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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원문보기 글쓴이: 한길
향주삼덕(向主三德)과 복음삼덕(福音三德), 고전1:18-25.
사순절 기간입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빠지면 기독교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이 십자가를 예나 지금이나 싫어하고 적대시합니다. 그래서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여겨(1:23)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심지어 주님의 제자들도 십자가의 길을 가야 부활에 이른다고 하는 예수님을 만류했고 특히 베드로는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항변했습니다(마16:22). 주님은 항변하는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요 그리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라고 책망했습니다.
즉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하나님과 관계없고 구원과 관계없는 사탄이 주도할 수 있는 종교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현재의 우리의 신앙도 어디에 서있는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왜 주님의 복음의 핵심입니까? 주님의 복음에 향주삼덕(向主三德)과 복음삼덕(福音三德)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향주삼덕(向主三德)은 하나님께로 향해가는 세 가지 덕행인 믿음, 소망, 사랑을 말합니다. 복음삼덕(福音三德)은 복음대로 살기를 권고하며 예수님께서 가르친 세 가지 덕행인 청빈(淸貧, 순결(純潔), 순명(順命)을 말합니다.
향주삼덕(向主三德)은 신앙의 목표라고 한다면 복음삼덕(福音三德)은 여기에 이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향주삼덕(向主三德)과 복음삼덕(福音三德)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근본으로 합니다. 물론 이 두 길은 성령께서 인도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길입니다.
향주삼덕인 믿음, 소망, 사랑은 십자가 다음에 부활하는 주님의 복음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역시 복음삼덕 또한 복음대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살려는 청빈(淸貧, 순결(純潔), 순명(順命)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갈 수 없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향주삼덕(向主三德)과 복음삼덕(福音三德) 모두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나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고통의 길입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했습니다.
기독교의 영성의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부활의 길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인지 어떻게 여기에 부활이 있는지 향주삼덕인 믿음, 소망, 사랑과 복음삼덕인 청빈 순결 순명을 하나씩 생각해 보겠습니다.
* 십자가는 믿음입니다. 기독교는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도 믿음으로 큰일을 이루어냅니다. 자기가 하고자하는 일을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큰일을 이루어냅니다. 기독교는 그들과 같이 세상의 일도 크게 이룰 수 있고 인간의 생로병사의 궁극적인 문제, 영생의 문제도 해결해 낼 수 있습니다. 믿음은 영성생활의 기본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모세,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다윗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모세를 예를 들어보면 80세가 되어 아무 능력이 없을 때 하나님은 그를 불러 출 애급을 명합니다. 모세는 인간적으로 늙어 아무 힘이 없었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순종했을 때 지팡이 하나로 그 대 출 애급의 역사를 이루어냅니다. 모세가 한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것뿐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모세의 방법은 세상의 지혜도 아니고 총명도 아닙니다. 미련한 것이요, 거리끼는 것입니다(1:23).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10가지 재앙을 통해 출애굽 하게하셨고 홍해를 가르고 출애굽을 성공하게 합니다.
모세는 도구만 되었고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 성경의 믿음의 사람들은 다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믿고 따르기만 했습니다. 왜 이런 믿음의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습니까? 인간의 방법을 믿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기적의 신비가 나타나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1:24-25).”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믿음은 절대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저주의 십자가까지 하나님의 말씀, 명령으로 믿었습니다. 절대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지신 십자가로 일류를 구원해냈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때 믿음을 찾을 수 없다고 한탄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믿음으로 부활 영생의 구원에 이르고 구원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마지막 때 믿음이 없음을 한탄하셨습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18:8).’ 마지막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깊히 성찰해야 합니다. 영성생활은 이 믿음의 훈련의 생활입니다. 불가항력적인 상황,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믿음으로 참고 기다려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을 체험해야 합니다. 믿음체험은 십자가체험이며 부활체험입니다.
* 십자가는 소망입니다. 예수님의 소망은 십자가 앞에서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안했어도 죽음이후에 하나님께서 부활하게 하실 것을 믿는 소망이었습니다. 부활영생을 믿는 소망이었습니다. 절대 소망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망입니다.
기독교인은 소망의 사람들입니다. 절대 절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절망 뒤에도 부활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소망이 그것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인내와 순종과 믿음으로 소망을 체험해야합니다. 죽기까지 순종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체험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전3:7이하에서 이 부활의 소망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고전3:7-9).”라 하였습니다. 또 10절에 이 소망으로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본받아’ 라 했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본받는 이런 소망의 신앙으로 위대한 세계복음화를 이루어냈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 다음에 부활로 반드시 이어지게 합니다.
* 십자가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저주의 죽음인 십자가까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아드렸습니다. 사랑은 이렇게 십자가와 부활을 통째로 믿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내게 유익을 주는 것만을 사랑으로 여깁니다. 다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우리에게 궁극적인 유익을 줍니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주님은 십자가까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믿었습니다. 이런 사랑관을 가질 때 인간의 삶 속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의 영성으로 살 때 내가 어떤 형편과 처지에 처하든지, 다른 사람이 나를 속이고 배반하고 다 떠나고 괴롭혀도 슬프거나 외롭지 않습니다. 절망하지 않습니다. 분노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주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소망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이렇게 향주삼덕인 절대믿음, 절대소망, 절대사랑으로 십자가와 부활의 길을 가는 것이 기독교인의 영적여정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주님께서 말씀하신 향주삼덕인 절대믿음, 절대소망, 절대사랑의 길을 따라 가야하는 데 가지 못하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뿐만이 아니라 사도들, 기독교역사에서 주님을 따르려는 자들은 향주삼덕을 위해 복음삼덕인 청빈, 순결, 순명의 길을 갖습니다. 특히 수도원 전통에서 이 복음삼덕을 수도생활의 원칙으로 정하고 영성생활의 근본으로 삼았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복음삼덕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져야하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 십자가는 청빈입니다. 주님께서 산상수훈에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 심령이 가난하면 천국이 저희 것이라 했습니다.
또 물질적인 부자에 대해서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막10:24-25).” 말씀하셨습니다.
자본주의, 황금만능주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물질에 대한 애착으로 주님의 참 복음, 하늘의 신령한 것을 얻기 어렵습니다. 심령의 가난뿐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무소유, 가난을 추구한다면 우리의 영성은 하늘의 신령한 것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향주삼덕에 이르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청빈의 행복을 체험해야 합니다. 청빈의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에 부활영생의 길은 환하게 빛날 것입니다.
* 십자가는 순결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또한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 간음한자는 돌로 쳐 죽여야 하는 것이 구약의 법입니다.
욕심을 가지지 않고 마음의 청결을 갖는 것, 음란한 시대에 사는 자들이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근원적인 순결함을 지키는 것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러나 이 순결함 속에 하나님을 보는 천상의 행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천상의 행복을 통해 이런 순결함을 지키는 것이 향주삼덕에 이르는 길이요 영성생활의 근본입니다.
* 십자가는 순명입니다. 주님은 죽까지 순종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5-11).”
주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했습니다. 성경은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님을 지극히 높여 뛰어난 이름을 주셨고, 상천하지의 모든 권세가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셨고, 예수를 주라 시인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증언합니다. 이것이 순명의 길입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주님께서 얻으셨던 부활의 영광이 있습니다.
향주삼덕(向主三德)은 기독교인이 지향해야하는 절대믿음, 절대소망, 절대사랑입니다. 이 삼덕을 얻기 위해 복음삼덕(福音三德)인 청빈, 순결, 순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향주삼덕(向主三德)과 복음삼덕(福音三德)의 길은 인간으로 이 길을 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십자가를 지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만 하늘의 온전하고 신령한 복이 있습니다. 이 영성의 길을 갈 때 성령께서 임하셔서 권능을 주심으로 이길을 가게 하시고 하늘과 땅의 신령한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이 길을 추구하는 것이 예수 영성의 길입니다. 이 영성의 길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이런 은혜와 축복이 충만하게 임할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평생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중요한 십자가의 도를 가르치고 철저히 안내받는 경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복음의 핵심이 이 십자가의 도임을 깨닫게 해 주시고 또한 이공 이세종선생님과 이현필 선생님의 삶을 보면서
또한 그 분들의 제자들이 가신 수행의 길을 책을 통해 볼 때 저는 십자가의 길을 가기위해 이 수행의 길을 가신 거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복음 삼덕 청빈, 순결, 순명이 이 길을 가는 방법임을 오늘 자세히 읽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