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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스크랩 [세계의 3대 성모 발현장소] 멕시코 - 과달루페의 성모?
곽병춘 추천 0 조회 44 15.10.08 14:0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세계의 3대 성모 발현장소] 멕시코 - 과달루페의 성모

★ 멕시코 과달루페는 프랑스 루드르, 폴투갈의 파티마와 함께 교회에서 인정한 3대 발현장소 입니다. 그 외에 많은 발현장소가 있지만 아직까지 교회에서는 정식 입장을 유보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1. 발현 사건


1531년 12월 9일 이른 아침에 이제 막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통해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된 후안 디에고(Juan Diego)는 아침 미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자신의 집에서 수 킬로 떨어진 수도회 성당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후안 디에고(이후 후안)가 테페약(Tepeyac)언덕(현재 수도인 멕시코시티)의 고개 길을 넘어가고 있을 때, 성모님께서 그의 앞에 나타나셨다. 찬란한 빛이 무릎 위를 비추고 있었으며 천상의 음악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부인' 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그 부인은 후안의 이름을 부르며 후안이 사용하던 인디언 언어인 나후탈(Nahuatl)어 로 말하였다. 


“잘 들어라. 나는 하늘과 땅의 참된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영원한 동정 성모 마리아이며, 너는 나의 작은 아들이다. 나는 이곳(테페약 산)에 성당을 세우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성당에서 나의 사랑, 나의 자비 나의 도움과 보호를 모두에게 베풀겠다.”


“나의 아들아, 내가 평생 동정녀이며, 아니 계신 곳이 없이 곳곳에 계신 천상천하의 주인이시며 만물의 창조주로서 생명의 창조주이신 참 하느님의 어머니로 알려지기를 원한다. 또 나는 너와 네 모든 민족에게 자애로운 내 사랑을 베풀어주며, 나에게 정성을 다하며 어려울 때에 나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나의 따뜻한 동정심을 보여 줄 수 있도록 이 자리에 성당을 짓기를 바란다. 그러니 주교관에 찾아가 내가 너에게 말한 바를 주교에게 알려라. 이 자리에 나를 공경하기 위한 성당을 짓기를 원하는 나의 소망을 전하여라.” 



[그림] 후안 디에고(Juan Diego)와 주마라가(Zumarraga) 주교


후안은 성모님과의 만남이 한편 놀라왔지만, 성모님으로 부터 받은 메시지를 당시 이 지역의 주교였던 주마라가(Zumarraga) 주교에게 찾아가 전했다. 주마라가 주교는 인디언인 그의 말은 모두 듣기는 하였지만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후안은 주교관을 나오며 주교가 자신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교의 반응에 실망한 후안은 성모님께서 나타나셨던 언덕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런데 성모님이 그에게 다시 나타나셨다. 성모님을 본 후안은 성모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지극히 사랑하올 여왕이시며, 존귀하올 부인이시여, 당신이 명하신 대로 모두 했습니다. 하지만 주교님은 저를 안 믿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주교님이 저에게 돌아가 있으면 시간을 갖고 이 문제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검토해 볼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교님은 성모님께서 성당을 짓기를 원하신 다는 것이 제가 꾸며낸 것이거나 환상일 것이며, 성모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모님께 청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좀 더 고귀하고 훌륭한 사람을 보내셔야겠습니다. 저는 너무나 천하고 가난한 촌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일에 합당한 자가 아닙니다. 여왕이신 성모님, 저의 경솔함과 거칠음을 용서하십시오. 만일 어떤 면에서 제가 성모님의 위대함에 얼마나 인정받을 만한 점이 있다 해도 저는 저의 잘못으로 성모님께 실망을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 성모님께 호소 하였다. 하지만 성모님은 당신의 대리자로 다른 누구보다 후안이 적임자라고 설명하시며 내일 다시 주교에게 찾아가도록 후안을 설득하셨다.


다음 날, 후안은 다시 주교 앞에서 성모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였다. 주마라가 주교는 후안이 하는 말을 모두 듣고 나서 "그럼 너의 말이 모두 사실이고 성모님께서 하신 말이라면 그에 대한 증거로 어떤 증표를 가져 오라"고 하자, 후안은 앞 뒤 생각해보지 않은 채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주교관을 나왔다.


후안이 떠나자 의심이든 주마라가 주교는 하인 두 명을 시켜 후안의 뒤를 따라가게 하였다. 그러나 테페약 언덕에 이르렀을 때 그들의 시야에서 더 이상 후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성모님께서 안개를 풀어 후안을 가려 주신 것이다. 후안을 놓친 두 하인은 주교에게 돌아가 그가 자신들에게 속임수를 ?다고 불평을 터트리며 그를 모함하였다. 



한편 성모님은 후안에게 다시 나타나시어 그의 마음을 이미 읽으시고, 주교에게 보일 징표는 다음 날 아침에 주겠노라고 약속하셨다. 후안은 성모님의 약속에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간 후안은 자신의 삼촌인 후안 베르난디노(Juan Bernardino)를 찾아갔다. 그의 삼촌은 오래도록 병을 앓고 있었고 그런 그를 후안이 돌보고 있었다. 후안의 삼촌은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기에, 후안에게 다음 날까지 신부님을 모시고 와서 자신에게 병자성사를 받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12월 12일 아침, 후안은 성모님과의 약속을 떠 올렸지만 삼촌의 상태가 더 위중하다는 생각이 들어 병자성사를 해 주실 신부님을 모시러 집을 나섰다. 후안은 테페약 언덕에 이르자 그 길에서 성모님을 만나게 되면 제 때에 신부님을 못 모시고 가게 될까봐 다른 길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모님이 그의 앞에 나타나시자 후안은 성모님께 자신의 삼촌이 위급하니 신부님을 모시러 가게 해 달라고 간청 하였다. 


그러자 성모님께서는 “나의 아들아, 지금은 나의 말을 들어라. 걱정하지 말고 다른 일로 조금도 마음이 혼란해지지 않도록 하여라. 병 때문에 두려워하지도 말고 또 다른 어떤 슬픈 일이 일어날까, 어떤 고통이 생길 것이라고 두려워 말아라.  왜? 너는 나의 그늘 밑에, 내 보호 아래 있으려 하지 않느냐?  내가 생명과 건강이 되어 주지 않느냐?  걱정하지 마라. 네 삼촌의 병도 걱정하지 마라. 네 삼촌은 지금의 병으로 죽지 않을 것이며, 그의 건강은 회복되어 지고 있다 (후에 후안의 삼촌의 병이 성모님께서 말씀 하신대로 완쾌되었음을 확인함) 하시며 그를 위로해 주셨다.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지금 바로 저 언덕 위로 올라가거라. 너는 거기에서 장미꽃이 만발하게 피어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너의 틸마(망토) 위에 담을 수 있는 대로 장미를 모아가지고 내게로 가지고 오너라.” 



그 언덕은 메마르고 돌무더기와 가시 돗힌 선인장만 무성한 곳이었기에, 후안은 성모님의 말씀에 의아했지만 시키는 대로 바위 언덕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 곳엔 이 전에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장미꽃들이 후안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놀란 후안은 성모님의 지시대로 자신의 망토를 벗어 그 위에 장미꽃을 한 가득담아 성모님께 돌아왔다. 성모님은 후안이 꺽어온 꽃들을 가지런히 옷자락에 놓아주시고는 주교에게 가지고 가라고 말씀을 하셨다. 성모님으로 부터 증표를 얻게된 후안은 기쁨에 겨워 망토를 감싸 안고 주교관으로 달려갔다. 



한편 주마라가 주교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성모님께서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무엇인가 가슴에 가득안고 뛰어온 후안이 자신앞에 다가와서 들고 온 틸마의 장미꽃들을 마루 위에 쏟아 부었다. 주교는 한 겨울인데도(이 부분은 한국정서에서 이해했기 때문에 잘못 번역이 된 것 같다. 테페약 지역은 적도에 가까운 아 열대성 기후로 여름에 건조하고 겨울에도 따뜻하다) 후안이 멕시코 지방에서 볼 수 없는 스페인 카스티야 지방에서 나는 특별한 장미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장미를 담아온 후안의 틸마(망토)에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바로 그의 망토에 성모님의 모습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멕시코에는 인쇄 기술이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도 없었고 더 더욱 신기한 것은 후안의 망토는 선인장 풀에서 뽑아낸 실로 짠 것이어서 상당히 거칠어 섬세하게 그림을 그려 넣을 수 없을 정도로 표면이 거칠다고 한다). 


틸마에 박힌 성모님의 모습을 본 주교는 무릎을 꿇고 그 자리에서 천상의 선물에 감사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올렸다.



한편 성모님의 치유로 건강을 회복한 후안의 삼촌은 성모님의 방문을 받았다. 성모님께서는 "나는 과달루페의 성모라고 불리기를 원한다."라고 하시며 후안의  삼촌 에게 메시지를 주셨다. 이 명칭은 아즈텍 인디언 말인 나후탈어 전하여 진 것인데 “뱀의 머리를 짓밟은 분”이라는 뜻이다. 사실 성모님은 인디언들을 위해 뱀을 짓밟으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인디언들은 세 가지 모양의 뱀의 형상과 조각들을 숭배하고 온갖 잡신들을 섬겼으며 그 신들에게 사람을 산 제물로 바치고 있었다. 






그 후, 마침내 테페약 언덕에는 성당이 세워졌고, 디에고의 망토는 그 성당에 모셔졌다. 이후 순례 객들이 찾아오면서 성모님의 과달루페 발현 이후 10년도 안되서 천9백만 명 이상의 원주민들이 가톨릭 으로 개종했다. 또한 성모님의 발현사건과 함께 후안의 틸마에 새겨진 성모님의 모습에서 주는 인디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상징적 의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개종했으며 그 후, 멕시코 외에 북미, 중미, 남미까지 전 미주지역으로 확산 되었다. 



초기, 정착에 어려움을 겪던 스페인 사람들은 이 후 계속 남아 교회의 가르침을 펼쳐 나갈 수 있었으며, 과달루페 성모님은 멕시코인들에게 정신적 요람이 되었고 현재까지도 전 미주의 보호자이며 '천주의 모친'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2. 발현 목격자 


성 후안 디에고(St. Juan Diego)는 1474년에 쿠아토아친(인디언 이름으로 '말하는 독수리' 라는 뜻) 이름으로 쿠아우틀리트란(Cuautlitl?n,현재 멕시코시티 일부)에서 태어났다. 그는 치치메카인으로 아나후악 계곡(An?huac Valley)에 모여 살던 문화적으로 진보된 인디언 원주민의 일원이었다.




그는 그의 나이 50살이 되던 해,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초기에 파견한 신부였던 피터 다간드(Peter da Gand) 신부로 부터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된다. 그는 1531년 12월 9일에 현재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 끝자락에 있는 테페약 언덕(Tepeyac Hill)에서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했다.


[그림] 테페약 언덕위에 세워진 성당 



발현 이후, 후안 디에고는 주교의 승인으로 성모님의 모습이 담겨진 기적의 망토가 전시되어 있는 성당 근처에 있던 작은 오두막에서 평생을 보냈으며, 교회를 관리하고 성모님의 모습으로 보기위해 찾아오는 수많은 초기 순례 객들을 돌보는 일로 생을 마쳤다.


[그림] 후안이 살던 오두막과 같은 성당 주변의 오두막


후안 디에고는 1555년에 1차로 멕시코의 두 번째 추기경이었던 알론소 데 몬투발 추기경과 대교구 주교단에 의해 기적사건이 인정되어 비공식적으로 시복되었고, 2차로 1666년 2월 18일 부터 3월 22일 까지 다시 1723년 란지에고 이 이퀼라스(Lanziego y Eguilaz ) 추기경에 의해 정식 조사와 연구를 통해 시복되어 복자품에 올랐으며, 마침내 2002년 7월 3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3. 대립과 갈등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 의해 신대륙이 발견된 후, 1519년 7월, 스페인인들이 이차빨라빤 (Itztapalapan)에 도착했다. 1520년 스페인은 무력을 앞세워 멕시코 및 신대륙의 일부를 점령하고 신대륙을 식민지화 시켜나갔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원주민들을 노예화 시키고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기 때문에 원주민들로 부터 많은 반감을 사고 있었다. 1521년 페드로 데 알바라도(Pedro de Alvarado)가 마딴사 데 똑스까뜰(Matanza de T?xcatl)에서 멕시코 원주민들을 공격했고 이 사건으로 인해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에게 적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반면에 스페인은 원주민을 유화시키고 새 식민지에 교회를 세우기 위한 정책으로 프란치스꼬회 수도회를 파견했다. 당시 스페인에서 선교에 중추적 역할을 하던 후안 데 주마라가(Juan de Zumarraga)주교를 파견하여 신대륙에 교회를 세우는 일을 시작하였다. 주마라가 주교는 아즈텍 인디언들의 수도 중심에 교회를 건설하고 신대륙을 성모님께 봉헌했다. 하지만 스페인이 멕시코를 점령하고 식민지화 하면서 이 곳에 거주하던 원주민인 인디언들과 스페인인과의 갈등은 점점 더 커갔다. 이런 대립 상태가 지속되며 긴장이 고조되자 교회는 자신들이 처한 극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선교와 기도에 매달렸고 그 기도의 응답은 성모님의 발현으로 꼭 10년 만에 테페야크 언덕에서 인디언 원주민을 통해 이루어졌다.



성모 마리아의 발현은 새 민족이 형성되는 초기에 그리고 그리스도교가 정착하기 위해 뿌리를 내리던 시점에 일어난 것으로 그 의미가 중요하다. 이 발현 사건은 후안에게 내린 메시지로써 완성되었는데 스페인 사람이 아닌 원주민을 통해 그들을 이해시키고 그들에게 하느님을 알도록 만든 큰 사건이었다.




4. 발현의 의미


 

1531년 12월 9일 멕시코 과달루페에 성모님께서 처음으로 발현을 하셨다. 폴투갈의 파티마 발현보다 327년 전에, 프랑스 루르드 발현 때 보다 무려 386년 전에 발현하셨다. 과달루페 성모 마리아께서는  쿠아우틀리트란(Cuautlitl?n) 출신 인디안이었던 후안 디에고에게 나타나셔서 테페약 산에 성당을 지으면, 멕시코 땅의 모든 백성들의 안고있던 아픔과 불안, 슬픔을 위로해주고 사랑과 자비를 베풀겠다고 메세지를 전하셨다. 이후 성모 마리아께서는 다섯 번이나 후안 디에고와 그의 삼촌에게 발현하셨다.


과달루페 성모 마리아는 자신의 모습을 후안 디에고의 틸마 (인디언 남자들이 어깨 위에 걸쳤던 망토 모양의 선인장 줄기로 짠 모포)에 남겼다. 성화 속 마리아의 모습은 거무스름한 갈색 피부에 인디오식 치마를 입고 있다. 또한 하늘을 상징하는 청자색 망토를 걸치고 있는데, 망토에는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날짜와 별자리를 상징하는 총 46개의 별들이 수 놓아져 있었다. 아즈텍 인디언들은 천체의 별자리를 보고 알수있을 정도의 천문학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틸마에 새겨진 별자리 만 보고도 그 것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틸마에 새겨진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의 과달루페 성모 마리아 성화는 신기하게도 48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원래의 모습으로 존돼 있다.


성모 마리아의 발현 후 멕시코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후안 디에고의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은 인디오들이 세례를 청하였고, 병자들이 성모 마리아의 도움으로 건강을 회복했다. 특히 과달루페 성모 마리아는 육체적 치유의 기적보다는 영적 치유의 기적을 많이 일으켰다. 순례자들이 성모 마리아에게 위로를 받아 삶의 힘을 얻었고 죄인들이 회개했으며, 냉담자들이 고백성사를 보기 위해 긴 줄을 섰다. 이런 일은 수없이 많았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영혼의 치유는 더 많이 이뤄지고 있다.


발현사건이 새 민족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에 일어났다는 사실은 멕시코인 들의 발현의 의미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된다. 과달루페 성모발현은 멕시코인 들의 의식 속에 깊이 자리하게 되었고 국가 역사의 중요한 단계마다 성모님은 당신 백성들을 보살펴 주셨다. 


 


과달루페 성모님은 멕시코의 정신적 요람이며 보배다. 이에 관하여 크리스토퍼 렌저 신부는 "후안 디에고의 외투에 기적적으로 새겨진 성성을 보면, 마리아께서는 당신이 임신했음을 보여주는 띠를 두르고 계신다. 멕시코 원주민들은 이것을 마리아가 아직 낳지 않은 아들과 함께 그들에게 오셨다는 표시라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의미를 보여주는 책으로 생각한다. 선교사들은 성상의 도움으로 믿음의 진리를 가르칠 수 있었고, 원주민들은 교회로 인도하였다."


"성모 마리아가 선택하신 장소인 테페약 언덕은 당시 인디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 이었다. 테페약은 이교신의 모친을 위해 신전을 세웠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성모님이 바라셨던 것은 이교신이 아닌 참 천주의 성전을 그 곳에 세우는 것이다."


"인디언들은 그녀가 참 천주의 어머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마리아를 '토난친' 즉 '우리 어머니' 라고 부르는데, 때로는 '천주의 모친' 이란 의미로 '테오토난친'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과달루페 성모 마리아는 1737년 교황의 정식 승인 이전에 멕시코 주교들에 의해 멕시코시티의 주보성인으로 모셔졌으며, 1754년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과달루페 성모 마리아를 당시의 멕시코(현재 미국 서부 아리조나 주 부터 중미의 코스타리카까지)의 주보성인으로 승인했다. 1910년에는 교황 비오 10세에 의해 남미 주보성인으로 또한 교황 비오 11세는 1935년 신자들의 요청에 따라 필리핀의 주모성인으로 선언했다.

 


5. 현재의 상황


오늘날 과달루페 성모발현 장소는 연간 1,000만 명이 순례하는 성지로 사랑받고 있다. 테페약 언덕에는 1709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지침에 따라 두 번째로 세운 현대식 대성전이 옛 성전 옆에 나란히 건립됐고 이 후, 과달루페 성모님은 멕시코의 수호자로 선포됐다.




 

과달루페는 모든 멕시코인 들의 집이라고 할 정도로 그들은 이곳서 당신의 모든 자녀들을 위하여 전구하시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만나 뵙는다. 많은 멕시코인 들은 가능하면 자주 이곳을 순례 한다고 한다. 과달루페에 테페악 언덕에는 세계 각지에서 순례를 온 순례자들을 돌보는 사목활동도 활발하다.








6.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79년 1월을 기하여 당신의 첫 번째 사목방문을 "믿음의 순례"라고 하시면서 과달루페 성모님의 모성적 보호와 도움을 간구하기 위하여 이곳을 찾으셨다. 그리고 마리아께 새롭고도 완전한 순종을 약속하시고, "나는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고 하면서, 라틴 아메리카 복음화의 장래를 당신의 손에 맡겨 드린다고 말씀하셨다(1979년 1월 25일,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또 과달루페 성모 대성전에 드린 미사 강론에서(1월 27일), 교황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후안 디에고가 당신을 일컬어서 '테페약의 사랑스런 부인'이라 부른 이래, 당신은 과달루페의 어머니가 되셨고, 멕시코 주민들을 크리스천 생활로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1979년 1월 28일, 푸에블라에서 개최된 제3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 총회" 개막식에서, 교황 성하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들의 이 집회는 멕시코를 비롯하여 라틴 아메리카의 모든 나라가 교회의 어머니로 섬기고 있는 과달루페의 성모님이 영적으로 함께하시는 이 곳에서 거행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성모님께서 '복음화의 별'이 되시고 인도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79년을 시작으로 1990년, 1999년, 2002년 등 네 번이나 과달루페 성모성지를 순례했으며, 마지막 순례 때인 2002년 7월 31일에는 발현을 목격한 후안 디에고(1474~1548)를 시성했다.

 

글. 번역 : 권요셉



[그림] 남가주 애나하임 성 토마스 한인천주교회의 성모상  - 권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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