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호우가 지나간 내린천에는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래프팅을 즐기기 위해.
매일 그 앞을 지나던 남편은 엄청난 괴리감을 느껴야 했다.
'그래. 저 사람들은 아무 상관이 없지'
씁쓸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에 띄는 사람들이 보였다.
노란색 미니버스 뒷문이 열리더니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내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리프트 버스, 즐거운 표정의 장애인들.
'놀러 온 건가...'
그렇게 스쳐 지나갔다.
그 일행 속에 내가 있었다.
몇 개월 전부터 준비했던 인제 내린천 래프팅 여행.
연일 계속되는 인제 집중호우 소식에 취소해야겠다 했는데
뉴스에서 관광객이 없어 지역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며 찾아와달라는 인터뷰를 보고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작년에 호기롭게 사람들을 모아 진행했던 래프팅.
장애인도 충분히 탈 수 있었고 모두들 최초, 최고의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 신나게 준비했었고 그날 난 거기에 있었다.
우리가 그때 그렇게 스쳐 지나갔음을 훗 날 알게 되었다.
2005년, 아빠의 오랜 지기인 백 선생님이 우리 집에 하루 묵어가셨다.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단체에서 마침 경력자를 구하고 있었다며 나를 이끄셨다.
잘 다니던 복지관을 그만둔 후 2년 동안이나 백수로 지내고 있었던 나는 망설임 없이 상경했다.
장애인 콜택시, 장애인 활동 지원 제도, 장애인 보조 기구, 장애인 여행의 선구자 역할을 한 한벗재단이었다.
당시 한벗재단은 많은 장애인으로 북적였다.
그간 사회복지사로서 만나왔던 장애인들은 항상 도움을 줘야 하는 대상이라 여겨왔는데,
서울에서 만난 장애인들은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말하고 있었다.
그들의 사상은 시대를 앞서가고 있었다.
그 격차를 좁혀가는 과정에서 만난 장애인 오빠, 언니, 친구, 동생들이
나를 울리고, 웃게 하던 시절.
그때 남편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