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 재활용 매점에는 여러 가지 의류들이 격자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이 매점은 자원봉사자들에 의하여 운영되는 곳이었다. 헌 옷을 깨끗이 빨아 걸어 놓은 것이어서 1000원, 2000원 비싸면 10,000원 정도였다. 아까운 옷을 버리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전화 연락만 하면 가져와서 세탁해서 걸어 놓고 나누어 입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여러 사람이 와서 만져보고 그냥 갔지만 가끔 가져가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아침 9시면 열어서 저녁 5시면 닫고 일요일에는 쉬는 매점이었다. 간판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집”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가게가 문을 닫고 어두워지면 옷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들의 무용담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자기를 걸쳤던 주인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마치 자기가 그 주인이나 되는 것처럼 으스대며 이야기를 했다. 교수가 걸쳤던 옷, 깡패가 걸쳤던 옷, 소매치기가 걸쳤던 옷, 심지어는 거지가 걸쳤던 옷도 있었다. 여기서는 그 이야기를 다 할 수 없다. 먼저 3개의 옷이 서로 나눈 이야기를 적어볼까 한다.
소매 끝에 아직 기름때가 다 가시지 않은 가죽잠바가 가장 으스댔다. 자기는 추운 겨울날 밤 초등학교에 가서 단군상 목을 쳐서 떨어뜨렸다는 호언장담이었다.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는데 초등학교에다 단군상을 세워놓고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에게 경배하게 한다는 것은 왜놈들이 신사참배를 하게 하는 것보다 더 나쁜 짓이라는 것이었다.
초등학생이 입을 만한 작은 폴로 티셔츠가 나와서 말했다.
“단군은 우리나라를 세우신 조상이 아닌가요? 그분은 신이 아니잖아요? 그냥 돌로 깎아서 세워 놓은 것인데…”
“이거 봐. 벌써 세뇌가 되었지 않아? 한두 개 공원이나 길에다 세워놓지 어쩌자고 360개나 되는 단군상을 만들어 초등학교마다 세워 놓는 거야. 우리 국민이 사는 길은 이런 우상을 때려 부수는 거야. 기드온처럼 먼저 바알의 단을 헐고 아세라상을 찍어야 참 하나님의 신이 내리게 돼”
그러면서 옆에 있는 진 바지에게 왜 한 마디도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진바지는 자기는 외국 사람으로 잘 모르지만 일본 사람들이 한국 정신을 말살하려고 할 때 단군상부터 없앴다는데 지금은 통일을 기원해서 나라 곳곳에 세워 놓은 단군상을 기독교인들이 때려 부수는 것은 잘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당신은 예수를 안 믿는 외국 사람이니까 당연히 이해할 수가 없겠지.”
“부처고, 예수고 그런 종교를 떠나야 진정한 나라의 뿌리를 찾으려는 단군이 보이는 것이 아니겠소?”
진 바지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야 이것은 단순한 국조로서의 단군이 아니라 단군 교도들의 우상으로 섬기는 종교란 말이요.”
“나는 기독교도들이 독선적이고 교만하게 생각됩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안 닮았어요.”
그러면서 그는 전차 안에서 겪은 이야기를 했다. “성경을 읽으시오. 예수를 믿으시오. 예수만이 여러분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는데 그곳은 자기 안방이 아닙니다. 그들이 자기 귀에 가까이 대고 “성경을 읽으시오.”라고 귀청이 떨어지라고 외쳤을 때 “저는 하버드의 신학교에서 성경과 해석을 전공하면서 많이 읽었습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마치 자기만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것 같은 어조였습니다.”
“신학교를 다녔다고 다 구원받은 것이 아니지. 우리나라에는 잡초가 너무 많아서 구원으로 이끌려면 잡초 제거하는 일을 먼저 해야 해. 그래 외국 사람으로 또 느낀 것은 없었나?”
“나는 참선(參禪)이 무엇인가 동양 종교를 더 알아보기 위해 한국에 나왔는데 불교도는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절에다 불을 질렀어요. 불교는 잡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니 이것은 불상을 집에 놓고 있다고 사는 사람 집에 불을 놓은 것과 같아요. 좀 유난스럽게 예수를 믿는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꼬마야 너는 어떻게 생각 하니?”
잠바는 티셔츠에게 물어보았다.
“사이좋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안 되지. 사이좋게 산다는 것은 마귀와 싸울 생각이 없다는 뜻이야.”
“저는 요.”
티셔츠가 말했다. 그는 어머니가 새로운 아파트로 옮기려고 집을 팔고 임시로 시골에서 산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 때 음력 보름에 그 마을 당산 나무에 제사를 지내려고 각 집마다 쌀을 거두러 다닐 때 자기 어머니에게도 왔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그 때 쌀이 떨어져 없다고 했는데 지하 쌀통에 있지 않느냐고 갖다 준 일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 제물 떡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 쌀을 바쳤단 말이야?”
“그 뿐 아니라 그 다음날 떡을 다 나누어 줄 때 어머니는 그 떡을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내가 주어서 친구들과 같이 나누어 먹었어요.”
“그래 제사지낸 음식을 나누어 먹었단 말이지?”
“ 예, 나는 그 마을 애들이 좋아요. 이것은 옳고 그른 이야기가 아니라 친구들을 사랑하는 이야기예요. 나는 왕따를 당하고 싶지 않았어요. 친해져야 전도도 할 수 있을 거 아니에요?"
가죽 잠바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우리나라 기독교가 어디로 가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타협하는 것은 간음죄를 짓는 일이나 마찬가지야.”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이 매일 밤 심심찮게 들려왔다. 밤이 되면 옷들이 살아나서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다음에는 또 무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모두 궁금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