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이주경
게릴라 가드닝 외
한참을 들여다봤어 화염병 대신 꽃을 던지려는 남자의 그림을
두 발은 황폐한 땅을 밟고 서 있었지
앞을 노려보는 남자의 시선을 따라가면 버려진 땅
그 너머에 지평선의 폐허가 있어, 유원지의 회전목마 앞에서 길을 잃은 나
내가 서 있던 곳도 그랬어
남자와 눈이 마주치면 시차가 생겨날까
태엽 감기는 소리가 꿈결처럼 들려
지금도 공습이 이어지는 지구 저편에는 날마다 집을 잃은 내가 넘쳐나
누군가 작은 아이 하나 버리면, 따라서 버리게 되는 게 문제야
처음부터 꽃을 버린다는 게 쉽진 않을 거야
지구를 정원으로 가꾸면
무너지고 부서지는 마음 따윈 숨길 수 있다고
한참을 들여다봤어 한 그루 나무같은 내 손금
아직 끝이 보이지 않게 뻗어가고 있어
나도 손금에 꽃을 피울 수 있을지 몰라 그래야 꽃 하나 던질 수 있지
금이 간 벽 모서리를 따라 마음이 잘게 부서지고 있어
이곳은 불모지야, 저 멀리 들려오는 폐허를 파괴하라 외치는 구호와 함성
여기저기 화염이 넘치는 폐허, 꽃들은 세상에 넘치는게 좋겠지
화염도 꽃이잖아 그래도 아프지 않는 꽃이면 좋겠어
나는 꽃이 필 때까지 손금만 들여다보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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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데이션
한번 더 축하해
파티가 끝난 사람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사라진다
눌러진 흔적만 남은 패브릭 소파는 다시 뾰로통해진다
식탁 위 크루아상에는 겹겹의 말을 쌓아놓고 있다
덕담 속에 악담은 잘 감추고 있어
케이크의 처참한 몰골이 파티의 뒷모습처럼 남아 있다
너와 맞잡은 손을 놓친 나는 옅어진다
폭우를 삼킨 바다 빛이 좋아
네 말이 마르기 전에
짙은 남색 물감을 섞어야 하는데
나는 파도 저 멀리 구름 앞에 서 있다
말랑하게 사라지고 싶다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빗방울처럼 번진다
사람들의 희미해진 경계선
바다는 물고기의 입술을 다 빨아먹는다
느리게 사라지는 소실점
공손하게 기도하는 손을 놓으면 밤이 잦아든다
색이 다 빠진 골목은 깜깜한 소리만 남는다
번져가는 밤이 좋아
풀어놓은 검푸른 물감처럼 나는 조금씩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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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경|1975년 부산출생. 2025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