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경 시인 대표시
타지키스탄의 빗소리 외 5편
만년설 사이의 평원이 아름다운 나라
대지를 해치지 않는 사람들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들
세상 끝에서 만난 아름다운 가족
내 남루한 영혼을 비춰보는 거울
당신의 형편에 따라 병원비를 내십시오
돈이 없으면 안 내어도 됩니다.
당신은 손님이므로 우리는 당신을
치료해주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아프면 100명이 와서 들여다 보는 나라
만년설 사이의 평원이 아름다운 나라
파미르의 눈녹은 물이 적시는 나라
여자들이 보석같은 눈을 가지고 있는 나라.
어린 시절로 여행을 왔다.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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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 정원
세상으로 나 있는 길을 잃어버리고 책 속으로 나 있는 길을 걷다보니 아주 고요한 곳에 오게 되었다.
이곳에 머물러야겠다. 한 생애가 지나가는 동안
잉크 정원을 갖고 싶은 아이가 있었다.
그녀는 그 꿈을 몇 번의 생애가 지나가는 동안 잊지 않고
새로 태어날 때마다 첫 번째 일기장에 적곤 하였다.
잉크로 그려 넣은 나무에 잎이 돋고 새가 와서 날아와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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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오늘도 나는 아이들에게 빨리 걸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천천히 걸으면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씨름 잘하는 아이에게 왜 달리기는 하지 못하느냐고 화를 낸다.
오늘도 나는 푸른 세쿼이아 나무 한 그루에게
큰 숲에 가야만 큰 나무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잡목림에서는 들꽃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오늘도 난 아이들에게 거대한 행복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한다. 작은 아이들의 작은 행복은 모른 체한다.
오늘도 난 높이 오르면 멀리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렇지만 높이 오르려면 많은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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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있지도 않았을 때
내 아이가 있지도 않았을 때
난 없는 것들에 대해서 오래 생각했어
한때 빛났지만 지금은 사라진 별 같은 것들에 대해서
내 아기가 안 보일 때
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오래 생각 했어
마야 소녀의 심장 소리 같은 거에 대해
내 아기가 먼지만 할 때
난 먼지보다 작은 것들에 대해서 처음 생각해 보았어
그곳에도 넓은 세계가 있더군
내 아기가 물방울 하나만 할 때
내 아기가 여치만 할 때
내 아기가 산딸기만 할 때
내 아기가 주먹만 할 때
자연 만물이 오체투지로 우리를 살리는 걸 알게 되었지
이 지상에는 총알이 날아온다면 내 심장으로 막고 싶은
작은 심장 두 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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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밭에서 드는 생각
찻잎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고요하지만 생명을 품는
바다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모든 강을 안아주는
수평선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모든 낙서를 지우는
그래도 엉겅퀴 하나 피어있는 마음 언저리에
모닥불 하나는 피워 두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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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지대
내가 예배당에 앉아 있는 동안에
그는 야생으로 더 깊이 걸어 들어간다
나는 신에게
그는 신의 피조물들에게 가까이 가고 있다
아 그곳에는 얼마나 많은 작은 신들이 있는지
그는 다른 방식으로 깊어지는 중
문명의 반대편으로 걸어가며
2004년 《시와세계》로 등단했다. 교직에서 물러나 지금은 목포에서 번역에 몰입하면서 게스트하우스 ‘달빛언덕’을 운영하고 있다. 시집으로 『내가 침묵이었을 때』, 영문 시집 『ink garden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