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거량法擧揚과 게로진면목偈露眞面目
절에서 스님들이 열심히 공부하다 깨친 바가 있으면 스승과 문답을 하여 그 깨친 경계가 옳은가 그른가를 점검을 받게 된다. 통상 이를 선문답禪問答이라 하는데 고상하게 표현하면 법거량法擧揚이라 부르기도 한다. 들 거擧 휘날릴 양揚이니 거양으로 읽는 것이 옳지만 절에서 거량이라 부르기에 이도 또한 절집안의 풍습을 따르고자 한다. 이를 또 달리 게로진면목偈露眞面目이라 일컫기도 한다. 지금 중국에서는 게로진면목을 나쁜 뜻으로 쓰고 있는데 원래 의미는 법거량과 동일하다. 게로나 거량이 같은 말이고 법과 진면목이 또한 같은 말이다.
법法이란 글자는 다양하게 쓰인다. 물이 흘러가는 것이 법이고 보면 흘러가는 물의 모양이 어찌 한 가지 형태만 있겠는가. 천변만화千變萬化한다. 이 때문에 법에도 여러 가지 뜻이 함께 있게 되는 모양이다. 우선 법이라 하면 헌법을 위시하여 사회생활의 규범이 되는 각종 법률이 있다. 또 불법승을 삼보라 한다. 여기에서 말한 법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니 교법敎法이다. 진리나 다를 것이 없다. 부처님의 진면목을 그대로 드러낸 법문이 화엄경이고 보면 법이 진면목이고 진면목이 또한 법이다.
지금 중국에서는 게로진면목偈露眞面目을 나쁜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감추어진 비리를 폭로한다는 등으로 이해하고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은 경제에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회생활에도 그대로 통용되는 것 같다.
오늘 내가 이 글을 쓰면 이 글이 그대로 나의 진면목이 될 것이고, 오늘 내가 운전하다 앞차가 신호도 켜지 않고 좌우로 회전하는 것을 보고 화를 낸다면 그것도 또한 나의 진면목일 것이다. 한번 손을 들고 내리거나 발을 들고 내리는 데도 나의 진면목이 약동한다. 나의 진면목이 시시때때로 작동하는데 이 진면목을 잡아서 쓰면 도인일 것이고 얽매이면 범부일 것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이 들 때까지 일체 행위가 나의 진면목이 약동한 한편의 영화 필름이고 보면 그 영화의 품격은 제작자이고 감독이며 주연인 나에게도 지대한 책임이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일체 행위가 팔풍八風에 따라 진면목을 게로偈露하고 법을 거량擧揚하여 만천하에 그대로 드러내어 휘날리니 나날이 시시때때로 삼가 옷깃을 다잡고 공경한 마음으로 임하고자 한다.
첫댓글 나의 일체 행위가 팔풍八風에 따라 게로偈露하고 거량擧揚하여 만천하에 그대로 드러나니 나날이 시시때때로 삼가 옷깃을 다잡고 공경한 마음으로 임하고자 한다.
---경건한 마음으로,
귀한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는 자신을 단속하는 것으로 본다면,
---공경한 마음으로는 일체 생명체를 대면하는 것으로 보면 어떨까요?
좋은 거 같습니다. 내적인 경건과 외적인 공경으로 자신을 세우면 至人이매 성인으로 갈 것입니다.
안으로 경건하고 밖으로 공경하면
내충외서가 되어 인의 체용을 겸비하겠습니다.
안과 밖의 대비가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