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리면(富利面) 방우리(方佑里)
부리면의 동남쪽에 위치한 오지 중의 오지다. 생활권을 전라북도 무주군에 의지할 만큼 전라북도 무주읍과 인접해 있으며 호적등본을 발행하는 면사무소까지 가기 위해서는 무주읍에 나와서 차편을 이용하지 않으면 도보로 산을 넘고 들을 걸어야만 하는, 행정적으로 철저하게 교통이 차단된 지역에 방우리는 자리한다.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가 생각날만큼 북쪽으로 향한 산맥의 줄기가 절벽을 이룬 지역이기도 하다 남쪽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오는 금강의 물줄기가 서행을 하면서 묘한 선을 그으며 구불꾸불 지형을 갈라 놓아서 정감록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는 지역이 방우리다.
동쪽으로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과 접하며, 남쪽으로도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과 접한다. 서쪽으로는 현내리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수통리, 어재리와 접한다.
남쪽에는 해발 537m의 베틀봉이 높은 산악지대를 조성하고 지금은 무주땅에 속해있는 부남면은 조선시대 때 금산에 속한 지역이었다.
인류의 정착은 고려시대 초기 전후로 본다. 백제 때는 부시이현의 지역이었으며 신라 때는 이성현에 속했었다. 고려 때 초기에는 부리현에 속했다가 명종 5년(1175)부터는 감무(監務)가 다스리는 지역이었으며 그 후 금주에 속한 지역이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금산군에 속했었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금산군 부동면의 지역으로서 꾸불꾸불 선을 그으며 흐르는 금강가 한 모퉁이에 있으므로 방우리, 즉 방울처럼 매달려 있는 마을이라 그렇게 불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좋은 한자로 방우리라 고쳐서 전라북도 금산군 부리면에 속했다가 1963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충청남도에 편입,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가 되었다. 금강이 흐르는 절경지의 하나로 꼽는 지역이다. 리의 면적은 3.131㎢이다.
감무(監務) : 고려시대 현령(縣令)을 둘 수 없는 작은 현(縣)의 감독관. 1106년(예종1)에 유주(儒州:오늘의 황해도 신천(信川)), 안악(安岳), 장연(長淵) 등 41현에 감무를 두었다. 이 관직은 조선 시대까지 그대로 계승되어 오다가 나중에 현감(縣監)으로 개칭 되었다.
자연부락(自然部落)
<방우리, 농원>
방우리
농원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행정구역은 방우리(方佑里)에 속하나 마을 이름은 금강가 남쪽으로 한 모퉁이에 방울처럼 매달려 있는 지형에 마을이 있다 해서 방우리(方隅里)라 부른다. 마을을 기점으로 산 높이 479m의 갈선봉 너머 현내리로 넘어다니는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를 갈선재라고 부른다. 마을 서북쪽으로 장자못이라고 부르는 못이 있는데, 옛날에 부자가 살았다 해서 그리 부르는 못이다. 한편 이 못을 연유하여 조선시대의 유명한 화가 최북(崔北)이 궁중에서 화원노릇을 한다는 것이 너무 싫어서 술통을 안고 은거하며 숨어 있다가 투신한 못이라 하는데 확실치 않다.
마을 앞에 무주로 건너 다니는 나루가 있는데 이 나루를 방우나루라고 부른다. 순창설씨(淳昌薛氏)가 많이 세거한다.
농원
방우리 산 너머 동북쪽 넓게 깔린 들에 있는 마을을 농원이라고 부른다. 1954년 11월부터 정착하는 농민들에 의해서 개척한 마을이다. 마을 동쪽으로 250m 지점에 굴이 있는데 산밑을 뚫어서 물을 대고 농사를 짓는다. 정착촌답게 새롭게 황무지를 개간하고 있으며 작은 수력발전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