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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학원 '세계와 선교' 2008/10]
"검은 대륙! 하얀 웃음! 인도양의 아름다운 섬, - '마다가스카르'"
김창주 목사(재 마다가스카르 총회 파송 선교동역자)
'Mission Moratorium'
"아프리카로 보내는 선교사를 최소한 5년 이상 유예하여 주시오!"
"아프리카로 보내는 선교비를 최소한 5년 동안 중지하고 보내지 마시오!"
"아프리카에서 더 이상 어떤 선교활동도 하지 말아 주시오!"
"어떤 선교사나 선교단체의 도움이 없이 우리 힘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오!"
이것은 1971년 5월, 동부 아프리카 장로교회의 총무였던 죤 가투(John Gato)가 세계교회협의회(WCC)와 미국NCC에 제의한 "선교유예"(Mission Moratorium)의 내용입니다. 서구 교회들의 선교와 선교사들이 아프리카 교회를 망쳐놓고 있으며, 아프리카 교회들의 자생력을 저해한다는 판단에서 아프리카 교회 지도자의 입에서 나온 제안입니다. '향후 5년 동안의 서구 교회는 선교사도 선교비도 보내지 말아달라'는 이 주장은 '선교'를 "주님의 지상명령"으로 알고있던 서구 교회들로 하여금 엄청난 충격과 반성을 하게 했습니다. 선교사나 선교단체의 도움 없이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피선교지 교회들도 스스로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제안이 있은 지 3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프리카 선교는 많은 대화와 연구가 필요한 분야입니다.
바울 연구가이며 양식비평가인 마틴 디벨리우스는 "바울을 로마로 싣고 간 배는 바울의 몸만 로마로 싣고 간 것이 아니라 유럽 전체의 역사를 싣고 갔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본인이 여기 아프리카 대륙과 마다가스카의 여러 곳을 둘러보면서 느끼는 것은 검은 대륙, 아프리카! 식민지와 수탈, 가난의 슬픈 역사를 안고 있는 이 땅에서 데이비드 리빙스턴 이후 위대한 인물들이 수없이 고귀한 생애를 바쳤지만, "지금도! 여전히! 몸 동아리 전부를 불살라야 헌신할 사람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해외선교를 위한 꿈과 비전
"세계와 선교"지를 통하여 한신 후배들과 기장 목사님들을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본인은 어린 시절, 알버트 슈바이츠의 위인전을 읽고 로알드 아문센과 스코트의 남극·북극 탐험기를 읽으면서 미지의 세계를 개척한 사람들의 용기와 복음과 사랑을 가지고 아프리카에서 생애를 바친 사람들의 숭고한 이야기에 매료되었습니다. 한국신학대학을 입학하여 「한국 교회사」를 배우며, 124년 전 가난하고 무지했던 은둔의 나라, 조선에 찾아와 복음을 전하고, 교육과 의료사업에 자기들의 생애를 바친 수많은 선교사들의 삶을 만나면서 '해외선교'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오웬 (Dr. Owen)', '포사이트(Dr. R. M. Forsythe)', '윌슨(Dr. R. M. Wilson 우월순)', '유진 벨(Eugene Bell)', '보이어(Dr. E. T.Boyer 보이열)', '운걸(Rev. Kelly Unger 원가리)', '토플(Dr. Stanley C. Topple 도성래)'이라는 선교사들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한국 초대 교회사'에서 이분들의 이름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자기 생명을 바친 수많은 선교사들의 이름 앞에서 전율을 느껴 본 적이 있습니까? 이 땅에 복음이 전해지기까지, 우리가 이미 잘 아는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감리교의 아펜젤러와 스크랜턴과 같은 선교사들의 이름 외에도 수많은 선교사들,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선교사들은 일찍이 호남 지방에서 복음을 전한 초기 선교사들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그 한 분 한 분의 생애마다 가슴 진한 감동이 배어 있습니다. 하늘이 내린 '천형'이라고 하여 가족들도 버리는 한센 씨 병(나병)에 걸린 사람을 내 몸같이 돌보아 준 의료 선교사, 윌슨과 포사이트가 있었기에 오늘의 '여수 애양원'과 '애양 병원'이 있는 것입니다.
에모리 의대를 나온 의사 스탠리 토플은 여수 애양원에서 20년을 보낸 다음, 1980년, "한국에는 부흥하는 교회와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있으므로……, 이제 애양병원의 원장도 한국인이 할수 있고, 병원운영도 한국 교회가 할수 있음으로 나는 남은 생애를 더 어려운 나라에 가서 보내겠다"는 말을 남기고 한국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중에 본인은 아프리카 케냐에서 그 분, 토플(도성래) 선교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 분이 얼마나 한국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본인은 한신대학과 한신대학원을 졸업한 후, 군목으로 목사 안수를 받았고, 영국과 미국에서 공부하였고, 아내와 결혼하기 전인 1990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때, 우리는 젊음의 한 부분을 더 어려운 나라에서 봉사하기로 약속을 했었습니다. 당시 아내는 산부인과에서 수련하던 중이었습니다. 5년 후, 미국에서 학위를 마칠 때,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기 원한다"는 뜻을 부모님께 전하였을 때, 부모님(김영환 목사, 대구 영지교회 시무하셨고, 그 당시 자원은퇴 하실 예정)은 큰 아들인 본인이 대를 이어 한국 땅에서 목회하는 것을 보고싶어 하셨습니다. "두 말 말고, 무조건! 귀국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일단 저의 계획을 보류하고 귀국하여 1996년 2월, 예닮교회의 부목사로 부임했습니다. 2000년, 부목사로 섬기던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어 6년 10개월 동안 한 교회를 섬기다가 2007년 10월 이곳,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하여 지금은 '말라가시'라는 이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며 이 나라의 대표적인 개혁교회이고 우리와 같은 WCC, WARC의 회원교회인 FJKM 교단 신학교인 Oniversity FJKM Ravelojaona(FJKM개혁대학)에서 Sekoly ambony momba ny teolojia('신학에 관한 고등학위 과정'이라는 프랑스식 표현)의 실천신학부 교수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마다가스카르 소개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 동부 인도양에 있는 큰 섬나라입니다. 면적은 남·북한의 2.7배(남한의6배)에 해당하는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섬입니다. 섬 전체는 붉은 흙으로 되어 있어 "Red Island"라고 불립니다. 과거에는 국토의 80%가 열대 우림(rain forest)이었는데, 지금은 15%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섬에는 온갖 희귀한 동·식물과 수많은 광물들이 있어 자원의 보고라고 합니다. 이 섬은 세계의 동·식물 5%의 본산지이며 그 중에서 80%는 마다가스카르에만 있는(endemic) 종들입니다.
마다가스카르는 1960년 프랑스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되었으나, 오래 동안 '제3세계 동맹'에 속하였고, 공산주의를 표방하며 북한, 중국과 가까웠고, 쿠바와 함께 88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은 두 나라였습니다. 그 대가로 북한의 김일성은 이 나라에 대통령 궁을 지어 주었으며 이 나라의 40대 이후 세대는 모두 '김일성 사상', '주체사상'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웠다고 합니다. 이들의 전통 문화는 우리, 아시안들와 너무나 비슷하고, 쌀을 주식으로 하며, 웃어른을 공경하는 전통, 그리고 조상숭배의 문제까지 우리와 너무나 비슷합니다.
이 나라에는 대표적인 4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와 성공회, 루터교회, 그리고 장로교회 전통을 따르는 개혁교회(FJKM)이 있습니다. 물론 그 외에도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과 침례교회들이 있지만 이 나라 정부가 인정하는 교단은 위의 4개 교단으로서 마다가스카르 교회연합회(NCCM)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2006년 교회 자료에 의하면, FJKM 교단은 전국에 5,800여 교회, 36개의 시노드,, 415만여 명의 교인을 가진 큰 교회입니다. 그러나 목회자 수는 1,295명으로 아주 적습니다. 교회 지도자(목회자)의 수급이 아주 절실한 형편입니다.
마다가스카르의 현실
이 나라의 상황은 우리의 1950년대, 후반과 비슷하며 가난합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인구는 1860만 명이고, 85%가 농업에 종사하며 국민 소득은 260불(2006년 통계)로 자국을 소개하면서 세계에서 9번째 가난한 나라라고 말합니다. 거리에는 아직도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람들의 천성은 착하고 순진하며 낙천적입니다. 18개의 서로 다른 부족들이 각각의 지역에서 살고 있으며 이들의 뿌리는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아랍인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 반도에서 출발한 아시아인들, 그리고 아프리카 흑인들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디아와 중국에서 이민 온 인구가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동부 아프리카의 모든 나라들이 그러하듯이 국가의 상권은 이들이 쥐고 있습니다.
이 섬에는 아직도 오지가 많아서 복음을 한번도 들어보지도 못했고 성경을 만져본 적이 없는 사람들과 문맹률이 높습니다. 병원도 학교도, 교회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을에도 무당이나 주술사가 있어 사람이 아프면 그들을 찾아가서 목걸이와 팔찌를 받아서 옵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이교적이고 무술적인 행위들이 성합니다.
미완성의 선교…
여기서 '선교신학과 선교사에 대한' 이론을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선교'와 '전도'가 무엇이 다르며 무슨 차이가 있는지? '해외'는 '선교'이고 '국내'는 '전도'라고 표현한다는 진부한 설명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표현이야 어떠하든지 간에! '선교'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우리 교회와 크리스천의 사명이며,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전하고, 나누는 구체적인 행위(행동)입니다.
선교의 장은 다양하고, 넓어졌으며, 더욱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Transforming Mission' 이라는 책을 쓴 선교신학자 David. J. Bosch는 "선교뿐만 아니라, 교회와 기독교 전체의 위기는 과학과 기술 문명의 발달, 광범위한 세속화 등으로 하나님 신앙을 무색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합니다. David Barrett의 통계에 의하면, 유럽과 북미에서는 매주일 평균 53,000명의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탈 현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선교의 필요성'은 아프리카나 미전도지역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소위 과거의 기독교 국가라고 불리던 서구까지도 선교의 대상으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선교는 기독교 국가인 제 1세계에서 제3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습니다.
세상은 나날이 세속화되어 갑니다. 그리고 반 기독교의 정서와 이교적인 문화가 범람합니다. 세속화의 물결이 어느 때보다 거셉니다. 아랍과 이슬람의 목소리는 커졌고, 그들의 선교는 공격적이고 더욱 적극적입니다. 본인은 일찍이 많은 서구의 선교신학자들이 "다시 한번 복음의 폭팔적인 부흥현상이 일어난다면, 아프리카에서! 그것도 동부 아프리카에서! 거대한 부흥운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는 글을 빈번히 읽었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이곳 케냐와 탄자니아, 우간다에서 일어나는 작금의 사태와 이슬람의 공격적인 선교를 보면서, 그것이 얼마나 '탁상공론'이며, 서구 교회와 선교신학자들이 선교의 현장을 몰라도 얼마나 모르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본인의 경험으로 보아, 이제 기독교 선교는 더욱 겸손해 져야 합니다. 19세기에 내 걸었던 "이 세기 안에 전 세계를 복음화 한다"는 슬로건은 무색해 졌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정말 선교가 무엇인지? 를 진지하게 묻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기장 교회와 한신에서도 이론으로만 선교를 논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목회와 삶에서 선교를 실천해야 합니다. 국내에서는 군 선교, 학원 선교, 캠퍼스 선교, 병원 선교, 문서 선교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국외에서는 미전도지 선교뿐만 아니라, 해외 동포, 이민목회의 장도 선교의 장입니다. 기장은 1953년, 교단이 시작되는 때부터, 큰 교단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위에 언급한 모든 다양한 선교의 장에서 주도적이고 선구자적인 역할을 감당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는 너무나 중요한 국내외의 선교의 장을 놓쳤습니다. 앞으로는 도시 목회, 시골-농어촌 목회, 빈민지역 목회, 외국인 노동자 교회, 해외 교민과 해외에 진출한 기업과 노동자, 동남 아시아에 대한 관심, - 베트남, 조선족, 연해주 고려인,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사할린의 한인들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관심과 선교의 영역을 확대해 가야 할 것입니다. 이상에서 언급한 모든 선교의 영역은 결코 포기하거나 망각하지 말아야 하는 선교의 장입니다. 바라기는 다시 한번 기장의 신학과 하나님의 선교를 표방하는 우리 교회들이 이런 정신을 회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이런 사랑을 실천할 실력 있고 헌신적인 인재들이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선교는 남은 여생을 보람 있게 보내는 은퇴 후의 여가 활동이 아닙니다.
선교는 국내 목회에서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 찾아 나가는 대안이 아닙니다.
선교는 마지못해, 혹은 할 수 없어서 떠나는 목회의 장이 아닙니다.
선교는 하나님을 위해 뜨거운 사랑을 가진 사람들, 복음에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진 사람이 자기의 생명과 삶을 바치는 고귀한 결단입니다.
한국 교회의 원로 목사님 한 분이 은퇴하신 후, 많은 선교지를 둘러 보고, 많은 선교사들을 만난 다음 하신 말씀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목사들 중에서 가장 축복 받을 사람, 선교사이고……
목사들 중에서 제일 저주 받을 사람, 선교사들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