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안다는 것과 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다르다. 마찬가지이다.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았다는 것과 뉴질랜드인들의 삶과 자연을 보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은 다르다.
지리를, 그것도 지형학을 전공했던 나 역시, 뉴질랜드에 대한 앎과 이해가 극명하게 변하였다. 뉴질랜드로 오기 전 내게 뉴질랜드는 알고 있는 지형학적 지식을 적용하기에 아주 좋은 곳 정도였다. 더불어 휴식하기에 더 없이 좋은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곳 정도로 생각하였다. 뉴질랜드를 이해하기 보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내게 뉴질랜드는 자연적이고 싶은, 평화롭게 살고 싶은 사람들의 삶, 그 자체로 보인다. 땅이 평화롭게, 땅이 여유롭게, 땅이 아름답게 숨쉬는 곳이 바로 뉴질랜드이다.
이런 느낌으로 나를 변하게 만든 것은 지형학적 지식과 그 토대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해석, 그리고 종국적으로 이들 삶에 대한 이해이다. 뉴질랜드의 자연과 문화, 이들 삶애 대한 반복된 해석은 깊은 이해로 나아가고, 이해는 땅에 감동할 수 있는 안목과 여유를 주었다.
수천만년에서 수만년의 시간을 넘나들면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땅이 변화해 온 숨결을 느끼면서, 그 위에 펼쳐진 삶도 이해하고자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아! 그렇지’ 라는 이해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땅이 이해되자, 그 위에 사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보이는 것이 아니라 땅과 사람이 어떻게 어우러져 왔는지가 보인 것이다. 수십만년 동안 자연이 가꾸어 온 땅 위에 백수십년 전부터 살기 시작한 이네들의 삶이 보인 것이다. 그러자 언덕 하나, 밭 하나, 집 하나, 다리 하나, 가축 하나, 어느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되었다. 그것들이 그 곳에 있는 의미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비로소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게 된 것이다.
여행의 궁극적 목적은 바로 이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하지’, ‘그것은 지리 지식이 깊은 사람이나 하는 것이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이렇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어떤 마음의 눈으로 여행하느냐에 따라 보고 느끼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건은 여행의 목적과 마음의 눈을 어디에 두느냐이다.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보기 위해, 그런 여행을 하기 위해 이런 준비를 하였으면 한다.
뉴질랜드를 소개하는 많은 책들이 있다. 그런데 그것들 대부분이 하나같은 정보지들이다. 읽지 않는 것보다는 물론 좋다. 알고 오면 더 많이, 더 잘 보이는 것도 맞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잘못하면 ‘저게 그것이구나’ 라는 정도에 그칠 공산이 크다. ‘사진에서 보는 것도 보다 작네’, ‘별로네’, ‘사진보다 웅장하네’, ‘정말 아름답네’ 정도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상상한 것과 눈에 보이는 것을 비교하기 때문이다.
내가 부탁하고 싶은 것은 이해를 위한 기초를 쌓는 것이다. 이를 위해 첫째, 뉴질랜드의 역사와 지리를 아는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뉴질랜드 이주민들의 원 지역적, 문화적 특징과 이주 당시(1850년대) 영국의 이해이다. 그래야 이주의 원인과 이주 후의 문화적, 생업적 적응 과정을 이해할 수가 있다. 다음으로 이주 후 뉴질랜드 인구와 도시의 시대적 변천 과정, 그리고 정치적 변화 과정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정확히 알아야 눈에 드러나는 인문적 경관과 뉴질랜드 인들의 삶의 시간적 흐름을 읽을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런 자료들은 생각보다 적기 때문에 인터넷이나 책들을 잘 찾아보아야 한다. 뉴질랜드 대사관에 들어가도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둘째는 뉴질랜드의 자연지리를 알아야 한다. 그 첫 번째가 뉴질랜드의 기후이다. 기후 요소 중에서도 기온과 강수량이 특히 중요하다. 인간의 삶(가옥, 이복, 음식 등)과 가장 일상적이고 밀접하게 관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식생도 마찬가지이다. 기후를 알아야 식생의 특징과 성장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전체적인 지형 경관의 이해, 역시 기후가 중요한 토대이다. 특히 뉴질랜드 각 지역별 기후적 특징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뉴질랜드를 보는 것이 아니라 뉴질랜드 각 지역을 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지형이다. 그 중에서도 빙하와 화산이 중요하다. 이 두 가지가 뉴질랜드 지형을 이해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빙하 자체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빙하의 이동과 그에 따른 빙하 퇴적물이다. 이것들이 뉴질랜드인들의 삶의 터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도이다. 이것은 뉴질랜드 이해의 시작이자 끝이다. 무슨 책을 보든, 어떤 정보를 읽든 지도와 더불어 해야 한다. 뉴질랜드라는 공간이 머리 속에 휑하게 들어와야 지리 정보가 지리 지식으로 바뀐다. 뉴질랜드의 자연적 공간이 머리 속에 들어오면 더욱 금상첨화이다. 해석도 이 때부터 올바르게 시작된다. 이것의 의미는 예를 들자면, 경주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외국인이 경주를 보는 것과 우리 국토에서 경주가 어떤 위치인지, 경주의 공간 구조가 어떠한지 정확히 이해하는 외국인이 경주를 보는 것과 같다. 전자는 유물만 보지만, 후자는 경주를 통해 유물을 보고, 유물을 통해 또 경주를 본다. 그리고 우리 역사와 우리의 국토를 이해하게 된다. 이렇게 다르다.
이렇게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한 인간과 자연의 관계와 그 결과로 드러나는 문화 경관이 보이기 시작한다. 보이면 해석도 가능해 진다. 애석하게도 뉴질랜드 문화 경관을 해석한 책이 거의 없기 때문에 스스로 해석하는 수밖에 없다. 어렵다. 공간, 시간, 인간의 어우러짐이 동시에 해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앞에서 이야기 한 것들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이해는 해석에 토대한다. 해석은 대상에 대한 앎으로 부터 시작한다. 자연에 대한 앎, 이에 토대한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해석과 이해, 그 속에서 다가오는 감동, 이것을 즐기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다. 보는 여행이 아니라 느끼고 즐기는 여행을 하려면, 그 대상이 뉴질랜드라면 더더욱 그러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여행은 한 지역에 오래 머물 때 가능해 진다.
해석도 연습이다. 연습을 한만큼 해석이 쉬워지고 깊어진다.
10월 25일
첫댓글 임용치고 여행을 할때는 교수님 말씀처럼 하면 더 뜻깊은 여행이 될 것 같네요~^-^
"뉴질랜드 100배즐기기"라는 책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는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시는 곳들을 이 책에서 찾아보곤 했습니다. 이런 정보지로 인해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오류를 범할까...걱정입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