚여오다가 물에 떨어뜨려 실패한 것까지를 합하면 스무 마리도 넘는 대성공이었다.
그러니 시간 가는 걸 알 턱이 없었고, 잡은 오징어를 여관에 들고 오는데... 제법 무게가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오징어를 씻는데, 오징어들이 먹물을 쏘아대서... 깜짝깜짝 놀라는 등, 색다른 경험도 하고 있었다.
겨우 손을 봐 또 초장에 찍어 먹는 오징어는, 양이 너무 많다 보니...
'아, 봄에 함께 왔던 P가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는 술도 못하니... 술 한 잔하는 사람이 함께 있으면 좋겠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야가 갈리시아에 도착한 이래 연일 날씨가 좋은 편이라는데, 그래도 여기의 일기 변화는 꽤나 심한 편이었다.
그 날만 해도 대여섯 차례 잠깐씩 비를 뿌리다 개곤 했던 것이다.
'이젠 낚시도 해볼 만큼 해보았으니, 내일은 좀 변화 있는 생활을 하자. 산 너머 등대엘 가든지, 뒷동네 해변 모래밭에 가던지, 뭔가 그림을 그려보던지......'
9월 27일,
휴가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아침을 대충 때우고 인야는 이 튀어나온 반도의 끝인 등대에 가보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시간도 많은데다 기왕에 가는 길에 이곳 지형을 더 잘 알아보기 위해 산길을 택했는데, 산으로 접어드니 마을 뒤편에 있는 해변이 보이기에 그곳으로 먼저 가 보려고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길을 잘못 들어 빙빙 돌다가 한참만에야 마을 가까운 쪽으로 우회하여 해변에 닿을 수 있었다.
이 조그만 반도엔 양쪽에 해변이 있는데, 여기 대양 쪽의 해변엔 위험하다고 사람들이 별로 오지 않는다 하듯(안쪽에 더 긴 해변이 있기 때문일 텐데), 정말 그 누구도 없는 자연 그 자체의 해변이었다.
그런데 산에서 볼 때는 누군가 배낭족 한 사람이 있기에 호기심에 내려왔는데, 인야가 이리저리 길을 찾아 헤매는 사이 그는 떠났고 해변엔 그의 발자국만 남아 있었다.
정말 아무도 없는 해변. 깨끗한 모래사장.
지난번 포르투갈 여행 때 ‘나자레’ 해변에서도 그랬듯이, 갑자기 인야는 이 원시적일 것 같은 해변의 ‘아담’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옷을 훌훌 벗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구잡이로 해변을 달려보았고, 다시 돌아와 대양을 향해 앉았다.
너른 해변엔 대서양의 파란 바다가 거친 파도만을 밀어대고 있었다.
그렇게 거친 파도를 마주하는 순간, 그는 비로소 모든 사회적 가면을 벗어던진 순수한 존재가 되었다.
그 자연에 인야가 홀로 앉아있었다. 벌거벗은 몸으로......
해변을 즐긴 뒤, 인야는 등대로 향했다.
처음엔 풀밭 사이로 난 소로를 따라 가니 계속 바다 쪽으로 가는 낭떠러지와 이어지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바다 쪽으로 난 길로 방향을 잡았는데,
거기는 나지막한 관목의 가시나무와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 천지였고, 멀리서 볼 때는 부드러운 잔디밭 같았지만, 걷기엔 너무 좋지 않은 가시밭길이었다.
게다가 산딸기 가시덤불도 군데군데 있어서, 벌써 종아리 몇 군데를 뜯기는 등, 도무지 그 길로는 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 길을 잃어 빠져나가기도 쉽지가 않아, 한 시간 반 정도를 헤맬 수밖에 없었다.
길을 잃었다기 보다는 차라리 조난당한 수준일 정도였다.
그러는 사이에 온몸은 이미 땀에 젖어 있었고 바지가랑이뿐만이 아니라 팔목까지도 긁히고 뜯겨, 여기저기에 붉은 줄이 여러 개 나있는 등 만신창이가 돼서야 그 가시밭길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가시덤불을 벗어났는데도, 웬만한 소로 역시 그런 나무들과 잡초 그리고 산딸기 덤불로 걷기엔 보통 힘든 길이 아니었다.
겨우 비포장도로에 닿았을 땐 운동화 끈까지 풀어져 있었고 티셔츠와 가방은 땀에 흠뻑 젖어 있는 건 물론, 바지가랑이엔 수도 없는 가시들이 박혀 있었다.
산언덕에 오르니, 바다로 삐져나온 반도 끝의 산에서 보이는 여러 각도의 광경은 그야말로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절경이었다. 게다가 특히 날이 맑아서 바다와 하늘의 색깔 자체로도 시원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어,
‘아, 내가 이 풍광을 접하려고 그 힘든 가시밭길을 걸어온 거나 다름없구나!’ 하고 감탄을 하면서,
이제는 지친 몸에 겨우 등대로 이어지는 아스팔트에 접어들어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고,
등대에 도착한 뒤, 그 아래쪽 바다 언덕으로 내려갔다.
이 ‘땅 끝’의 곶에서도 가장 끝인......
더 갈 곳이 없었다.
인야는 이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의 끝에 와 있는 것이고,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이 돼 있었다.
하지만 등대 끝 곶에 쪼그리고 앉아 빵 한 조각을 씹으며 그는 확신했다.
'나는 이 휴가를 즐길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이 감정을 오래도록 만끽해야 한다.'
다음 날,
새벽에 출항하는 어선들의 엔진 소리에 인야는 잠이 깨어 커튼을 젖히는 순간, 건너 마을의 높은 바위산에 걸친 구름이 일출로 인해 붉게 타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은 잠이 다 안 깬 상태였던지라, 나중에 그리자고 유심히 바라보다가 다시 침대로 돌아왔는데... 점점 정신이 또렷해져서, 바로 일어나 크레파스를 틀고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은 밖에 나가지 않으리라 맘먹고 방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 마을 버스 정거장 부근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천막 같은 것도 보이기에 여관 주인에게 물어 보니, ‘시골장’이 선다고 했다.
매주 화 금요일 이틀.
그래서 부랴부랴 씻고 그곳으로 가 보니 정말 시골장이 서 있었다.
물론 시골장이 그렇기도 하지만, 여기도 옷가지며 신발 등 일용품에 채소 과일 육류 생선 등 별로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나간 김에 인야는 과일을 조금 사가지고 올라왔다.
그런데 사 온 포도와 토마토를 접시에 올려놓으니, 갑자기 정물을 하고 싶은 충동에... 또 즉시 정물을 하나 그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기운은 계속 이어져,
‘기왕에 내킨 김에 여기 풍경도 하나 하자!’는 생각도 들어,
이제는 창밖을 내려다보며 항구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풍경은 시간이 좀 오래 걸려서, 중간에 배가 고파 빵을 챙겨 먹고 나서야 그림을 끝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날은 그림을 세 점이나 그렸던 것이다.
그런 뒤에도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한 시간쯤 낮잠을 잤고,
일어나 보니 고기잡이에 나갔던 어선들이 돌아오기에... 그런 모습 역시 우두커니 바라보면서 저녁을 맞았다.
다음 날 오후엔 항구에 내려가 ‘후안’ 형제와 사진을 찍었고 낚시를 했는데,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
그래도 깨끗한 날씨가 아주 포근했다.
저녁식사는 식당에 가서 했는데, 그 날은 주방장이 직접 주문을 받더니... 큰 접시로 하나 가득 ‘맛조개’ 요리를 내오더니, 두 번째 접시엔 생선 두 마리나 보내, 너무 많아서 다 먹지 못했다.
주방장이 왜 음식을 남겼느냐고 물어,
“마음으론 다 먹고 싶었지만, 배가 너무 불러서... 힘들어서 더 이상 못 먹겠어서요.”하고 쩔쩔 맸더니,
주방장은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인야는, 그런 식으로라도 이 마을 사람 한 둘을 알아 가는 것이... 퍽 재미있었다.
밤에도 낚시하러 항구로 나갔다.
그런데 그 날이 바로 음력으로 8월 열나흘.
추석을 하루 앞둔 밤 달이 맑은 하늘에 떠 있었다.
낚시를 하면서도 인야는 자꾸만 고개를 돌려 하늘의 달을 바라보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어째 오징어가 그림자도 보이질 않아 결국 한 마리도 못 잡았고, 11시가 되어서 어머니께 전화를 걸려고 낚시를 아예 포기하고 말았다.
어머니는,
“여긴 모두들 잘 있고 좋으니, 너나 잘 있다 돌아오거라. 근데, 밥이랑은 먹었냐?”고 물으셨는데,
“어머니, 여긴 아직 추석이 아니고 지금은 열나흘 밤이거든요?” 하자,
“그럼, 잠자고 일어나 밥 거르지 말고... 전화세 많이 나오니, 끊어라!” 고 하셔서 끊었다.
그런데 기분이 좀 우울했다. 아니, 인야의 온몸에 힘이 죽 빠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머니 음성이 썩 좋질 않아서였다.
9월 30일, ‘추석’인데 기다렸다는 듯이 종일 비가 내렸다.
오전엔 간간히 뿌리던 비가 오후 들어서는 쉬지 않고 계속 쏟아지는 것이었다.
인야는 바다에 물이 불어 있기에 방수 잠바를 걸치고 항구로 나갔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지만 개의치 않고 방파제 끝 쪽으로 걸어갔는데, 비가 와서 사람들이 없어 좋았고... 제법 높은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도 시원했다.
그런데 후안을 비롯한 마을 조무래기들이 비를 피해 뱃속에 몇몇 들어가 앉아 있더니, 인야가 비를 맞고 지나가자 비를 피하고 가라고 손짓해서... 인야는 그 배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빈 시간을 어색하게 보내기 싫어 낚시를 꺼내 물에 넣어보았으나, 어째 입질도 하지 않아... 단 한 마리도 건져내지 못했다.
게다가 으슬으슬 추워지기에 돌아와야만 했는데,
여관 주인은, 오늘은 비가 멈추지 않을 거라고 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날이 흐렸다.
추석 밤이었지만, 인야는 새벽 4시까지 오징어 낚시를 했다.
밤 10시부터 시작했는데 세 마리를 낚았을 뿐이다.
이따금 검은 구름 사이로 달이 삐죽이 얼굴을 내밀다 숨곤 했었는데, 그래도 시간은 잘 갔다.
인야의 즉흥적인 행동은 특히 여행 중에 잘 나타나곤 한다.
오늘도 우두커니 비가 내리는 항구를 내려보다가,
‘이렇게 하릴없이 밖만 바라보느니, 차라리 조금 일찍 출발해서 다음 목적지에서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게 낫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는,
‘그래! 여기 ‘땅 끝’ 휴가는 이 정도면 됐어. 정말 일주일 여 아무 부담 없이 잘 지냈던 거야. 그런데 이렇게 비가 내리니, 이젠 더 이상의 미련을 버리고 돌아가는 걸로 하자!' 며 갑자기 짐을 챙겨,
다음 날 아침 첫차로 피니스떼레를 출발하기로 돼 있던 일정을 하루 앞당겨 떠나기로 했다.
그랬던 이유는, 바로 여관 주인이 그저께 인야에게 했던 말이 크게 작용한 것이기도 했다.
“당신은 운이 좋은 것 같아요?” 하기에,
“왜요?” 하고 인야가 되묻자,
“올 여름 내내 여기는 비가 와서 사람들이 휴가철에도 죽을상을 하며 지내다 떠났는데, 당신이 올 무렵부터 한 열흘 정도 계속 날씨가 좋더니, 다시 비가 내리네요......”하기에,
“그랬나요?” 하고 놀라다, “이 비가 안 그칠까요?” 하고 다시 물으니,
“이제 안 그칠 거 같아요. 여기 날씨가 원래 이래요...... 특히 가을엔......” 하며 고개까지 흔들더니, “그래도 당신이 머무는 동안은 참 날씨가 좋았던 거거든요. 내가 생각해도 좀 이상하긴 했지만......” 해서,
어쨌거나 기분 나쁜 말은 아니어서 웃어넘기긴 했는데,
이렇게 비가 내릴 거라면, 그저 방안에 멀거니 앉아있는 대신 시간을 잘 활용해 보자는 생각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러면 하루를 벌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밀어 붙이기로 했다.
그래서 알아보니 오후 4시에 산티아고 행 버스가 있어서 여유있게 정리를 했는데, 짐을 챙기고 자신이 쓰던 방 정리하고, 그동안 이용하던 식당에도 가서 일하는 아가씨랑 주방에서 일하는 부부에게 작별인사도 했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동안 인야에게 잘해주던 후안이란 소년에게 감사의 표시와 작별인사라도 해야만 했는데,
오늘이 평일이라 그 아이가 아직 학교에 있을 터라 어쩔까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인야의 모습에, 여기 여관 주인여자가,
그러지 말고 아예 학교로 찾아가 보라고 해서, 그러기로 했다.
그런데 운이 좋았던 듯, 인야가 학교로 찾아갔을 때 공교롭게도 그 시간이 아이들의 체육시간이었는지 운동장에서 체육을 하고 있던 소년이 인야를 발견하곤 달려왔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인야가 사용하던 오징어 낚시미끼(인야에겐 더 이상 필요치 않은)와 전에 P가 여행오면서 가지고 왔던 한국의 장승이 그려진 티셔츠를(한국을 의미하기에) 기념으로 주었다.
소년은 얼떨떨한 표정이었고(어쩌면 퍽 감동한),
인야의 요구대로 자신의 주소를 적어주면서는,
“근데 인야, 어제는 왜 항구에 나오지 않았었어요? 나는 밤 9시에 당신이 나올까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는 것이었다.
“아, 그랬었구나! 나도 나가긴 했는데, 밤 10시 넘게 나가서... 니가 없었던 거구나! 그렇지만 새벽 4시까지 낚시를 했었단다.” 하는 식으로 서로의 마음까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모든 일을 끝내고,
인야는 난생 처음 가져보았던 ‘휴가’의 마을에서 마음 가볍게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이미 뭔가 인야 자신과는 무관한 마을이 아닌 것 같았고, 그래서 끈적끈적한 정마저 느껴지던 ‘피니스떼레’를 뒤로 하고,
어쩐지 미래로 전진한다는 생각까지를 하면서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인야 자신도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좀 이상하긴 했다.
'왜, 이 순간에 내가 ‘미래로 전진한다’는 생각을 한다지? 글쎄, 그건 나에게도 약간 수수께끼 같은 생각이긴 했지만,
'여기 땅 끝에서 휴가도 보낸 다음이니, 이젠 다시 세상에 나가 미래로 전진하자!' 하는 심정일 것 같았다.
땅 끝에서의 휴가는 그렇게 끝이 났다.
비고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인야는 이미 다음 여정인 포르투갈의 오 뽀르또(O Porto)를 꿈꾸고 있었다.
10월의 첫날, 그는 다시 길 위에 선 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인야가 '뽀르또'로 오는 사이에도 비는 간간히 내렸다.
뽀르또에 내려 호객하는 사람을 따라 방을 잡긴 했는데, 나중에 후회하고 말았다.
값은 비싼데 시설은 엉망이었던 것이다.
‘그래봤자 단 하룻밤인데......’ 하며, 무거운 짐지고 돌아다닐 걱정에 선뜻 잡은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다음 날 인야는 ‘루이스 다리’를 건너, 다리 밑 포도주 공장 창고 구경도 하고, 또 1층 다리를 건너 시장을 돌며 천천히 구경도 했다.
그런데 포도주 공장 창고를 구경하는 중에 시음용으로 준 반 컵의 백 흑 비노를 마신 것이,
마실 때는 달짝지근하고 좋았는데, 우습게도 배고픈 탓이었는지 취기가 올라 엉겁결에 기분까지 좋아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잠깐 동안이나마, 여행 중에 까닭없이 자신에게 밀려오는 뭔가 모를 서글픔인 여수(旅愁)를 느끼기도 했다.
다음 날은 스페인으로 넘어가 ‘살라망까(Salamanca)’에 가기로 했다.
기왕에 이쪽으로 여행을 떠나온 김에, 돌아가는 길에 살라망까에 있는 유학생 K씨를 만나 술이라도 한 잔하면서 회포를 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뽀르또에서 살라망까까지의 교통편이 영 좋질 않아, 기차, 버스역을 왔다갔다 하며 시간과 교통비를 알아보느라 저녁을 다 보내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인야는 해방감을 느끼며 그 지긋지긋한 여관을 빠져나왔다.
축축한 이슬비가 내리는 뽀르또의 해변,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커다란 비닐봉지에 물고기를 가득 담아 짊어지고 다녔다.
저 많은 고기가 다 어디서 났을까 싶은 의구심을 품고 뿌연 안개 속 해변 산책로를 걸었다.
뽀르또는 분명 아름다운 지형을 가진 도시였으나, 나라의 가난 때문인지 곳곳에 밴 궁색한 티와 지저분한 거리, 스페인보다 비싼 물가가 인야를 불편하게 했다.
“이런 것이 여행이지. 내가 원해서 온 길인데 불평해서 무엇하랴.”
그런 뒤 살라망까 행 기차가 있는 저녁 6시 반까지 기다리기가 싫어서, 앞질러 거기 인근의 ‘과르다(Guarda)’란 곳에 가서 기다리기로 하고 2시 50분 기차를 탔다.
그랬던 이유는, 뽀르또에서 6시 기차를 타면 다음 날 새벽 2시에 살라망까에 도착을 하는데, 그렇게 깜깜한 밤에 여행을 하느니 차라리 환한 낮에 기차를 타고 뭔가 포르투갈 내륙 풍경이라도 보자는 속셈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빰삘로사(Pampilhosa)’라는 중간 역에 내려야 했고, 또 여기서도 앞으로 한 시간 반 이상 기다려야 살라망까에 갈 기차를 갈아 탈 ‘과르다((Guarda)’란 곳으로 가는 기차가 온다는 것이었다.
인야는 살라망까행 기차를 기다리는 대신, 낮의 풍경이라도 더 보기 위해 과르다(Guarda)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그것이 고난의 시작이었다.
기차는 가는 곳마다 연착이었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인야는 자신이 어디쯤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결국 과르다에 도착했을 때, 그가 타야 할 살라망까행 연결 기차는 이미 떠난 뒤였다.
“뭐라고? 이건 말도 안 돼!”
역무원에게 항의해 보았으나 그들은 무책임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공중전화로 살라망까에 연락하려 해도 동전조차 바꿔주지 않는 그들의 불친절함에 인야는 폭발 직전이었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는,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도 있고 전혀 다른 듯한 단어도 있는지라, 어떻게든 인야는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국경 쪽으로 가야 한다고 하자,
국경까지 가는 차는 0시 40분에 있다고 해서, 하는 수 없이 그 차표를 샀다.
일단 어떻게든 포르투갈은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역사무실 쪽에 가니 한 사람이 있어서 인야가 그에게 항의 겸 하소연을 하니,
자기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란 듯 오늘은 갈 수가 없다는 얘기만 할 뿐, 미안한 표정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어찌 되었거나 살라망까에 연락은 해야 했기에, 인야는 매표소에서 동전을 바꿔 전화를 걸었는데, 중간에 끊겨 다시 동전을 바꾸려니, 바꿔주지도 않았다.
“이런 미개한 놈들!” 하고 혼자 푸르락붉으락 인상도 썼지만, 그것 역시 혼자서만 씩씩댔을 뿐이다.
그런데 그 차도 오긴 했는데 연착이었고, 출발은 아예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할 시간에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인야는 차 안에서도 안절부절 혼자 욕을 해대고 있었지만,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혼자 씩씩댔을 뿐이다.
“이 미개한 나라!”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니 이따위로 가난하고 누추하게 살 수밖에 없겠지. 어딜 둘러봐도 제대로 돌아가는 것 하나 없고 사람들이 생기도 없고 자포자기한 모습들 뿐이니......’ 하며 욕만 하다 말았다.
결국 국경도시인 ‘빌라르 포르모소(Vilar Formoso)’에서 내려 사람들에게 살라망까 차 시간을 물어보니, 아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그때 웬 중년 남자가 다가와 택시로 가지 않겠느냐고 해서 얼마냐고 물으니 2만 뻬세타라는 것이었다.
우스웠다.
'그 돈을 주고 이 밤에 가느니 차라리 호텔에 가서 자고 가지......'
그런데 또 그때 같은 차에 타고 왔던 청년 하나가 오더니, 자기를 따라 오라는 것이었다.
스페인쪽 역에 가서 알아보면 된다면서......
순간, 뭔가 이상해서 멈칫거리다, 그래도 스페인 쪽으로 넘어가고 싶은 마음에 인야는 그를 따라 갔다.
그렇게 철길을 따라 5-600미터쯤 걸어가니 스페인 역이 나타났다.
그런데 우스운 게, 그렇게 국경만을 걸어 넘어갔는데도, 벌써 스페인 쪽에 들어오니 분위기 자체가 확 달라지는 것이었다.
뭔가 안정감이 느껴지고 분위기마저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 길로 역에 들어가 물어보니,
이건 또 웬일인가?
오직 하루에 한 번 0시 무렵에 기차가 있다고 했는데, 그 차는 이미 떠난 뒤라... 날이 샌 다음에나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어정쩡하게, 좌우간 이번에도 인야는 그 청년을 따라 두 나라 국경도시를 넘나들며 새벽 3시를 넘겼다.
그는 끝까지 인야를 도와주려 애썼고, 사실은 인야도 그가 너무나 고마웠는데, 좀 모자란 듯 빨간 머리인 그의 순진한 인정이 인야를 감동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헤어질 때 인야는 이제 더 이상 필요없는 포르투갈 돈 남은 것을 주려고 했는데, 그는 끝내 받지 않았다.
그래서 이름을 물어보니 ‘에두아르도(Eduardo)’라고 했다.
“에두아르도, 오늘 너무나도 고마웠다. 오랫동안 너를 잊지 못할 거야!” 하고 인사를 하면서 헤어졌는데, 그 날 하루 종일 욕을 하며 쌓여있던 포르투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그로 인해 다 지우기로 했다.
이 세상엔 어딜 가든 좋은 사람은 다 있게 마련이고, 한두 사람만을 가지고 그 전체적인 사회나 사람을 평가해선 안 되는 것이란 걸 알고는 있었으면서도, 정말 하루 종일 안 좋은 일만 생겼던 포르투갈에 대한 나쁜 감정을 바로 그 약간 어눌한 청년 때문에 씻은 듯 사라졌다.
그와 그렇게 헤어지고, 어찌할까 길에서 망설이다,
밤을 그대로 지새우기로 했다.
어차피 곧 4시가 되는데 어딜 가서 잘 것이며, 몇 시간 자다 일어나 다시 출발할 거라면 그게 더 번거로울 것이고 또 그 돈도 아까워서였다.
그래서 잠깐 이슬을 피하려고 스페인 기차역 대합실에 다시 들어가서, 아무도 없는 대합실에 혼자 앉아있는데... 깨끗이 정돈된 아담한 대합실이 포르투갈 쪽하고는 큰 비교가 되었다.
그 고생 끝에 도착한 살라망까에서 보낸 이틀은 그간의 피로를 씻어주기에 충분했다.
박사 논문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자신을 대접하기 위해 애써준 K씨와 나누었던 술 한 잔, 그리고 깊은 대화들. 친구의 따뜻한 환대 덕분에 인야의 마음 한구석에 쌓였던 고독이 눈 녹듯 사라진 기분이었다.
다시 돌아온 바르셀로나의 집.
보름 만에 돌아온 집은 고요했다.
어둠 속에 계단을 오르는데, 그새 화분에 코스모스 꽃이 피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 돌아올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그 가녀린 꽃송이를 보며 인야는 미소 지었다.
난생 처음 가져보았던 휴가의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네, 바로 교정본 드릴게요. 😊
b. 나만의 휴가(두 번째 갈리시아 방문)
인야는 여태껏 '여행'과 '휴가'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 그저 짐을 꾸려 어딘가로 떠나기만 하면 그것이 휴가인 줄로만 알았다. 특히 낯선 스페인 땅에서 보낸 지난 4년 동안, 휴가철마다 텅 비어가는 산동네를 지키며 느꼈던 부러움과 열등감은 그에게 '휴가'라는 단어를 사치처럼 여기게 했다.
돈 한 푼이 아쉬워 뜨거운 작업실을 지켜야 했던 그에게, 떠남이란 늘 무리해서 감행해야 하는 고단한 '여행'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림이 팔린 직후, 그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아, 이제 9월이면 땅 끝(Finisterre)으로 휴가를 갈 수 있겠구나!'
그 순간 인야는 멈칫했고,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내가 방금 휴가라고 했나?'
그것은 놀라운 전환점이었다. 쪼들리는 돈에 의무감처럼 해치우던 이동이 아니라,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한 곳에 머물며 쉬어가는 행위.
비로소 그는 스페인 사람들처럼 한 달여의 시간을 온전히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휴가를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비록 그 전환의 계기가 경제적 여유였다는 사실이 조금 씁쓸하긴 했지만, 인야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유독 지독하게 낀 역마살 덕분에 그 차이가 더 선명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휴가를 마친 사람들의 일상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9월 1일.
시내는 북적였지만 인야는 백지 앞에 앉아 텅 빈 머리를 부여잡았다.
'나는 지금 내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화가인가? 난 언제쯤 나만의 방법으로 내 세상을 그릴 수 있는 화가가 되어 있을까?'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갈망은 커져만 가는데, 정작 자신의 작업은 자책으로 가득했다.
제출 기한이 임박한 과제와 논문 번역은 인야를 옥죄었다.
'과제 문제'는 이제 시작 단계라, 번역하랴 편집하랴 갑자기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빠졌고, 자기 혼자 할 수 없었던 '논문 번역 문제'는 휴가에서 돌아온 스페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춰야 하는 일이다 보니, 지난밤에야 겨우 인쇄에 들어가리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러다 보니, 본인이 원해서 하는 일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그는 늘 갈등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어떤 날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걱정만으로 하루를 보냈고, 혼자 사는 삶에 너무 익숙해진 자신이 두려워지기도 했다.
비 내리는 가을의 초입, 그는 학교 도서관에서 서툰 스페인어로 과제물을 두드려 맞추며 고군분투했다.
학교에서 산동네로 돌아오는 길에, 여름 휴가에서 돌아온 호아낀씨를 만났다. 그는 인야를 태워주더니, "인야, 혼자서 어떻게 여름을 보냈어?" 하고 물으면서, 끝내 비노 두 병을 인야의 손에 쥐어주었다.
인야는 그의 선의가 동정이 아닌, 본연의 착한 심성임을 잘 알기에... 거부감 없이 받아 올라왔다.
하루는 휴일인 줄도 모르고 장을 보러 나섰다가, 굳게 닫힌 시장 문 앞에서 허탈하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놈의 나라는 도대체 축제가 왜 이렇게 많은지!' 하고 툴툴대며 언덕길을 올라오는데,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매듭짓지 못한 논문 걱정이 먹구름처럼 따라붙었다.
타고나길 학구적인 기질과는 거리가 먼 자신이, 왜 이 낯선 땅에서 글자들과 씨름하며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텅 빈 장바구니만큼이나 쓸쓸한 회의감이 그를 무겁게 짓눌렀다.
지루하게 이어지던 논문 번역과 인쇄 작업은 결국 막바지에 이르러 사달이 났다.
다 됐다는 말을 듣고 약속 시간인 오후 두 시, 인야는 혹여라도 일이 어긋날까 싶어 인쇄소 근처를 한 시간 반이나 서성대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렇게 간신히 손에 쥔 인쇄물이었으나, 집에 돌아와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인야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문장은 비문투성이었고, 공들였던 논문은 엉망진창이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참다못한 인야는, 인쇄소에 다리를 놓아주었던 앙헬라를 통해... 그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를 넘겨받자마자 인야는 가슴속에서 들끓던 분노를 터뜨렸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기세에, 곁에서 지켜보던 앙헬라가 놀랄 정도였다.
"인야, 이제 보니 너 꽤나 성깔이 있네!"
"그럼 내가 이 상황에서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으란 말야?"
인야는 여전히 씩씩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결국 밤늦게까지 문장을 수정했고, 밤늦게까지 이어진 고된 작업에 미안함을 느낀 앙헬라가 찾아와 손을 보탠 끝에야... 겨우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시련은 끈질겼다.
이튿날에도 인야는 온종일 그 지긋지긋한 문장들에 매달려야 했다.
선금을 챙길 때만 해도 세상 모든 친절을 다 베풀 것 같던 인쇄소 여자는, 약속 시간이 한 시간 반이나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속이 타들어 가다 못해 포기하고 싶어질 찰나에야 나타난 여자는, 구차한 변명들만 쏟아내기 시작했다.
인야는 이제 화를 낼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여자의 입술이 만들어내는 영혼 없는 말들을 무시한 채 인쇄물을 낚아채듯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더는 엮이고 싶지 않아,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스페인, 특히 이곳 까딸란 사람들의 묘한 기질에 인야는 다시 한번 혀를 내둘렀다. 겉으로는 웃음을 띠고 세련된 척 행동하면서도 정작 속내를 알 수 없고, 명백한 잘못 앞에서도 비굴할 정도로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무책임함. 사람을 교묘하게 골탕 먹이는 그들의 방식에 인야의 속은 시커멓게 타버린 듯했다.
그래도 자정이 넘도록 보완 작업을 마치고 나니 차가운 새벽 공기가 오히려 달콤했다. 이제 다음 날 교수에게 제출만 하면, 그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비로소 해방될 수 있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모든 과업을 마친 뒤 찾아온 평화는 엉뚱한 곳에서 어긋났다.
성당 작업실을 들러 신부님께 인사를 건네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아랫집 아말리아네 집이 고요했다. 그저께 사리아에서 올라오는 길에 만나 점심 초대를 받았었지만, 기척이 없기에... 인야는 내심 다행이다 싶어, 서둘러 올라와 혼자 점심을 해결해 버렸다.
그런데 숟가락을 놓기가 무섭게 전화가 울렸고, 아말리아였다.
"인야! 왜 점심 먹으러 안 내려오는 거야? 빨리 와!"
이미 배는 불렀지만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인야는, 다소 무거운 발걸음으로 아랫집으로 내려갔다.
식탁 중앙에는 먹음직스러운 '빠에야'가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고 있었다. 성급하게 점심을 먹어버린 자신을 탓하며, 이미 가득 찬 위장을 무시한 채... 억지로 빠에야를 밀어 넣었다.
한참 동안 이어지는 수다 소리를 배경 삼아 그는 남몰래 긴 한숨을 삼켰다.
그리고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논문 계획서는 아예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어차피 1년 내로 끝내기 어려운 일이었고, 어쩌면... 다시는 손대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가 어머니와 협의를 한 뒤,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할 일이라서......
약속 지키기에 태만한 교수 또한 자신의 부담을 덜고 싶었는지, 인야의 제안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통화를 끝내고 나니 비로소 온몸의 긴장이 탁 풀리며 맥이 빠졌다. 그리고 이내 마음속에서 강렬한 갈망이 치솟았다.
'어서 떠나자!'
당장이라도 짐을 꾸리고 싶었지만, 마지막 정리를 위해 하루의 시간을 더 두기로 했다.
2주 남짓한 휴가, 목적지는 갈리시아였다.
지난봄 여행했던 그 '땅 끝(Finisterre)'의 풍경들이, 인야의 머릿속에서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떠났다.
'휴식'의 의미를 가진 '여행'이었다.
그건 따지고 보면, 어쩌면 인야에게는 평생 처음으로 갖는(시작해 보는) '휴가'이기도 했다. 더구나 남들은 이미 한참 전에 돌아와 일상생활에 접어들어, '지나간'이라거나 '잊혀져가는' 휴가로 자리 잡을 9월도 말경에 떠난......
장장 14시간 반의 버스 여행.
바르셀로나에서 출발할 때 내리던 비는 갈리시아에 들어서자 거짓말처럼 그쳤다.
인야는 비고(Vigo)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시에 군도'의 최정상 등대로 향했다.
지난봄 P와 왔을 때 결항으로 가지 못했던 그 섬. 유라시아 대륙의 끝에, 거기서 또 배를 타고 온 마지막 섬. 수평선만 보이는 망망대해 대서양의 바람이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유라시아 대륙의 끝, 신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머물렀다는 '신들의 섬'.
'이처럼 좋은 날에 내가 여기에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못했던 일인데(비와 함께 다녔던 지난 봄 여행을 떠올린다면), 언젠간 한 번은 꼭 가보리라고 늘 생각했고 그럴 때마다 비오는 날이 떠올려지곤 했었는데, 아, 맑고 깨끗한 날에 여기에 있을 수 있다니!'
인야는 그 맑고 깨끗한 날씨 속에서 신들께 감사를 올렸다.
9시가 넘도록 밤이 오지 않는 대륙의 끝자락에서, 시에 섬에서 돌아와 우선 기차 시간을 알아보려고 역까지 걸었는데, 생각보다 먼 거리였고 등에 짊어진 배낭의 무게가 보통 무거운 게 아니었다.
기차 시간을 알아보는데 어떤 영감님이 불러서 얘기가 시작됐고, 결국 그 집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비고(Vigo)에서 눈을 뜬 아침, 인야의 마음은 이미 저 멀리 땅 끝에 가 닿아 있었다.
서둘러 기차에 몸을 싣고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Santiago de Compostela) 역에 내렸을 때, 도시는 여전히 활기찼다. '까미노' 행사가 한창인지 배낭을 멘 순례객들과 관광객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미 한 차례 머물렀던 곳이기에 익숙한 은행에 들러 여비를 조금 찾고, 지난번 가보지 못했던 골목들을 잠시 거닐었다. 하지만 대성당의 웅장한 고적들도, 북적이는 거리의 활기도 지금의 인야에겐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일 뿐이었다. 그의 영혼은 더 깊은 곳, 더 외딴곳을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인야는 예정되어 있던 오후 4시 버스를 기다리지 못하고 한 시간이나 일찍 버스 터미널로 달려갔다.
그곳엔 마침 갈리시아의 해안선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가는 버스 한 대가 막 시동을 걸고 있었다. 목적지는 피니스떼레였으나, 지도를 보니 여기저기 굴곡진 해변 마을을 다 훑고 지나가는 완행 노선이었다. 인야는 주저 없이 그 버스에 올랐다. 그의 생애에 이토록 달콤하고도 즉흥적인 선택이 또 있었을까.
버스가 출발하자 갈리시아의 속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바닷가 출신인 인야에게 바다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었다. 바다만 보면 가슴이 설레고 이유 없이 흥분하는 그 '바다쟁이'의 본능이 깨어났다.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점점이 박힌 마을들, 그리고 강물과 바닷물이 몸을 섞으며 내륙 깊숙이 밀려 들어오는 갈리시아 특유의 '리아(Ría)'가 창밖으로 펼쳐졌다. 거울처럼 맑고 깨끗한 바다 위에 점처럼 떠 있는 배들을 보며 인야는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참 잘 찾아왔다. 정말 잘 왔다!"
차가 있었다면 맘에 드는 모퉁이마다 차를 세우고 한참을 머물렀겠지만,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황홀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이름들—노이아(Noia), 무로스(Muros), 리라(Lira), 오 삔도(O Pindo), 세(Cee). 보석처럼 박힌 그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들을 지나며 인야는 행복한 상상에 잠겼다.
'아, 나중에 돈을 많이 번다면 이런 언덕 위에 깨끗한 집 한 채 짓고 살고 싶다. 길 가던 사람들에게 넉넉한 인심을 베풀고, 인생의 행복을 나누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사이, 버스는 드디어 대륙의 끝 피니스떼레에 도착했다.
지난봄 친구 P와 함께 묵었던 그 여관, 이번엔 한 층 더 높은 방을 계약하고 짐을 풀었다.
창을 여는 순간, 항구와 마을 전체가 발아래로 쏟아져 들어왔고, 움푹 파인 만 건너편의 이웃 마을까지 훤히 보였다.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세상의 수많은 곳 중 어떻게 이곳을 알게 되었고, 또 어떻게 결국 이곳에 다시 돌아와 자리를 잡게 된 것일까.
인야는 창가에 서서 자문했다. '나는 왜 이 땅 끝을 이토록 좋아하고, 또 기어이 찾아오고야 마는 걸까.'
그런 뒤 인야는 여관 주인이 일러준 식당으로 향했다.
접시 가득 담겨 나온 싱싱한 맛조개 요리와 이름 모를 생선의 고소한 튀김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여기에 차갑게 식힌 '비노 블랑꼬(백와인)'를 곁들이니, 이 한 끼의 식사를 위해 그 험난한 과제와 번역의 고통을 견뎌왔나 싶은 보상 심리가 짜릿하게 차올랐다.
이것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허락한 첫 번째 '진정한 휴가'의 축배였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인야는 방의 테라스에 앉았다.
방파제를 느릿하게 산책하는 사람들과 낚싯대를 드리운 이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내륙 쪽으로 움푹 파인 바다 너머, 저 멀리 바위산 아래에서 하나둘 반짝이기 시작하는 마을의 불빛들을 인야는 우두커니 지켜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시간,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행복이 그곳에 있었다.
인야는 어둠이 내려앉는 바다를 보며 스스로에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무런 부담도 갖지 말자. 그동안 나를 옥죄던 그 지독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자. 여기 머무는 동안만큼은 정말 내 맘 내키는 대로, 오직 나만을 위해 지내보는 거야."
땅 끝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확실히 서쪽 나라의 끝이라선지 해도 늦게 뜨는 것 같았다.
이튿날 아침, 인야는 남아있던 빵 한 조각으로 아침을 때우고, 수퍼에 가서 과일하고 우유 등을 사왔다. 그런 뒤 방안에서 내려다보았던 항구로 내려가, 방파제 쪽을 걷다가... 소년 둘이 낚시하는 걸 보았다.
그들은 인야를 보자 호의적인 표정으로, 조그만 오징어를 방금 낚았다며... 보라고 하기에 가서 보니, 신기하기도 했고, 더구나 인야 자신도 낚시를 하고 싶던 차라, 가지고 있던 자신의 낚싯대를 펴 보이며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얘들아, 어딜 가서 미끼를 사야 하는지 가르쳐 줄래?" 하고 묻자,
큰 아이가, 살 필요가 없다며 바로 그 자리에서 바위에 붙어있는 조그만 벌레를(갯강구) 잡아 낚시에 끼우더니 물에 던지며 시범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자 금방 조그만 물고기가 잡혀 올라왔다.
너무 신기했고 재미도 있어서 인야도 그런 식으로 낚시를 시작했다.
비록 조그맣긴 해도 던질 때마다 물고기가 잡혀 올라오니, 인야는 마치 아이처럼이나 즐거워하고 있었는데, 형제인 그들 중 동생 아이는 아예 벌레를 잡아 계속 인야 낚시 바늘에 끼워주는 조수 역할을 해주니, 인야는 너무나 재미있어서... 그렇게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정말 즐겁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점점 바람이 세지고 물살도 조금씩 거칠어지기에, "그럼, 내일 다시 할까?" 하고 낚싯대를 챙겼더니, "내일은 미끼 걱정을 마세요. 내가 집에서 가져올 게요!" 하고, '후안(Juan)'이라는 소년이 약속을 했고, 인야는 기분 좋게 호텔로 돌아왔다.
그런 뒤 낮잠을 잤고, 일어나 보니 날씨가 좋아져 있어서... 오후에도 낚시하러 나갔다. 그랬더니 그 아이들도 나와 있어서 함께 오전처럼 다시 낚시 삼매경에 빠졌다.
비록 조그만 물고기가 낚여오긴 했지만 인야는 시간 가는 건 물론 배고픈 줄도 모르고 낚시에 열중했다.
그리고 밤에는, 후안이란 소년에게 부탁하여 그가 사다 준 야광 물고기 미끼로 오징어 낚시로 바꿔 쌀쌀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곳에 낚시만 하러 온 사람처럼 그 일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오징어 낚시는 눈이 좋아야 했고, 또 기술도 필요했다. 오징어 낚시가 처음인 인야는 계속된 헛손질에 실망을 했지만, 그러다 우연히 재수가 나빠 잡힌 한 마리 오징어에... 너무 기뻐 낄낄대다가, 날이 쌀쌀해져서 밤 9시에 올라왔다.
물론 그 오징어 한 마리를 버릴 순 없어서, 떠나올 때 준비해 온 초장이 있어서 찍어 먹었다.
그러니까 생각지도 않았던 오징어 회까지 먹은 것으로, 너무 적은 양이었지만 그래도 꿀맛이었다.
그렇게 그 마을의 아이들은 모처럼 보는 생김새가 다른 이방인(동양인)에게 호기심과 호의를 갖고 접근하는데, 성인들은 무뚝뚝하기 그지없었다.
'허긴, 여기 '갈리시아 사람'들이 원래 그렇다고는 하다지만...... 여기 어딘가 갈리시아가 고향인 우리 동네 '마놀로(Manolo. 라울의 아버지)'만 해도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사람인데 뭐. 그런데 왜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렇게 변하는 것일까?'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순간에도 인야는 바르셀로나에 사는 마놀로를 떠올렸던 것인데, 그 순간에는 그저 웃어넘겼던 일이었지만 먼 훗날 그 마놀로네 고향 가족들과 벌어지는 '인생 이야기'가 바로 이 지방 갈리시아에서 시작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다음 날도 인야는 바다에 나갔고, 낚시 몇 개인가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물려오는 고기들도 다 볼품없는 것들이다 보니, 다소 지겨워지기도 했다. 그래도 항구에서의 시간은 잘만 갔다.
오후에 낮잠을 잤고, 저녁 무렵에 빵으로 저녁을 때운 뒤 다시 오징어 낚시에 나섰다.
그런데 야광 미끼에 너댓 마리씩 몰려드는 오징어를 눈이 피곤하도록 집중해서 바라보며 낚시에 빠져있었는데, 어젯밤에 썸머타임이 종료된 덕에 한 시간이 늦춰져(인야는 모르고 있었는데 후안이 알려줘서), 그만큼 더 낚시를 즐길 수 있었다.
전날 단 한 마리를 낚아서 그날은 두세 마리만 낚아도 성공이리라며 시작했던 게, 결국 열댓 마리의 오징어를 낚는 성과를 보았다.
물론 오징어가 조그맣기는 했지만, 기술 부족으로 낚여오다가 물에 떨어뜨려 실패한 것까지를 합하면 스무 마리도 넘는 대성공이었다.
그러니 시간 가는 걸 알 턱이 없었고, 잡은 오징어를 여관에 들고 오는데... 제법 무게가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오징어를 씻는데, 오징어들이 먹물을 쏘아대서... 깜짝깜짝 놀라는 등, 색다른 경험도 하고 있었다.
겨우 손을 봐 또 초장에 찍어 먹는 오징어는, 양이 너무 많다 보니...
'아, 봄에 함께 왔던 P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는 술도 못하니... 술 한 잔하는 사람이 함께 있으면 좋겠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야가 갈리시아에 도착한 이래 연일 날씨가 좋은 편이라는데, 그래도 여기의 일기 변화는 꽤나 심한 편이었다. 그날만 해도 대여섯 차례 잠깐씩 비를 뿌리다 개곤 했던 것이다.
'이젠 낚시도 해볼 만큼 해보았으니, 내일은 좀 변화 있는 생활을 하자. 산 너머 등대엘 가든지, 뒷동네 해변 모래밭에 가던지, 뭔가 그림을 그려보던지......'
9월 27일, 휴가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아침을 대충 때우고 인야는 이 튀어나온 반도의 끝인 등대에 가보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시간도 많은데다 기왕에 가는 길에 이곳 지형을 더 잘 알아보기 위해 산길을 택했는데, 산으로 접어드니 마을 뒤편에 있는 해변이 보이기에 그곳으로 먼저 가 보려고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길을 잘못 들어 빙빙 돌다가 한참만에야 마을 가까운 쪽으로 우회하여 해변에 닿을 수 있었다.
이 조그만 반도엔 양쪽에 해변이 있는데, 여기 대양 쪽의 해변엔 위험하다고 사람들이 별로 오지 않는다 하듯(안쪽에 더 긴 해변이 있기 때문일 텐데), 정말 그 누구도 없는 자연 그 자체의 해변이었다.
그런데 산에서 볼 때는 누군가 배낭족 한 사람이 있기에 호기심에 내려왔는데, 인야가 이리저리 길을 찾아 헤매는 사이 그는 떠났고 해변엔 그의 발자국만 남아 있었다.
정말 아무도 없는 해변. 깨끗한 모래사장.
지난번 포르투갈 여행 때 '나자레' 해변에서도 그랬듯이, 갑자기 인야는 이 원시적일 것 같은 해변의 '아담'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옷을 훌훌 벗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구잡이로 해변을 달려보았고, 다시 돌아와 대양을 향해 앉았다.
너른 해변엔 대서양의 파란 바다가 거친 파도만을 밀어대고 있었다. 그렇게 거친 파도를 마주하는 순간, 그는 비로소 모든 사회적 가면을 벗어던진 순수한 존재가 되었다.
그 자연에 인야가 홀로 앉아있었다. 벌거벗은 몸으로......
해변을 즐긴 뒤, 인야는 등대로 향했다.
처음엔 풀밭 사이로 난 소로를 따라 가니 계속 바다 쪽으로 가는 낭떠러지와 이어지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바다 쪽으로 난 길로 방향을 잡았는데, 거기는 나지막한 관목의 가시나무와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 천지였고, 멀리서 볼 때는 부드러운 잔디밭 같았지만, 걷기엔 너무 좋지 않은 가시밭길이었다.
게다가 산딸기 가시덤불도 군데군데 있어서, 벌써 종아리 몇 군데를 뜯기는 등, 도무지 그 길로는 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 길을 잃어 빠져나가기도 쉽지가 않아, 한 시간 반 정도를 헤맬 수밖에 없었다. 길을 잃었다기보다는 차라리 조난당한 수준일 정도였다.
그러는 사이에 온몸은 이미 땀에 젖어 있었고 바지가랑이뿐만이 아니라 팔목까지도 긁히고 뜯겨, 여기저기에 붉은 줄이 여러 개 나있는 등 만신창이가 돼서야 그 가시밭길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가시덤불을 벗어났는데도, 웬만한 소로 역시 그런 나무들과 잡초 그리고 산딸기 덤불로 걷기엔 보통 힘든 길이 아니었다.
겨우 비포장도로에 닿았을 땐 운동화 끈까지 풀어져 있었고 티셔츠와 가방은 땀에 흠뻑 젖어 있는 건 물론, 바지가랑이엔 수도 없는 가시들이 박혀 있었다.
산언덕에 오르니, 바다로 삐져나온 반도 끝의 산에서 보이는 여러 각도의 광경은 그야말로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절경이었다. 게다가 특히 날이 맑아서 바다와 하늘의 색깔 자체로도 시원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어,
'아, 내가 이 풍광을 접하려고 그 힘든 가시밭길을 걸어온 거나 다름없구나!' 하고 감탄을 하면서, 이제는 지친 몸에 겨우 등대로 이어지는 아스팔트에 접어들어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고,
등대에 도착한 뒤, 그 아래쪽 바다 언덕으로 내려갔다. 이 '땅 끝'의 곶에서도 가장 끝인......
더 갈 곳이 없었다.
인야는 이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의 끝에 와 있는 것이고,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이 돼 있었다.
하지만 등대 끝 곶에 쪼그리고 앉아 빵 한 조각을 씹으며 그는 확신했다.
'나는 이 휴가를 즐길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이 감정을 오래도록 만끽해야 한다.'
다음 날, 새벽에 출항하는 어선들의 엔진 소리에 인야는 잠이 깨어 커튼을 젖히는 순간, 건너 마을의 높은 바위산에 걸친 구름이 일출로 인해 붉게 타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은 잠이 다 안 깬 상태였던지라, 나중에 그리자고 유심히 바라보다가 다시 침대로 돌아왔는데... 점점 정신이 또렷해져서, 바로 일어나 크레파스를 틀고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은 밖에 나가지 않으리라 맘먹고 방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 마을 버스 정거장 부근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천막 같은 것도 보이기에 여관 주인에게 물어보니, '시골장'이 선다고 했다.
매주 화·금요일 이틀. 그래서 부랴부랴 씻고 그곳으로 가 보니 정말 시골장이 서 있었다.
물론 시골장이 그렇기도 하지만, 여기도 옷가지며 신발 등 일용품에 채소 과일 육류 생선 등 별로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나간 김에 인야는 과일을 조금 사가지고 올라왔다.
그런데 사온 포도와 토마토를 접시에 올려놓으니, 갑자기 정물을 하고 싶은 충동에... 또 즉시 정물을 하나 그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기운은 계속 이어져, '기왕에 내킨 김에 여기 풍경도 하나 하자!'는 생각도 들어, 이제는 창밖을 내려다보며 항구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풍경은 시간이 좀 오래 걸려서, 중간에 배가 고파 빵을 챙겨 먹고 나서야 그림을 끝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날은 그림을 세 점이나 그렸던 것이다.
그런 뒤에도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한 시간쯤 낮잠을 잤고, 일어나 보니 고기잡이에 나갔던 어선들이 돌아오기에... 그런 모습 역시 우두커니 바라보면서 저녁을 맞았다.
다음 날 오후엔 항구에 내려가 '후안' 형제와 사진을 찍었고 낚시를 했는데,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 그래도 깨끗한 날씨가 아주 포근했다.
저녁 식사는 식당에 가서 했는데, 그날은 주방장이 직접 주문을 받더니... 큰 접시로 하나 가득 '맛조개' 요리를 내오더니, 두 번째 접시엔 생선 두 마리나 보내, 너무 많아서 다 먹지 못했다.
주방장이 왜 음식을 남겼느냐고 물어,
"마음으론 다 먹고 싶었지만, 배가 너무 불러서... 힘들어서 더 이상 못 먹겠어서요." 하고 쩔쩔 맸더니, 주방장은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인야는, 그런 식으로라도 이 마을 사람 한둘을 알아가는 것이... 퍽 재미있었다.
밤에도 낚시하러 항구로 나갔다.
그런데 그날이 바로 음력으로 8월 열나흘. 추석을 하루 앞둔 밤 달이 맑은 하늘에 떠 있었다.
낚시를 하면서도 인야는 자꾸만 고개를 돌려 하늘의 달을 바라보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어째 오징어가 그림자도 보이질 않아 결국 한 마리도 못 잡았고, 11시가 되어서 어머니께 전화를 걸려고 낚시를 아예 포기하고 말았다.
어머니는, "여긴 모두들 잘 있고 좋으니, 너나 잘 있다 돌아오거라. 근데, 밥이랑은 먹었냐?" 고 물으셨는데,
"어머니, 여긴 아직 추석이 아니고 지금은 열나흘 밤이거든요?" 하자,
"그럼, 잠자고 일어나 밥 거르지 말고... 전화세 많이 나오니, 끊어라!" 고 하셔서 끊었다.
그런데 기분이 좀 우울했다. 아니, 인야의 온몸에 힘이 죽 빠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머니 음성이 썩 좋질 않아서였다.
9월 30일, '추석'인데 기다렸다는 듯이 종일 비가 내렸다.
오전엔 간간히 뿌리던 비가 오후 들어서는 쉬지 않고 계속 쏟아지는 것이었다.
인야는 바다에 물이 불어 있기에 방수 잠바를 걸치고 항구로 나갔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지만 개의치 않고 방파제 끝 쪽으로 걸어갔는데, 비가 와서 사람들이 없어 좋았고... 제법 높은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도 시원했다.
그런데 후안을 비롯한 마을 조무래기들이 비를 피해 뱃속에 몇몇 들어가 앉아 있더니, 인야가 비를 맞고 지나가자 비를 피하고 가라고 손짓해서... 인야는 그 배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빈 시간을 어색하게 보내기 싫어 낚시를 꺼내 물에 넣어보았으나, 어째 입질도 하지 않아... 단 한 마리도 건져내지 못했다.
게다가 으슬으슬 추워지기에 돌아와야만 했는데, 여관 주인은, 오늘은 비가 멈추지 않을 거라고 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날이 흐렸다.
추석 밤이었지만, 인야는 새벽 4시까지 오징어 낚시를 했다. 밤 10시부터 시작했는데 세 마리를 낚았을 뿐이다.
이따금 검은 구름 사이로 달이 삐죽이 얼굴을 내밀다 숨곤 했었는데, 그래도 시간은 잘 갔다.
인야의 즉흥적인 행동은 특히 여행 중에 잘 나타나곤 한다.
오늘도 우두커니 비가 내리는 항구를 내려보다가, '이렇게 하릴없이 밖만 바라보느니, 차라리 조금 일찍 출발해서 다음 목적지에서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게 낫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는,
'그래! 여기 '땅 끝' 휴가는 이 정도면 됐어. 정말 일주일 여 아무 부담 없이 잘 지냈던 거야. 그런데 이렇게 비가 내리니, 이젠 더 이상의 미련을 버리고 돌아가는 걸로 하자!' 며 갑자기 짐을 챙겨, 다음 날 아침 첫차로 피니스떼레를 출발하기로 돼 있던 일정을 하루 앞당겨 떠나기로 했다.
그랬던 이유는, 바로 여관 주인이 그저께 인야에게 했던 말이 크게 작용한 것이기도 했다.
"당신은 운이 좋은 것 같아요?" 하기에, "왜요?" 하고 인야가 되묻자,
"올 여름 내내 여기는 비가 와서 사람들이 휴가철에도 죽을상을 하며 지내다 떠났는데, 당신이 올 무렵부터 한 열흘 정도 계속 날씨가 좋더니, 다시 비가 내리네요......" 하기에, "그랬나요?" 하고 놀라다, "이 비가 안 그칠까요?" 하고 다시 물으니,
"이제 안 그칠 거 같아요. 여기 날씨가 원래 이래요...... 특히 가을엔......" 하며 고개까지 흔들더니, "그래도 당신이 머무는 동안은 참 날씨가 좋았던 거거든요. 내가 생각해도 좀 이상하긴 했지만......" 해서,
어쨌거나 기분 나쁜 말은 아니어서 웃어넘기긴 했는데, 이렇게 비가 내릴 거라면, 그저 방안에 멀거니 앉아있는 대신 시간을 잘 활용해 보자는 생각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러면 하루를 벌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밀어붙이기로 했다.
그래서 알아보니 오후 4시에 산티아고 행 버스가 있어서 여유있게 정리를 했는데, 짐을 챙기고 자신이 쓰던 방 정리하고, 그동안 이용하던 식당에도 가서 일하는 아가씨랑 주방에서 일하는 부부에게 작별 인사도 했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동안 인야에게 잘해주던 후안이란 소년에게 감사의 표시와 작별 인사라도 해야만 했는데, 오늘이 평일이라 그 아이가 아직 학교에 있을 터라 어쩔까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인야의 모습에, 여기 여관 주인여자가 그러지 말고 아예 학교로 찾아가 보라고 해서, 그러기로 했다.
그런데 운이 좋았던 듯, 인야가 학교로 찾아갔을 때 공교롭게도 그 시간이 아이들의 체육 시간이었는지 운동장에서 체육을 하고 있던 소년이 인야를 발견하곤 달려왔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인야가 사용하던 오징어 낚시 미끼(인야에겐 더 이상 필요치 않은)와 전에 P가 여행오면서 가지고 왔던 한국의 장승이 그려진 티셔츠를(한국을 의미하기에) 기념으로 주었다.
소년은 얼떨떨한 표정이었고(어쩌면 퍽 감동한), 인야의 요구대로 자신의 주소를 적어주면서는,
"근데 인야, 어제는 왜 항구에 나오지 않았었어요? 나는 밤 9시에 당신이 나올까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는 것이었다.
"아, 그랬었구나! 나도 나가긴 했는데, 밤 10시 넘게 나가서... 니가 없었던 거구나! 그렇지만 새벽 4시까지 낚시를 했었단다." 하는 식으로 서로의 마음까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모든 일을 끝내고, 인야는 난생처음 가져보았던 '휴가'의 마을에서 마음 가볍게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이미 뭔가 인야 자신과는 무관한 마을이 아닌 것 같았고, 그래서 끈적끈적한 정마저 느껴지던 '피니스떼레'를 뒤로 하고, 어쩐지 미래로 전진한다는 생각까지를 하면서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인야 자신도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좀 이상하긴 했다.
'왜, 이 순간에 내가 '미래로 전진한다'는 생각을 한다지? 글쎄, 그건 나에게도 약간 수수께끼 같은 생각이긴 했지만, '여기 땅 끝에서 휴가도 보낸 다음이니, 이젠 다시 세상에 나가 미래로 전진하자!' 하는 심정일 것 같았다.'
땅 끝에서의 휴가는 그렇게 끝이 났다.
비고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인야는 이미 다음 여정인 포르투갈의 오 뽀르또(O Porto)를 꿈꾸고 있었다.
10월의 첫날, 그는 다시 길 위에 선 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인야가 '뽀르또'로 오는 사이에도 비는 간간히 내렸다.
뽀르또에 내려 호객하는 사람을 따라 방을 잡긴 했는데, 나중에 후회하고 말았다. 값은 비싼데 시설은 엉망이었던 것이다. '그래봤자 단 하룻밤인데......' 하며, 무거운 짐 지고 돌아다닐 걱정에 선뜻 잡은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다음 날 인야는 '루이스 다리'를 건너, 다리 밑 포도주 공장 창고 구경도 하고, 또 1층 다리를 건너 시장을 돌며 천천히 구경도 했다.
그런데 포도주 공장 창고를 구경하는 중에 시음용으로 준 반 컵의 백·흑 비노를 마신 것이, 마실 때는 달짝지근하고 좋았는데, 우습게도 배고픈 탓이었는지 취기가 올라 엉겁결에 기분까지 좋아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잠깐 동안이나마, 여행 중에 까닭 없이 자신에게 밀려오는 뭔가 모를 서글픔인 여수(旅愁)를 느끼기도 했다.
다음 날은 스페인으로 넘어가 '살라망까(Salamanca)'에 가기로 했다.
기왕에 이쪽으로 여행을 떠나온 김에, 돌아가는 길에 살라망까에 있는 유학생 K씨를 만나 술이라도 한 잔하면서 회포를 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뽀르또에서 살라망까까지의 교통편이 영 좋질 않아, 기차, 버스역을 왔다 갔다 하며 시간과 교통비를 알아보느라 저녁을 다 보내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인야는 해방감을 느끼며 그 지긋지긋한 여관을 빠져나왔다.
축축한 이슬비가 내리는 뽀르또의 해변,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커다란 비닐봉지에 물고기를 가득 담아 짊어지고 다녔다. 저 많은 고기가 다 어디서 났을까 싶은 의구심을 품고 뿌연 안개 속 해변 산책로를 걸었다.
뽀르또는 분명 아름다운 지형을 가진 도시였으나, 나라의 가난 때문인지 곳곳에 밴 궁색한 티와 지저분한 거리, 스페인보다 비싼 물가가 인야를 불편하게 했다.
"이런 것이 여행이지. 내가 원해서 온 길인데 불평해서 무엇하랴."
그런 뒤 살라망까 행 기차가 있는 저녁 6시 반까지 기다리기가 싫어서, 앞질러 거기 인근의 '과르다(Guarda)'란 곳에 가서 기다리기로 하고 2시 50분 기차를 탔다.
그랬던 이유는, 뽀르또에서 6시 기차를 타면 다음 날 새벽 2시에 살라망까에 도착을 하는데, 그렇게 깜깜한 밤에 여행을 하느니 차라리 환한 낮에 기차를 타고 뭔가 포르투갈 내륙 풍경이라도 보자는 속셈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빰삘로사(Pampilhosa)'라는 중간 역에 내려야 했고, 또 여기서도 앞으로 한 시간 반 이상 기다려야 살라망까에 갈 기차를 갈아 탈 '과르다(Guarda)'란 곳으로 가는 기차가 온다는 것이었다.
인야는 살라망까 행 기차를 기다리는 대신, 낮의 풍경이라도 더 보기 위해 과르다(Guarda) 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그것이 고난의 시작이었다.
기차는 가는 곳마다 연착이었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인야는 자신이 어디쯤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결국 과르다에 도착했을 때, 그가 타야 할 살라망까 행 연결 기차는 이미 떠난 뒤였다.
"뭐라고? 이건 말도 안 돼!"
역무원에게 항의해 보았으나 그들은 무책임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공중전화로 살라망까에 연락하려 해도 동전조차 바꿔주지 않는 그들의 불친절함에 인야는 폭발 직전이었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는,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도 있고 전혀 다른 듯한 단어도 있는지라, 어떻게든 인야는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국경 쪽으로 가야 한다고 하자, 국경까지 가는 차는 0시 40분에 있다고 해서, 하는 수 없이 그 차표를 샀다. 일단 어떻게든 포르투갈은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역 사무실 쪽에 가니 한 사람이 있어서 인야가 그에게 항의 겸 하소연을 하니, 자기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란 듯 오늘은 갈 수가 없다는 얘기만 할 뿐, 미안한 표정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어찌 되었거나 살라망까에 연락은 해야 했기에, 인야는 매표소에서 동전을 바꿔 전화를 걸었는데, 중간에 끊겨 다시 동전을 바꾸려니, 바꿔주지도 않았다.
"이런 미개한 놈들!" 하고 혼자 푸르락붉으락 인상도 썼지만, 그것 역시 혼자서만 씩씩댔을 뿐이다.
그런데 그 차도 오긴 했는데 연착이었고, 출발은 아예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할 시간에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인야는 차 안에서도 안절부절 혼자 욕을 해대고 있었지만,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혼자 씩씩댔을 뿐이다.
"이 미개한 나라!"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니 이따위로 가난하고 누추하게 살 수밖에 없겠지. 어딜 둘러봐도 제대로 돌아가는 것 하나 없고 사람들이 생기도 없고 자포자기한 모습들뿐이니......' 하며 욕만 하다 말았다.
결국 국경도시인 '빌라르 포르모소(Vilar Formoso)'에서 내려 사람들에게 살라망까 차 시간을 물어보니, 아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그때 웬 중년 남자가 다가와 택시로 가지 않겠느냐고 해서 얼마냐고 물으니 2만 뻬세타라는 것이었다.
우스웠다. '그 돈을 주고 이 밤에 가느니 차라리 호텔에 가서 자고 가지......'
그런데 또 그때 같은 차에 타고 왔던 청년 하나가 오더니, 자기를 따라 오라는 것이었다. 스페인 쪽 역에 가서 알아보면 된다면서......
순간, 뭔가 이상해서 멈칫거리다, 그래도 스페인 쪽으로 넘어가고 싶은 마음에 인야는 그를 따라갔다. 그렇게 철길을 따라 5~600미터쯤 걸어가니 스페인 역이 나타났다.
그런데 우스운 게, 그렇게 국경만을 걸어 넘어갔는데도, 벌써 스페인 쪽에 들어오니 분위기 자체가 확 달라지는 것이었다. 뭔가 안정감이 느껴지고 분위기마저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 길로 역에 들어가 물어보니, 이건 또 웬일인가?
오직 하루에 한 번 0시 무렵에 기차가 있다고 했는데, 그 차는 이미 떠난 뒤라... 날이 샌 다음에나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어정쩡하게, 좌우간 이번에도 인야는 그 청년을 따라 두 나라 국경도시를 넘나들며 새벽 3시를 넘겼다.
그는 끝까지 인야를 도와주려 애썼고, 사실은 인야도 그가 너무나 고마웠는데, 좀 모자란 듯 빨간 머리인 그의 순진한 인정이 인야를 감동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헤어질 때 인야는 이제 더 이상 필요없는 포르투갈 돈 남은 것을 주려고 했는데, 그는 끝내 받지 않았다.
그래서 이름을 물어보니 '에두아르도(Eduardo)'라고 했다.
"에두아르도, 오늘 너무나도 고마웠다. 오랫동안 너를 잊지 못할 거야!" 하고 인사를 하면서 헤어졌는데, 그날 하루 종일 욕을 하며 쌓여있던 포르투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그로 인해 다 지우기로 했다.
이 세상엔 어딜 가든 좋은 사람은 다 있게 마련이고, 한두 사람만을 가지고 그 전체적인 사회나 사람을 평가해선 안 되는 것이란 걸 알고는 있었으면서도, 정말 하루 종일 안 좋은 일만 생겼던 포르투갈에 대한 나쁜 감정을 바로 그 약간 어눌한 청년 때문에 씻은 듯 사라졌다.
그와 그렇게 헤어지고, 어찌할까 길에서 망설이다, 밤을 그대로 지새우기로 했다.
어차피 곧 4시가 되는데 어딜 가서 잘 것이며, 몇 시간 자다 일어나 다시 출발할 거라면 그게 더 번거로울 것이고 또 그 돈도 아까워서였다.
그래서 잠깐 이슬을 피하려고 스페인 기차역 대합실에 다시 들어가서, 아무도 없는 대합실에 혼자 앉아있는데... 깨끗이 정돈된 아담한 대합실이 포르투갈 쪽하고는 큰 비교가 되었다.
그 고생 끝에 도착한 살라망까에서 보낸 이틀은 그간의 피로를 씻어주기에 충분했다.
박사 논문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자신을 대접하기 위해 애써준 K씨와 나누었던 술 한 잔, 그리고 깊은 대화들. 친구의 따뜻한 환대 덕분에 인야의 마음 한구석에 쌓였던 고독이 눈 녹듯 사라진 기분이었다.
다시 돌아온 바르셀로나의 집.
보름 만에 돌아온 집은 고요했다. 어둠 속에 계단을 오르는데, 그새 화분에 코스모스 꽃이 피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 돌아올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그 가녀린 꽃송이를 보며 인야는 미소 지었다.
난생처음 가져보았던 휴가의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