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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우리집 대소사
제네시스 구입
고교동창 한턱 쏨
와이프 태극권 2급
어지러움 증
처제 육순
세브 여행
사촌간 종토 대립
*제네시스 구입
마지막 승용차
내 나이 칠십 중반인데 대형 승용차를 구입하였다.
내 일생의 마지막 승용차가 될 것이다.
친구들은 운전 면허증을 반납하거나 아예 승용차를 몰고 다니지 않는 친구가 대다수다.
더구나 우리나라 복지가 잘되어 있어서 친구들은 돈 들지 않는 전철을 애용한다.
서울시내에 전철이 구석구석 잘 깔려 있어서 무임승차인 전철은 노인들에게는 천국이다.
이런 좋은 혜택이 있는 전철을 놔두고 나는 승용차를 구입하고 친구들한테 자랑도 안하고 혼자 몰고 다닌다.
친구들이 내가 승용차를 새로 구입했다면 지금 이 나이에 차를 새로 샀다고 의아한 눈초리로 볼 것이 명확하다.
나는 이 차를 10년 이상은 끌고 다닐 예정이다.
팔십 중반이 넘어서도 끌고 다니겠다는 의지가 의심스럽지만 나의 목표는 절대적이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현대 제네시스 G80을 4륜구동으로 샀다.
서울 강남에는 외제 차의 홍수다.
아들의 의견을 들어 나도 외제차를 한번 타볼까 하고 외제 차 딜러시장을 둘러보았다.
독일제는 비싼 편이고 미제는 싼 편이며 일제는 중간이다.
모두 다 신기술에 IT를 접목하여 구형만 타고 다니던 사람은 처음 운전할 때 얼떨떨하다.
캐딜락은 할인을 1천2백이나 해 준단다.
제네시스보다 싸서 한번 관심을 두었다가 장기간 탈것이라면 아무래도 애프터 서비스가 문제라 국산 제네시스로 마음을 굳혔다.
회사차를 타고 다니다가 내가 직접 구입하여 처음으로 탄 차가 현대 포니2다.
포니2가 낡아 신차를 구입한 것이 현대 쏘나타다.
쏘나타를 15년 타고 폐차 처분하고 그랜저를 샀다.
그랜저를 살 때만 하여도 강남에 외제차가 눈에 별로 띠지 않던 시절이다.
이 그랜저를 17년 타고 이번에 제네시스를 구입한 것이다.
소형 포니2에서 중형 쏘나타로 대형 그랜저에서 초대형 제네시스로 올라 탄 것이다.
현대에서는 내가 외제차도 안사고 국산 현대만 애용했으니 상을 줄만도 한데 아무 소식이 없다.
제네시스를 구입하니 그랜저보다 전장이 길고 전폭이 약간 넓어 집이나 사무실의 주차장 들어가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주차장 들어가는데 양쪽 5Cm면 충분한데 경고음이 들리고 적색신호가 들어오고 야단이다.
그랜저로 자신 있게 주차를 하던 것이 새 차에 경고음이 계속 울리니 신경이 쓰이는데 이 노릇을 계속해야 할 것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작은 외제차도 괜찮을 걸 하는 생각도 든다.
나 같은 나이엔 대형보다는 중형을 구입하는 것이 맞으나 일생에 한번 대형차를 타보겠다는 욕심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새 차를 인수하기 전에 논현동의 현대 운전 시승쎈타에서 운전도 해보고 새로운 메뉴에 대하여 교육도 받고 시험도 해 보았다.
그러나 원체 여러 가지 기능이 변해있어 한두 번 설명에 마스터 하기란 기대난이다.
5천8백에 공채까지 7천여만 원을 들여서 나의 만족을 위하여 국산차를 고집하며 제네시스를 끌고 다닌다.
처제가 연비가 좋은 전기 그랜저를 샀다고 좋아하니 집사람이 우리도 차를 바꿀 때가 넘었으니 이참에 바꾸자고 하여 집사람의 고쟁이 돈을 모두 긁어모아 제네시스를 산 것이다.
칠순이 넘어 모든 일 다 정리하고 집안에 박혀 있어야 하는 나이에 미친척하고 중장비를 구입하니 보는 사람마다 놀라는데 거기에다 또 10년 이상 타겠다고 대형 승용차를 샀으니 미친 눈초리로 보는 사람이 대다수일거다.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10년 이상은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생물학적 나이와 정신적 나이가 다르듯이 나는 나의 체력도 보완하기 위하여 열심히 산에도 가야 한다.
의료제도가 잘 되어 있어 생각보다 더 오래 살수 있는 것이 요즈음 실증되고 있다.
지금 이 나이에 집에 앉아 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외롭고 지겨워서 어떻게 사나!!!
제발 체력만 버텨줘라.
열심히 뛰어 돈은 못 벌더라도 현상유지로 만족하고 오라고만 하면 친구들 모임에 나가 회포를 풀겠다.
차 한대 사고 10년을 살겠다고 비장한 결심을 한다.
*고교동창 한턱 쏨
고교 동창 한턱
고등학교 동기동창 회장을 하며 동창들의 외곽모임인 지역모임을 동창회 소 모임으로 결성하여 동창회의 활력을 불어 놓으며 친목을 다졌다.
모두 잘 했다는 평이 나온다.
고등학교 동창회는 동창회 사무실도 가지고 있고 상주하는 총무도 있어 회장으로서 하기 좋은 환경과 분위기라 별 어려움이 없었다.
고등학교 동창회 사무실을 갖고 동창회 자금을 갖고 운영하는 고등학교는 전국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다.
작년에는 역대 회장을 모두 초청하여 일식집에서 한턱을 냈다.
금년에는 전 동기 동창을 초청하여 이천 쌀밥집에서 한턱을 냈다.
지금까지 이렇게 한 회장이 없는데 이번 회장은 다르다며 빈말이라도 한마디씩 칭찬해 준다.
소모임을 아웃사이드에서 인사이드로 끌어들인 결과로 동창의 전체 모임인 춘추 야유회나 등산모임 등 동창회에서 하는 일에 많은 협조를 하여 회장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이 잘 진행되었다.
봄가을 야유회 때 미국의 럼스필드와 이락의 후세인, 미국과 중동의 시아파 수니파와 IS, 남미의 사회주의, 유럽의 축구 열기, 자본주의에서 태동한 공산주의, 한국의 국격과 386의 청와대 입성, 월드컵과 터키, 등 버스 안에서 친구들에게 마이크를 들고 설파를 하였다.
친구들이 감명 깊게 들었다며 그렇게 다방면으로 많이 아는 줄 몰랐다고 이구동성으로 놀란다.
전체적으로 회장을 잘했다는 평을 들으니 기분은 나쁘지 않다.
동창회 회장도 금년이 마지막으로 회장 직을 내려놓으니 이제 어깨가 홀가분해 졌다.
*와이프 태극권 2급
와이프 태극권 2급
집사람이 신사 문화쎈타에서 하는 태극권을 새벽에 열심히 나가더니 급수시험이 있다고 도전한다고 한다.
중국 공원에 가면 떼 지어 군무하는 운동이 거의 다 태극권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활성화가 안 되어 문화쎈타에 오는 문하생이 얼마 되지 않아 페쇄지경까지 이르렀다.
집사람의 독려로 문하생을 끌어드려 간신히 태극권이 유지되는 모양이다.
12월 10일 일요일에 교대 역에 있는 태극권 본부에서 망년회 겸 태극권 급수 시험이 있었다.
집사람은 오전에 3급 또 오후에 2급에 합격했다.
한 번에 두 급수를 보게 하는 것도 그렇지만 두 급수를 다 합격하는 것도 특이한 사항이다.
상황이 어찌됐던 집사람은 태극권 3급 2급 합격증을 가지고 왔다.
떨어진 사람은 극소수인 것 같다.
작년에는 대만까지 가서 상장을 따오더니 계속 태극권의 경력을 쌓아 올린다.
자기는 태극권도 한강 고수부지에서 우아하게 한번 해 보겠단다.
*어지러움 증
어지러움증
8월 14일 토요일 아침에 잠에서 깨어 일어나는데 별안간 어지럽고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어질어질하여 벽을 잡고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세면대를 잡고 있는데 토할 것 같이 구역질이 난다.
화장대에 앉아 있으니 어지럼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여태껏 이런 어지럼증은 한 번도 없었고 무슨 이유에서 어지럼증이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머리가 빙빙 도니 머리에 혈관이 막힌 것이 아닌가 덜컥 겁이 난다.
동네 내과병원에 갔다.
몇 일전 빗가올 때 넘어져 머리를 부딪쳐 약간 딩 한 적이 있다고 하니 며칠이 지났더라도 지금 나타날 수가 있으니 뇌혈관에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 그리고는 큰병원에 가보라고 의뢰증을 써 준다.
은근히 겁이나 집사람이 운전하고 강남성모병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 의사가 뇌졸중은 아니고 이석증이란다.
귀에 모래알 같은 이석이 튀어나와 달팽이관이 중심을 못 잡고 어지러운 것이란다.
오늘이 토요일이니 월요일 담당 의사에게 판정을 받으란다.
우선 뇌졸중이 아니라고 하여 안심하고 집으로 왔다.
구토할 것 같은 증상은 사라지고 어지럼증도 가만히 있으면 괜찮다.
월요일 성모병원 담당의사가 내 응급실 기록을 보더니 이석증이 아니고 정전 염증이란다.
정전염증이란 어지럽고 구토증세가 동반 하는데 큰 병이 아니니 근심하지 말라고 한다.
약을 처방하고 나오며 건강하다가도 불시에 예상하지 못하는 병이 찾아오면 어떠하나 하고 불안이 온다.
나는 지금 벌려 논 일도 있고 그 바람에 자동차까지 바꿨는데 신상에 문제가 생기면 곤란하니 내 몸은 내가 조심을 해야 한다.
친구들은 늙은 놈이 미친 짓이라고 할지 모르나 나는 현재 상태로 10년은 버팅길 계획이다.
*처제 육순
처제 육순
집사람과 붙어 다니는 처제가 벌써 육순이 되었다.
1남 1녀에 외손자를 보았으니 성공한 셈이다.
해룡이 문제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어 지금도 처남과는 왕래가 없다.
살벌하던 남편과도 외손자를 본 후에서 부터는 다툼이 없이 화목해 졌다.
극성스런 처제는 초등학교 양호교사를 하면서 집안을 이끌어 왔다.
옆에서 보기에는 집안이 냉탕 온탕을 왔다 갔다 했다.
집에는 이제 초등학교 교사로 있는 아들만 장가를 보내면 부모로서 할 일은 마친 셈이다.
우리 집사람은 처제 육순에 대비하여 성의를 다해 여태껏 배운 재봉틀 실력으로 처제 옷 한벌 만드느냐고 며칠을 소비 하였다.
육순을 11월 4일 토요일을 택하여 집안 식구끼리 저녁을 하기로 약조하였다.
출장부페를 불러 처제의 의왕집에서 시집형제들과 우리가 참예를 하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집사람은 민요경연대회 참석하는 날이라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이며 저녁 늦게라도 참석하겠다는 의지다.
나는 고대 MBA 산우회 모임이라 산행이 끝나자마자 참석예정으로 있다.
혁범이는 별 탈 없이 참석할 수 있다고 한다.
다행히도 집사람은 예상보다 경연대회가 빨리 끝나 산행을 마치고 집에 있는 나와 같이 제시간에 도착하였다.
집사람이 만든 옷을 입어본 처제는 좋아하며 얼굴에 함박꽃이 피었다.
집사람은 오늘 민요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기분이 한껏 고조되어 있는 상황이라 육순잔치의 분위기가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혁범이 식구도 나타나 처제네 친척들과 어울리며 집안끼리의 조촐한 육순잔치를 제대로 치렀다.
지금은 장수시대라 옛날같이 환갑잔치가 사라지고 돌잔치가 성행이라 집안끼리 모여서 축하해 주는 육순잔치가 대세다.
처제 육순을 축하해.
*세브 여행
세브 여행
금년은 추석 연휴가 9월 말일부터 10월 9일까지 10일이나 된다.
기업하는 사람들은 죽을 맛이지만 문 정부는 노동자를 위하여 강력하게 밀어붙인다.
나는 할 일없이 이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 중인데 작은 아들 한테서 연락이 왔다.
필리핀 세브로 여행을 가자는 것이다.
나는 여행갈 때면 휴일은 피하고 평일을 택하는 편이다.
휴일은 여행비도 비싸고 사람도 많아 시간의 여유가 있는 나는 특히 연휴는 집에서 쉬고 평일을 택하여 여행을 간다.
집사람에게 아들이 여행을 가자는데 어떠냐고 물어보니 아들 손자와 같이 가는데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겠냐고 같이 가잔다.
여행사의 페케지 투어가 아니고 개인 자유여행이다. 유치원 다니는 손자를 데리고 다섯 명이 세브 여행길에 올랐다.
나 혼자 가려면 개인여행은 엄두도 못 냈는데 작은 아들이 영어를 할 수 있어 마음 놓고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연휴 막바지인 10월 8일 저녁 비행기로 출발하여 14일 아침 비행기로 귀국을 하였다.
세브 도착 다음날 Radisson 호텔에서 수영하며 하루 쉬고 그 다음날은 우리부부만 새벽에 출발하여 세 시간 걸려 세브섬 남쪽에 있는 오스롭 까지 내려가서 고래상어를 보았다.
필리핀 전통 대나무 날개 달린 배로 Oslob 근해에서 수영하며 고래상어를 보는데 고래가 몸에 부딪치기도 한다.
고래상어는 입만 크고 순하여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오전에 오스롭 주민이 배로 고래상어의 먹이인 새우를 통째로 바다에 뿌리면 고래상어가 와서 먹는다. 고래상어는 한두 마리가 아니고 수십 마리가 온다.
오전에 고래상어는 먹이를 얻어먹기 위하여 오스롭 앞바다에 오고 주민은 고래상어를 보려고 오는 관광객 유치를 위하여 먹이를 계속 뿌리니 고래와 인간간의 상생관계다.
이름이 나서 이 시골어촌에 차를 댈 수 없을 만큼 관광객에 인기다.
한 팀에 한명씩 안내원이 붙어 물속에서 사진도 찍어주니 젊은 자유 여행객이 많이 온다.
Kawasan 폭포를 보고 중식을 하는데 옆에서 어떻게 노인네가 이런 자유여행을 혼자 왔느냐고 놀라는 표정이다.
카토릭 국가인 필리핀에 옛날교회인 Boljoon 교회를 보고 세브시로 돌아와 손자와 재회를 하였다.
여행 4일째 호핑투어에 온 식구가 나섰는데 호핑만 전문으로 하는 호핑천국팀이 우리를 안내한다.
호핑투어객 보다 안내 팀이 더 많은 것 같다.
전문 안내 팀이라 배에서 투어 객을 리드하는 것이 보통 솜씨가 아니다.
Hilutungan 섬에서 수경을 쓰고 열대어를 보고 또 Nalusuan섬에서 본격적인 호핑을 하고 재미로 바다낚시도 하며 열대어도 잡아 보았다.
세브시의 Radisson Hotel 에서 막탄섬의 J park Resort 로 짐을 옮겼다.
대형리조트에 유수풀장이 있어 우리나라 카라비안베이 수영장의 축소판 같다.
세브섬 옆에 조그만 막탄섬이 있는데 이 막탄섬에 국제공항이 있고 고급리조트나 호텔이 많아 세브관광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막탁섬 동쪽 끝에 라프라프 동상이 있는데 마젤란이 주민에게 악행을 하여 마젤란을 전투 끝에 죽인 인물로 용감한 족장으로 남아있다.
세계일주의 마젤란 함대는 패전 이후 해적으로 변하여 우여곡절 끝에 스페인에 도착하여 세계일주의 기록을 완수하게 된다.
매일 식사는 아들 내외가 식당을 찾아다니며 각양각색으로 주문을 하여 어찌나 먹었던지 결국은 탈이 나고 말았다.
여기에 로얄샬루트를 많이 먹은 것도 한몫을 했다.
바닷가에 있는 고급 리조트 J Park Resort 유수풀장에서 하루 종일 즐기는데도 억지로 끌려 다니며 나오는 식사도 처다만 보고 있으려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말도 못하는 손자는 여행에 속 썩이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잘도 쫓아다니며 수영장에서는 잘 놀고, 먹기도 잘한다.
자유여행으로 휴양지에서 푹 쉬며 놀려다가 뜻하지 않은 배탈로 즐거움이 반감되었다.
아들 덕분에 식구끼리 자유여행으로 세브의 고급 리조트에서 일주일간 잘 쉬다 왔다.
*사촌간 종토 대립
사전에 알려주는 글
2013년 9월 18일 종로에서 오영이 형을 만났을 때 쓴 ‘사촌 종중 땅’이라는 나의 글과
2017년 11원 16일 신사동에서 오영이 형을 만났을 때 쓴 ‘증조부 산소 몰래 파묘’ 란 글을 우선 전송하며 이글을 읽어보고 진실이 아닌 것을 지적하여 송부바랍니다.
충분한 답변이 없을 때에는 사촌과 땅에 대한 여러 가지 일을 계속 들추어 낼 것입니다.
현재는 오영이 형과 나만이 이 글을 볼 수 있으나 분명한 답변이 없을 시는 이 글과 계속되는 사연을 모두 친척이나 조카 또는 지인에게 알려 우리의 상황을 전파할 것입니다.
여태까지는 집안의 일이 밖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 창피하고 집안 망신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참고 참아 왔으나 이제는 참는 한계를 넘어 공개적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종중 땅을 자기 땅이라고 계속 주장을 하며 증조부 산소도 소리 소문 없이 파묘하고 화장을 한 오영이 형을 보고 나는 자손으로서 부끄럼과 불경이 극에 달하여 종중의 땅을 바로 잡아 자손으로서 최소의 도리를 하려고 합니다.
사촌 오영이는 큰집의 상좌가 되었고 작은 집은 내가 현재 상좌다.
큰집과 작은집이 서로 왕래가 없어 이웃보다 더 먼 친척이 되었다.
큰집은 땅 팔아 서울서 잘살고 우리는 가난하게 시골에서 살아 큰집이 우리를 무시하며 살아 온 것이다.
사촌의 자식들도 우리 자식들과 서로 만나보질 않아 서로간의 얼굴도 몰라본다.
이제는 집안의 경조사도 알리지 않는 처지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영이의 결심에 달려 있다.
지금이라도 자기 소유의 땅을 종중 땅이라고 인정하고 5대조의 시향절차를 밟으면 된다.
팔십이 넘은 오영이 형은 지금 재산에 욕심 부릴 나이는 지났고 자기 인생을 뒤돌아보며 잘못은 없는지 살펴보고 잘못된 부분은 되돌려 놓는 것이 마지막 일인 것이다.
이제라도 장손으로서 4대 봉사를 하고 자기의 위치로 돌아와야 되는 것이다.
팔십 평생 장손으로서 제사한번 안지내고 차례 한 번도 안 지낸 것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늦지 않았으니 장손으로 돌아와 장손으로서의 권위를 찾았으면 합니다.
내가 제1신에서부터 제3신 까지 장문으로 글을 써서 첨부서류까지 오영이에게 보냈다.
집안의 치부라 나도 금기시하여 입을 다물고 있었으나 이제 한계점에 도달하여 집안이 창피당하는 것을 무릅쓰고 2018년에는 이 글을 세상에 공개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