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자들에 의해 그림의 표현 방식이 그림의 대상이나 주제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짐에 따라 예술가들은 자유를 얻게 되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야만 한다는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예술가들은 그들만의 독자적이고 독창적인 표현 방법을 찾아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됐다. 현대미술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은 이처럼 다양한 표현 방법이 짧은 기간 동안 지속되다가 사라지는 생성과 소멸의 부침이 거듭된 까닭이다.
다양하고 복잡하게 펼쳐진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이 하나 있다. 서로 관련되면서도 대립하는 요소들의 모임으로 분석하고 파악하는 것이다. 현대미술은 시대에 따라 서로 대비되는 양상으로 형성되어 왔다.
고전주의적 이성과 정확성 대(對) 낭만주의적 감성과 역동성이, 순수 기하학적 형식주의 대 절대적인 주관성의 세계가, 과학물질문명의 찬미나 합리주의적인 사고 대 신비주의적이며 비합리주의적인 경향이 서로 대비되는 양상이었다.
감각적 경험에 지성적 원리 결합
이 중 큰 물줄기 하나를 합리적·형식주의적 흐름이라 한다면, 또 다른 하나는 표현주의적·주관적 흐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줄기의 시작은 인상주의에 한계를 느끼고, 각기 다른 방향에서 인상주의를 넘어서려 한 세 명의 화가로부터 비롯되었다.
후기 인상주의로 특징짓는 세잔, 고흐, 고갱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이 세 작가는 전개 방향이 각자 다르긴 했지만 인상주의에 나타난 그림의 제재로부터 이탈하고자 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림은 선(線)·면(面)·색(色)의 구성으로 이뤄진 조형세계라는 관점에서 세잔은 지적(知的)이고 합리주의적인 조형세계를 창조하려 했고, 고흐와 고갱은 약간 성격을 달리하긴 하지만 주관적 감정이나 인간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려 했다.
평생 동안 자연 속에서 빛의 변화에 따른 색의 변화를 탐색했던 모네는 ‘잡을 수 없는 신비한 자연의 모습’이란 한탄을 유언으로 남기고 죽었다. 세잔(Paul C-znne, 1839∼1906)은 모네의 이 말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인상주의자들이 추구했던 눈이 받아들인 감각세계의 혼란에 구성적이며 지적인 질서를 부여하고자 했다. 대상의 표면은 변한다 하더라도 입체적인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다.
세잔은 감각적 경험과 지성적 원리가 결합된 미술을 추구했다. 그는 견고하고 영구적인 모습의 물체들로 화면을 구성하고자 했다. 그는 “모든 자연 속의 대상은 원통, 원추, 구로 환원 처리해 나타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으며, 그 나름의 독특한 공간 구성법을 실현했다.
[그림 1]은 세잔의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이다. 이 작품을 보면 우선 인상주의 그림들에 비해 단단하고 견고해 보인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그렇지만 그 안에는 종전의 그림들이 지켜 왔던 규칙들로부터 벗어나 구도상 왜곡된 곳이 많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림 1] 세잔,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 1895∼1900년, 캔버스에 유채, 74×94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
꽃병은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고, 꽃병 왼쪽 오렌지를 담은 접시는 그 자체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꽃병과 식탁보와의 관계에서 보면 홀로 떠 있는 듯이 보인다. 그 아래 사과를 담은 접시는 곧추세워져 있어 사과가 굴러 떨어질 것 같다. 그리고 식탁보 밑 왼쪽 테이블 면은 식탁보를 가로질러 나타난 오른쪽 테이블 면과 일치하지 않아 마치 두 개의 테이블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각각의 물체 묘사에 충실한 세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보이고 있고, 화면이 꽉 차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세잔이 그림의 공간 구성에서 각 대상 물체들을 충실하게 담아냈고, 각각의 소재를 기하학적인 명확성을 바탕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원근법상 어떤 하나의 대상에 초점을 두고 있지 않아 그 어떤 하나의 요소가 두드러지지도 않는다.
세잔의 공간 구성은 하나의 시점을 중심으로 그림의 구성요소들을 모아 전체적인 조화를 꾀했던 원근법적 공간 구성과 다르다. 이를 두고 세잔의 그림이 인간의 시점을 중심으로 한 원근법적 조형세계로부터 대상 물체 중심의 조형세계로 이행했다고 말한다. 세잔은 이 방법을 통해 물체에 보다 충실하고 전체적으로 견고한 사물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다고 평한다.
세잔의 그림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색을 통해 형태를 확립시키고 충실하게 묘사해 공간 구성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세잔은 데생과 색채가 상호보완적이고 조화를 이룬다고 보고 있다. 색의 명암이나 색조 간의 조화 및 대조를 통해 사과와 오렌지의 양감을 나타내려 하고, 황갈색과 청록색의 반복적 교차와 조각조각 이어지는 색의 띠들로 배경의 기복과 양감을 만들어 내고 있음도 볼 수 있다.
[그림 2]는 세잔의 <큰 소나무가 있는 생트 빅투아르 산>으로 이러한 색의 특징이 그 어느 작품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는 따뜻한 느낌의 황색은 전진감(前進感)을, 차가운 느낌의 청색은 후퇴감(後退感)을 갖는다는 점을 바탕으로 청색과 황색을 번갈아 교차시킴으로써 이 풍경화의 원근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왼쪽의 큰 소나무가 그림의 출발점이 되고 있지만, 멀리 산을 향해 뻗어나간 나뭇가지의 방향이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하여 공간적 깊이감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림 2] 세잔, <큰 소나무가 있는 생트 빅투아르 산>, 1887년, 캔버스에 유채, 런던, 코털드 인스티튜트. |
또한 산의 원뿔 형태가 두드러지는데, 이는 그가 기하학적 원리를 근거로 묘사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색의 띠나 조각들을 중첩시키고 반복적으로 표현해 전체적으로 굴곡이 있고 기복이 느껴지는 화면을 연출해 내고 있다.
이와 같은 그림들을 통해 세잔은 인상주의자들의 그림에서 나타났던 무형태성과는 달리 견고한 형태감을 되살려 놓고 있으며, 그림 속의 형식적 구조에도 주목하고 있다. 인상주의로부터 시작된 그림의 표현 방법에 대한 관심을 지적이고 기하학적인 조형원리를 바탕으로 한 형식구성으로 돌려놓았다. 즉 눈에만 의존하던 종래의 미술과는 달리, 사유를 통한 사물의 이해와 인식을 화면에 투영함으로써 새로운 미술 양식의 문을 열었다. 세잔 이후 화가들은 그림을 통해 정신적 사유와 이성적 합리주의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입체파 화가 피카소
그 첫 번째 그룹이 입체파이다. 입체파 그림은 세잔이 강조한 형식적 구조와 대상 물체에 대한 조형적 관심을 직접적으로 이어받은 미술 양식으로 평가된다.
입체파는 같은 시기에 전개된 야수파나 표현주의처럼 인간의 내면세계를 다루기보다는 대상물체에 대한 조형적 탐구와 이를 통한 형태와 화면 구성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상물체를 전후(前後) 좌우(左右) 360도 각도에서 바라보고, 그 모습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분석하고 해체한 후 화면 위에 다시 재구성해 놓는 방식을 취한다. 하나의 시점으로는 대상의 조형적 형태를 완전히 나타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후 서로 다른 모습들을 재조합해 놓으려 했다. 그런 점에서 각각의 대상물체에 충실하고자 했던 세잔의 표현 방법을 한층 더 심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림 3]은 피카소가 그린 최초의 입체파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이다. 이 그림을 보면 화면 왼쪽 인물과 오른쪽 인물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왼쪽 인물에 비해 오른쪽 인물들이 훨씬 분석적이다. 오른쪽에 있는 두 여인의 얼굴에서 아프리카 가면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이는 당시 유럽의 예술가들이 그림의 표현 방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아프리카 미술에 나타난 단순한 구조와 형식구성 같은 것을 자신들의 작품에 응용하기 시작했음을 알려준다.
[그림 3]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1907년, 캔버스에 유채, 243.9×233.7cm, 뉴욕, 근대미술관. |
세잔의 그림에서 보인 물체의 흔적들은 이제 기하학적인 화면 구성 속에 용해되어 들어간 듯이 보인다. 세잔을 중심으로 한 후기 인상주의가 감각적이고 사실적인 묘사에 지성적인 요소를 가미하고자 했다면, 입체파는 감각적인 측면보다 지적이고 기하학적인 화면 구성에 치중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사실적인 묘사보다 추상적인 형태에 익숙해 있던 아프리카 원시 미술의 형식구성이 피카소의 이 작품에 하나의 본보기로 적용된 것이다.
대상을 해체 후 조립
[그림 4]는 <아비뇽의 처녀들>보다 2년 후에 제작된 피카소의 <앉아 있는 누드>라는 작품이다. 이 그림 속 인물들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해체돼 있어 마치 기하학적 형태들로 만들어진 마네킹처럼 보인다. 언뜻 보기에는 전혀 의미가 없는 형태들이 뒤죽박죽 얽혀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림 4] 피카소, <앉아 있는 누드>, 1909∼1910년, 캔버스에 유채, 런던, 테이트 갤러리. |
[그림 5]는 입체파의 길을 걸었던 브라크(Georges Braque, 1882∼1963)의 <기타를 가진 여인>이다. 이 그림은 색채만 다른 기하학적 형태들이 뒤죽박죽으로 쌓여 피카소 작품보다 더 기묘한 공간적 성질을 보여주고 있다. 입체파 화가들의 그림은 누구의 작품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하게 보이며, 도대체 ‘무엇’을 나타내려 했는지 보는 이들을 당혹스럽게 하기도 한다.
[그림 5] 브라크, <기타를 가진 여인>, 1912년, 캔버스에 유채, 파리 국립근대미술관. |
그러나 우리가 전통적인 미술을 바라보던 관점에서 벗어나 이 작품을 본다면 어떨까. ‘무엇을 그렸는가’라는 관점에서 보지 말고, ‘어떻게 화면을 구성해 내고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전혀 다른 미술세계를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그림 속에 있는 하나의 형태나 부분을 선택해서 보자. 그리고 그것을 기준으로 다른 형태들이나 부분들이 앞에 있는지 뒤에 있는지부터 또 그것들이 어떤 관련성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다음에는 다른 형태나 부분을 새로운 기준 요소로 삼아 똑같은 작업을 해 본다면 그림 속에서 보이는 무수한 형태변화와 다양한 관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입체파 그림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림의 조형적 문제나 공간구성에서 상대적인 관계나 성질에 대한 그들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똑같은 대상을 어떤 관점을 갖고 보느냐에 따라 의미들이 달라질 수 있듯이 그들이 추구한 공간의 문제는 이런 상대적인 성질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무엇을 설득력 있게 재현할 것인가’라는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그에 따라 그림의 제재보다는 그림이 그려진 방식에 관심을 갖고 나타내려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신문지와 벽지를 조형요소로 사용
그림의 표현 방식에 관심을 가진 입체파의 생각은 미술계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림이란 그림 밖에 있는 외부세계 대상들을 설득력 있게 묘사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림은 그림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전환하게 했다. 즉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입체감을 나타낸다는 목적으로부터 벗어나 2차원의 평면에 형태와 색채를 구성해 내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변화된 것이다. 이처럼 그림이 3차원적 입체감을 연상시키는 환영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짐에 따라 예술가들은 지금까지 미술에 있어 자명한 경계로 생각해 온 것들로부터도 자유롭게 되었다. 테크닉과 미술에 대한 일반적인 접근에 있어서도 진보를 거듭하게 되었다.
[그림 6] 피카소, <기타>, 1913년, 목탄 크레용 잉크 및 콜라주, 65×50cm, 뉴욕, 근대미술관. |
[그림 6]은 피카소의 <기타>라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신문지와 벽지 조각들이 선과 색처럼 조형 요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일상생활 속의 재료들을 그림의 조형 요소로 사용하는 것을 오브제라고 한다. 이것은 화가들이 획득한 자유가 그림의 구성 방법뿐만 아니라 그림이 꼭 물감과 같은 전통적인 재료들로만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신문지와 벽지 같은 일상용품들을 그림의 조형요소로 사용함으로써 미술 재료의 한계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