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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국립공원의 과거를 돌아본다
- 오늘의 북한산이 있기까지 -
권 병 화
나는 시방 북한산 정릉골짜기를 쉬엄쉬엄 오르고 있다. 요 며칠 전에는 도봉산 언저리에 새로 만들어진 북한산둘레길을 걸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외쳤다. 자연 속에 있으면 순수하고 겸허한 마음이 들어 나는 산을 자주 찾는다. 집 가까운 곳에 관악산이 있지만 나는 굳이 북한산을 찾는다. 대학산악부 시절에는 암벽등반과 산악훈련을 하며 꿈과 정열을 불태운 곳이 북한산 인수봉과 도봉산 선인봉이었다. 또한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으로서 마지막 일터가 바로 북한산국립공원이었다.
북한산은 우리 민족의 영산이자 서울의 진산이다. 북한산은 도봉산을 아울러 1983년 4월 2일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올해 나이 서른 살이다. 이천만 수도권 시민이 즐겨 찾는 도심 속 자연공원이 북한산국립공원이다.
이제 겨울잠에서 막 깨어난 생강나무가 노란 꽃망울을 머금고 새싹이 움트고 있다. 개울에는 깨끗한 물이 흘러 송사리와 버들치가 무리지어 헤엄쳐 다닌다. 자연 그대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공기도 싱그럽고 맑아 기분이 상쾌하다.
좋은 경치를 감상하며 예전의 북한산 모습을 회상하니 감회가 새롭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북한산국립공원은 미운 오리새끼였다
30년 전에는 아름다운 ‘자연풍경지’를 적정하게 ‘이용’하고자 북한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자연생태계나 자연 및 문화경관’을 ‘보전하고 지속 가능한 이용을 도모’하기 위하여 국립공원을 지정하고 관리한다.
불과 20년 전만 하여도 서울사람조차 <정릉유원지>나 <우이동유원지>, <원도봉유원지>는 알아도 북한산과 도봉산이 국립공원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춤추며 놀기 위해 북한산을 찾았고 장사치들이 등산로나 계곡 주변에서 술과 음식을 파는 곳에 불과하였다.
북한산과 도봉산은 명색이 국립공원이나 관리사무소 한 곳 없이 서울시 구청 녹지과나 경기도 시․ 군 건설과에서 관리하여 왔다. 1987년 국립공원관리공단 설립 시에도 문제가 많아 골칫거리인 북한산국립공원 관리를 꺼려 북한산국립공원은 미운 오리새끼였다. 결국 1987년 공단 조직으로 북한산동부관리사무소(서울시 지역)와 북한산서부관리사무소(경기도 지역)를 개소하고 6개분소를 설치하여 북한산국립공원을 본격적으로 관리하게 되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국립공원을 관리하면서 취한 괄목할만한 조치는 아마도 북한산 입장료 징수와 잡상인 단속과 매몰된 쓰레기 채굴이 아니었나 싶다.
역설적으로 돈을 받았기 때문에 공원관리를 더 잘할 수밖에 없었다. 입장료 징수는 인근 주민들의 반발이 커 아침에 출근하여 보면 매표부스가 계곡에 처박혀있거나 심지어 매표소가 불에 타버린 사례도 있었다. 국립공원 입장료는 2007. 1. 1부터 폐지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산불발생 또한 잦은 곳이 북한산이었다. 큰 바위 밑이나 경관 좋은 곳은 무속인이 거주하며 기도하여 촛불이나 소각행위로 산불이 하루가 멀다않고 발생하여 밤중이고 새벽이고 출동하여 산불진화작업을 하였다.
북한산국립공원은 쓰레기 매립장이었다
북한산국립공원은 전 세계 국립공원 중 단위 면적당 탐방객이 가장 많은 곳으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 산과 계곡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삼겹살을 구워먹고 음식물쓰레기가 넘쳤다
그때는 쓰레기를 모아 불에 태우거나 땅에 묻어 사람들의 눈에 띠지 않으면 깨끗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산이 매립장이 되었다. 그러나 산은 커다란 물탱크다. 토양이 오염되면 썩은 물을 마실 수밖에 없다. 공단은 땅속에 묻힌 쓰레기 처리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북한산 대남문 일대를 시작으로 국립공원구역에 매립된 쓰레기를 굴취하여 산 아래로 가져오기 시작하였다. 특히 도봉산 망월사 화장실 건너편 계곡은 오랫동안 버린 쓰레기가 계곡을 메워 산을 이루었다. 북한산 직원이 총동원되어 무려 100일간이나 쓰레기를 채굴하였다. 쓰레기 처리는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어 헬기로 군부대 훈련장으로 운반하여 폐기물 처리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곳에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매립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북한산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니 화장실 처리도 골칫거리였다. 간이화장실이 문제였다. 대변은 발효처리를 하였지만 소변은 땅속으로 흘려보냈다. 오염실태가 보도된 후에 대형 물통에 오줌을 받아 헬기로 운송하였다. 이제는 깨끗한 토양으로 되살아났다.
북한산국립공원은 식당이었다
1980년대 북한산국립공원을 동네 뒷동산으로 인식하여 누구든지 아무 곳이나 자유롭게 출입하여 사통팔달 길 아닌 곳이 없었다. 아무 곳이나 자리 깔고 앉아 밥을 지어먹고 음식찌꺼기를 아무데나 버리고 설거지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여름철이면 계곡은 온통 수영장으로 변하였다. 계곡에 흐르는 물이 썩어 환경오염이 심각하였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1990년 11월부터 국립공원 안에서 취사, 야영행위를 금지하게 되었다. 북한산과 도봉산에는 18야영장, 25야영장 등 많은 야영장이 있었다. 모든 야영장을 휴식처로 바꾸어 야영을 금지하였다. 다만 Rock climber(암벽등반가)를 배려하여 인수봉과 선인봉 아래 야영장 2곳만 대한산악연맹, 한국산악회, 서울시산악연맹, 한국대학산악연맹의 추천을 받아 허가를 받은 자만이 야영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특정지역에 일정기간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자연휴식년제를 1991년부터 실시하였다. 등산로를 벗어나 계곡으로 사람의 출입을 금지하는 계곡휴식년제도 1998년부터 실시하였다. 그리하여 북한산은 숲이 향기로워지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변모하였다.
국립공원 등산로는 속살이 보이는 큰 길이었다
북한산과 도봉산으로 꾸역꾸역 몰려드는 많은 사람들로 등산로는 크게 훼손되었다. 등산로를 지속적으로 정비하여도 사람들은 다니기 편한 옆길을 이용하여 등산로는 넓어지고 맨살을 드러냈다. 북한산 대남문 일대는 한국산악회에서 매년 식수를 하여도 훼손지역은 더욱 넓어져만 갔다.
부득이 1999년 목재 데크를 설치하였다. 목재 인공 시설물은 경관을 해치고 ‘산에 와서까지 흙을 밟지 않고 인공시설물을 밟고 다녀야 되겠냐?’고 반대 의견도 많았지만 지금은 식생이 복원되어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고 있다. 자연은 사람들이 간섭하지 않으면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을 보호하거나 사람의 안전을 위하여 인위적인 시설물 설치는 불가피하다.
북한산 대동문 일대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허허 벌판이었다. 경복고산악회가 앞장서서 나무를 구입하여 식재하였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헬기로 나무를 운반하는 역할을 하였다. 빈터를 숲으로 되돌리고 있다.
북한산산장은 국수와 막걸리를 파는 곳이었다. 지금은 산장을 새롭게 단장하여 무인 대피소로 운영하여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국립공원은 잡상인들의 무대였다
등산로 입구는 물론 쉴만한 곳이면 어김없이 잡상인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술과 음식을 팔았다. 계곡을 선점한 상인들이 자릿세를 징수하는가하면 북한산 골짜기마다 천막이 하늘을 가리고 삼겹살 타는 연기가 계곡을 덮었다. 도봉산은 산 속에 깡통집까지 생겼다. 소주와 막걸리를 팔거나 음식을 조리하여 팔았다. 미관을 저해할뿐더러 음식물은 불결하여 위생상 문제가 있었다. 석유버너나 가스레인지 사용으로 산불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었다. 또한 등산객의 휴식공간을 뺏었다. 날마다 단속과 고발을 지속적으로 하였고 팔 물건의 은익처에 숨겨둔 물건을 찾아 가져오기를 반복하였다.
도봉지역은 하루에 10만 명이 넘는 탐방객이 북새통을 이루는 곳으로 등산로입구부터 무려 73개의 노점상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단속과 철거를 하면 전국노점상연합회와 연대하여 몸싸움을 벌여 당시 정유희 소장이 폭행을 당하기까지 하였다.
노점상을 철거하여도 다음 날이면 또 다시 천막을 치고 장사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장사할 수 있는 빈 공터에 25톤 트럭 100대의 흙을 쌓아 잡상 행위를 못하게 하였다. 끈질긴 노력 끝에 북한산에서 잡상행위가 사라져 지금은 상큼한 등산길이 되었다.
정릉계곡은 수영장과 매점이 있었다
지금 정릉계곡은 조용하고 깨끗하여 자연 그대로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90년대 초 까지만 해도 정릉유원지로 불리던 곳으로 2개의 수영장과매점 14개소가 있어 시끄럽고 지저분하여 행인은 눈살을 찌푸리고 지나가는 곳이었다. 수영장(스타풀장과 가든풀장)은 1972년에 신축되었으며 매점은 1962년경부터 들어섰다. 건물은 이미 서울시에 기부 체납되어 있었다.
수영장은 주먹들의 세계인 조폭이 관여하여 철거를 못하였다. 1993년 스타풀장을 강제집행에 들어가자 깡패를 동원하여 몸싸움은 물론 염산과 신나, 스프레이를 살포하며 생명에 위해를 가하며 극렬히 저항하였으나 직원들이 1달간 야간에도 철거장소를 지키며 의지와 투지로 철거할 수 있었다. 가든풀장은 9개월의 철거작업 끝에 1995년 8월이 되어서야 마침내 철거할 수 있었다.
정릉계곡의 매점은 사정이 달랐다. 1990년부터 실시한 공원내 취사금지조치로 음식점은 오히려 장사가 잘되어 계곡에 좌판과 그늘막은 늘어난 실정이었다. 하루 매출이 1천만 원을 넘으니 누가 장사를 그만두고 철거하려고 하겠는가? 여름 성수기가 지나 단전, 단수를 하여도 음식물 판매 행위는 계속되었다. 탐방객의 계곡내 출입을 금지하는 계곡휴식년제를 정릉 계곡에 확대 실시하고 퇴근 후 야간에도 지속적으로 단속을 실시하는 한편 대화와 설득을 병행한 결과 한 집, 두 집 철거하여 모든 집을 철거할 수 있었다. 철거상인들의 생계대책으로 휴게소 2동(16개 코너)을 건립하였다.
수영장과 매점이 철거된 정릉계곡은 이제 나무와 수풀이 무성이 자라 온전한 자연의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원도봉계곡 행락객이 춤추고 떠드는 곳이었다
도봉산 원도봉계곡은 음식점이 난립하여 계곡은 평상으로 가득하고 그늘막이 계곡을 덮어 미관을 저해하였다. 음식물 쓰레기는 수질을 오염시키고 행락객의 음주가무와 고성방가로 탐방질서를 어지럽히는 곳이었다. 이곳은 의정부시유지로 1995년부터 상가번영회(회장 유정환)와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시유지인 폐업한 수영장 부지로 이전하기로 1997년 확정하였다.
공원계획을 입안 중인 1998년 8월 5일과 6일에 게릴라성 폭우로 장대비가 쏟아져 원도봉계곡에 사망․ 실종 8명, 29채의건물 피해가 발생하였다. 수해가 발생하기 전에는 주민들은 건물 보상을 받지 않고 이주하기로 협약하였다. 그러나 막상 철거·이주 계획이 확정되자 주민들은 보상을 조금이라도 많이 받기 위해 공단과 마찰이 발생하고 환경부, 감사원 등 민원을 제기하여 민원 해결을 위해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또한 그린벨트지역과 군사보호지역으로 허가에 많은 시일이 경과하여 9월이 되어 겨우 착공할 수 있었다. 준공을 못한체 예산의 재이월이 불가하여 부득이 준공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준공을 못하였으니 공사대금은 지불하지 않고 별도 통장을 만들어 사업을 진행하였으나 환경부 감사에 지적되어 소장을 징계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주 단지는 말끔히 조성되어 계곡은 자연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북한산 국립공원은 공동묘지로 변하고 있었다
북한산 속칭 무당골에 산악인 합동추모비가 세워져 산악인 200여명의 위패와 동판이 봉안되어 있다. 북한산과 도봉산 암벽이나 전망 좋은 곳에는 유명을 달리한 산악인의 넋을 기리기 위한 비석과 동판, 위령탑이 설치되었는데 그 숫자가 너무 많아 등산객에게 혐오감을 주거나 경관을 헤치는 경우가 있을뿐더러 위령비나 동판이 출입금지구역에 설치되어 있는 경우는 출입금지구역 위반이나 산불발생이 위험이 상존하고 있었다.
1995년부터 산악인들이 자발적으로 예산을 모금하여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추모비 건립을 건의하였다. 공단은 2006년 구 우이산장 철거지에 추모비 건립을 추진하였으나 추모비를 국립공원 내에 설치 할 수 없다는 반대에 부딪혀 표류하였다. 그러다가 2008년 개발제한구역이며 자연보존지구에 산재해 있는 비석과 동판을 철거하여 똑같은 개발제한구역이며 자연보존지구 한 곳으로 이전하는 것이므로 문제가 안 된다고 관계당국을 설득하여 성사 될 수 있었다.
철거과정에 비석과 위령탑에는 유골이 들어있는 경우도 있고 고인의 비석을 철거한다는 것이 마음에 꺼림찍하여 “어명이요”라고 외치며 “좋은 곳으로 모셔드리겠습니다”하며 큰 절을 올린 후 철거하였다고 한다.
북한산성 안에 북한동 마을이 있었다
조선조 숙종 37년(1711년)에 축성한 북한산성 안에는 북한리 법정마을이 있었다. 53세대가 거주하며 대부분 계곡 주변에서 음식점 영업을 하고 있었다. 좌판대, 천막 설치 등 불법시설물 설치, 자릿세 징수, 바가지요금은 물론 오폐수 방류로 북한동 마을은 고발․ 단속․ 철거의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이 지역은 이주대상 마을이었으나 2001년 공원계획 변경으로 이주 마을이 슬그머니 빠져 버렸으나 불법시설물이 난립하고 환경오염이 극심하여 도저히 존치시킬 수 없었다. 당시 이행만 소장이 각고의 노력으로 공원계획을 변경하여 이주사업은 시작되었다. 2006년부텨 계곡 입구 수영장과 음식점을 철거하기 시작하여 2011년 작년에 마을을 이주한 후 철거지를 복원하였다. 머지않아 북한동 마을은 자연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여 물이 맑아지고 깨끗해져 탐방객의 휴식공간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보현봉과 형제봉은 기도소리로 시끄러운 곳이었다
한 때 북한산 보현봉과 형제봉 일대는 무속인과 비정상적인 종교인이 괴성을 지르며 기도하는 곳이었다. 1000명이 넘는 인원이 간이 텐트를 치거나 토굴을 만들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소리소리 지르며 기도하여 등산인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켰다. 그들이 켜둔 촛불은 산불발생의 원인이 되고 그들이 닦은 기도처는 자연훼손을 불러왔다. 기도하는 것 자체는 단속 할 수 없어 경찰 1명과 전경 5명이 매일 국립공원에 상주하며 경범죄 처벌로 단속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탐방로를 제외한 보현봉과 형제봉 일대에 자연휴식년제를 시행하고 야간산행금지 조치를 시행하여 98년과 99년 2년 동안 끈질기게 집중단속을 실시하여 이제는 조용한 국립공원이 되었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북한산 둘레길을 만들었다
공단은 2009년부터 북한산 자락을 완만하게 걸을 수 있도록 수평산책로를 조성하였다. 사색하며 가족끼리 천천히 걸을 수 있는 길이 북한산 둘레길이다. 북한산 둘레길은 장애우도 갈 수 있도록 만든 구간도 더러 있다. 북한산 둘레길은 2011년 6월 21개 구간 71.8km를 개통하였다. 사람과 자연이 공생을 이루어 모두 행복으로 가는 길이 북한산 둘레길이다.
국립공원 관리는 규제나 단속보다는 국립공원을 이용하는 탐방객과 주민 모두가 국립공원의 가치와 중요성을 직접 배우고 느껴 스스로 국립공원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자연학습탐방로를 설치하고 자연해설프로그램을 운영하여 국토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고 있다. 국립공원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어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하는 곳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국립공원연구원과 국립공원종복원센터를 설립한데 이어 도봉산에 국립공원생태탐방연수원을 설립하였다. 국립공원생태탐방연수원은 환경교육의 메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을 생각한다.
우공이산은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우공은 집 앞에 큰 산이 있어 불편을 덜고자 산을 옮기기로 하고 삼태기로 흙을 나르고 있었다. 이를 본 사람이 “왜 헛되고 무모한 짓을 하느냐?”고 물었다. 우공은 “비록 내가 죽을지라도 아들이 이 일을 계속할 것이므로 언젠가는 산이 없어질 날이 오지 않겠는가?”라고 대답하였다. ‘우공이산’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교훈을 간직하고 있다.
국립공원 국공회는 2009년 북한산 탐방형태 설문조사(1,060명)를 실시하였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1) 북한산이나 도봉산에 샛길 출입을 경험한 사람은 33%로 북한산을 찾는 탐방객의 1/3 수준이며, 2) 대부분 사람은 북한산국립공원에서 취사를 전혀 하지 않지만 3년 이내 북한산국립공원에서 취사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도 7%임. 3) 북한산국립공원에서는 도토리나 산나물을 채취하지 않지만 도토리나 산나물을 채취한 적이 있는 사람도 79명(8%)이나 되며, 4) 대부분 사람은 산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지만 4%인 38명이 아직도 쓰레기를 버리고 있음. 5) 산에서 담배를 피운 적이 있는 사람은 무려 128명(12%)이나 된다. 6) 국립공원 내에서 자연공원법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은 37%인 반면 알고만 있거나(28%) 모르거나 알 필요가 없다는 사람(35%)이 대부분으로 나타났다.
북한산국립공원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노력과 시민 의식이 향상되어 깨끗하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국립공원으로 발돋움하였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우리 모두 북한산국립공원을 아끼고 사랑하고 보호하며 올바르게 이용하여 아름답고 깨끗한 국립공원이 되도록 합심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첫댓글 감명 깊게 읽었고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