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바닥에서도 아름답습니다.
어느 바람부는 봄날 이었습니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지워졌겠지만 내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꽃들 입니다.
2월 말, 눈내린 날 이었습니다.
추사 김정희 유배지에서 만난 노란수선화, 이덕구산전 오름길에서 만난 샛노란 복수초, 나의 망상이겠지만
두 사람과 두 꽃이 아주 멋들어지게 어울렸습니다. 꽃 이름까지.
잊지 못할 겁니다.

어제 순천동무들을 성산항에 떨궈주고 오던 길에 만났습니다.
늘 이름만 되뇌이던 한번도 제대로 만나지 못했던 그녀 였습니다.
협죽도 夾竹桃 오매불망했던 시간들에 비하면 음.....그다지 다가오는 게 없었습니다. 서양꽃이라는 편견도....
하지만 9월에 이렇게 붉게 물든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입니다.
또하나, 동백처럼 협죽도 역시 통으로 지는 꽃이었습니다.
'바닥에서도 아름답게' 말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제주에선, 아름답다고 말할 땐 그 안에 담긴 눈물까지 함께 말해야 합니다.
툭, 통꽃으로 진 붉은 동백은 민중들의 한이자 장두의 장렬한 최후를 상징합니다.
이재수가 그랬고 이덕구가 그랬습니다.

강요배 - 동백꽃 지다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3 x 1621
/제주 4.3항쟁 연작 중에서
제주에선 아름답다는 말 조차 조심스럽게 말해야 합니다.
숨죽여 말해야 합니다.
아름답다는 말 조차 누군가에겐 상처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철수-동백꽃 지다
160x120-광목천 위에 혼합재료-2004
/여순항쟁 연작 중에서
동병상련의 도시가 있습니다. 여수입니다. 여수는 제주의 또다른 이름입니다.
제주 그림과 여수의 그림이 닮아있는 것은 같은 아픔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국가 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 말입니다.
여전히 중음신으로 떠돌고 있는 통한의 역사 말입니다.
저항과 무자비한 살육의 역사 말입니다.

4월 19일 이었습니다.
여전히 겨울을 이고 있는 한라산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노오란 깃발이 처음으로 걸렸습니다.
노오란 봄꽃들이 환히 웃던 날 이있었습니다.
1960년 혁명의 날이자, 1948년 김구선생이 단독선거를 반대하며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3.8선을 넘은 날이었습니다.
그런 4월 19일 이었습니다.

4월 19일 이었습니다.
누군지 아시겠죠. 김종환입니다.할망궁 chef. 지금은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보이나요?

포크레인 밑으로 드러누운 김종환과 송강호 말고,
보이나요?

천연기념물 19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친구 말입니다.
이런 곳에서 또 만나다니요. 정말 반가웠습니다.
'문주란'입니다.
제주도가 자생지입니다. 제주에서도 토끼섬이란 아주 작은 섬이 유일한 군락지입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요. 아무도 그 누구도 모릅니다. 그가 왜 여기 있는지.
이 공사장 한복판에 말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경계에 서 있습니다.
해군기지 육지부 공사장과 공유수면인 구럼비 바위가 경계를 이루는 지점.
이런 시 구절, '모든 경계엔 꽃이 핀다' 는 제겐 경구같은 구절입니다.
함민복 시인의 시집 제목이기도 합니다.
꽃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
화분이 있고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
저 꽃은 왜 흙의 공중섬에 피어 있을까
해안가 철책에 초병의 귀로 매달린 돌처럼
도둑의 침입을 경보하기 위한 장치인가
내 것과 내 것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
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곡한 깃발인가
집의 안과 밖이 꽃의 향기를 흠향하려
건배하는 순간인가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 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함민복

추석입니다. 마을회관에서 함께 차례도 지내고 노래도 부르고 한마음으로 놀았습니다.
전 가지 않았습니다. 토끼섬 문주란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오늘. 꼭.
저기 저 섬 속의 섬이 토끼섬입니다. 세화읍 하도리에 있는.
제주의 해안선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입니다. 레드헌트 작업할 때도 이곳에서 6개월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활짝 핀 문주란을 만난 건 처음입니다. 8-9월 한여름에 피는 꽃입니다.

이 섬의 이름이 토끼섬이 된 이유도 가득히 문주란 꽃이 피면 마치 흰색의 토끼의 모습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 난섬’이라고도 했는데 이 역시 문주란이 난초의 일종이라고 오해한 나머지 붙여진 이름입니다.
토끼섬의 문주란 군락은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함은 물론이고, 이 식물이 자라는 전세계의 분포지 중에서
가장 북쪽에 분포하는 북한계지(北限界地)의 식물입니다.
그러니 당연 천연기념물이 될 수 밖에요.

이 년 때문에(죄송..이 년이라 부르고 싶군요), 제주시까지 가서 책도 한권 샀습니다. 서귀포 책방엔 없더군요.
2007년 이청준 소설집 <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의 단편들 중에 '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라는 내용을 보고 싶었습니다.
이청준의 장편 <당신들의 천국>은 80년 우리들의 필독서였습니다.
지금은 맛탱이가 완전히 가버린 이문열의 <들소><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마찬가지였구요.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곳 대한민국은 여전히 '당신들의 천국'입니다.
김지하시인의 70년대 식 표현을 빌리자면,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 이 다섯 도둑들, '당신들의 천국'입니다. '우리들의 오적'입니다.
지금은 판검사도 포함시켜야 겠죠.
갑자기 나 자신이 참으로 한심해지는 군요. 뭘하고 살았지.... 여태.

'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임란과 정유재란 시기 남해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일본으로 잡혀가 노예시장으로 팔려갔습니다.
그중에 일부는 멕시코 유카탄 반도까지 팔려가 사탕수수(용설란) 농장에서 중노동을 하면서 각자의 삶을 버텨냅니다.
훗날 역사는 이들을 '애니껭'이라 부릅니다. 극영화로도 다큐로도 이들의 삶이 다루어지기도 했습니다.
말이 멕시코 이민1세지 노예로 팔려간 슬픈 역사죠.
또한 이들의 일부가 쿠바까지 가기도 했죠. 송일곤 감독의 <시간의 춤>이라는 다큐가 이들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체게바라 함께 쿠바혁명에 참여하는 한인들의 삶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제 블로그 http://blog.naver.com/hanee3289?Redirect=Log&logNo=60108116891에
이 다큐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1902년에 제물포항에서 배를 탄 사람들이 멕시코 이민1세대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는데
이 소설에선 임진왜란 때 노예로 팔려 멕시코로 간 사람들을 1세대로 묘사하고 있네요. 300년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잘 모르겠군요. 혹 김국상이 이 글을 읽는다면 사학과 출신답게 뭔가 나에게 말해줄 지도 모르겠군요.
소설가의 상상력일까요. 역사적 사실일까요.

하여간 그 소설 주인공 조부의 고향이 제주도 입니다.
추론컨데....문주란이 흐드러지게 핀 곳이라 했으니 필시 이 하도리가 고향일 겁니다.
조부의 유해는 유카탄반도 해안 모래언덕 문주란이 흐드러지게 핀 곳에 뿌려집니다.
..
"저의 할아버지는 고국에서와 같은 이 꽃밭과 바다를 바라보며 어쩌면 까마득한 고국과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곤
했는지도 모르지요. 자신도 이 문주란꽃씨처럼 오랜 세월 저 넓은 바다를 흘러흘러 여기가지 건너온 신세로구나......
아니면 반대로 이곳의 씨앗이 한국에까지 흘러갔을지도 모르니 그 물길을 따라 언젠가는 당신도 그 씨앗처럼
저 바다 너머 고국 땅까지 흐르고 싶어셨는지도......"
마지막에 작가는 한마디 덧붙입니다.
"우리에게 그 나라라는 게 대체 무엇이었으며, 무엇이어야 하는지"

토끼섬은 960여평의 넓이에 10여m 높이의 나지막한 동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현무암 갯바위에 둘러싸인 안쪽에는 20∼40cm 두께로 조개껍질 가루로 형성된 모래가 깔려 있습니다.
바다 건너 우도의 그 유명한 우빈백사와 같죠. 이 모래밭에서 문주란 6만그루가 자생합니다.
토끼섬 자체도 천연기념물 제 182-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문주란은 난과(蘭科)의 식물로 오해하기 쉽지만, 실은 수선화과에 속합니다.
원래 더운 지방의 바닷가 모래땅에서 자라는 늘푸른 여러해살이풀인데,
해류를 타고 흘러온 씨앗이 이곳에 뿌리내린 것으로 추정합니다.
토끼섬은 사리 썰물 때에는 육지와 이어집니다.
당연 걸어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전 단 한번도 그러질 못했습니다. 물 때를 제대로 못만난 거지요.
사는 게 늘 그렇습니다.

이 분들은 무엇하러 토끼섬을 갔다 왔을까요.
이 놈 때문입니다.

보말입니다.
그냥... 바닷고둥 종류일 겁니다.
제주의 음식중에 보말국, 보말칼국수가 있습니다. 아직 먹어보질 못했다면....
어디가서 제주를 안다고 말하지 마세요.

갑자기 소나가기 쏟아지더니 이윽고 쌍무지개가 뜹니다.
제주의 매력입니다. 변화무쌍.

제주도에 보내는 이런 시도 있습니다.
'레드헌트2 -국가범죄'에 삽입하기도 했죠. 누구의 시라곤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문열과 같은 과 입니다. 이전엔 몰랐죠. 그런 줄.

제주도에게
제주도여 너는 아주
떠내려 가렴
어디로든지 멀리
북에서 멀리
남에서 멀리
멀리 멀리
국가
없는
데로
국가
아닌
데로
아주 멀리
멀리 멀리

비가 그치자 난데없는 바람이 불었습니다.
언덕에 섰던 잎들이 하염없이 흔들렸습니다.

해군기지 공사장 안 입니다.
종환형님이 단 한번도 떠나지 않았던 할망궁 바로 옆 입니다.
두 그루가 있습니다. 8월 29일, 꽃은 아직 피지 않았습니다.
9월 2일 이후 더 이상 그녀를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16일 이후 행정대집행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무식한 해군, 경찰, 삼성 대림에게 말합니다.
문주란은 천연기념물입니다.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길 바랍니다.
해군기지반대' 서명 부탁드립니다.
http://www.avaaz.org/kr/save_jeju_island/?fp
구속 22일, 강동균 김종환 김동원을 즉각 석방하라!
구속 13일, 김종일 홍기룡 고유기 김미량을 즉각 석방하라!
어떤 분이 이 글을 영어로 번역하셨군요.
http://koreanstory.wordpress.com/
고맙습니다. 전 영어가 깡통이라....
첫댓글 아름다운 제주~ 다시가고 싶은제주~!!
산을 다니고,여행을 다녀면 우리국토 정말 아름답습니다. 무분별한 파괴는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해군기지는 반드시 만들어져야 합니다. 나머지 아름다움을 잃기전에 지켜야하니까요~!
해군기지가 제주의 아름다움을 지키기위해 건설되는 건 아닌 것 같은데.......ㅠ
결국은 일본에, 미국에 아름다운 제주를, 이 땅을 바쳐야 하나.....
해방되기 전 송두리채 잃어버릴 뻔 했던 제주, 그 역사와 4,3의 역사는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
오키나와가, 제주가 왜 소외, 차별 받고 서러운 땅이 돼야하나?......
요즘 역사책을 읽고있는데 짧게 나옵니다~
임진왜란 후 많은 도자기 기술자들이 잡혀갔는데 심지어는 서양노예로도 팔려갔다고.... 나와 있습니다~
전쟁 때 일본군이 서양 총포술을 도입한 개량된 무기로 싸웠다고 하니 전혀 불가능한 얘기도 아닌 것 같고.....
아무튼 상상력을 펼처보니 재미있겠더군요~
송일곤감독의 쿠바 이민1세대 얘기 '시간의 춤'도 보고 '쿠바의 연인'도 봤는데...
조금 2% 부족.....ㅠ '쿠바의 연인'에서는 현시기 카스트로 아래에서의 한인들 삶.... 이리저리 볼거리는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