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에게 꿈과 사랑을 심어준 동요작곡가 윤극영(尹克榮)은 1903년 9월 6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서 아버지 윤정구(尹政求)와 어머니 청송 심씨(靑松 沈氏)사이에 1남 3녀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교통보통학교와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법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고,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양음악학교에서 바이올린과 성악을 공부하였다.
1923년 어린이들에게 순수한 우리말과 노래를 가르쳐 애국심과 미풍양속을 찾도록 하자는 목적으로 일본 동경에서 방정환(方定煥), 손진태(孫晉泰), 정순철(鄭順哲) 등과 함께 <색동회>를 조직하였다.
일본에서 돌아온 윤극영은 1924년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동요「반달」을 작곡하였다. 「반달」은 「어린이」지 창간호에 발표된 동요로 왜정시대의 우리나라 현실과 우리 민족의 마음을 비유했다고 한다.<다알리아회>라는 소년소녀합창단을 조직하여 동요창작과 보급운동을 통해 어린이 사랑운동을 펼쳤다.
1926년부터는 간도의 동흥중학교, 광명중학교, 광명여고에서 교사생활을 하였으며 1947년에 서울로 돌아온 윤극영은 윤석중(尹石重)이 만들고 가르친<노래동무회>에 참가하여 아름다운 동요들을 작곡하며 동요보급에 힘쓰는 한편,<색동회>를 다시 조직하여 "방정환 동상건립", "무궁화 보급운동" 등에 진력하다, 1988년 11월 15일 85세의 일기로 생애를 마쳤다.
2. 반달 노래비 건립
1968년 현대시 60돌을 맞아 새싹회(대표 윤석중)가 소년동아일보사를 비롯한 여러 신문과 출판사와 소파 기념사업회 등 단체의 도움으로 창경궁에「반달 노래비」를 건립하였으나 1984년 4월 18일 서울시 광진구 능동 소재 어린이대공원 놀이동산 앞에 옮겨 놓았다. 이 노래비는 네모 기둥 모양 돌의 앞면에 활처럼 깎아 내어 상현 반달 모양을 붉어지게 나타내고 그 아래 검은 부분에 반달 노래 가사 2절을 새겨 놓았다.
3. 주요 수상
ㅇ 제1회 소파상(1957년) ㅇ 국민훈장 목련장(1970년) ㅇ 국민훈장 모란장(1983년)
4. 주요 작품
-동 요: 반달/까치까치 설날/고드름/따오기/할미꽃/나란히 나란히/고기잡이/ 꾀꼬리/옥토끼 노래 -작곡집: 반달/윤극영 111곡집(1963년)등
반달 윤극영 선생 묘 및 노래비
위 치 : 양평군 강상면 송학3리
윤극영(尹克榮)
동요작가ㆍ작곡가ㆍ아동문화운동가. 서울 출생. 경성법학 전문학교를 중퇴하고, 일본 도쿄[東京]음악학교?도요[東洋]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였다.
1923년 "색동회"의 창립동인으로 활약하고, 1924년 동요 단체인 "다알리아회"를 조직, 어린이 문화운동과 동요창작ㆍ작곡운동을 벌였다. 한동안 만주의 간도(間島)에서 교편생활을, 하얼빈[哈爾濱]에서는 예술활동을 하였으며, 8?15광복 후 귀국하여 1947년 "노래동우회"를 조직하였다. 한국 동요ㆍ동시의 선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망국의 한을 노래에 실어, 1924년 《반달》 《설날》 《까치까치 설날은》 《할미꽃》 《고기잡이》 《꾀꼬리》 《옥토끼 노래》 등 창작동요를 발표하여 어린이에게 희망을 심어 주었으며, 《고드름》 《따오기》 등의 작곡을 통한 동요보급 운동도 함께 전개하였다.
"반달 할아버지"로 널리 알려졌으며, 동요창작과 작곡을 통해 한국 초창기의 아동문화운동에 크게 기여하였다. 1987년 어린이의 심성을 계발하고 순화시킬 목적으로 동화ㆍ동요ㆍ그림ㆍ무용ㆍ연극 등의 활동을 조직적으로 추진하는 단체인 동심문화원을 설립했다. 제1회 소파상 수상(1956), 고마우신 선생님(서울교육대학 제정)에 추대되고, 대한민국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300여 곡의 동요 이외에 동요작곡집으로 《반달》 《윤극영 111곡집》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