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나
김동원
거울 속 꽃은 지는데,
첼로를 타고 카루소는 흐르고
흑 흑 흑, 왜 우는 거야, 바람
돌아보면 부서져버릴 사랑
칸나, 칸나, 칸나
불이 붙어 다 타버려라지, 뭐
거울 속 꽃은 지는데,
흑, 흑, 왜 우는 거야 바람
첼로를 타고 카루소는 흐르고
빨강, 미쳐버려라지, 뭐
칸나, 칸나, 칸나
붉은 라인은 왜 그리 외로운 거야
꽃대에 젖어 빗물은 흐르는데,
흑 흑 흑, 왜 우는 거야 바람
몸은 시대마다 다르게 읽힌다. 몸은 시대의 프리즘이다. 누가, 어떤 시선으로 비추는가에 따라, 변화한다. 몸은 유리이고, 거울이고, 무성한 숲이다. 그러나 현실 속의 몸은 파편이고, 대상이고, 간혹 주체이다. 몸은 거듭난다. 새롭게 해석된다. 그렇기에 몸은 변화하는 사건이고, 기록되는 감정이다. 현대의 몸은 알레고리적 건축물이고, 생물학적 기관이자 종교적 사원이다. 몸은 미술관이고 문화적 소모품이다. 몸은 완전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가상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가 도구가 되었다. 몸은 상품이자 브랜드이다. (…) 21세기 몸은 젠더, 나이, 인종, 사회적 위치와 경제적 역할, 권력에 따라 새롭게 해체되어 구성된다. 몸은 모니터의 화면이자 모바일의 액정과 같은 감각적 사물이다. 몸은 촉감이 있는 껍데기이고, 촉감의 무한한 상상력을 동반하는 꿈속의 이미지이다. (…) 몸은 (역사적으로) 질문을 품은 화두이다. 몸은 주체이며 객체가 공존하는 모호한 전류의 장(場)이다. ― 금은돌「대화, 불길한 몸으로 시작하는」 / 2020 『시와 사람』 봄호
음악은 하늘에서 흘러나와 사람의 몸에 붙은 것이다. 바닷물 속에서 붉은 현을 켜며 올라오는 해는 그 자체가 악기이다. 한밤중 물속에 들어가도 젖지 않는 달은 얼마나 신비로운 선율인가. 하여, 천지 만물은 모두 소리의 악기통이다. 하늘과 땅은 음양의 리듬으로 오행은 행간의 악보로 드러난다. 겨울의 흰눈은 봄의 들꽃 피는 소리에 숨고, 물의 음악은 초록의 여름 나뭇가지를 타고 허공의 생각을 만진다. 온갖 색채가 가을 단풍 속에 제소리들을 숨기고, 낙엽은 늙은 몸을 끌고 땅속 뿌리에 스며 은유의 소리로 부활한다. 강물은 스스로가 물의 연주자요, 바다는 강물들의 교향곡이다. 바람의 지휘자를 통해 천지는 한바탕 무위를 드러낸다. 하여, 자연은 형상을 창조하여 색의 음악을 만들고, 변화의 음을 통해 매순간 무화시킨다. 때론, 화산 폭발과 번개의 리듬으로 불의 음악을 펼치기도 하고, 때론 해일과 폭우로 물의 음악을 선사하기도 한다. 삼라만상은 상징의 율을 통해 이미지로 드러나고, 구상과 추상의 악기를 바꾸어가며, 색과 공의 법칙으로 우주를 탄주한다. 하여 음악은, 지수화풍토地水火風土란 경이로운 음계를 버무려 일월의 조화음을 만든다. 그 사이 인간은 희로애락의 고저장단에 사주팔자의 추임새를 얹어, 한바탕 각자의 시공의 방식으로 몸을 통해 놀다 가는 악기인 셈이다. 하여, 시「칸나」는 홀연히 음악의 방식으로 내 영혼 속에 치고 들어왔다.
비극적 음색은 왜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걸까. 슬픈 음악은 가슴 속에 엉킨 감정의 비애가 악기의 현을 타고 나오는 색채같다. 시인의 영혼은 존재의 처음을 만지는 음악이라도 되는 걸까. 시는 왜 가장 추악하고 비루한 흔적을 들추는 걸까. 비바람은 몰아치는데〈거울 속 꽃은 지는데〉그 봄날 나는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1935~2007)의 그 장엄한 비감어린《카루소》를 듣다, 짐승처럼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돌아보면 부서져버릴 사랑〉앞에서,〈흑 흑 흑,〉바람처럼 나의 기억은 울고 있었다. 순간, 초등학교 1학년 때 창문 너머로 반한, 그 예쁜〈칸나〉가 내 무의식 속에서 붉게 피었다. 빗속에 계속〈첼로를 타고 카루소는 흐르고〉, 붉은 라인의 외로운 칸나는 그 옛날 잃어버린 소녀처럼 은유로 서 있었다. 내게 어린 날 잃어버린 첫사랑은, 아무에게도 고백할 수 없는, 아무리 소리쳐도 들리지 않는, 절대고독의 영역이자 혼자만의 비밀이었다. 참혹한 이별이 찾아온 건 12살 때였다. 소녀는 심장을 찔렀고, 버려진 나는 빨강을 죽였다. 하여 나는, 이 세계의 빨강은 다 사라져야 한다고 외쳤다. 아니〈빨강, 미쳐버려라지, 뭐〉라고, 독언을 퍼부었다. 그 당시 어린 영혼은 늘 위태로웠고, 다친 심장을 움켜쥐고, 흑 흑, 바람처럼 서성였다.《카루소》의애절한 비가를 듣는 순간, 한밤중 사랑에 미쳐〈칸나, 칸나, 칸나〉를 부르며 뛰쳐나갔던, 나의 내면 아이를 보았다. 들판에 버려진 소년의 심장을 타고, 그 노래는 전신을 불길로 휘감았다. 왜 나는 그때, 이별의 사랑을 가장 아름답고 슬픈 긴 음악으로 들었을까. 명곡《카루소Caruso》는 47세로 죽은 이탈리아 테너 가수 엔리코 카루소(EnricoCaruso 1873~1921년)를 추억한, 사랑의 비극을 담은 노래이다. 칸쏘네 가수이자 연주가인 루초 달라(Lucio Dalla, 1943~ 2012년)가, 죽기 전 카루소가 묵었던 소렌토의 비토리아 호텔 (Excelsior Vittoria)를 밤에 방문하여 작곡했다. 카루소가 묵었던 방에는 넓은 테라스가 있고, 그 테라스에 서면 나폴리만의 푸른 바다가 보이고, 그 너머 도시 나폴리 위에는, 사랑하는 여인이 달빛에 눈물을 흘리며 비가를 듣고 있다. 그 호텔 방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낸 카루소를 떠올리며, 루초 달라는 피아노에 앉아 즉석에서《카루소》를 썼다.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전율하는 목소리와 스테판 하우저의 애절한 현弦의 첼로 연주를, 아! 사랑에 미친 독자여, 꼭 한 번은 들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