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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6화 ― 「폐교 방송실의 목소리」
밤 아홉 시.
은솔시 외곽의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오래된 학교 하나가 나온다.
**은솔초등학교 솔재분교.**
한때는 산골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곳이지만, 학생 수가 줄면서 십오 년 전 문을 닫았다.
운동장에는 잡초가 무릎까지 자랐고 철봉에는 붉은 녹이 슬어 있었다.
건물 벽에는 빗물이 흘러내린 자국이 검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다음 달이면 이 건물도 철거될 예정이었다.
철거 전 시설 상태를 확인하러 온 관리인 **박성구**가 손전등을 들고 복도를 걷고 있었다.
“교실 세 곳 확인했고…… 창고도 이상 없고.”
그가 점검표에 표시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곳은 2층 방송실이었다.
그때였다.
**지지직—**
박성구가 걸음을 멈췄다.
“뭐야?”
천장에 매달린 낡은 스피커에서 잡음이 흘러나왔다.
전기가 대부분 끊긴 건물이었다.
박성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지지직.
그리고—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박성구의 손에서 점검표가 떨어졌다.
“누…… 누구야?”
대답은 없었다.
몇 초 뒤.
다시 스피커가 울렸다.
**“선생님, 저 아직 여기 있어요.”**
박성구는 손전등만 움켜쥔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폐교의 정적을 깨뜨리며 한 남자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전속력으로 뛰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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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폐교에서 들려온 목소리
다음 날 오전.
은솔성당 사무실 문이 열리자 오미자가 숨을 몰아쉬며 들어왔다.
“신부님!”
김맑음 신부가 책상 위에서 안경을 찾다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세요?”
“폐교에서 애가 말을 했대요.”
최병철이 장부를 넘기다 손을 멈췄다.
“폐교에서 아이가 말을 했으면 아이가 들어갔겠죠.”
“아무도 없었대요.”
“그럼 스피커겠죠.”
“스피커에서 말했대요.”
최병철이 오미자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스피커겠죠.”
오미자가 목소리를 낮췄다.
“그런데 그 학교가 문 닫은 지 십오 년이래요.”
그 순간 김하늘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저도 들었어요.”
“뭘?”
“솔재분교 괴담이요. 벌써 인터넷에 올라왔어요.”
김맑음 신부가 눈을 가늘게 떴다.
“괴담이요?”
하늘이 휴대전화를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낡은 학교 사진과 함께 제목이 떠 있었다.
**〈폐교에서 들린 아이 목소리〉**
오미자가 팔짱을 끼었다.
“이 정도면 사건 아닙니까?”
최병철이 한숨을 쉬었다.
“회장님은 왜 모든 일을 사건으로 만드십니까?”
그때 김맑음 신부가 안경을 찾아 썼다.
“그런데…….”
“왜요?”
“아이가 정말 있었다면 확인해야 하고, 녹음이었다면 누가 틀었는지 확인해야겠네요.”
최병철의 얼굴이 굳었다.
“신부님.”
“예?”
“산책이라고 하실 겁니까?”
김맑음 신부가 잠시 생각했다.
“오늘은 차를 타고 갈 거니까 산책은 아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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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잠긴 방송실
솔재분교에는 이미 이도현 형사가 와 있었다.
철거를 앞둔 건물이라 안전사고 가능성도 있었고, 누군가 무단침입했다면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도현이 방송실 문을 살펴보고 있었다.
“자물쇠를 억지로 연 흔적은 없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창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고.”
“다른 출입구는요?”
“없습니다.”
오미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귀신?”
최병철이 즉시 대답했다.
“또 시작이십니다.”
방송실 안에는 먼지가 가득했다.
낡은 믹서와 앰프, 마이크가 그대로 남아 있었고 한쪽 선반에는 카세트테이프가 여러 개 쌓여 있었다.
김하늘이 장갑을 끼고 테이프들을 살펴봤다.
“학교 행사 녹음 같은데요.”
‘1997년 운동회.’
‘1998년 졸업식 연습.’
‘교내방송.’
그러다 하늘의 손이 멈췄다.
“신부님.”
“왜?”
하늘이 테이프 하나를 들어 보였다.
누렇게 변한 라벨에 날짜가 적혀 있었다.
**1998년 10월 23일.**
그 아래에는 연필로 작은 글씨가 있었다.
**‘마지막 방송.’**
김맑음 신부가 안경을 고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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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1998년 10월 23일
한서윤은 곧바로 당시 학교 기록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솔재분교의 옛 학적 자료 일부는 본교 기록실에 보관되어 있었다.
몇 시간 뒤.
서윤이 두꺼운 졸업앨범과 복사한 서류를 들고 성당으로 돌아왔다.
“찾았습니다.”
사람들이 식탁 주위로 모였다.
서윤이 1998년 학급사진을 펼쳤다.
학생은 열두 명뿐이었다.
맨 뒤에는 젊은 남자 교사가 서 있었다.
서윤이 사진을 가리켰다.
“이 사람이 당시 담임이었던 **김정호 선생님**이에요.”
김맑음 신부가 사진을 바라봤다.
서른 살 남짓한 젊은 교사였다.
“그리고요?”
서윤이 학적 기록 한 장을 꺼냈다.
“1998년 10월 23일.”
그녀가 한 학생의 이름을 가리켰다.
**윤지훈.**
당시 열 살.
4학년.
“이날 갑자기 전학 처리됐어요.”
“어디로요?”
“부산입니다.”
“이유는요?”
“가정 사정이라고만 적혀 있어요.”
김하늘이 사진 속 아이를 찾았다.
맨 앞줄 끝에 앉은 작은 남자아이.
다른 아이들은 웃고 있었지만 지훈은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김정호 선생님은요?”
“그다음 해 다른 학교로 전근하셨고 나중에 교감으로 퇴직하셨어요.”
“지금은?”
서윤이 고개를 저었다.
“주소는 아직 확인 중이에요.”
그 순간—
사제관 밖에서 최병철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신부님!”
모두가 밖으로 나왔다.
최병철이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폐교 현장에 남아 있던 관리인이 보내온 영상이었다.
아무도 없는 학교 복도.
그런데 영상 속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지직—**
이번에는 분명한 어린아이 목소리였다.
**“김정호 선생님을 찾습니다.”**
모두 말이 없어졌다.
오미자가 아주 작게 말했다.
“저게…… 1998년 녹음이에요?”
김하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어떻게 알아?”
“아까 테이프를 확인했어요. 그 문장은 없었어요.”
김맑음 신부가 천천히 안경을 고쳐 썼다.
“그렇다면…….”
그가 화면을 바라봤다.
“과거의 녹음만은 아닌 모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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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두 개의 목소리
다음 날 아침.
이도현과 김맑음 신부는 다시 폐교를 찾았다.
이번에는 장태식도 함께였다.
장태식은 방송실 장비를 한참 살펴보더니 벽 뒤쪽을 가리켰다.
“이 선은 새겁니다.”
“새거라고요?”
“예.”
먼지가 쌓인 오래된 전선 사이로 비교적 깨끗한 가느다란 선 하나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 선은 창문 아래 작은 구멍을 통과해 밖으로 이어져 있었다.
세 사람은 선을 따라갔다.
건물 뒤편.
잡초 사이에 작은 방수 상자가 숨겨져 있었다.
김하늘이 상자를 열어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이거 타이머예요.”
안에는 소형 재생장치와 배터리가 들어 있었다.
과거 방송설비에 연결해 특정 시간에 음성을 내보낼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이도현이 말했다.
“그럼 누군가 최근에 설치한 거군요.”
“그런데 이상해요.”
하늘이 장치를 살펴봤다.
“첫 번째 목소리는 카세트테이프에서 나온 거예요.”
“두 번째는?”
“이 장치에 따로 저장된 파일이에요.”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그러니까 두 목소리가 다른 겁니까?”
“네.”
하늘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저 아직 여기 있어요’는 1998년 테이프에 녹음된 목소리고…….”
그녀가 재생장치를 가리켰다.
“‘김정호 선생님을 찾습니다’는 최근에 녹음한 목소리예요.”
오미자가 입을 벌렸다.
“그러면 옛날 아이가 지금 방송을 한 게 아니라?”
최병철이 말했다.
“당연한 말씀을 굉장히 어렵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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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마지막 방송
1998년 10월 23일의 테이프를 제대로 들어보기로 했다.
낡은 테이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치익—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어 어린 지훈의 목소리가 나왔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입니다.”**
잠시 침묵.
그런데 녹음은 끝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방송이 끝난 줄 알았지만 녹음기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멀리서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지훈의 작은 목소리.
“선생님?”
잠시 뒤.
“선생님.”
다시 침묵.
“저…… 오늘 가요.”
아무 대답도 없었다.
아이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아빠가 오늘 밤에 부산으로 간대요.”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선생님한테 인사하고 가려고 했는데…….”
지지직.
그리고—
**“선생님, 저 아직 여기 있어요.”**
녹음이 끊겼다.
방송실 안은 조용해졌다.
오미자도 이번에는 아무 말이 없었다.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그날 김정호 선생님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한서윤이 옛 기록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얼마 뒤 답을 찾았다.
“병원이요.”
“병원?”
“그날 오후 선생님의 아버지가 쓰러지셨대요. 김정호 선생님이 수업을 마치고 급하게 병원으로 갔다는 기록이 있어요.”
김맑음 신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지훈은 선생님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방송실에 왔다.
하지만 선생님은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
아이의 가족은 은솔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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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방송을 한 사람
현재의 방송을 누가 내보냈는지는 의외로 빨리 밝혀졌다.
장태식이 방수 상자를 들어 올리다가 밑면을 보았다.
작은 수리점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정호전자수리.’**
은솔시 외곽의 오래된 전파사였다.
가게 문을 열자 일흔이 넘은 남자가 납땜 인두를 내려놓았다.
그가 김맑음 신부 일행을 바라봤다.
“성당 신부님 아니십니까?”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김정호 선생님이십니까?”
노인의 손이 멈췄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남자가 천천히 의자를 내주었다.
“결국 들켰군요.”
김정호.
올해 일흔한 살.
퇴직한 뒤 작은 전자제품 수리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도현이 물었다.
“폐교 방송장치를 설치하셨습니까?”
“예.”
“왜 그러셨습니까?”
김정호는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1998년 솔재분교 4학년 사진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맨 앞줄의 윤지훈에게 닿았다.
“이 아이를 찾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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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선생님의 후회
김정호는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를 철거 전 학교 창고를 정리하다 발견했다고 했다.
집으로 가져와 재생했을 때—
그는 처음으로 지훈의 마지막 말을 들었다.
**“선생님, 저 아직 여기 있어요.”**
“그날 나는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정신없이 학교를 나갔습니다.”
김정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다음 날 학교에 왔더니 지훈이가 전학을 갔다고 하더군요.”
“연락하지 못하셨어요?”
“당시는 지금처럼 연락하기 쉬운 때가 아니었습니다. 학교에 남겨진 주소로 편지를 보냈는데 돌아왔습니다.”
그 뒤에도 몇 번 찾으려 했지만 가족은 계속 이사를 다녔다.
시간이 흘렀다.
십 년.
이십 년.
그리고 거의 삼십 년.
“그런데 그 테이프를 들으니까…….”
김정호가 고개를 숙였다.
“그 아이가 아직도 그 방송실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방송을 하셨군요.”
“학교가 철거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김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건물이 없어지기 전에 혹시라도 누군가 그 목소리를 듣고 지훈이에게 전해주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럼 ‘김정호 선생님을 찾습니다’라는 목소리는요?”
“제가 녹음한 겁니다.”
오미자가 놀랐다.
“아이 목소리였는데요?”
김정호가 조금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예전에 학교 방송부에서 쓰던 음성 변조 장치를 고쳐봤습니다.”
최병철이 이마를 짚었다.
“선생님, 사람 심장 떨어지게 그런 것까지 하시면 어떡합니까.”
김정호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그런데 왜 본인이 직접 지훈 씨를 찾지 않고 이런 방법을 쓰셨습니까?”
김정호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말했다.
“무서웠습니다.”
“무엇이요?”
“그 아이가 나를 원망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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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사라진 아이의 흔적
한서윤과 김하늘이 본격적으로 윤지훈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학교 기록.
옛 동창.
당시 이웃.
지역신문 자료.
그리고 졸업생 모임 게시판.
사흘째 되는 날.
김하늘이 사제관으로 뛰어 들어왔다.
“신부님!”
김맑음 신부가 국을 먹다가 놀랐다.
박복례가 말했다.
“뛰지 마. 신부님 국 엎겠다.”
하늘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찾은 것 같아요.”
부산에서 작은 목공소를 운영하는 남자.
이름은 **윤지훈**.
나이는 서른여덟.
사진 속 눈매가 옛 학급사진의 아이와 닮아 있었다.
한서윤이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김맑음 신부가 말했다.
“바로 전화하지는 맙시다.”
“왜요?”
“우리가 찾는 사람이 맞는지 먼저 확인해야죠.”
이도현도 동의했다.
며칠간의 확인 끝에—
그 남자가 맞았다.
1998년 10월 23일.
은솔을 떠난 바로 그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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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기억합니다.”
연락은 한서윤이 먼저 했다.
학교 기록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연락했다고 설명하고, 김정호 선생님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전화기 너머로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억합니다.”
“선생님께서 지훈 씨를 찾고 계십니다.”
다시 침묵.
“왜요?”
“그날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한 것을 마음에 두고 계셨어요.”
윤지훈은 한참 뒤 말했다.
“저도…… 인사 못 했는데요.”
그리고 뜻밖의 말을 덧붙였다.
“저도 선생님을 찾은 적 있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놀랐다.
“언제요?”
“스무 살 때요.”
하지만 김정호는 이미 다른 지역으로 전근한 뒤였다.
몇 번 학교에 문의하다가 포기했다.
“그 뒤에는 왜 찾지 않으셨어요?”
지훈이 웃었다.
“선생님도 저랑 똑같았나 봅니다.”
“뭐가요?”
“시간이 너무 지나버리니까…… 이제 와서 찾는 게 이상할 것 같았어요.”
김맑음 신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사람은 선생님이었고—
한 사람은 제자였다.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찾았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같은 이유로 멈췄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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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마지막 수업
철거를 일주일 앞둔 토요일.
솔재분교 운동장에 한 남자가 들어섰다.
마흔을 앞둔 윤지훈이었다.
그는 한동안 학교 건물을 바라보았다.
“작아졌네요.”
김맑음 신부가 웃었다.
“학교가요?”
“예. 어릴 때는 엄청 커 보였는데.”
그때 건물 안에서 김정호가 나왔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김정호는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훈이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그 한마디에—
김정호의 얼굴이 굳었다.
“지훈아?”
윤지훈이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입니다.”
김정호는 한 걸음 다가갔다가 멈췄다.
“미안하다.”
첫마디였다.
지훈이 고개를 들었다.
“왜 선생님이 미안하세요?”
“그날 네가 기다렸는데…… 내가 없었잖아.”
지훈은 잠시 김정호를 바라봤다.
그리고 웃었다.
“저도 그냥 갔잖아요.”
“그래도…….”
“선생님.”
지훈이 말했다.
“저 선생님 원망한 적 없습니다.”
김정호의 눈가가 붉어졌다.
“정말이냐?”
“예.”
잠시 후 지훈이 덧붙였다.
“조금 서운하기는 했습니다.”
김정호가 울면서 웃었다.
“그건 원망한 거 아니냐?”
“조금은요.”
두 사람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멀리서 지켜보던 오미자가 눈가를 훔쳤다.
최병철이 말했다.
“회장님 우십니까?”
“먼지가 들어갔어요.”
“운동장인데요.”
“운동장에도 먼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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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방송실에서
두 사람은 함께 2층 방송실로 올라갔다.
지훈이 낡은 마이크를 바라봤다.
“이거 아직도 있네요.”
“네 목소리도 남아 있더라.”
김정호가 카세트테이프를 내밀었다.
지훈은 한참 그것을 바라봤다.
“제가 가져도 됩니까?”
“원래 네 목소리니까.”
지훈이 웃었다.
“그럼 선생님 목소리도 하나 남겨야죠.”
“내 목소리?”
지훈은 김하늘의 도움을 받아 방송 장치를 켰다.
폐교의 오래된 스피커에 불이 들어왔다.
지지직—
윤지훈이 마이크 앞에 섰다.
“선생님.”
김정호가 바라봤다.
지훈이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저 이제 여기 없습니다.”**
김정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지훈이 말을 이었다.
**“잘 살고 있습니다.”**
잠시 후—
**“그러니까 선생님도 이제 그날에서 나오세요.”**
김정호가 고개를 숙였다.
오래된 교실과 빈 복도를 지나 그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마지막으로 지훈이 말했다.
**“그리고…… 선생님.”**
“예.”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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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늦은 인사는 없다
며칠 뒤.
은솔성당 저녁 식탁.
박복례가 된장찌개를 내려놓았다.
오미자가 말했다.
“결국 귀신은 아니었네요.”
최병철이 숟가락을 들었다.
“처음부터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분위기는 귀신이었어요.”
김하늘이 말했다.
“저는 장비부터 의심했어요.”
한서윤이 웃었다.
“누가 제일 먼저 영상 보고 뒤로 물러났더라?”
“그건 화면을 잘 보려고 그런 거예요.”
이도현이 김맑음 신부를 바라봤다.
“그런데 신부님.”
“예?”
“폐교에는 왜 그렇게 자주 가셨습니까?”
“사건 때문에요.”
“경찰이 수사하고 있었잖습니까.”
김맑음 신부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럼…… 산책?”
이도현이 한숨을 쉬었다.
“차 타고 갔잖아.”
둘만 알아들을 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김맑음 신부가 웃었다.
“기억하고 있었네.”
“네가 먼저 말했잖아.”
박복례가 두 사람 앞에 밥그릇을 내려놓았다.
“두 분 다 말 그만하고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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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주일미사
그 주 주일.
김맑음 신부는 강론에서 말했다.
“우리는 때때로 늦었다고 생각합니다.”
성당 안이 조용했다.
“사과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찾아가기에는 너무 오래되었고, 안부를 묻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합니다.”
김맑음 신부가 교우들을 바라봤다.
“그래서 하루를 미룹니다.”
“그 하루가 한 달이 되고, 한 해가 되고, 때로는 수십 년이 됩니다.”
잠시 침묵.
“하지만 어떤 사람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하지 못했던 한마디를.”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
“보고 싶었다는 말.”
그리고 신부는 천천히 말했다.
**“사랑에서 너무 늦은 인사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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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학교가 사라진 날
일주일 뒤.
솔재분교 철거가 시작됐다.
김정호와 윤지훈도 마지막으로 학교를 찾았다.
지훈은 낡은 교실에서 작은 나무 조각 하나를 주웠다.
“이건 가져가도 되겠죠?”
김정호가 웃었다.
“목공소 사장이라더니 학교까지 가져가려고?”
“조금만요.”
두 사람은 운동장을 천천히 걸었다.
예전에는 선생님이 앞서 걷고—
어린 지훈이 뒤따라갔을 길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나란히 걸었다.
김맑음 신부는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잠시 뒤 철거 인부가 방송실의 전원을 완전히 내렸다.
낡은 스피커의 작은 불빛이 꺼졌다.
더 이상—
아이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다리던 선생님은 제자를 찾았고,**
**기다리던 제자도 선생님을 만났으니까.**
김맑음 신부가 안경을 고쳐 썼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이제 정말 마지막 방송이네요.”
**― 제66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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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편 예고 ― 제67화 「혼인반지 안쪽의 이름」
주일미사가 끝난 오후.
성당 맨 뒤 의자 아래에서 반지 하나가 발견된다.
오래되어 빛이 바랜 금반지.
최병철이 분실물 장부를 펼친다.
“혼인반지 같은데요.”
김하늘이 반지 안쪽을 살펴보다가 말한다.
“신부님, 여기 이름이 있어요.”
김맑음 신부가 받아 든다.
안쪽에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정미숙 · 1987. 5. 16.’**
오미자의 얼굴이 굳는다.
“정미숙 세실리아라면…… 우리 성당 정미숙 씨잖아요.”
그런데 반지를 돌려주러 찾아간 김맑음 신부에게 정미숙은 뜻밖의 말을 한다.
“제 반지 아닙니다.”
“하지만 이름이…….”
“저는 결혼한 적이 없어요.”
김맑음 신부가 반지를 다시 바라본다.
그날 저녁.
한서윤이 1987년의 오래된 혼인미사 기록을 찾아낸다.
“신부님, 이상해요.”
“뭐가요?”
“정미숙 씨 이름은 없어요.”
“그럼 누구 이름이 있습니까?”
서윤이 기록의 한 줄을 가리킨다.
**신랑 ― 박재훈.**
그러나—
**신부의 이름만 검은 펜으로 지워져 있다.**
김맑음 신부가 천천히 안경을 고쳐 쓴다.
“이번에는…… 하지 못한 결혼을 찾아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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