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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지리산둘레길 11구간(하동호-삼화실)
여행일 : ‘22. 2. 19(토)
소재지 : 경남 하동군 청암면과 적량면 일원
여행코스 : 하동호(2km)→평촌마을(1.2km)→화월마을(1.1km)→관점마을(3.2km)→상존티마을(0.7km)→존티재(1.2km)→삼화실(거리 및 시간 : 9.4km/ 실제는 9.26km를 2시간 3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대한민국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1,915m)은 3개 도(전북·전남·경남). 5개 시·군(남원·구례·함양·산청·하동)에 걸쳐있다. 또한 아흔아홉 계곡과 500여 개의 자연마을을 품는다. 그 지리산의 둘레를 걷기 길로 이은 게 ‘지리산 둘레길(현재 20개 읍·면, 100여 개의 마을을 지난다)’이다. 오늘은 11구간(하동호-삼화실)을 걷는다. 7개 코스(68km)로 이루어진 하동 권역의 두 번째 구간으로 거리가 9.4km 밖에 되지 않는데다 고개도 하나만 넘어 난이도는 ‘하’로 분류된다. 그래선지 가슴에 담아둘만한 특별한 볼거리는 없었다. 산골짜기에 들어앉은 꼬맹이 마을의 고즈넉함이 볼거리라면 모를까. 참! 징검다리에서 장난삼아 총총거리는가 하면, 산골마을 학생들의 추억이 서린 존티재를 넘어보는 재미도 있기는 했다.
▼ 들머리는 하동호(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완주-순천고속도로 구례·화엄사 IC에서 내려와 19번 국도를 타고 하동읍까지 내려온다. 섬진주유소(GS칼텍스) 앞 회전교차로에서 12시 방향 경서대로를 따라 횡천(면소재지)까지 간 다음, 횡천삼거리에서 1003번 지방도로 옮기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하동호에 이르게 된다. 남해고속도로 옥곡 IC에서 내려와 2번 국도와 1003번 지방도를 이용하는 방법(나비는 이 코스를 권하고 있었다)도 있으나 산악회버스는 전자를 따랐다.
▼ 하동호관리소(하동군 청암면)에서 삼화실 마을(하동군 적량면)까지. 거리(9.4km)가 짧은데다 비탈진 고개도 없으니 산책삼아 느긋하게 걸으면 된다.
▼ 공중화장실 오른편(동·남쪽 코너)에서 돌계단을 내려가며 트레킹이 시작된다. 초입에 지리산둘레길안내도와 벅수(하동호 0.0㎞/ 삼화실 9.4㎞)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둑에서 내려와 평촌마을로 향한다. 이 구간은 횡천강(橫川江, 또는 청암천)이 함께 한다. 지리산 삼신봉에서 발원해 남동쪽으로 흐르다가 하동호에서 ‘중이천’을 보탠 물길이다.
▼ 이때 하동호의 거대한 둑이 눈에 들어온다. 길이 496m에 높이만도 58.6m나 된단다. 하긴 저 정도는 되어야 하동군에 사천시까지 보탠 너른 들녘에 농업용수를 공급할 수 있지 않겠는가.
▼ 댐 아래 조금 떨어진 곳에는 소수력발전소가 들어섰다. 발전용량이 825㎾라니 발전소랄 것도 없다. 하지만 영농기(4월-9월)에 용수로를 통해 흘러가는 물을 재활용해 전력을 생산한다는데 큰 의미가 있단다. 저수지 아래의 유휴부지에는 194㎾ 규모의 태양광발전소도 들어서있었다. 정부의 친환경 에너지정책에 발맞춰 만든 시설들이다.
▼ 하천을 정리하면서 생긴 듯한 널따란 부지에는 각종 체육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스포츠 콤플렉스’라도 만들려는 듯 축구장과 풋살경기장으로도 모자라 테니스장까지 보탰다. 거기다 라이트 시설을 넣어 주경야동(晝耕夜動)이 가능하도록 했다. 최근의 화두가 된 ‘정주여건 개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나 할까?
▼ 둘레길 옆은 매실나무 밭. 나뭇가지에 매달린 꽃망울이 2주 전 10구간 때보다 훨씬 굵어졌다.
▼ 명색이 강인데도 물길은 보잘 것이 없다. 하동호에 물이 갇혀버린 탓일 게다. 때문에 물길은 실개천으로 변해 가운데로 좁게 흘러간다. 그렇다고 보잘 것까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수중보에 갇힌 물이 옛 풍모를 드러내주는가 하면, 물길 곳곳에 들어앉은 기암들은 그 풍모를 한층 업그레이드시켜준다.
▼ 길을 나선지 25분. 평촌교(벅수 : 삼화실 7.8㎞/ 하동호 1.6㎞)로 횡천강을 건너면, 둘레길은 평촌(坪村) 마을로 들어선다. 너른 들녘을 뜨락으로 둔 풍요로운 마을인데, 창산(倉山) 또는 창촌(倉村)으로도 불린다. 옛날 이곳에 조세를 거둔 창고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란다.
▼ ‘아트센터’ 현수막에 홀려 일단 카메라부터 들이대 본다. 아니 ‘추구집(推句集)’의 책 표지가 인쇄된 또 다른 현수막에 이끌렸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겠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할아버지께 잠시 배웠던 책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추구집’이란 옛 사람들이 남긴 속담·풍자·해학·명언·오언절구 등을 모아 편찬한 책으로, 조선시대 천자문과 함께 서당에서 배우던 교양 학습서이다.
▼ 마을회관은 청암면의 ‘자원봉사캠프’를 겸하고 있었다. ‘사랑나누미 빨래방’을 이곳에 두고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노인, 가정위탁아동이 전화로 신청하면 봉사자들이 빨래를 해주는 시스템이다.
▼ 농가의 마당은 오리와 닭들로 한 가득이다. 농약 대신 우렁이나 오리로 농사를 짓는 친환경 농가들이 많다더니 저게 그 오리들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올 여름 몸보신용일 게고 말이다.
▼ 평촌마을은 ‘청암면’의 소재지다. 그래선지 웬만한 읍내 분위기다. 면사무소와 파출소 같은 관공서는 물론이고, 복지회관과 농협 등 면단위 편의시설들도 모두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민박과 간단한 요기도 가능하다. 하나 더, 파출소 뒤로 들어가면 ‘경천묘(敬天廟)’와 금남사(錦南祠)가 나온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신라의 마지막 군주 경순왕(초상화)과 경천묘를 세운 이색·권근·김충한의 위패를 각각 모신다.
▼ 잠시 1003번 지방도를 따르던 둘레길이 ‘화월마을’ 버스정류장(벅수 : 삼화실 7.1㎞/ 하동호 2.3㎞) 앞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 초입에는 ‘우회로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이 구간에 징검다리가 놓여있으니, 비가 올 때는 계속해서 1003번 지방도를 따르란다.
▼ 천변에 이르자 갑자기 둘레길이 사라져버렸다. 아니 논둑을 따라 길이 나있다보니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천변에 가로막힌 둘레길은 횡천강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 그렇게 70~80m쯤 올라가자 징검다리가 놓여있다. 냇물의 흐름은 서두르지 않는다. 그러나 징검다리를 만나자 엎어져 하얗게 부서지다 일어서서 모이기를 반복하고 있다. 고즈넉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이라 하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픈 추억이다. 초등학교 시절(3학년까지는 시골에서 다녔다) 소나기라도 올라치면 나는 징검다리 앞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동급생들보다 두어 살이나 어린데다, 유난히도 키가 작았던 탓에 물이 불어나면 다리를 건널 엄두조차 못 냈기 때문이다. 동네 형들의 도움으로 건널 수는 있었지만 다시 꺼내보고 싶은 추억은 결코 아니다.
▼ 건너편 강둑으로 올라선 둘레길은 이번에는 물줄기를 따라 내려간다. 강둑에는 ‘지리산 둘레보고’의 로고가 들어간 벤치가 놓여있었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7개 시·군(남원시·장수군·곡성군·구례군·하동군·산청군·함양군)의 공동 브랜드가 ‘지리산 둘레보고’이다.
▼ 그렇게 100m쯤 내려가다 다리(공사 중인지 이름표도 없었다)를 건너면 ‘화월마을’이다. 아니 정확히는 ‘반월(伴月)’ 마을이다. 마을 뒤로 보이는 저 산의 생김새가 반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 화월마을(벅수 : 삼화실 6.2㎞/ 하동호 3.2㎞)은 자연부락인 함화(咸花, 함박골)와 반월(伴月, 버드리)을 합한 지명이라고 한다. 이중 ‘버드리’는 마을 일대에 버드나무가 많다는 데서 유래했다. 마을 앞 횡천강 냇가에 자생의 버드나무가 울창했으나 논에 피해가 있다고 하여 오래전에 베어버렸단다.
▼ 화월마을의 당산. 아름드리 벚나무 아래는 정자가 들어섰다. 마을 어르신들은 물론이고 둘레길 나그네들에게도 그늘 쉼터로 안성맞춤이겠다.
▼ 둘레길은 다시 1003번 지방도를 따른다. ‘횡천면’으로 연결되는 이 길은 벚나무로 가로수를 삼았다. 메타세쿼이아 길처럼 위로 길게 쭉쭉 뻗어 오르지는 않았지만, 굵게 자란 벚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는 것이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꽃피는 춘삼월에라도 찾아오면 화려한 꽃 대궐을 느긋하게 걸어볼 수도 있을 듯.
▼ 도로를 따라 5분 남짓 걷자 관점마을 입구다. 둘레길은 이곳에서 도로를 벗어나 마을길로 옮긴다. 초입에 벅수(삼화실 5.7㎞/ 하동호 3.7㎞)는 물론이고 마을 표지석까지 큼지막하게 세워져있으니 길이 헷갈릴 일는 없을 것이다.
▼ 들머리의 저 뜬금없는 안내도는 무엇을 의미할까. 벅수는 물론이고 앱까지 모두가 관점마을을 가리키고 있는데도 명호교 방향으로 우회하라는 것이다. 오가는 차량을 조심하라는 친절까지 베풀면서 말이다. 하지만 왜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러니 너나없이 본래의 탐방로를 따라 진행했음은 물론이다.
▼ 잠시 후 ‘관점교’를 건너자 둘레길은 울창한 대숲을 오른편에 끼고 이어진다. 대나무 특유의 상큼한 냄새가 코를 간질이는가 하면, 대나무 이파리들이 속삭이는 숲의 이야기를 듣는 멋진 구간이다.
▼ 오벨리스크를 쏙 빼다 닮은 ‘다리 준공기념비’에 반해 카메라에 담아봤다. 그 예스런 모양새 때문이었을까? 문득 ‘경천묘’를 그냥 지나쳐버렸다는 걸 떠올린다. 둘레길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유적지라서 한번쯤 꼭 들러보려고 했는데, 생각 없이 걷다가 그냥 지나쳐버린 것이다.
▼ 아쉬운 마음에 문화재청에서 자료를 얻어다 올려본다. 경천묘(敬天廟, 경남 문화재자료 제133호)는 신라 마지막 군주인 경순왕(敬順王)의 초상화를 모신 곳이다. 후백제의 견훤이 경주를 공격 경애왕을 죽이고 새로 왕으로 앉힌 인물이 경순왕이다. 왕건이 견훤과의 마지막 싸움에서 이기자 나라를 고려에 넘겨준 뒤, 용화산 학수사로 가서 여생을 마쳤다. 그의 사후 학수사에 사당을 세웠으나, 후세 사람들이 중이리(청암면) 검남산 밑으로 이전했다가 1988년 하동댐이 건설되면서 이곳으로 옮겼다.
▼ 경순왕의 어진(御眞, 경남 유형문화제 제474호)은 임금의 관(冕旒冠)을 쓰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신하의 예를 갖추는 홀(笏)을 양손에 쥔 형태로 묘사되어 있다. 신라의 임금이자 고려의 신하였다는 것을 나타냈다고나 할까?
▼ 하동은 두 번째 고향에 터를 잡은 이들이 많다고 한다. 지리산과 땅의 부름을 받아 귀농한 사람들이다. 사연 많은 젊은 날을 보내고, 이젠 지리산 기슭에서 자연의 속살을 누빈다는 것이다. 세척된 채소를 문 앞에서 받는 편리함 대신, 가축 분뇨 섞인 흙에서 살아있는 먹거리를 마련하려고 밤낮으로 힘을 쏟는단다.
▼ 반면에 주인을 잃은 집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불편함보다는 편리함이 좋은 이들도 의외로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 ‘관점(冠店)’마을의 경로당을 끝으로 둘레길은 마을을 벗어난다. 참! 마을을 지나는 중에 민박집으로 여겨지는 ‘마굿간 산장’이란 간판도 볼 수 있었다.
▼ 경로당 앞에는 지리산둘레길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매 구간 만나게 되는 시설물로, 제발 좀 고쳐주던지 아니면 치워버리는 게 나은 편의시설이다. 현실과 맞지 않은 게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곳도 역시 종점을 잘못 표시한데다, 뜬금없이 궁항마을을 볼거리로 내세우고 있었다.
▼ 마을을 벗어난 둘레길은 야트막한 고개를 넘는다. 관점마을 어르신들이 뒷동네로 마실이라도 다녔음직한 고개다.
▼ ‘이 뭐꼬?’. 고개를 넘는데 빈 술병 두 개가 사이좋게 걸려있는 게 아닌가. 나처럼 술을 좋아하는 나그네들을 격렬히 환영한다는 표식일지도 모르겠다.
▼ 이곳 청암면은 취나물과 표고버섯, 토종꿀을 특산물로 꼽고 있었다. 하지만 양봉도 이에 못지않은 듯. 길 가다 만난 양봉 농가의 규모가 만만찮다.
▼ 고개를 내려오면 ‘명호천’. 둘레길은 냇가 옆 ‘명사길’을 따른다. 개울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면 되겠다.
▼ 이곳에도 벅수(삼화실 4.5㎞/ 하동호 4.9㎞)와 함께 우회로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민원(마스크 미착용 및 소음)으로 인해 코로나가 종식될 때까지 관점마을 통행을 금지한다는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지켜주지 못한 게 아쉽지만, 아까는 이런 내용을 알 수 없었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 둘레길은 이제 명호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가로수가 없는 포장길이라서 오뉴월 뙤약볕에는 고난의 행군이 될 수도 있겠다.
▼ 잠시 후 명사마을 표지석이 보이는가 싶더니, 돌장승 두 개가 손님을 맞는다. 명사마을에서 아직껏 지내오고 있다는 당산제(堂山祭)와 연관된 조형물이 아닐까 싶다. 그 당산제에서 모시는 신(神)이 바로 ‘당산 할배’와 ‘당산 할매’라니 말이다.
▼ 장승은 생김새에 따라 인면형(人面形)·귀면괴수형(鬼面怪獸形)·미륵형(彌勒形)·남근형(男根形)·문무관형(文武官形) 등으로 구분된다. 그렇다면 이 장승은 문무관형인 셈이다. 반면 관이 없는 여장승은 얼굴에 연지와 곤지를 찍고 있었다.
▼ 도로에는 ‘명사 돌배축제’의 현수막도 걸려있었다. 돌배는 호흡기 질환과 노화방지, 항암작용에 뛰어난 효능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명사마을은 전국에서 친환경 돌배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마을이라고 한다.
▼ 산골짜기 작은 물줄기는 얼음폭포(氷瀑)로 변해있다. 오늘이 우수(雨水),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절기다. 하지만 고지대의 산골은 계절까지도 잊었나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나 할까?
▼ 저 멀리 ‘하존티’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다랑논에 둘러싸인 작은 산촌마을은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그림엽서 같은 모습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향의 정취를 느끼게 된다.
▼ 트레킹 시작 1시간30분(명호천 따라 25분)만에 명사마을 앞(벅수 : 삼화실 3.0㎞/ 하동호 6.4㎞) 애향동산에 도착했다. ‘하존티’ 마을의 입구이기도 한데, 정자를 지어 작은 쉼터로 꾸며놓았다. 참고로 둘레길이 지나가는 존티마을은 하존티와 상존티로 나뉜다.
▼ 쉼터에는 ‘명사마을 안내도’가 세워져 있었다. 청암사(靑岩寺) 터 주변과 절골, 점몰, 상존티, 하존티, 용심정 등의 자연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옛 이름은 전두리(田頭里) 또는 석문촌(石門村)이었다고 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전형적인 산골마을이었으나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되면서 웰빙과 힐링을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란다.
▼ 하존티마을은 둘레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때문에 도로를 걸으며 조망하는 선에서 만족해야 한다.
▼ 잠시 후 또 다른 갈림길(벅수 : 삼화실 2.6㎞/ 하동호 6.8㎞)을 만난다. 둘레길은 이곳에서 도로와 헤어진 다음 상존티 마을로 향한다.
▼ 몇 걸음 더 걸어 도착한 ‘명사마을회관’에는 대통령선거 출마자들의 사진이 게시되어 있었다. 제왕의 권력을 지녔다는 한국의 대통령. 그게 좋았던지 무려 14명이나 출마했다. 그나저나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들의 비호감도가 역대 선거 중 가장 높다고 했다. 그렇다고 선택까지 포기할 수야 없는 노릇이니 누군가는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다. 부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 마을 경로당은 ‘미담정(美談亭)’이란 편액을 달았다. ‘따뜻하고 흐뭇한 이야기가 오가는 곳’이라니, 이 얼마나 좋은 이름인가. 저 경로당을 드나드시는 모든 마을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참! ‘상존티마을’에서 운영하고 있다는 ‘새참사랑방’은 눈에 띄지 않았다. 즉석식품 등으로 간단한 요기를 하고 화장실도 이용할 수 있는 곳인데, 이곳에 설치되어 있다는 기사가 잘못된 것일까?
▼ 상존티 구간은 갈림길이 유난히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벅수를 세워놓았지만 그렇다고 길을 잃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그럴 때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 놓친 이정표를 다시 확인해보는 편이 낫다. 이정표가 촘촘히 세워져 있기 때문에 금방 옳은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 이 구간에도 감사의 뜻을 담은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둘레길은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 들일 나가던, 옆 마을에 일보러 가던, 장보러 가던 길들을 모아 연결했을 뿐이다. 민관의 협력으로 이루어 낸 윈윈(win-win)의 대표적인 사례라고나 할까? 지역 주민은 낯선 나그네에게 길을 열어주었고, 지자체는 나그네가 헤매지 않도록 안내판과 이정표를 세웠다.
▼ 마을을 빠져나온 길은 울창한 대나무 숲속으로 파고든다. 오후의 나른한 햇빛에 반사된 대나무 이파리가 바다에 빛나는 잔물결 같아 보인다. 한마디로 아름답다. 대나무 숲이 유독 많은 하동구간. 오늘도 역시 감동의 눈물 한 방울 똑 떨어뜨릴 만큼 아름다운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 대나무 숲은 명품 숲 그대로다. 대나무의 결이 곧고 그 살결도 빛난다. 대나무 공방에서 예술품으로 승화되기에 조금도 부족할 게 없어 보인다.
▼ 하지만 썩 편치 않은 현수막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풀·꽃·열매·나물’은 마음으로만, 눈으로만 담아가란다. 행여 죽순에라도 손대는 이가 있을까 경계하는 시설물일 것이다. 하긴 나그네들에게는 그저 흔하디흔한 죽순일지 모르겠지만, 농민들에게는 소중한 재산이 아니겠는가.
▼ 대숲에 들어앉은 개집에서 느껴지는 서글픔은 나 혼자만의 우려였으면 좋겠다. 현수막의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죽순에 손을 대는 이들이 있었다는 증거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 대숲을 빠져나오자 이번에는 깡마른 참나무 숲이 펼쳐진다. 하지만 아직은 완만한 경사지이다. 그래선지 습지와 제법 너른 밭들도 눈에 띈다. 우리네 어버이들이 이곳까지 올라와 농사를 지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온통 묵밭 일색이다. 경작지가 남아돈다는 의미일까?
▼ 존티재를 눈앞에 둘 즈음 둘레길은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한다. 하긴 질곡이 질펀하던 고갯마루이니 그게 어디 쉬울 수 있겠는가. 맞다. 삼화실과 명사마을의 경계인 저 고개는 고단한 삶의 현장이었다. 까까머리 산골아이들이 책 보따리 둘러매고 학교로 달려갔고, 시집가는 누님들은 가마멀미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리고 애지중지 키우던 소를 내다 팔려는 우리네 아버지는 새벽같이 이 고개를 넘어야 했다.
▼ 해발 302m의 고갯마루에는 벅수(삼화실 1.3㎞/ 하동호 8.1㎞) 말고도 ‘스탬프보관함’이라는 아주 특별한 시설물이 하나 더 세워져 있다. 이 구간의 완주를 인증 받고 싶다면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
▼ 내려가는 길은 한마디로 곱다. 보드라운 흙길만으로도 감사한데, 솔가리까지 수북하게 쌓여 아예 양탄자 위를 걷는 느낌이다. 경사도 아까 올라올 때에 비하면 평지나 마찬가지로 변해있다.
▼ 솔숲을 빠져나오자 이번에는 밤나무단지가 길손을 맞는다. 80년대 말쯤 이 근처 고령토 광산에 출장을 온 일이 있었다. 당시 난 현장을 안내하던 지자체 관계자로부터 밤 복용법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껍질(내피)을 벗기지 않은 채로 가루를 만들어서 꿀에 재워 장복하면 70살이 넘도록 부부생활이 원활해진다나? 어느 남자든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 몇 걸음 더 걸으면 삼화실마을이 내려다보인다. 하동구간의 전형적인 풍경이라고나 할까? 하동구간은 고즈넉한 농촌 분위기를 간직한 옛길을 비롯해 고갯길, 대나무숲길, 호수길, 둑방길, 개울길 등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래서 지리산둘레길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는 이들이 많다. 그 길들이 계절마다 색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면서 수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 말라비틀어진 열매가 눈길을 끌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갑장이자 둘레길 도반인 유 선생이 열매의 이름을 알려주었지만 관심이 없었기에 그냥 흘려들어 버렸다.
▼ 잠시 후 임도가 끝나는가 싶더니 ‘동촌마을’의 정자쉼터가 반긴다. 몇 걸음 더 걸으면 이번엔 마을회관. 삼화실로 통칭되는 이곳은 귀농인이 넘쳐나고 고랭지 식물의 보고가 되면서, 언제부턴가 부자동네로 소문나 있다.
▼ 날머리는 삼화실 에코하우스(하동군 적량면 동리)
존티고개을 출발한지 25분 만에 도착한 ‘삼화실’ 마을에는 ‘삼화 에코하우스’가 들어서 있었다. 1999년 폐교된 삼화초등학교를 하동군이 구입한 뒤 리모델링한 다목적 숙박시설이다. 주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해 농산물 수확체험 및 판매까지 겸하고 있으나, 우리 같은 나그네들에게는 저곳에 들어선 둘레길안내소가 더 의미가 있다. 스탬프를 찍어놔야 완주 인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벅수(대축 16.7㎞←삼화실→하동호 9.4㎞)는 에코하우스의 문 앞에 세워놓았다. ‘우수 생태환경’을 브랜드로 내건 ‘삼화실’ 마을의 홍보 안내판들도 여럿 보인다. ‘옛길 생태관찰로’도 만들어놓았으니 힐링 삼아 한번쯤 다녀가란다.
▼ 7개 마을(명천·이정·동촌·하서·중서·동점·도장골)로 이루어진 ‘삼화실(三花室)’은 옛날 이곳에 배꽃(이정마을)과 매화꽃(중서마을), 복숭아꽃(도장골)이 많이 핀다는 데서 유래했다. 여기에 과실 실(實)을 붙여 삼화실이다. 다른 주장(설화)도 있다. 신라 때 이곳에서 말을 먹이며 말구유통 3개를 박아놓았는데, 이를 ‘통삼배기’라 부르다가 지명(통삼배기가 있는 곳)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 트레킹은 지리산둘레길의 엠블럼(emblem)이 지키고 있는 에코하우스 앞 주차장에서 종료된다. 오늘은 2시간 30분을 걸었다. 앱이 9.26Km를 찍고 있으니 적당한 속도로 걸은 셈이다. 다른 한편으론 구간 거리가 짧다는 것만 빼면, 난이도가 ‘중’으로 올라가는다는 반증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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