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말헥산과 벤젠은 악마의 물질 ?

노말헥산과 벤젠은 악마의 물질 ? 최근 안산의 LCD관련 제조업체에서 태국 출신의 근로자들이 집단적으로 하지마비의 증상을 보였는데,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 노말헥산이다. 노말핵산은 탄소여섯개가 일렬종대로 늘어선 화학구조를 가지고 있는 화합물이다. 탄소는 양성자가 6개인 원자번호 6번의 원소이다. 그 탄소가 주루룩, 그것도 6개가 아무런 관능기도 결합되지 않은 상태로, 오직 수소원자로만 둘러싸여 일렬로 늘어선 구조를 가진 물질이 노말헥산이다. 그러고 보니 강력한 백혈병 유발물질인 벤젠도 탄소가 6개. 노말헥산과 다른 점은 양끝이 연결되어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일 뿐. 6은 기독교에서 악마를 상징한다는데...... 무색무취의 소리없는 중독 벤젠도 그러하지만 노말헥산은 냄새를 느끼게 되는 취각역치(Odor threshold)가 130ppm으로 8시간노출 허용기준인 50ppm보다 훨씬 높다. 즉 작업자의 코가 헥산냄새를 맡게 되는 그 순간, 코 위치에서의 헥산농도는 허용농도의 두배를 넘게 된다. 이런 특성 때문에 많은 사업장에서는 노말헥산을 너무도 편하게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어지간해서는 냄새가 나지 않아 경각심을 잘 못느낀다. 노말헥산의 신경독성에 대해 아무리 노래를 불러도 쇠귀에 경읽기일 뿐이다. 벤젠과 노말헥산 외에 취각역치가 허용기준 이상인 용제로는 염화메틸렌(Methylene chloride, MC), 사염화탄소, 클로로포름, 사염화에틸렌(perchloroehtylene, PCE), 1,1,2,2-사염화에탄 등의 염화탄화수소 계열의 유기용제와 메칠포름산, 디옥산, 디에탄올아민 등이 있다. 귀하의 작업장에서 이들 화합물의 냄새가 난다면 그 물질의 기중 농도는 지금 허용 기준을 초과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발끝부터 거꾸로 신경이 죽어들어가는 듯한 증상 : 원흉은 2,5-헥산디온 노말헥산과 메틸노말부틸케톤(MNBK)은 체내에서 대사되어 2,5-헥산디온(2,5-hexanedione)이라는 물질로 변하는데, 이 대사물질로 인하여 노말헥산의 독특한 말초신경독성이 나타난다. 2,5-헥산디온은 수초(myelin)보다 축삭(axon)을 일차적으로 침범하는 특성이 있는데, 이로 인해, 먼저 양쪽 발끝에서 증상이 나타나다가 점차 위쪽으로 진행한다. 이는 마치 발끝에서부터 신경이 점차 죽어들어가는 느낌을 주어 영어로 dying back phenomenon이라고 표현된다. 감각신경도 침범하지만 운동신경의 침범이 더 두드러지기 때문에 흔히 초기 증상으로 걸을 때 발목에 힘이 빠지고 발이 지척거려 걸린다는 식의 표현을 잘 한다. 점차 진행됨에 따라 종아리를 거쳐 대퇴부로 마비증상이 파급되고 심할 경우 팔의 마비도 나타나 사지마비가 발생할 수도 있다. 때로는 뇌신경을 침범하여 안면감각이 마비되기도 하고 시신경장애가 나타나기도 한다. 심한 중독에서 상부운동신경원을 침범할 수도 있지만 처음에는 하부운동신경원 증상에 가려 잘 나타나지 않다가 회복기에 중풍에 의한 마비증상 비슷하게 나타난다. 진단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직업적인 노출력 이러한 노말핵산에 의한 말초신경병증은 증상만으로는 길랭-바레 증후군 등 상행성마비 증상을 보이는 비직업성 신경질환 및 연, 수은, 아크릴아미드 등에 의한 다른 직업성 신경병증과 유사한 점이 있어 진단이 쉽지 않다. 신경세포 내에서 신경전달물질을 운반하는 신경세사(neurofilament)의 변성에 의한 것이지 염증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뇌척수액 검사에서 단백질 농도가 정상소견을 보여 길랑바레 증후군과 구별된다. 축삭이 주된 침범 병소이지만 2차적인 수초변성이 심하여 신경전도검사에서 뚜렷한 전도속도의 감소를 보이는데, 길랭바레증후군에서와 유사하며 아크릴아미드에 의한 신경병증과 구별되는 특성이다. 노말헥산 중독이 의심되면 가급적 빨리 소변을 채취하여 2,5-hexanedione을 검사하여 증가된 수치를 보일 경우 진단에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다. 종아리의 비복신경에 대해 조직검사를 시행하면 랭비어결절 근위부 축삭내에 비정상적으로 신경세사가 농축되어 있는 특징적 소견을 보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전적으로 노말헥산 중독을 시사하는 것은 아니다. 노말헥산 뿐 아니라 고농도의 연에 중독되어 나타나는 연마비(lead palsy), 비소 또는 수은 등에 의한 말초신경장해도 이와 비슷한 증상을 보일 수 있다. 유기인제에 의한 심한 급성중독의 회복기에 나타나는 지연성 신경병증과 증상면에서 유사하나 병력에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태국 근로자들의 재앙을 보도로 접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번 경우처럼 여러 명이 한꺼번에 발병하지 않고 그 중 한명만 발병했다면 과연 그 질병이 노말헥산에 의한 것임을 밝혀낼 수 있었을까? 한 사업장 안에 여러 명이 동일한 증상을 보였기 때문에 작업장의 유해인자를 병인으로 의심하게 되었을 것이고 결국은 노말헥산에 의한 신경중독 사실이 드러나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한다. 두껑 닫으시오. 방독면 쓰시오. 장갑 끼시오. 관내의 플라스틱 사출업체를 다녀보면 공교롭게도 사출기 옆에서 노말헥산을 취급하는 근로자들 상당수가 외국인이다. 방독면은 고사하고 장갑도 끼지않고 거즈에 노말헥산을 묻혀 사출물에 낀 기름때를 닦아낸다. 그런 그들의 손을 보면 각질층이 누렇게 두꺼워져 발뒤꿈치 살처럼 변해 있으며, 더러는 벗겨지고, 갈라지고, 물집이 생기는 등 습진 증상을 보인다. 피부염도 딱하지만 그 지경이 되면 더 곤혹스러운 사실이 있다. 지용성은 높아도 수용성이 그다지 높지 않아 피부의 각질층은 잘 뚫어도 그 아래 진피로는 잘 흡수되지 않는 노말헥산이지만, 습진이 생기면 그 갈라지고 벗겨진 틈을 통해 진피를 뚫고 몸속으로 쑥쑥 빨려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힘을 내서 다시 잔소리를 시작해야겠다. 캔두껑 닫으라고 하시오. 장갑 좀 끼도록 시키시오. 방독면 주고 쓰라고 하시오. 분명 전에 같으면 잘 먹히지 않을 말이다. 그렇지만 이젠, 대단히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 태국 근로자들의 집단 중독 사례를 들먹인다면, 이전보다는 좀 더 말이 잘 통할 것으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