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월척을 낚은 이야기
1974년 10월 둘째 일요일 초평 저수지에서 첫 월척을 했다.
낚시에 입문하여 도취된 이래 5년 동안 한 번도 준척급 이상을 걸어보지 못해 안달이 나 있을 때다.
물론 잉어도 잡아 보질 못했다. 또 그때에는 관리형 저수지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시대였다.
10월 첫 일요일 선친과 친구 분들 가시는데 따라 갔다.
사냥 다닐 때 늘 이 땡포 박이 모시고 다니던 친구 분들이었는데 이 어른들께서 선친보다도 더 세밀하게 낚시기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 당시 선친께서는 낚시보다는 골프를 배워야 된다며 낚시를 가르쳐 주시길 꺼리셨던 기억이 난다.
개인 좌대(座臺:덕 크기: 0.25평?)를 타고 밤낚시를 했는데 밤에는 하나도 입질이 없더니 아침 8시 쯤 3.5(6.3m)호대 찌가 스물 스물 올라오더니 딱 서는 게 아닌가? 순간 챔질을 하려는데 다시 또 흔들 흔들 올라온다.
숨이 턱 막히는데, 여지껏 이런 입질을 받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다 올라와 찌가 넘어지려는 순간,
확! 챔질을 하니 "삐비빅!"하고 피아노 소리가 나는데 초릿대가 사정없이 물속으로 쳐 박힌다.
그 때 선친 친구 분께서,
"야! 박군! 대 세워! 대를 세워야지!"
대가 쉽게 세워지나?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리는지 좌대 위에서 작은 낚시의자를 피고 앉아 있
데 양 다리가 덜덜 떨리는 거다.
고기가 물위로 솟더니 "딱!" 소릴 내며 벌컥 뒤집는다.
이런? 아니 이럴 수가?
대가 쭉 뻗어지며 힘이 쭉 빠진다.
바늘 털이를 해 고기가 도망을 가니 너무도 허탈하고 속상해 어쩔 줄 몰랐다.
"사정없이 잡아 당겨야 되는 건데... 잉어 같은 데 얼른 새 깻묵가루로 다시 개서 넣어 봐!"
선친 친구 분들의 말씀.
손이 덜덜 떨려 잘 주물러지질 않는다. 어렵사리 찌를 세운 지 10분 쯤 되었을까?
다시 스물 스물 올라온다.
한 눈금, 두 눈금 슬 슬 올라오는데 가슴은 방망이질로 터질 것만 같고 숨은 가빠지는데.....
찌가 다 올라올 무렵,
"야! 박군! 채라!"
선친 친구 분의 고함소리.
확! 챔질, 대를 세웠다.
"좌로! 우로! 더 세워! 박군! 일어서!"
좌우 선친 친구 분들의 응원으로 겨우 꺼내고 보니 독일산 잉어라는데 꼭 붕어같이 통통한 35cm급이다.
손과 발이 덜덜덜 떨렸다. 조그만 낚시의자가 흔들거리다 못해 삐걱 소리가 났다.
친구 분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자네! 이젠 완전한 낚시꾼이 되었네 그려!"
그 날 긴장과 흥분 속에서 잉어를 3마리 더 잡았다.
이렇게 해서 어쩔 수없이 낚시에 완전히 미쳐 버린 "박 태공"이 태어나게 된 것이다.
다음 주 또 초평지를 가신다기에 은근히 기다렸다.
이번엔 만반에 준비를 해야지.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방앗간으로 갔다. 큰 들깻묵 한 덩어리를 사서 곱게 빻았다.
또 물역가게에 가서 진흙 한 양동이를 사서 깻묵가루와 골고루 섞어 덩어리로 열댓 개를 만들었다. 이렇게 준비하는 걸 선친께서 보시더니 "큰 애가 꽤 낚시를 가고 싶은 모양이구나! 네 세대에는 낚시보다 골프를 해야 되는 건데... 할 수 없지, 그래 같이 가자!"
얏! 호! 얼마나 신나던지.....
드디어 낚시터에 도착, 낚시대를 다 편 다음 보트를 타고 들어가 찌 30cm 앞에다 2, 3 덩어리씩 골
루 넣어 드렸다.
물론 내 것도 넣었다.
2호(3.6m)대, 2.5호(4.5m)대, 3호(5.4m)대에다.....
아니, 좀 더 많이 넣었지. 선친과도 똑 같이.....
어! 그렇게 공을 들여 밑밥을 주었는데도 입질이 요지부동이다.
저녁 6시부터 밤 12시 까지도 소식이 없다. 에라! 지난번에도 3.5(6.3m)호에서 잉어를 잡았으니 공 들인 것을 포기하고 2호대를 3.5호대로 바꾸었다.
새벽 2시가 되니 안개가 자욱이 끼기 시작하는데 3.5호 대 찌가 보일락 말락 한다. 야광 테이프를
은 찌를 카바이트 불로 보려니 안개 때문에 눈이 아프다. 졸린 눈을 억지춘향으로 뜨고 3.5호 찌를
주시하는데 반 마디 들어가는 듯 하더니 다시 천천히 아주 느리게 올라오기 시작한다.
얼마나 기다렸던 입질인가?
잠이 확 달아났다.
정신이 버쩍 들었다.
심장이 덜커덕! 멎는 것 같다.
천천히 낚시대 손잡이를 쥐고 더 올라오기를 기다리는데 왜 그리 더디 올라오는지... 숨이 막혀 죽겠
데... 낚시대를 잡은 손에는 진땀이 다 나고.....
아주 천천히 세 눈금 올라오는데 이젠 더 기다릴 마음의 여유도 없어 "쌕!"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이
다.
"피~잉!" "삐비비빅!"
앗! 잉어다!
챔질 하자마자 대를 세웠다. 그러나 지난번 경험을 했음으로 가슴은 무척이나 두근두근 했지만 덜덜덜
떨리지는 않았다.
좌대 앞에서 피잉~ 피잉 피아노 소리를 내면서 좌로 한 번, 우로 한 번, 그렇게 세 번을 왔다 갔다 하더니 드디어 항복한 듯 들어 눕는다. 천천히 뜰채로 건져 혹 놓칠 가봐 수건으로 감싸서
살림망에 밀어 넣었다.
"휴~"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선친께서 물으신다.
"얘! 큰 애야! 뭐 좀 잡았니?"
"잉어 한 마리 했어요."
"다행이다. 다들 입질이 없는데....."
아침 10시경 통 입질이 없자 철수를 하기위해 밥집 영감님이 보트를 끌고 왔다.
"박 사장은 잡았다면서...?"
"예, 잉어 한 마리 했지요."
"어디 좀 봅시다. 얼마나 큰가?"
나는 고기는 보지도 않고 밥집 영감님만 쳐다보며 오른손으로 살림그물을 쳐들었다가 다시 물속으로
넣었다.
"다시 좀 봅시다. 이상하네!"
"뭐 가요?"
다시 치켜들었다가 놓았다.
"예끼! 이 양반아! 그게 어디 잉어야? 붕어지!"
"이게 어디 붕어예요? 잉어...?"
고개를 돌려 살림그물을 보았다.
어~라! 와! 어이구! 빵빵한 예쁜 붕어 33cm 월척이 나를 보고 방끗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히!히!히! 후!후!후!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하늘을 보면서 웃었다.
"야! 나도 드디어 월척을 했다! 나도 이제 월척 조사가 됐다!"
만약에 내가 붕어인 줄 미리 알았더라면 너무 긴장한 나머지 놓쳤을 거다. 중간에는 수초가 많아 밤새
고생을 했는데 낚시대를 곧장 세웠으니까 망정이지 살 살 힘 뺀다고 놀리다가 수초를 감았을 테니까.
역시 월척은 운이 따라야 하는 법. 실력이 있다고 되는 건 아닌가 보다.
70년대 말 고삼지에서 가족들과. 삼남매를 모두 낚시군으로 만드느라고 3년을 낚시다운 낚시를 못했다. 물론 아내도.
이천 고백지에서 70년 대 초 낚시를 하고 있는 땡포 박
첫댓글 그 시절은 파라솔이라는 것은 아예 없었고, 의자도 모두 사진과 같은 것 밖엔 없었다.
그 때의 추억이 되살아 나시나 봅니다. 아쉽게도 저의 아버님은 사진이 별로 없으시더라구요
제가 3살 때 부터 낚시를 데리고 다니셨다고 하시구..... 물에 빠질 까봐 허리에 끈으로 묶어 놓으시고 낚시 하셨대요 ㅋㅋ
그 때 그 사진이 있음 좋으련만 ..... 땡포 박님 뒷 모습에 저의 아버님 모습도 있지 않을까요.
중국 잘 다녀오세요.
우리 큰애(68년 생)도 할아버지 따라서 3살 부터 사냥, 낚시를 다녔죠. 낚시는 4살 부터 했는데 4살에 2.0대 5살 때 3.0대를 곧잘 휘둘렀습니다. 엄마 보다도 더 잘 낚시를 했죠. ㅎㅎㅎ
이젠 너무 바쁜지 1년에 한번~ 2번 같이 낚시를 다닙니다.
그런데 막내는 낚시광인데 현대차 스페인에서 근무하는 까닭에 함께 하지 못합니다.
몹시 그립습니다.
내년엔 귀국한다는데....
드디어 중국에서 다음에 접속.... 페이스북/ 트위터는 접속이 거의 안 되서 지금은 VPN이라는 것으로 접속 했습니다.
중국보더 스페인은 한참 머네요... 저도 알라바마 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기는 했죠,,,해외생활 쉽지 않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