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재현에 성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었던 때 일이 생각난다. 1982년 무렵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때는 강진군에서 아직 청자사업소가 만들어지기 이전이었기에 추진위원회가 여전히 활동하고 있었던 때였다.
이때 KBS에서 ‘고려청자가 현대기술로 재현이 가능한 것인가’를 놓고 방송을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방송국에서는 청자를 제작하는 과정을 모두 영상으로 담고 재현 성공여부를 촬영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방송국에서는 강진군과 접촉하기 이전 도자기로 유명한 이천이나 여주 등과 협의를 진행했던 것으로 나중에 알게 됐다. 하지만 프로그램 자체가 재현 성공 여부에 초첨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성공을 장담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방송을 통해 검증한다는 것은 여간 부담가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앞서 교섭한 곳들에서 거절을 했던 탓에 강진군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이때 이 프로그램이 정부와 함께 진행했던 프로그램이었던 탓에 정부에서는 청자재현에 성공한 강진군에서 한번 해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강진군은 강진청자재현사업추진위원회측에 이 같은 내용은 전달했다. 당시 사실상 운영을 도맡아서 하고 있었던 나는 “지금까지 하던 방법대로 한다면 가능하다”라고 답변을 해 방송출연이 결정됐다. 이때 조기정 선생은 개인적인 일정으로 참여하지 못해 내가 거의 모든 청자재현을 담당하게 됐다.
방송당일날 정양모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과 방송국 아나운서가 강진을 찾아왔다. 이들은 1호가마에서 방송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날 2명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봤는데 표정이 좋지 못했다. 강진을 찾아오기 전에 목포의 그릇전문 업체와 함께 전기가마를 통해 청자 재현 실험을 했던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결과는 실패였다.
나는 평소대로 도자기를 만들고 유약을 바르고 가마에 넣었다. 이때 방송국에서는 서울대를 비롯한 유명 교수들이 연구를 통해 만든 유약을 2ℓ병에 담아 가지고 왔다. 그래서 가마에는 내가 직접 만든 유약을 바른 청자와 교수들이 만든 유약을 바른 청자 2가지가 차례로 들어갔다.
이때 국내 유명 대학교 연구진이 함께 찾아왔는데 가마의 온도를 측정하겟다고 온도계를 가져온 것이었다. 나는 청자가 구워지는 모습을 살펴보며 유약이 녹아내리는 순간 약 1300도 정도일 것이라고 연구진에 이야기했고 온도계로 측정한 결과 1320도가 나왔다. 연구진도 정확한 온도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후 나는 가마에 들어가 구워진 청자를 꺼내기 시작했다. 다른 유약을 바른 청자들을 차례로 정래해서 순서대로 배치해 가마밖으로 꺼내놓았다. 청자가 모두 꺼내진 후 정 실장과 방송국 아나운서는 나를 잠시 밖으로 나가있으라고 하곤 안에서 구워진 청자를 유심히 살펴보며 총평을 했다.
청자 전문가였던 정 실장이 2가지 유약을 바른 청자를 살펴본 결과 결과는 강진에서 만든 청자의 압승이었다. 유명 교수진들이 연구를 통해 가져온 유약을 바른 청자는 겉면에 검은 반점이 생겼고 잿빛가까운 색이었다. 반면 내가 직접 만든 유약을 바른 청자는 평소 성공적으로 출토됐던 선명한 비취빛 모습 그대로 나온 것이었다.
이때 방송이 끝난후 청자발굴이후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정 실장은 나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그동안 연구와 노력을 많이 한 것을 알 수 있었다고 격려해주면서 앞으로도 열심히 해서 좋은 청자를 만들어달라고 당부를 남겼다. <정리=오기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