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는 50대 초반
다른 여자는 40대 후반
초반과 후반이라는 말의 역광이 의미의 착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 여자는 40대 초반에
다른 여자는 30대 초반에 이 도시에 들어왔다
둘 다 이방인이다
한 여자는 혈액형이 O형이고
다른 여자는 A형이다
혈액형의 통계와 세속적 해석이 전해주는대로
한 여자는 다소 다혈성이고
다른 여자는 다소 새침형이다
한 여자와 다른 여자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마구 팽창하는 이 도시의 건널목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며
이방인 특유의 호기심으로 서로를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자기 안에 있는 또다른 '자기'를 건너다 본 것일까

1964년생 모니카 벨루치
한 여자는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며 소일하고
다른 여자는 전업주부로 살아가는가 보다
한 여자가 남프랑스나 북유럽에 가서 두 세달 체류하는 동안
(그럴 수 있는 돈이 있다는 뜻이겠지)
다른 여자는 춘천에 가서 호수를 구경하거나 롯데시네마에서 영화를 본다
한 여자가 표준적인 사유방식에 동의하고 있다면
다른 여자는 과잉된 감수성에 자발적으로 걸려든다
한 여자는 한 달에 한 두 차례 백화점에 가서 옷을 구매한다
다른 여자는 이 도시의 조그만 옷가게에서 옷을 고른다
한 여자는 기성의 이미지를 얄밉도록 잘 소화해낸다
다른 여자는 없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재주를 가졌다
두 여자가 걸어가면 기묘한 의상의 트러블이 만들어진다
그것은 현실과 환상이 서로 다투는 모습이지만 보기에 즐거울 수도 있다
벨루치, 그녀도 자신의 껍질이 성가시겠다
한 여자는 남편과 자주 갈치조림을 먹으러 간다
다른 여자는 또래들과 스파게티를 먹거나 채식을 즐긴다
한 여자는 밝고 건강한 표준적인 음악 취향을 가졌다
다른 여자는 자극과 독성이 흐르는 하드록 계통을 즐긴다
두 여자가 만나서 얘기할 때
상투적인 혈액 반응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한 여자가 소심한 척 한다면
다른 여자는 개방적이고 활달한 어투를 선택한다
한 여자는 밤 늦은 시간에 무언가를 쓴다 자기를 쓰는가?
다른 여자는 문자행위의 날조성을 강하게 믿고 있는 모양이다
두 여자의 친연성은 각자의 속살림을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내공에 있다
무관심과 다른 무관심,,,
한 여자가 느닷없이 남편의 술버릇을 고백한다
다른 여자도 맞장구를 치며 알맞은 응대를 하며 반가와한다
한 여자: 신발을 바꿔 신고 와요^
다른 여자: 우리는 벽을 화장실 문이라고 우겨요^^
두 여자는 그제서야 서로를 인증하고 안심하는 듯 하다
각자의 남편들이 순간적으로 두 여자의 보증인인 된 셈인가

'진짜 눈물의 공포'
두 여자가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풍경,
카메라가 뒷걸음치며 멀리서 두 여자를 잡았다면
두 여자는 이 도시에서 한 몸처럼 한 호흡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두 여자는 각자 다른 장소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 않을까
여자 둘이 표나게 합의하지 못한 그 무엇 Something
그것은 이 도시에서 두 여자에게 사랑스런 의문으로 남아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