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나는 ‘창도름’을 먹는다. 제주도에서는 돼지의 막창자를 그렇게 부른다. 아빠 걸음에 발맞추어 느적느적 걷다 보면 5분 남짓 걸리는 곳에서 창도름 전골을 판다. 중심이 오목한 불판에 돼지의 부속들을 볶다 육수와 채소 이것저것 넣고 푹 끓인다. 그러면 재료 각각에서 구수하고 기름진 단맛이 우러나 오목한 곳에 섞이며 제주도 말로 ‘배지근’한 맛이 난다.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는 아빠는 건더기를 건져 먹고, 볶음밥을 해 먹고, 마지막 눌은밥에 물 부어 숭늉까지 만들어 드신다. 여기에 소주 한두 병 기울여도 걱정할 것은 운전 따위가 아니라 고작 집으로 돌아가는 5분간 휘청대지 않고 잘 걸어보는 것. 딱 그것뿐이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 창도름을 즐기는 사람은 나와 아빠밖에 없는 탓에, 내가 육지에 올라온 뒤론 서로가 있어야만 성립할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그래서 아빠에게 대뜸 전화 걸어 창도름이 먹고 싶다 떼를 쓴다. 그러면 아빠는 내가 언제 오는지 물어보시고 함께 끓여 먹는 날을 상상하며 나를 달래주신다. 실은 내가 으름장을 놓는 거다. 아빠는 당장 딸을 떠올리시라고.
창도름이 나에게 음식 그 이상으로 상징성을 갖는 이유는 아빠와 나만 나누는 이야기도 함께 끓여 먹는다는 데에도 있다. 창도름을 먹을 땐 무엇이든 여쭤볼 수 있으며 무엇이든 털어낼 수 있다. 내가 세상에 있기 전 아빠의 삼십사 년에 대해서든, 나의 육지 생활에 대해서든. 그래서 어느 날은 그 시간을 빌려 할아버지에 대한 묵은 죄책감을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재수를 끝낸 겨울의 새벽에 돌아가셨다. 위의 출혈이 급격하게 악화하였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누워계신 그 옆을 아빠가 지키고 앉아 계셨다. 태어나 처음으로 아빠가 낯설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빠의 연갈색 눈동자가 텅 비어 있었고, 내가 닮은 작고 얇은 입술은 분명 굳게 일직선을 그리고 있었는데도 어딘지 모르게 일그러져 보였다. 엄마는 다가가 아빠를 위로해 드리라 하셨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무서웠다.
일주일 후에 대학 합격 발표가 났다. 당신께서 예뻐하신 손녀가 누군가를 고치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셨다면 많은 걱정 중 한시름 놓고 세상살이 마무리하셨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할아버지를 사랑한다면서 공부한답시고 얼굴도 제대로 비추지 않았다는 사실이 부채감으로 남아 잊을 만하면 가슴이 쿵 내려앉곤 했다.
내 고백에 아빠가 말씀하셨다.
“알다시피 결과는 나중에 나왔고, 민영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계속 기억하면 살아계신 거나 마찬가지니까 다 알고 계셔. 그리고 아빠는 사실 껍데기가 벗겨진 기분이었어. 나를 지켜주던 껍데기가 없어지니까 마음이 시리고, 기댈 곳이 정말로 없어진 느낌. 그런데 있잖아, 한 편으론 너나 오빠가 세상을 떠난다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는데, 아빠는 알맹이가 없어져서 비어버릴 것 같더라. 더 이상 살아갈 이유도 없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떻게든 살아가는데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살아내기가 너무 힘들어. 부모는 껍데기고 자식은 알맹이야. 아빠는 그래.”
그러고 나서 그때처럼 다물어지는 아빠의 입을 보는 순간, 뜨거운 불덩이가 횡격막에서부터 치솟아 머리카락 끝까지 붉게 뻗쳤다. 소주 한 잔이면 시뻘겋게 변하는 내 몸 때문이리라, 혹은 펄펄 끓어오르는 김 때문이리라 애써 되뇌며 그 위에다 얼굴을 갖다 대었다.
생각해 보면, 할아버지의 임종 날 아빠에게 다가갈 수 없었던 것은, 처음으로 그의 연약함을 목도했기 때문이었다. 창도름을 먹으면서 아빠는 껍데기가 벗겨져 바람 한 줄기에도 쓰라려했던 여린 속살과 그런데도 알맹이를 지키기 위해 단단해지려는 당신의 사랑을 고백했다. 또 한 번 아빠의 연약함과 동시에 강인함을 느끼자 이제 아빠는 언제나 해답을 주는 버팀목보다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처럼 알껍데기를 깨뜨리고 나오는 한 인간으로 보였다.
병원 실습에서 껍데기나 알맹이의 아픔을 겪어내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한다. 노모를 잃은 아주머니의 아이 같은 울음소리가 심폐소생실의 자동문이 열리면 응급실을 쩌렁쩌렁 울렸다가 문이 닫히면 잠잠해지기를 반복한다. 열이 올라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대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자신의 울음을 꼴깍 삼켜내는 엄마는 나보다 어린 여성이다. 이렇게 병원은 어른이 아이가 되고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곳이자, 무수한 사람들의 여린 면들이 있는 아수라장이다. 그래서 어쩌면 그들의 날 선 가시는 당연한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몇 번을 물어보냐며 귀찮게 하지 말고 가라는 당뇨병 환자나 분만을 앞두고 긴장한 산모를 보면 의료인과 비의료인의 경계에 있는 존재로서의 두려움과 무력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그때 아빠와 먹던 창도름을 떠올려 본다. 그들의 창도름은 어떤 맛일지, 누구와 나누어 먹을지를 상상한다. 그러면 그 가시 속 말랑한 마음이 느껴지며 마음을 다잡게 된다. 당뇨병 환자에게 가족력을 묻고 신체 진찰을 한다. 이제 환자는 당신의 외동아들이 얼마나 잘 자란 효자인지 잔뜩 늘어놓으시다가
“선생님, 바쁜 시간 내가 뺏어서 미안해. 고마워요.”
하고 감사 인사를 하신다. 산모의 머리를 받쳐 드리고 라마즈 호흡을 돕고 나면 아기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귓등을 때린다. 아기 아빠는 분만실 온갖 군데에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선생님, 교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100년은 족히 살아갈 인간의 첫 시작을 감히 함께 할 수 있음에 감격스러우면서도 이 아기가 먹게 될 창도름의 뜨끈함이 벌써 느껴지는 것만 같다.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소중하고 말랑말랑한 부분을 포착하는 것이 필요함을 갈수록 깨닫는다. 누구에게나 있을 창도름 떠올리기. 그것이 배지근한 창도름을 아빠와 나누면서 얻은 나만의 사람 이해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