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꾀꼬리’도 오고 ‘뻐꾸기’도 오고,
5월 2일, 무리지어 먹이 먹으러 오던 ‘되새’들이 일시에 사라졌다. 되새가 사라지면 녹음이 짙어지기 시작했다는 뜻이며 봄꽃을 피웠던 키 작은 야생초들도 서둘러 열매를 맺는 시기이다. ‘큰괭이밥’은 뾰족하고 튼실한 씨방을 하늘을 향해 손가락질 하듯 쳐들었다. 봄에 피는 야생초는 키 큰 나무들이 우거지면 햇빛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림자가 지기 전에 열매맺기를 서두르는 것이다. ‘벚나무’는 흐드러지게 핀 꽃을 미련없이 버리고 풍성한 열매를 매달았다. 열 개나 될까 싶게 열매를 맺던 매실도 올해부터는 가지마다 제법 눈에 띄게 열매를 생산했다. ‘뽕나무’는 꽃이 피는 건지 아닌지 슬그머니 오디를 매다는 특이한 나무다. 오디가 까맣게 익어가면 ‘호반새’를 볼 수가 있다. 입에서 살살 녹는 오디를 호반새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가지가 부러질 만큼 많은 열매를 매달았던 ‘산복숭’은 올해는 해거리를 하는지 열매가 드문드문하다. 해마다 풍성한 열매 농사를 짓더니 고단함을 쉴 만도 하겠다.
오월 중순이면 ‘매발톱’ 세상이다. 분홍, 빨강, 자주색 꽃이 무리지어 피었지만 유난히 홍일점인 것은 주변이 녹색 일색이기 때문이다. 남쪽에 ‘아카시아꽃’이 만개한 것에 비해 이곳 아카시아나무는 꿈쩍도 안 한다. 매발톱꽃은 아카시아꽃이 피기 전에 꿀벌들에게 중요한 식량 공급원이 된다. 샛노랗게 무리지어 피는 ‘애기똥풀’도 볼만하다. 줄기에서 나오는 노란 수액이 승복 바지에 물들어 정말 애기똥이라도 묻은 양 하다. 오래 두면 칙칙하게 물들기 때문에 얼른 벗어 빨아야 한다. 애기똥풀은 노란 수액이, 피나물에서는 새빨간 수액이, ‘씀바귀’나 ‘취나물’에서는 우유빛 수액이 나오는 게 신비롭다. 식물을 뽑거나 벨 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식물도 동물처럼 피가 흐르고 더불어 고통도 느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우거진 숲을 부지런히 드나들면 어김없이 ‘뻐꾸기’가 등장한다. 탁란을 하기 위해서다. ‘부처님 오신 날’ (음력 4월 8일. 양력 5월 10일)에는 ‘검은등뻐꾸기’가 5월 18일에는 ‘뻐꾸기’가 울었다. ‘벙어리뻐꾸기’를 선두로 검은등뻐꾸기, 뻐꾸기가 속속 도착했는데 ‘나의 비밀의 정원’에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두견이’를 포함하여 모두 4종의 ‘두견이과’ 새들이 도래한다. 5월 7일에는 ‘꾀꼬리’가 도착했다. ‘꾀꼬리과’에서 유일한 꾀꼬리는 지난해 둥지를 틀었던 장소에서 다시 둥지를 준비 중이다. 새들이 해마다 같은 장소를 찾아오는 걸 보면 '각설이타령‘에 주인공 '작년에 왔던 각설이' 처럼 세상에서 제일 자유로운 나그네 수행자가 분명하다. 인공둥지를 차지한 ‘박새’와 ‘곤줄박이’ 와 ‘참새’도 새끼 기르기에 여념이 없다. 먹이를 문 어미새들이 둥지에 드나들 때마다 재잘재잘 어린새들 먹이 보채는 소리가 듣기 좋다. 울음소리로 보아 며칠 후면 모두 둥지를 떠날 것이고 앞마당에서는 콩콩 뛰어다니거나 포르르르 서툴게 날아다니는 솜털 보송보송한 어린새들이 목격될 것이다. 곤줄박이 한 쌍은 아직도 둥지를 정하지 못했는데 앞마당에서 연신 장난을 치는 중이다. 수컷으로 보이는 녀석이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날벌레를 냉큼 잡아 암컷 입에 넣어주는 장면을 보고 사람들이 감탄을 쏟아낸다. 녀석들은 남이 보거나 말거나 목하 열애 중인 것이다.
요즘은 창문 커튼을 닫지 않고 잠든다. 이른 아침 커튼을 열면 아침 먹으러 온 새들이 놀라 날아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눈을 떴을 때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다. 오늘처럼 새벽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은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을’ 만큼 창문 밖 정취가 한 폭의 그림이다. 나는 ‘창문’이라는 커다랗고 변화무쌍한 ‘액자’를 갖고 있는 셈이다. 나무에 기대 살아가는 생명체를 촬영하기 위해 대구MBC에서 촬영팀이 내방했다. ‘하늘다람쥐’는 보란 듯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휙휙 날아다니는 곡예비행을 선보였다. 그런데 기대를 걸고 딱따구리가 번식하는 골짜기 오동나무 군락지에 갔을 때는 끔찍한 장면이 눈 앞에 펼쳐졌다. 지난해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몇 그루 아름드리 오동나무의 밑동이 잘려나간 것이다. 속이 빈 나무를 잘라 가운데를 파낸 후 벌통으로 쓰기 위해서인데 나의 출타 중에 벌어진 일들이다.
청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같은 녀석들은 속살이 부드러운 오동나무나 은사시나무에 구멍을 뚫고 번식을 한다. 딱따구리가 번식을 마친 둥지는 동고비, 박새, 곤줄박이, 유리새, 솔새 같은 작은 새들이 번식을 하거나 추위를 피하기도 하고 숲속에 사는 다양한 곤충 같은 생명체들이 살아가게 되는데, 무식한 인간들이 뎅겅뎅겅 나무를 베어버렸으니 숲속 생명체들에게 인간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둥지를 잃은 딱따구리가 숲을 떠나면 둥지를 이용하던 생물들도 덩달아 모두 떠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숲은 마치 귀신이 나올 것처럼 괴기스럽고 더 이상 살아있는 숲이 아니고 죽은 숲이 되고 말 것이다.
앞뜰 뒤뜰 가리지 않고 누군가 취나물이며 더덕순, 오갈피순 모가지를 모조리 잘라갔다. 곁순만 따고 줄기는 건드리지 말아야 꽃을 피우는데 아예 싹을 도려낸 거다. 잔잔한 꽃이 아름다운 ‘으아리’도 모가지가 뎅겅뎅겅 잘렸다. 씨를 받으려 한쪽에 심었던 굵은 달래도 죄다 뽑아갔다. 뜰 안에서 나물을 채취하면 안 된다고 말려도 막무가내로 한 보따리 챙겨갔다는 것이다. H씨가 친구를 대동해 왔기에 잘 됐다 싶어 함께 화단에 나무말목을 세웠다. 때마침 방문한 한미사 사장은 ‘산속 앞마당에도 울타리를 쳐야 할 지경’이라며 딱한 미소를 짓는다.
옛날 부처님께서는 분별심을 없애라고 했는데 요새 부처님은 분별심을 조장한다. 무차비하게 뭐든 채취하려 드는 사람도 그렇고 ‘꿩알 주우러 오는 보살’도 그렇다. 평소 절간에는 발도 들여놓지 않다가 꿩이 숲에 알을 낳을 때는 어찌 그리 잘 알고 오는지, 계란 몇 개 삶아 드시지 그러지 말라 일러도 ‘쇠귀에 경 읽기’로 모르쇠다. 하기야 소 돼지를 길러 한 번에 팔아버리는(목숨을 빼앗는) 일보다 어미를 잡아 먹는 것도 아니고 알 만 먹는 건데 뭐가 대수냐고, 소 키우는 그 보살 입장에서는 그럴 듯도 하다. 그러나 꿩 입장에서 보면 한 해 농사를 망쳐버리는 가슴 아픈 일이 아닌가. 먹이를 물고 오가는 새들과 가만가만 대화를 하고 허리를 구부려 식물들의 경이로운 모습에 감탄하는 사람이 있지만 뭐든 입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다.
5월15일에는 부산 신호개펄에 있었다. 부산 ‘습지와 새들의 친구’에서 해마다 이맘 때 갖는 물새탐조 행사인데 이번에도 ‘새와 환경과 사람들’ 에 대해 얘기했다. 자연에서 인간은 겸손하고 겸손해야할 존재일 뿐이다.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아이들이 부디 어른이 되어서도 초롱초롱한 눈빛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습지와 새들의 친구’ 여러분께 박수를 보낸다.
숲도 세상이고 세상도 숲이다. 세상이라는 숲과 숲이라는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 일과 아름답지 못한 일로 교차하며 우거진다.
스님들의 ‘하안거’가 시작되었다. 하안거를 직역하면 더운 여름철 만행을 쉬고 시원한 데서 보내라는 뜻이다. 그러나 치열하게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을 외면하고 수행자가 쉴 틈이 어디 있겠는가. 하안거라는 낭만적이 이름도 ‘여름수행’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뻐꾸기가 쉬지 않고 우는 까닭을 ‘알아차릴’ 일이다.
사진 / 부산 영도다리, 항구, 자갈치시장, 국제시장을 파노라마로 촬영했다. 크릭하면 크게 볼 수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