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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崔瑩:1316-1388)
고려 말기의 명장이며 청빈한 충절의 표상이다. 무민공 최영장군은 1316년 최청의 현손인 사현두정 최원직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은 어린 영에게 "너는 앞으로 관리가 되어도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고, 황금 보기를 돌같이하라" 고 가르쳤다. 1352년 조일신난을 평정하여 호군에 이르며, 원나라의 요청으로 장사성의 난을 토벌하고 압록강에서 홍건적을 격퇴하는 등 왜구의 침략을 막아내고 요동정벌을 시도하였던 고려말의 명장이다.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은 이성계에게 잡히어 고봉현(지금의 고양군)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73세를 일기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 내가 살아오면서 한 번이라도 사리사욕을 챙겼다면 내 무덤에 풀이 날 것이요, 오직 나라와 겨레를 위해서만 일해 왔다면 내 무덤에 풀이 단 한포기도 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유언을 남겼는데 과연 장군의 무덤에는 풀이 한 포기도 나지 않아 붉은 무덤이라고 불렀다.
홍북면은 노은리에 조선왕조 세종의 사육신 중 한 분인 매죽헌 성삼문학사와 더불어, 대인리에 최영 장군 출생한 영지로서 사당이 건립되어 있다.
첫댓글 이거ㅏㅅ도,이제는 안 나오는디요!!!!!!!!!!!!!!!!!!!!!! 이렇게는 저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