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제13회
황금펜아동문학상(동시부문) 당선작
족보 외 4편 / 신난희
책 속에
나무가 들어 있어요
뿌리는 깊이 깊이 내려가
먼, 먼 옛날에 닿아 있고
줄기는
위로 옆으로 멀리멀리 뻗어 가는
한 그루가 숲을 이루는
아주 커다란 나무
책을 펼치면
내가, 그 나무 우듬지 햇가지 인 걸 알죠
뿌리 깊은 나무의 귀한 가지란 걸 알죠
나무가 자라는 만큼
책은 점점 두꺼워지고
나도 언젠가
든든한 뿌리가 될거란 걸 알죠
수제비
모처럼
엄마 쉬는 날
거실바닥에
다리 쭉 뻗고 반죽하는 엄마는
회사 서은희과장님이 아닌
진짜 우리 엄마같다
푸슬푸슬하던 밀가루
어느새 끈덕끈덕 붙어
동글동글 모아지는 동안
방에만 있던 식구들
슬금슬금 거실로 나와
반죽처럼
사이좋게 붙고
멸치 국물 냄새
하얀 물결처럼 넘실거리는 식탁에
온 식구 빙둘러
뜨겁고도 야들야들한 수제비 후후 불어 먹으면
남 모르게 좋은 일 생긴 때처럼
가슴 속이 울렁울렁해진다
빈터
아파트 뒷길
눈에 띄지 않는 자투리 땅
'빈터에 쓰레기 버리지 마시오'
푯말 붙어있지만
빈터 아니예요
풀씨가 젤 먼저 자리 잡았고
민들레 제비꽃 토끼풀 질경이 망촛대 쑥부쟁이 이웃되었고요
냉이는 그 새 하얀 꽃 이층집을 지었네요
'빈터 아니니 쓰레기 버리지 마셔요'
도토리
은행은 장대로 털고
밤은 집게로 집고
도토리는 그냥 줍습니다
다 익었으니
나누어 가라고
툭 투둑 툭
모자도 벗고
뛰어 내립니다
아낌없이 주니까
장대로 맞을 일도
집게로 꼬집힐 일도 없습니다
장마 끝나고
샤워 너무 오래했다고
나무들 꽃들 풀잎들
햇살 드라이어로 쨍쨍 몸을 말리고
온 몸 근질근질했던 자전거와 난
첨벙첨벙
새로 생긴 물웅덩이 마다 인사를 하지
겨드랑이마다
노오란 웃음 터질 것 같은 옥수수밭 위로
밍밍 밍밍 허밍으로 나는 잠자리 떼
지루한 수학 시간 끝난 것처럼 괜히 즐겁지
* 시상식이 9월 24일(토) 오후 4시, 하이서울 유스호스텔(영등포구 소재)에서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