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당벧엘교회 구요셉목사님
전 세계 대환난 경고와 임박한 휴거 까마귀의 비밀 이란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주에 엘리야의 행적과 전3년 반의 한때 두 때 반때의 비밀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작하다가 멈췄습니다. 왜냐하면 까마귀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이 땅에 기근이 임할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그릿 시냇가로 갑니다. 그릿 시냇가에서 까마귀가 날아와 떡과 고기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기근을 면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시작해서 엘리야의 행적과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두 증인의 행적이 정확하게 들어맞습니다. 그 부분을 하려고 했다가 까마귀에 막힌 것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번 주에 여러분 아시겠지만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카이로에서 협상하고 있는데 거의 타결될 거라고 합니다. 내용은 포로들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1차 포로를 풀어준 일이 있었고 지금 포로를 풀어주면 2차 포로를 풀어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어디에 있습니까? 야곱의 딸 디나가 잡혔다가 이스라엘 자녀들이 잡았던 자들을 공격하고 디나가 풀려난 사건이 창세기에 있었습니다. 똑같은 상황이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우리는 과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성경 말씀은 과거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이야기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맞아지지 않는다면 과거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실제 상황과 그때 있었던 상황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왜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을까요? 우리가 늘 의문시되었던 왜 야곱의 자녀인 디나가 몹쓸 짓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가서 그곳에 인질로 갇혀 있다가 풀려나는 상황이 있었던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돌아봤더니 지금 이스라엘이 당하고 있는 일들에 관한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한두 번 있으면 우연이겠지만 그것이 아니라 엘리야의 일생과 야곱의 일생을 돌아보았더니 그것들은 전부 다 마지막 때 우리 때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지난번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중국 남부가 100년 만에 대홍수에 접어들어서 수많은 인명피해가 나고 있고 아시아의 수온은 급상승해서 지구 전체의 수온의 올라감보다 3배나 더 증가했습니다. 그 결과 동남아시아는 현재 체감 온도가 50도입니다. 굉장한 폭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 와인 생산량이 62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 수많은 재앙이 있습니다. 브라질도 남부의 대홍수로 37명 사망, 74명 실종되고 다리가 떠내려갔고 브라질에서 생산되고 있는 대두가 흉년에 들어갈 것입니다. 당장 흉년에 관한 것입니다. 세계의 곡창 지대인 브라질과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의 텍사스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서부 영화의 주 무대입니다. 사막에서 휘파람 불고 카우보이가 달려야 될 것 같은데 지금 대홍수입니다. 텍사스에 한국 크기만한 곳에 대홍수가 일어나서 재난지역 선포를 했습니다. 위쪽 오클라호마 위쪽과 5대 호수가 있는 쪽도 홍수 위기입니다. 중서부에는 토네이도가 100여개 발생해서 대략 남부, 중부 쪽 다 합해서 7,500만 정도의 미국 인구의 대략 4분의 1 정도로 재앙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케냐도 대홍수에 들어가서 이재민은 보통 많은 게 아니고 케냐 전역의 홍수로 200명이 사망했습니다. 브라질 또한 이재민이 8만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지금 온 땅에 그러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겠지만 사막 지역에도 현재 대홍수가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전 세계에 홍수와 전쟁에 접하지 않는 나라가 없습니다. 우크라이나도 곡창지대인데 그곳들이 재앙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기근을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도가 상승함으로 사람들이 자꾸 과학 이야기를 합니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성경 말씀은 점점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지구의 온도가 계속 상승할 것을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우리에게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구 온난화에 대한 성경의 고찰이라고 설교를 할까 하는 생각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을 구원하는 속도와 더불어서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고 재앙에 들어가는 것이 성경에 기재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 때의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이런 재앙을 당해본 적이 없습니다. 전염병으로 온 세계가 파장을 일으킨 적이 없지 않습니까? 전염병과 기근과 전쟁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환난이 아닙니다. 전 세계가 대환난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나님이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제 정신 바짝 차리셔야 됩니다. 전 세계가 대환난에 들어간다면 그리스도인의 성경에 적혀 있는 휴거도 임박했다는 뜻입니다 휴거 임박했다고 하니까 예수 믿으면 휴거 될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곧 예수님 오실 거라고 말하는 분들 중에서도 예수만 믿으면 다 휴거될 거라고 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깊이 고찰하지 못한 잘못이 있습니다. 성경의 일부를 인용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보는 시야가 좁은 것입니다. 오늘 그 부분에 대해서 좀 더 깊이 보고자 합니다. 열왕기상 18장 말씀입니다.
열왕기상 18장 1절부터 2절
1 많은 날을 지내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2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더라
엘리야가 이스라엘에 기근이 있을 거라는 예언을 하고 3년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엘리야가 예언한 기간을 3년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정확하게는 3년 6개월입니다. 엘리야가 예언했던 기근의 기간이 3년 6개월과 두 증인이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하던 기간이 동일합니다. 똑같이 3년 6개월 입니다. 엘리야의 기근 예언의 기간과 두 증인의 회개 기간이 동일합니다. 두 증인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예언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과거의 일로 말씀하심으로 그것들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라고 우리에게 알려주시려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 전체는 하나님의 눈동자는 마지막 때에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십니다. 알파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구원하려고 시작하신 때를 이야기합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맺던 그때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를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시작이라는 말씀은 너희와 언약을 맺은 시작을 말씀하십니다. 오메가는 무엇입니까? 언약을 완전히 이루는 날을 이야기합니다. 성경은 어떤 책입니까? 구약과 신약으로 약속의 책입니다. 언약의 책, 언약 서적이고 약속을 마지막으로 맺는 것 곧 오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알파와 오메가에 관한 이야기로 성경은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세의 오경, 구약의 말씀들을 너희가 상고하거니와 그 말씀들이 나에 대해 쓴 것이라고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언약의 관점으로 보면 완벽합니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자꾸 헷갈립니다. 언약의 관점으로 보시면 이 말씀은 완벽해집니다. 예수님이 잔을 주시며 이것은 너희와 맺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무엇입니까? 나와 너희는 혼인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나와의 혼인 언약을 기다리라. 내가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모두 예비하면 너희를 데리러 오겠다.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오메가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에 쓰여 있는 내용들입니다.
오메가의 관점으로 보면 열왕기와 구약에 있는 것들은 알파에 관한 것이고 시작에 대한 것을 가지고 끝을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를 미리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선지자에게 미리 말하지 않고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성경에 써 있습니다. 누군가 예언자나 예수님의 친구라고 하면서 하는 예언들은 수도 없이 빗나갔습니다. 정확하게 말씀 속에 있습니다. 그러면 엘리야의 예언의 기간이 3년 6개월인가를 보겠습니다.
야고보서 5장 17절에서 20절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18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19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즉 땅에 비가 3년 6개월 안왔다고 정확하게 있습니다. 구약의 어떤 말씀들은 숨겨놓은 말씀들이 있는데 신약에 밝힐 때도 많이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을 함께 보면서 이해하는 게 좋습니다. 여기서 엘리야의 전 세계의 기근은 곧 전3년 반의 기간이 3년 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3년 반에 활동하는 사람은 두 증인입니다. 엘리야를 통하여 두 증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말라기서에는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내가 오기 전에 엘리야를 먼저 보내리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18절에 다시 기도한 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무엇입니까? 그들이 거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그 기근을 면할 거라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바로 그릿 시냇가의 비밀입니다.
19절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게 하고 돌아오게 전도하는 것입니다. 19절 말씀과 밑에 20절의 돌아서게 하는 자가 동일한 자일까요? 20절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무엇입니까? 예수를 전하면 그 사람이 예수를 영접하게 하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20절에 말한 건 성령님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성령님이 마음을 바꾸십니다. 여기에 포인트가 있습니다. 교회가 까딱 잘못하면 면죄부를 팔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이야기합니다. 현대판 면죄부입니다. 많은 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으므로 나는 구원받았다. 교회도 안 나가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미국의 고어 부통령의 예를 들었지만 그분만이 아닙니다. 수많은 분들이 구원을 고백에 포인트를 두었더니 아무렇게나 살아버리는 것입니다.
구원의 포인트는 고백에 있지 않습니다.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무엇입니까? 미혹된 길에서 돌이켜서 예수님이 가라 하신 좁은 길을 따라가는 자가 구원받습니다. 구원은 길을 돌이킨 자가 받습니다. 길을 돌이켜 좁은 길을 따라 걸어가는 자가 구원받습니다. 행위구원론 이런 용어를 만들어서 성경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어떤 자가 구원받습니까? 미혹한 길에서 돌이킨 자, 그걸 돌이키게 하는 자가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뒤에 뭐라고 말합니까?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돌이키기만 하면 성령께서 죄를 덮어버린다 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를 잘 믿어도 우리는 시시때때로 죄를 짓습니다. 죄 짓는 것을 왜 모르냐면 허물을 모르는 것입니다. 죄는 내가 인식하는 것이고 허물은 인식이 안 됩니다. 허물은 덮여 있는 죄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꺼풀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내장 속에 있기 때문에 안 보이는데 생각으로 짓는 많은 죄들, 행동으로 무의식으로 짓는 죄들이 허물의 죄입니다. 이것은 내가 인식을 못하기 때문에 아무리 회개를 해도 몰라서 이건 덮어주셔야 됩니다. 그러므로 죄를 덮임 받아서 구원받습니다. 이것을 정확히 인식하시면 됩니다. 구원을 쉽게 전하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께 심판받을 것입니다.
제가 이번 주에 전화를 받다가 격노했습니다. 다른 목사님 설교를 들으니까 구원이 쉽던데 왜 목사님은 구원을 어렵게 전하냐고 시험든 성도들이 있답니다. 큰일 날 소리입니다. 이래서 한국 교회와 전 세계 교회가 망한 겁니다. 교회가 동성애를 허락하고 말씀에서 어긋나서 잘못된 길을 가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기독교와 천주교가 같다고 합니다. 천주교는 이미 타락해서 구원받지 못할 종교입니다. 예수님께 내 죄를 고백하지 아니하고 마리아에게 대신 이야기하면 그가 예수께 고해줍니까? 성경에 그런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연옥에 있더라도 헌금을 하고 기도하면 한 단계 올라간다고 성경에 없는 것을 인간적인 생각으로 얼마나 많이 말씀을 바꿨습니까? 말씀을 왜곡하는 것은 구원을 막는 길입니다. 말씀은 그대로 전해야 됩니다. 다시 열왕기상으로 가겠습니다.
열왕기상 17장 1절부터 7절
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2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4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5 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
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비가 이스라엘 땅에 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그릿 시냇가로 가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땅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릿 시냇가에 숨었는데 시냇물이 아직 흐르고 물이 있습니다. 기근이지만 아직은 살 만합니다. 까마귀들이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했습니다. 까마귀들이 떡과 고기를 갖다 줍니다. 떡을 먹으면 굶어 죽지 않고 고기는 풍요입니다. 이것이 떡과 고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굶어죽지 않을뿐더러 풍요하며 시내도 흐릅니다. 환난이되 엘리야는 환난에 들어가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두 증인이 있는 한 환난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릿 시냇가 물이 마르고 엘리야를 이방 땅으로 떠나게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사르밧 과부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사르밧 과부의 사건은 다음에 전하고자 합니다. 사르밧 과부의 사건은 두 증인이 있을 때 이방 땅에 있는 사건입니다. 두 증인이 있을 때 이스라엘에 있을 사건과 이방 땅에 있을 사건을 분류하고 있습니다.
떡과 고기를 준 이 사건과 엘리야가 로뎀나무에 쓰러져 누워 있을 때 무엇을 주십니까? 천사를 통하여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주시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의 사건은 놀랍게도 두 증인이 사망하는 사건입니다. 두 증인이 사망하고 시체가 되어 누워 있습니다. 엘리야도 영적으로 사망해버렸고 차라리 죽여주십시오. 하고 누워버렸습니다. 누워 가지고 죽어 있는 상태인데 누가 깨웁니까? 천사가 깨웁니다. 그리고 숯불에 구운 떡을 줍니다. 예수님이 바로 숯불의 구운 떡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시체가 되신 예수가 바로 숯불에 구운 떡의 의미입니다. 지난주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시체가 되어 죽어 있는 예수를 성령이 살리십니다. 그게 바로 물입니다. 놀랍게도 두 증인이 시체가 되어 누워버릴 거라는 것입니다. 죽어버릴 것이고 성령이 살리십니다. 천사가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한 번 줍니까? 두 번 줍니다. 두 증인입니다. 한 명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두 명을 살리겠다는 뜻입니다. 한 번 주시지 않고 두 번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어디로 올라갑니까? 엘리야가 시내산으로 올라갑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엘리야가 천국에 올라가는 것의 비유입니다. 여기까지가 두 증인의 활동에 관한 예언입니다.
제가 알리려고 하는 것이 엘리야가 활동하는 모든 것들이 두 증인의 활동에 관한 예언들입니다. 그 뒤에 사건은 휴거의 사건과 연결됩니다. 그릿 시냇가도 전3년 환난 기간에 이스라엘은 어떨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고 전해드린 겁니다. 그렇게 전하려고 했다가 까마귀에 걸렸습니다. 까마귀는 히브리어로 〔오레브〕이고 복수는 〔오레빔〕이라고 하는데 ‘저녁, 어둠’이라는 뜻입니다. 이 땅에 환난이 임했을 때입니다. 이 땅이 환난에 들어갔을 때에 까마귀들을 보내서 이스라엘을 환난에 있지 않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까마귀가 한 마리가 아니고 여러 마리를 무엇으로 이해할 수 있냐면 환난 날의 도피성에 관한 예언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도피성이 여러 곳입니다. 도피성의 비밀이 큽니다. 도피성은 요단강을 건너가서 도피성이 세 곳이 있고 요단강을 건너가기 전에 도피성도 세 곳이 있습니다. 인구학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대부분 요단강을 건너갔는데 요단강을 건너가지 않은 지파는 두 지파 반밖에 안 됩니다. 루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지파 반이 요단강을 건너가지 않았습니다. 두 지파 반밖에 안 되고 건너간 자들은 여덟 지파 반이면 비율이 안 맞는데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도피성을 세 곳이나 만들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놀랍게도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이방 땅의 도피성이 세 곳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 예언은 이사야서에 가면 다시 나옵니다. 미국과 영국과 반도 국가와 섬나라 바로 한국과 동아시아의 해양 지역들을 말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미국과 영연방과 동아시아 해양 지역들이 환난 날의 도피성입니다. 마지막 환난의 때에 우리나라는 이스라엘과 연결됩니다. 그 이야기를 성경은 놀랍게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까마귀들입니다. 바로 이스라엘 돕는 국가들이 있을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도피성 국가가 될 것입니다. 그럼 까마귀의 뜻을 알아봐야 되겠습니다. 까마귀가 창세기부터 나옵니다. 제가 9살 때 같은데 까마귀를 처음 봤습니다. 학교 운동장에 있는데 까마귀가 새까맣고 커다란 놈이 날아오니 얼마나 무섭던지 오늘 재수 없는 일 있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집에 일부러 까치 오라고 감 꼭대기를 안따고 까치가 오니까 오늘 손님 오나, 무슨 좋은 일 있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은 까마귀가 환난, 재앙, 어두움이고 어두울 때 까마귀의 역할이 있습니다. 창세기 8장 보겠습니다.
창세기 8장 4절부터 7절
4 칠 월 곧 그 달 십칠 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5 물이 점점 감하여 시월 곧 그 달 일 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6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지은 창을 열고
7 까마귀를 내어 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놀랍게도 7월 17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습니다. 아라랏 산만 물이 빠졌고 육지는 물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노아가 기다립니다. 40일을 지나고 방주에 지은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 놓습니다. 까마귀를 내어 놓아서 뭍이 있는가, 좀 더 마르고 있는가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까마귀는 날아갔다고 생각하고 안돌아왔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봅시다. 까마귀가 계속 왔다 갔다 합니다.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왜 노아는 까마귀를 놓아줬을까요? 언제 환난이 그칠 것인가를 까마귀를 통하여 알려고 까마귀는 환난 날에 주의 길을 예비하게 하는 메신저입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는 자를 이야기 합니다. 우리 나라도 메신저 역할을 하는 국가입니다. 놀랍게도 까마귀는 왕래하고 있습니다.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소식을 전하고 이 땅에 주가 오신다고 전파하고 주를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류하고 있고 환난의 때입니다. 그래서 까마귀는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까마귀는 하나님을 돕고 믿는 자를 돕는 자입니다. 아까 엘리야의 까마귀가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스라엘을 돕는 자들입니다. 원래 처음에 했던 까마귀의 일과 엘리야 때에 까마귀가 하는 일은 똑같습니다. 다시 보겠습니다.
창세기 8장 8절부터 12절
8 그가 또 비둘기를 내어 놓아 지면에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매
9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접족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속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10 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어 놓으매
11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 줄 알았으며
12 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어 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다시 비둘기를 내어놓습니다. 비둘기는 무슨 뜻일까요? 까마귀는 돕는 자란 뜻인데 비둘기는 돌아오는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새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미리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비둘기는 돌아오는 자인데 비둘기를 세 번 놓습니다. 처음에 비둘기를 내어 놓았는데 비둘기가 다시 방주로 돌아옵니다. 두 번째는 비둘기를 내어 놓았더니 감람 새 잎사귀를 물고 옵니다. 세 번째 비둘기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비둘기는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새입니다. 이것은 세 번의 휴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놀랍게도 첫 번째 하나님께 돌아가는 자가 있고 두 번째 하나님께 돌아가는 자가 있고 세 번째 여호와께 돌아오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 여호와께 돌아오는 자가 있고 난 후에는 어떤 일이 있습니까? 온 땅에 예수님이 지상 재림하시고 친히 다스립니다. 그 사건에 대해서 돌아오는 자를 비둘기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알파와 오메가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한 명 한 명 다 돌아오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길을 돌이켜야 합니다. 길을 돌이키는 자가 구원받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이야기는 면죄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멸망시키려는 마귀의 말장난에 속으시면 안됩니다.
창세기 8장 13절에서 19절
13 육백일 년 정월 곧 그 달 일 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 즉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
14 이 월 이십칠 일에 땅이 말랐더라
15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16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17 너와 함께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18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자부들과 함께 나왔고
19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노아가 처음에 아라랏 산에 머물렀을 때가 언제입니까? 위에 4절 보겠습니다. 7월 곧 그달 17일 입니다. 노아가 다시 땅에 내려왔을 때가 언제입니까? 601년 2월 27일 입니다. 7월 17일부터 2월 27일까지 7개월 입니다. 한 이레의 언약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적그리스도와 평화 조약을 맺고 7년 뒤에 예수님이 오십니다. 정확하게 7년 입니까? 10일이 남습니다. 뒤에 이스라엘이 다시 독립을 하고 적그리스도가 전쟁을 일으키는 기간들이 있습니다. 이 기간들이 1년이 안되고 7년보다 좀 더 있습니다. 상징으로 말씀하기 위해서 10일로 한 것입니다. 10은 완전수로 그 기간을 말씀하시면서 7년 지나면 예수님이 오실 거라고 예상하고 기다리며 계산을 할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뒤에 그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고 적어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공중 강림하시는 날도 모르게 하셨고 예수님이 지상 재림하시는 날도 아무도 모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반복해서 있는 것입니다.
완전수로 10일은 언제 오실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다 이루어졌을 때 올 것이다. 이스라엘이 모두 회개할 때 오실 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 말씀이 놀랍습니다. 이런 개월수에서 조차도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니까 다 같이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가 그 이야기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잘못된 길을 가서 하나님은 다시 길을 돌아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구원받는 연어가 되셔야 합니다. 원래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물살을 헤치고 올라가셔야 됩니다. 가만히 머무르면 바다로 떠내려갑니다. 물살을 헤치고 올라가셔야 이긴 자라 하십니다. 이긴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세상과 싸우셔야 됩니다. 그럼 여기에 까마귀를 다시 보겠습니다. 아가서 5장 말씀입니다.
아가서 5장 10절부터 12절
10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 뛰어난다
11 머리는 정금 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같이 검구나
12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젖으로 씻은 듯하고 아름답게도 박혔구나
이것은 술람미가 예수님에 대해서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머리는 정금 같고 바로 영광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이 정금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이십니다. 머리털이 고불고불하다는 것은 지혜가 많고 왕이라는 뜻입니다. 과거 영국의 재판장들이 고불고불하게 덮어 쓴 것은 지혜가 많고 권세자, 심판자라는 것입니다. 고불고불한 것은 지혜가 많고 온 세상을 다스리는 자라는 뜻입니다. 까마귀같이 검구나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환난과 재앙에서 도와서 구원하시는 자란 뜻입니다. 이 땅은 환난의 땅입니다. 모든 인류는 죄로 인하여 지옥에 가야 되는 존재들입니다. 이 땅에 사는 자체가 환난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재앙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도와서 재앙에서 건지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까마귀같이 검다고 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환난에서 건져서 내 땅에 살게 할 것이다. 구원할 것이다. 그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는 생각으로 꽉 차 있으십니다. 성경은 전체가 여러분을 구원하려고 쓰신 책입니다. 눈은 시냇가에 비둘기 같은 데. 눈은 바라보는 것입니다. 드라마 보면 둘이서 연애할 때 눈부터 봅니다. 예수님은 너만 보인다는 뜻입니다. 내 눈동자에는 나에게 돌아오는 자 곧 비둘기 너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온통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러분 비둘기가 되셔야 합니다. 비둘기가 돌아가야지 바라만 본다고 구원받는 거 아닙니다. 바라만 보면 구원받는다고 얘기하는 것은 면죄부라고 한 것입니다.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이 미혹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말씀드립니다. 기독교는 종교개혁을 해야 됩니다. 이러다 다 죽습니다. 길을 돌이켜야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머리털이 까마귀같이 검다는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를 도와줄게. 환난에서 건져낼게, 반드시 구원할게. 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눈에 너 있다. 돌아오라. 이것이 까마귀와 비둘기의 비밀입니다. 그래서 노아 홍수도 까마귀와 비둘기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가서 2장 보겠습니다.
아가서 2장 9절부터 17절
9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4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
16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17 나의 사랑하는 자야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에서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아여라
9절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루는 이 세상에 살고 있습니까? 숲속에 숨어 삽니다. 세상에 오염되지 않은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린 사슴은 오염되지 않았지만 두려워하고 왔다 갔다 좌우를 살피지 못합니다. 노루가 어린 사슴을 인도해야 됩니다. 왜 어른 사슴을 이야기하지 않고 노루를 말씀하셨을까요? 노루는 머리에 뿔이 없습니다. 이것은 그들을 인도하는 자가 왕관을 쓰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자일 뿐이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린 사슴을 인도하여 예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노루의 할 일입니다. 노루는 자기의 영광을 엎어 쓰면 안됩니다. 자신이 위대한 자가 된 것 같이 굴면 안되고 겸손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겸손히 예수께 성도들을 이끄는 자를 노루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린 사슴은 그 노루를 따라 같이 갑니다.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진짜 예수님 오시는 거 맞는지, 진짜 예수님이 맞는지 계속 살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살펴 보셔야 됩니다. 진짜 복음인지 아니면 가짜인지 마지막 때는 잘 살펴보셔야 됩니다. 잘못 따라가다가는 죽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십니다. 10절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여러분 가만히 앉아 계셔야 되겠습니까? 일어나서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가셔야 됩니다. 성경은 계속 길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고개만 돌리고 일어나지 아니하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정확히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일어나서 함께 가자. 예수님을 닮아가려 하고 선하게 살려 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라 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을 돌이켜 세상과 짝하지 아니하고 정결하고 깨끗하게 살아라. 숲속에 숨어 너희를 지켜라.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라. 이것이 거룩입니다. 거룩의 뜻이 무엇입니까? 구별입니다. 너희들은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라. 그리고 일어나서 함께 가자. 마지막 때가 되었고 이제는 나에게 올 때가 되었다. 말씀하십니다.
11절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이스라엘은 겨울이 가장 비가 많이 올 때 장마철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직전에는 온 세상에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복을 받던 시대입니다. 예수를 믿는 국가는 복을 받고 믿지 않는 국가는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전 세계에 다 보고 계십니다. 미국도 지금 재앙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에 임하였던 축복이 점점 저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오실 때가 다 되었고 그것이 야곱의 환난입니다. 비도 그쳤고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에게 주던 축복도 그쳤습니다.
12절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지면에 꽃이 피었다는 것은 너와 내가 이제 사랑할 때라는 것입니다. 새의 노래가 어떤 새입니까? 비둘기입니다. 비둘기는 성령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따라가는 자란 뜻입니다. 비둘기는 성령님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자마자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와 예수님의 머리 위에 거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너희를 깨운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 오실 때 다 되었다. 성령께서 여러분을 깨우고 계십니다. 한국도 요즘 힘듭니다. 비가 그쳤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고 전 세계 경제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13절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은 현재 점점 예수께 돌아오는 자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을 전했습니다.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포도나무는 이방 땅에 전 세계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사랑이 싹트는 때라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고 꽃이 안 피면 열매 맺습니까? 꽃이 피어야 열매가 맺습니다. 이스라엘은 예외이고 전 세계에는 꽃이 피어야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과 사랑을 맺으셔야 열매를 맺습니다. 이제 예수님과 사랑에 빠지실 때입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예수님과 함께 가는 것을 기다려야 됩니다.
14절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예수님 오시기 직전에 이 세상이 환난에 들어가는 것을 알고 휴거됩니다. 그래서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점점 세상은 험악해지기 시작할 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러면 여러분 예수님이 뭐라 하십니까?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자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곧 예수님 만나실 거니까 예쁘게 단장하셔야 됩니다. 어떻게 단장할까요?
15절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 예수님과 사랑에 빠지려고 하면 반드시 방해합니다. 구원받기 너무 어렵게 하나님이 정말 그러실까? 자녀도 키우고 세상 재미도 보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 이거 작은 여우입니다. 교회 갔더니 재미도 없고, 모 집사는 나한테 기분 나쁜 말하고 업신 여기는 것 같기도 한 것이 작은 여우입니다. 사람 바라보게 해서 시험들게 합니다. 이렇게 시험들면 작은 여우에게 잡힌 것입니다. 마귀는 여러분의 생각과 환경에 작은 여우를 보냅니다. 교회를 허물고 여러분의 마음의 교회를 허물려고 합니다. 마음속에 작은 여우 잡으셔야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16절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예수님은 이 말씀을 요한복음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내 안에 있고 나는 너 안에 있다. 너와 나는 하나다. 너와 나는 부부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혼인을 하실 날이 다 되었습니다. 잘 단장하시고 마음속에 있는 작은 여우를 잡으셔야 됩니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는구나. 이것은 목자를 얘기합니다. 목자가 백합화 가운데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성령의 물을 주십니다. 백합화는 물가에 자라는 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물을 주시며 여러분이 목마르지 않게 하시며 지키고 보호하시고 여러분의 마음이 순수하고 정결하고 깨끗하게 도와주는 분입니다. 죄가 없는 분이라서 백합화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는 백합화이신 예수님만 여러분께 전할 것입니다. 교회는 백합화 꽃밭이 되어야 합니다.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17절 나의 사랑하는 자야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 무엇입니까? 이제 세상은 마지막을 향하고 대환난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림자가 없어져 버렸고 깜깜한 어둠이 시작되려고 할 때입니다. 돌아와서 베데르 산에서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아여라. 그때 내게 올라오라 하신 것입니다. 내게 올라와서 비둘기가 나가고 안 돌아왔습니다. 베데르 곧 분리의 산입니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거룩하게 분리되어 사셔야 됩니다. 세상과 짝하면 안 됩니다. 세상과 분리된 삶을 살고 사랑하는 주님 기다립시다. 노루와 어린 사슴 같아여라. 모든 영광은 주님이 받으십니다. 여러분 모두 노루와 어린 사슴 되어서 사랑하는 예수님 만나러 갑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항상 주님 안에 계시며 마음속에 사랑하고 감사하며 기뻐하며 서로서로 사랑하며 사랑하는 주님 기다리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 까마귀를 통하여 주님이 우리를 돕는 분 까마귀시라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야를 도왔던 까마귀들은 예수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이스라엘을 돕는 자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 환난 날에 특별히 이스라엘을 돕는 우리가 될 수 있게 먼저 우리가 예비하겠습니다.
그리고 환난이 오기 전에 환난이 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았을 때 즉시 주님께로 돌아가겠습니다.
주님 우리 성도 한 명 한 명을 지켜주옵소서.
우리 마음속에 있는 작은 여우를 잡을 수 있도록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작은 여우를 잡아서 우리의 사랑의 포도원 꽃밭을 지키며 열매를 맺는 우리 성도 되게 아버지 인도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