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 아리랑 6......雲霧가 춤추는 小白山 國望峰
황진이 이경진
비로봉에서 국망봉을 거쳐 초암사로 내려온다는 산행 코스를 귓등으로 흘러들었다.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뭐, 가다보면 가겠지 했다. 간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있는가. 뒤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바로 곁에 살 때는 눈길도 안주다가 시간 걸리고 돈 써야 하는 거리에 살게 되니 왜 그리 보고 싶고 알고 싶은지. 옆집 총각 장가간다니까 그제야 섭섭하고 야속해지는 얄궂은 처녀 맘처럼 그립고 그리운 대상이 되어버린 내 고향이다. 늦바람이 단단히 들긴 들었다.
흐린 날이다. 물먹은 솜이불처럼 구름이 무거워 보인다. 눈의 궁전, 바람 공장의 진원지인 겨울 비로봉을 다녀온지 6개월, 소백산 철쭉제도 훌쩍 지나버린 그 곳에 여름이 둥지를 틀었으리라. 세모시 적삼 입고 훌쩍 들어서면 단숨에 초록물이 들어버릴 그런 짙푸름을 펼쳐놓고 ‘자 가져가라! 맘껏 가져가봐라’ 하며 천지에 목향을 내뿜고 있겠지. 상상하며 산에 오른다. 오르면서 생각한다. 퇴계 이황 선생도 소백산을 올랐다고? 멋지다.
자네, 아시는가?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숲을 만나게 된다네. 그들은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있지. 수많은 생명체가 내뿜는 들숨과 날숨이 그네를 타면서 바람을 만들고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태고의 전설을 유지하기 위해 태양을 향해 뻗어 있다네.
‘그래서요?’
자네는 굽어지고 휘어지고 뒤틀어진 그들의 생명력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질 것이오. 그런 그들의 장엄한 침묵을 마주친 순간 그 상념의 바닥에서 무언가를 볼 것이네.
‘상념의 바닥?’ ‘그게 무슨 뜻인가요?’
다녀오시게.
경치를 보기 위해 산에 오르지 말고 자신을 만나기 위해 산을 올라야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야.
‘선생님이 쓴 소백 산행 일기에 그런 말은 언급이 없던데 그 어려운 숙제를 왜 하필 저에게 내 주는 거지요?
허허, 자네는 초입에서부터 줄곧 나를 생각하지 않았는가. 내가 무엇을 봤는지 느꼈는지 그리고 자네 역시 같은걸 볼 수 있을까 없을까, 과연 내가 소백산을 둘러보고 무엇을 얻었을까도 아주 궁금해 하던데, 아닌가?
‘맞아요. 그 유명한 퇴계 이황님이 풍기 군수였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소백 산행 일기를 보니 괜히 우쭐해지기도 하고, 같은 곳을 내가 밟는 다는 게 신기하고 경이롭기도 했지요.’
죽계계곡에서 그를 만나고 싶다.... 그랬지?
‘네!’
하면서 나는 히 하고 웃었다. 모르는게 없군! 하면서.
자네가 나를 부르니 내가 자네를 찾아 올 밖에. 안 그런가?
‘오가는 길목에서만 스쳐 바라보던 소백산을 40년 만에 가마 타고 유람 하셨다더니 이제 선생님은 육신의 무거움에서 탈피하지 않으셨나요? ’
당연히 그렇지!
‘그런데다가 우린 초면도 아니잖아요. 금양정사에서 준량님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러니 저랑 함께 끝까지 동행해 주시면 안되나요? 왜 혼자 다녀오라하나요?’
자네의 생각을 방해하기 싫어서야. 나를 내려놓고 온전히 혼자 만나보고 오게. 반드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네.
상념의 바닥에서 끌어 올릴 것이 있다? 과연 그게 무엇일까. 내가 지어 낼 풍기아리랑에 과연 그 해답을 찾아 적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저기 좀 봐!”
그 순간 누군가가 소리쳤고 그 즉시 1550년도에 재직했던 풍기 군수님은 사라졌다.
바로 앞, 좁은 등산로를 감싸고 있는 수많은 나무들 사이로 한줄기 빛살이 비집고 들어서면서 안개 같은 운무가 숲을 통과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잡힌다.
촘촘하고 투명한 물 고물들이 마치 서로를 의지하면서 짠 그물망을 던져 놓고, 숲의 모든 것을 걷어 올릴 작정을 하듯 신비한 춤사위를 숲속 전체에 펼치고 있다. 빛의 눈이 닿지 않는 그 너머에 깔려있는 어두움은 그래서 그들의 움직임을 더욱 환상적으로 연출시킨다. 그것을 차마 뚫지 못하고 걸음을 멈춘 일행 중의 그 누군가가 우리의 발길을 세우게 한 것이다.
어쩌면 저 너머엔 온 몸에서 광채를 내뿜는 산신령이 희디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지팡이를 짚고 서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미색의 여인으로 둔갑한 천년 여우가 나그네를 기다리며 숯 돌에 칼을 갈고 있는 낡은 기와집이 있을 것도 같다. 아름답지만 안을 감추고 있는 진중한 어두움이 괴괴한 느낌까지 뿜어내어 가슴이 서늘해진다. 다들 그러지 않는가. 산중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벗어 날 수 없다고.
뭐가 있든지 마냥 서 있을 수만은 없다. 죽계계곡은 아직도 멀리 있다.
이윽고 걸음을 옮겨 그 안으로 들어서자 마치 조명을 받은 무대 위에 인조 구름 퍼지듯이 느리게 진행하는 운무의 촉촉함이 내 얼굴을 쓰다듬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구름 세숫물.
숲은 그렇게 우리와 함께 젖기를 바랐다.
잎 새를 부비고 날아오르는 저 산새의 깃털도 젖었을까? 투명한 유리 바닥에 구슬이 구르듯 청아한 그들의 노래는 낭랑한 소프라노인데, 구름 세수를 한 사람들 마음의 변화를 꿰뚫어 볼 작정인 듯 노장의 소나무가 굽어보고 있다.
우리는 운무에 젖어 더욱 진해진 숲속의 향기에 취해 그만 입을 다물어 버리고, 깊은 숨을 토해 내면서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숲길을 걸을 때 무엇을 느낄까 궁금하지 않다. 모두들 한결 같은 마음으로 걷고 있으리라.
세속의 물질을 향한 욕망과, 틀에 짜 맞추어져 벗어나지 못하는 생활과, 긴장과 불편한 마음을 어색한 웃음으로 위장해야 하는 관계들과, 숱한 제도에 벗어나면 낙오자가 될까 봐 앞인지 뒤인지 분간도 못하고 나아가기만 하는 인생길을.... 좀 털어버리고 싶겠지.
본디 인간과 자연은 일체였음을 자각하면서 그렇게 잠시 잠깐이라도 잊고 싶겠지. 라고 짐작할 뿐이다.
한 번도, 정말이지 단 한 번도 비로봉에 바람이 없는 걸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바람이 없다.
바람공장이 휴업을 하다니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없어요!” 소리쳤다.
소녀같이 말간 얼굴에 보조개를 예쁘게 구부리며 김밥을 내미는 선배 언니가 웃는다.
“나도 처음 봐”
사방을 둘러봐도 그 거세고, 당차고, 매혹적인 바람이 보이지 않는다. 바람의 물결을 기대했던 간절한 소망이 낭패를 보자 온 몸에 맥이 빠진다.
‘그렇다면?’
바람의 프로펠러가 작동하지 않을 땐 풍기에도 바람이 없었나?
기억해 보니 그런 거 같다. 사시사철 씽씽 바람이 분 거 같지는 않다. 여름엔 무덥고, 바람 한 점 없이 쨍쨍한 날들이 우리들 등짝을 빨갛게 태웠던거 같다.
그랬구나, 비로봉 바람 공장도 철 따라 수위에 맞춰 풍속계를 조절했구나. 왜 그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풍기의 겨울바람만 뇌리에 새겨져 소백산 바람 공장은 연중무휴 인줄 알았는데 아! 이렇게 작동을 멈출 때도 있구나 그랬다.
산은 올 때마다 얼굴이 다르고, 산은 오른 만큼만 속살을 보여준다더니 소백을 이루는 모든 봉우리를 구름 장막으로 뒤 덮은 최고봉이 오늘은 운무의 운치만 보고 감상문을 제출하란다.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비에 젖은 밥을 먹으면서 사람들은 웃는다. 휴대용 우산이 하나 둘 펼쳐지고, 발길을 재촉하듯 동행을 불러 모으는 사진기 주인의 목소리가 급하다.
신기하기도 하지. 산 정상엔 늘 사람들이 많다. 비 오고 눈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정상엔 늘 산중보다 사람이 많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을까. 세상살이 정상에 오르지 못한 보통 사람들의 하소연과 소리 없는 아우성을 이 산은 얼마동안 지켜봤을까.
퇴계 선생은 어떤 염원을 내뱉었을까. 지금 정상의 자리에 있는 정치인들은 과연 몇 명이나 큰 산을 찾아다닐까. 다들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다고 하겠지. 찾아와도 더 높은 꼭대기만 바라보는 건 아닌지.
저 굽이쳐 흐르는 산맥들의 위대한 불변함에 겸손해지고, 소리 없이 천지를 감싸안은 자연의 위용에 자신을 낮춘다면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좀 알텐데.
그 많은 바람이 어디쯤 숨죽이고 있는지를 상상하며 다음 코스를 위해 일어설 때까지 비와 구름은 듀엣을 이루며 말없이 산천을 적시고 있었다.
“저기가 국망봉이야”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가며 바라보니 뽀송한 흰 이불을 덮고 빼꼼히 머리만 내밀고 앉아 있는 봉우리가 보인다.
순흥에 살았던 배순이라는 사람의 효심이 지극하고, 저 봉우리에 올라 임금님의 명복을 빌었다하여 국망봉(國望峰)으로 불리게 되었다지. 500년 전 유림사회에서 일개 대장장이였던 사람이 교육을 받았으면 얼마나 받았고, 형편이 좋다면 또 얼마나 좋았겠는가.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야하는 인간의 도리가 충효이긴 하지만 아무리 가르쳐도 실천하기 어려운 게 또 그것일 수 있다. 이황 선생이 직접 불러다 극진히 칭찬할 정도로 그 본보기가 훌륭했다하니 그저 지어낸 설화는 아닌것 같다. 그 사람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을 배점이라 짓고 그 미담의 전설이 오백 추야 길이 남았으니 양반 불변의 시대에 보기 드문 상민의 공적이다. ‘전설의 고향’ 시나리오로 채택되기엔 밋밋하고 ‘내 고향 사랑방’ 소재로는 그럴 듯하다. 그렇지만 대장장이 라는 그의 직업은 참 맘에 든다. 아....대장간에서 들려오던 아련한 망치소리. 그립다.
처음 가는 길이니 설렘이 앞장서고 함께 가는 길이니 든든함이 뒤따른다. 능선을 따라가서인지 깊숙한 비탈길이 아니고 좁은 오솔길의 연속이라 발걸음이 가볍다.
한 달에 두 번은 국망봉을 오른다는 대선배님들이 생각난다. 짱짱한 노익장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다.
다 진줄 알았던 철쭉이 군데군데 철늦은 과시를 하는데 홀로 피었으니 애처롭고 고귀하다. 한 무더기 철쭉의 잔해가 길에 깔려 있어 그걸 즈려밟고 가자니 발끝이 조심스럽다. 철쭉은 진달래와는 다른 꽃이건만 속절없이 32세에 요절한 김소월님이 떠오른다.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 된 것은 한국 사람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한의 정서를 읊었기 때문이라지. 아깝다. 죽기 전에 소백산을 다녀갔다면 또 하나의 역작이 나왔을 텐데. 무섬마을의 사계를 천상의 언어로 표현한 강문숙 시인님이라면 소백의 사계를 어떻게 그려낼까. 그녀라면 분명 내가 보지 못한 걸 볼테지.
옛날엔 산을 두려워했다. 아니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깊은 산은 꼭 가야 할 사람만 갔다. 맹수가 살고 귀신이 홀리는 곳이라 나 홀로 등반은 엄두도 못 내던 곳이었다.
나 어릴 때만 하더라도 어린애가 산에 가면 진달래귀신이 피를 쪽 빨아먹고 껍데기만 버리니 절대 가면 안된다는 소릴 들었다. 진달래꽃이 붉은건 아이의 피를 빨아 먹어서라고 누가 그랬다. 물론 사실은 그게 아니다. 그 녹진녹진한 봄 햇살의 애무를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화다닥 붉어진 것이리라.
조선시대엔 매를 잡는 매사냥꾼이 기거하고, 산을 일구어 굶주린 허기를 채우는 화전민들이나 산을 찾았다. 일부러 산수를 즐기자고 험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던 산이 언제부턴가 일부러라도 찾아가야 할 장소로 열려졌다.
배고픔과 허기진 인생살이의 종점지로 선택되었던 이곳을 이제는 배고픔은 채워졌지만 또 다른 무엇인가가 상실된 사람들의 위안지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산은 수많은 사람들을 맞이하면서 정다운 친구들을 잃어버렸다. 바람을 타고 멋지게 창공을 가르던 솔개를 잃어버리고, 덩치 큰 동물들을 떠나보냈다.
언제부턴가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대상이 되어버렸고 인간과 분리된 상품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시공을 달리하고 태어난 서양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동양의 공자 맹자도 천지인(天之人)을 부르짖으며 인간은 자연과 동일하다고 의견일치를 보았는데, 후손들이 그들을 민망하게 만든다. 자연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아직은 침묵하고 있는 산. 느리게 그러나 조금씩 그들은 분노하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몰려 살고 있다. 도시 인근 산의 정상에 오르면 가장 먼저 아파트 숲이 등장한다. 어마어마한 그들의 군락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무엇을 소망할까. 나는 그것들을 볼 때마다 저 많은 아파트 중에 내 아파트가 한 채도 없다는 사실만 부각되어 그만 기가 죽곤 했었다. 그러나 그걸 알까? 인간은 언제나 자연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걸. 그 누구도 죽어서 59평 아파트에 묻어 달라거나 자기가 갖고 있는 빌딩 지하에 묻어 달라 하지 않는다. 산에 바다에 흙에 그것도 아니라면 나무 밑에 뼈를 묻어 달라한다. 아! 그것도 힘들겠다구요? 그렇다면 산천에 뿌려주세요 한다. 아파트와 화폐를 이고 저승길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산은 그걸 깨우치게 하지만 사람들은 늘 망각하고 산다.
안으로 가두고, 단절시키고 폐쇄시키는 그 아파트가 사람들의 영혼을 쥐고 흔든다. 농촌은 텅텅 비었는데, 나부터 도시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어느 순간 좁은 철쭉 터널을 벗어나자 탁 트인 들판이 나타난다. 코앞에 국망봉을 떠받치고 있는 능선 사이로 거짓말처럼 햇살이 비춰지고 일시에 산맥들이 꿈틀거리듯 시야 속에 잡히자 나는 그만 환호성을 질렀다. 감정의 기복이 저 산의 높낮이를 꼭 닮은 한 여자의 비명 같은 환호성은 “사랑해!” 이다. 두 손을 입가에 모으고 뱃속의 기를 한껏 끌어당기고 온 힘을 다해 내질렀다. 야호! 보다야 훨 낫지 않은가.
사랑해!
나도 모르게 튀어 나간 생뚱맞은 이 낱말의 진의가 궁금했는지 뒤에 오던 한 선배님이 묻는다.
“경진씨, 누구를 그렇게 사랑해요?”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순간 정확히 기억 할 수가 없다.
“모두 다요!” 라 한 것 같기도 하고
“이 산을요” 라고 한 것 같기도 한데 내가 얼마나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여자인지 증명해 보이는 대목인 건 틀림이 없다.
다만 지금 이 순간 그 때를 반추해보니 그 장엄한 광경에 잠시 혼이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해발 1500미터도 되지 않은 산꼭대기 풍경에 가슴이 터진다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면 졸도하겠구나 비웃을지 몰라도 어쩌랴, 나는 그랬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기어이 갔으니 감격해서 그랬고 이 아름다운 산이 내 고향을 품고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그랬고 이 오묘한 풍경을 글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이 그랬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자괴감에서 벗어 날 수 있다는 게 또 그랬다.
국망봉 봉우리에 걸터앉은 암석에 올라서서 물기 쭈욱 빼고 온 산천을 휘감으며 떠 있는 구름밭을 바라보는데 한줄기 바람이 젖은 몸을 스친다. 짜릿하다. 드디어 긴 구름 터널을 뚫고 태양이 국망봉을 비추고 소백을 밝힌다. 마치 연리지(連理枝)처럼 한 뿌리에서 연결되어 솟아 오른 듯한 산맥의 감춰진 골들이 속속 드러난다. 저게 모두 한 덩어리다. 일제히 등을 구부리고 앞산에 기대고 뒷산을 이끈다. 나는 기껏 살아도 2060년대를 살 수 없지만 저들은 3060년을 살아도 끄떡없으리.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다.
떠오르는 대로 보이는 대로 시를 짓는다.
아! 향수(鄕愁)에도 색깔이 있다면
여름은 청록이리라.
애한의 물줄기 품고 앉아도 청록이리라.
심중의 폐수 같은 오욕의 한숨 다 내뿜어도
흔들림 없는 내 고향의 여름은 청록이리라.
나를 벗겨 놓고 재물로 삼아도 좋으니
국망봉이여! 너는 천만년 청록으로 살아라.
-국망봉에서 황진이-
내가 나에게 물었다.
‘정말 벗어났지?’
그래.
‘힘들었지?’
그래.
‘스스로 벗어나지는 못 했어 그치?’
맞아.
‘많은 사람들이 나를 도와줬어. 그들은 잘 모르겠지만 난 알아’
맞아.
‘조금만 늦었어도... 못 빠져 나왔을 거야.’
그래.
‘나 같은 사람들... 세상에 많겠지?’
너무 많아.
‘나도, 누군가를 도우며 살아야 해’
그래.
‘가진 게 없는데도 왜 이리 행복할까?’
흠.......또, 충동적이군.
사실, 또 충동적일까 싶어 겁나하며 얼른 생각을 멈추고 굽이굽이 이어져 한 덩어리인 그들에게 시선을 준다.
깊고 깊은 저 골짜기를 뒤져 산삼을 캐 올리는 심마니들의 거친 숨소리가 아직도 남아있는 곳. 신라 때부터 왕에게 진상품으로 올렸던 산삼의 효능이 너무 강력했던가. 진상품이 공물로 변하고 수탈로 이어져 극심한 백성의 고통을 보다 못한 주세붕 원님이 산삼을 재배하다 발견한 것이 풍기 인삼의 기원이라지. 일승지가 된 것도 소백의 지형 때문이요. 사과 맛이 명품인 것도 소백이 우리 고향을 감싸 안은 덕분이라지. 저 산이 잉태하고 분만하면서 시작된 내 고향의 역사를 다들 얼마나 알고 있을까. 무지했던 여인이 뒤늦게 고향 공부 좀 했다고 넋두리 같은 찬사를 늘어놓아도 쉽사리 동요하지 않는 큰 산. 그래서 결코 소유할 수 없고 절대 망가뜨리면 안되는 큰 산이요, 죽을 때까지 짝사랑해도 억울할 거 하나도 없을 장군산이다.
소백산에 오르거든 그들이 꿈꾸는 우주와 직접 대면해보라. 자신이 품고 있는 우주와 충돌하는지, 화합하는지 확인해보라. 황폐해진 묵은 꿈의 수레바퀴가 어쩌면 작동을 시작할 수도 있다. 이 혼란스러운 시대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저 지조 높은 소백산이 그렇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수치심을 주지 않으며,
두려움을 가라앉히며,
나긋나긋한 위로까지 덤으로 얹은 희망의 빛줄기를 줄 수 있으리라.
그런데 여기까지가 다였다. 산을 걷는 내내 온갖 상념이 떠오르기는 했고 갇혀진 생각이 물꼬 터지 듯 쏟아져 나오기는 했다.
깊은 산중에서 생명을 얻기 위해 굽어지고, 휘어지고 뒤틀어진 초목을 유심히 바라보며 그들이 향해 있는 것이 태양이라는 것도 알았지만, 단순한 교훈만이 상념의 언저리만 긁어댈 뿐 이황 선생이 얻어 오라는 해답이 뭔지는 모르겠다. 그들의 장엄한 침묵을 한껏 긴장하며 노려보기까지 했지만 내 상념의 바닥에서 튀어 나올 거라는 그 무엇은 그들처럼 침묵했다.
내가 무슨 도를 깨우치기 위해 정진하는 성현도 아니고, 진리를 구현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선각자도 아닌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나중에 혼자 와서 돗자리 깔고 명상에라도 잠겨보면 어떨까 했지만 것도 가당찮다. 혼자서는 마을 뒷산에도 겁 많아 가지 못하는 주제에.
어쩌면 나의 망상이 그런 환영을 만든 것은 아닐까?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 삶의 갈등을 소백산에 기대어 은근슬쩍 답을 구해보려는 심산에서 삐져나온 것. 어쨌든 하산 길이 남아 있으니까 산을 내려가다가 발견할 수도 있겠지. 그 곳에서 이황 선생의 숙제를 풀 수 있음 다행이고, 아님 말고 하면서 초암사 내려가는 길로 접어드는데.....
초암사 내려가는 그 길이 죽계계곡인줄도 모르고 내려가는데...
나는 그 곳에서 금양정사를 만났다.
맨 처음 금양정사를 발견한 환희와 놀라움과 신비로움에 떨렸던 그 때의 나를 만나고 말았다.
보물은 언제나 이렇듯 깊숙이 숨어있다.
상념의 바닥에서 뭘 건져 올리지도 못한 채, 이황 선생도 까맣게 잊은 채, 나는 죽계에 취해버려 몽롱해졌다. 술에 취한 이태백의 몽롱함을 끈질기게 상상했다.
그래서 결국 죽계계곡은 또 다시 단독으로 아리랑 고개를 넘게 되었다.
한번 본 것으로 성이 차지 않아 한 달 후 다시 한번 선배님들의 배려로 죽계를 찾아 갔다. 억수 같이 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금양정사를 보자마자 ‘꿈꾸는 금양정사’ 가 단숨에 떠오른 것처럼 죽계계곡에 들어선 그 순간 바로, 그에 어울리는 제목이 떠올랐다.
제목만큼 멋진 글이 나와 주길 소망하지만......
늘 그렇듯 자신은 없다.
이어서 竹溪九曲편을 쓰고 있습니다
풍기 아리랑으로 고향의 아름다움과
자랑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시는
황진이 이경진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