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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세계의 이야기 4부작
김혜진 글·그림 | 신국판 변형 | 바람의 아이들 펴냄
주제/영역: 판타지, 성장, 모험
1탄 아로와 완전한 세계(2004년 10월 출간, 528쪽) | 2탄 지팡이 경주(2007년 6월 출간, 595쪽) | 3탄 아무도 모르는 색깔 (2008년 5월 출간, 555쪽) l 4탄 열두째 나라(2013년 4월 출간)
대산 창작기금 수혜작 / 서울독서연구회 선정 도서 / 중앙독서연구회 추천 도서 / 어린이문화진흥회 선정 도서 / 어린이도서관연구소 선정 아침독서용 추천 도서 / 어린이도서관ㆍ한국아동문학인협회 선정 어린이 우수 도서
■ 출판사 리뷰
우리 아동문학에는 제대로 된 판타지가 없다?
2003년, 대산문화재단의 창작기금을 수상한『아로와 완전한 세계』가 출판되었다. 국내 에서는 처음으로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판타지 동화가 나왔을 때 주요 신문사들은 이십대의 신예 작가 김혜진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화의 주인인 어린 독자들이 열광했다.
주인공 아로가 읽는이가 되어 완전한 세계에서 벌이는 모험은 서구의 그 어떤 판타지 못지않게 흥미진진하고 짜임새 있는 것인 동시에, 바로 여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우리 어린이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1탄『아로와 완전한 세계』는 우리나라에서는 멋진 판타지가 나올 수 없다거나 아이들이란 두꺼운 책은 읽기도 전에 밀쳐 버린다거나 하는 사람들의 편견을 간단히 격파했다. 그리고 '완전한 세계'에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지팡이 경주를 다룬 2탄『지팡이 경주』는 전작의 성공에 기댄 후속작은 더 재미있거나 성공적이지 못할 거라는 일반적인 고정관념을 격파했다. 이제 또 다시 완전한 세계의 이야기 시리즈의 3탄『아무도 모르는 색깔』이 세상에 나왔다.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완전한 세계'는 보다 더 단단하고 치밀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다! 새로 선보인 3탄은 또 독자들에게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기대 된다.
아이들에게 '완전한 세계의 이야기'시리즈가 필요한 이유!
완전한 세계의 이야기는 같은 시리즈지만 '완전한 세계'라는 큰 배경만 같을 뿐 이야기 한편 한편이 새롭고 독특한 독립성을 지니고 있어 순서 없이 아무 책이나 먼저 읽어도 된다. 그러나! 한 권을 집으면 다른 책도 집힌다는 사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고 무엇보다 숨어 있는 아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며 무수한 질문을 던진다. 그야말로 이 책을 잡는 순간, 아이들은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시작하는 동시에 현실에서라면 도저히 불가능한 성장을 겪게 되는 것이다.
『아로와 완전한 세계』는 막내 아로가 완전한 세계와 불완전한 세계라는 새로운 세계에,『지팡이 경주』는 둘째 아현이 르겔 왕자, 뮌, 호수섬의 소년 소녀 등 서로 관계를 맺고 변화의 원동력이 되는 사람에,『아무도 모르는 색깔』은 첫째 아진이 아픈 기억을 거부하는 자신의 내면에 집중한다.
왜 그곳은 '완전한 세계'이고 우리가 사는 이곳은 '불완전한 세계'인가?라는 물음은 전편에 깔려 있다. 이 물음은 각각의 등장 인물들에게, 등장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던져지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이다. 그리고 이 위대한 판타지와 그것을 읽는 행위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한 걸음 한 걸음이다. 아로와 아현과 아진, 엄마를 잃은 어린 삼 남매가 완전한 세계로 가서 홀로 자신과 싸우고 한층 성장한 다음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인지도 모른다. 성장이란 누구에게든 어려운 고비와 상처를 딛고 다시 태어나는 일이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현실을 뛰어넘는 판타지가 성장담에 가장 걸맞는 형식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하면서 세상을 살아갈 어린 독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준다.
판타지의 진화를 거듭하는 대작!
3부작 '완전한 세계의 이야기'를 써 낸 작가 김혜진은 판타지의 속편들이 빠지기 쉬운 매너리즘의 함정을 가볍게 뛰어 넘었다. 작가가 똑같은 '완전한 세계'를 배경으로 조용하고 차분하게 그러나 복잡하고도 정교하게 매번 새롭고 낯선 존재들을 무수히 만들어 내면서 어린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문장으로 존재론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은 무척이나 놀라운 일이다. 우리 아동문학은 미시, 거시적인 리얼리즘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판타지에서 탈출구를 찾으려 시도하고 있지만 신화나 역사 혹은 민족이라는 또다른 형태의 리얼리즘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 아동문학에서 판타지는 불가능한가, 라는 회의가 만연하고 있지만 김혜진은 혼자 조용히 우리 판타지의 진화를 보여 주고 있다. 우리 아동문학 역사상 작품의 스케일로나 분량으로나 이만한 대작을 펴낸 작가는 일찍이 없었다. 정외과 출신의 이십대 이 신인 작가는 완전한 세계의 열두 나라들 간의 세력 다툼을 활용, 인간의 내면 탐구가 자칫 추상으로 흐르는 것을 훌륭하게 방지하는 동시에 어린 독자들이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아무도 모르는 색깔』로 아로, 아현, 아진이 들려주는 삼 남매의 완전한 세계 이야기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작가는 앞으로 완전한 세계의 이야기를 두 편 정도 더 쓸 생각이라니, 우리는 작가의 행보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완전한 세계의 이야기가 계속되면 될수록 우리 독자들은 순수한 우리나라 판타지의 진화를 목격하는 행복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 작품 소개
아로와 완전한 세계-1탄
아빠와 언니 아진, 오빠 아현과 함께 사는 열두 살 소녀 아로는 겨울 방학 첫날 도서관에서 이상한 책을 발견한다. 책에 달린 브로치를 옷에 달자마자 아로는 낯선 세계로 가게 된다. 그곳은 바로 '완전한 세계'. 완전한 세계의 사람들은 책을 가지고 온 아로를 '불완전한 세계에서 온 읽는이'라 부르며 환영한다. 아로가 가지고 온 책, '완전한 세계의 이야기' 안에 완전한 세계의 모든 역사가 담기고 있기에 불완전한 세계의 누군가가 책을 읽어 주어야 책이 비워지면서 새 역사가 쌓일 공간이 생긴다는 것.
오랫동안 불완전한 세계에서 읽는이가 오지 않아 완전한 세계의 균형과 질서가 어긋나는 중이었다는 설명을 들은 아로는 다음 날 책을 읽기로 하고 잠이 들지만, 누군가 책을 훔쳐가 버린다. 아로는 어쩐지 믿을 수 없는 별꽃나라 현자 유하레의 제안에 따라 완전한 세계의 열두 나라마다 한 권씩 있다는 사본을 모아 잃어버린 책을 대신하기로 한다.
최초의 별꽃나무가 보낸 두더지, 길에서 만난 노래나라 소녀 미솔파와 함께 사본을 모으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 아로는 완전한 세계의 별꽃나라, 건축도시, 초원나라, 공중도시, 섬나라, 불의 나라, 호수섬, 산나라, 가면나라, 꿈의 사막, 노래나라, 색채나라를 차례로 돌며 각 나라의 상징이자 중심인 최초존재들로부터 사본을 받아 내려 한다. 아로는 아름답고도 신기한 나라들을 여행하며 불완전한 세계와의 소통을 잃은 완전한 세계가 고인 물이 썩어가듯 변해간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여행 중 길에서 만난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면나라의 기이츠로부터 완전한 세계 전체를 뒤흔들만한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아로. 읽는이로서, 사본들을 가진 자로서 완전한 세계의 운명을 손에 쥔 아로는 유하레의 끊임없는 방해와 세계를 둘러싼 전쟁 속에서도 자신의 임무를 바르게 수행하려 애쓰는데…….
지팡이 경주-2탄
아로의 오빠인 열여섯 살 아현이 겪는 이야기. 모두가 학교 대항 농구 시합을 응원하러 간 봄날 오후, 체육관에 홀로 남은 아현 앞에 창고 문이 열리며 낯선 소년이 나타난다. 소년이 나온 창고 안은 태양이 빛나는 다른 세계. 엉겁결에 소년의 뒤를 따라 완전한 세계로 들어간 아현은 호수섬 왕자 일행을 만나고, 르겔 왕자는 아현에게 함께 지팡이 경주에 나가자고 제안한다. 아현은 완전한 세계가 어떤 곳인지 궁금한 마음에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르겔 왕자와 왕자의 사촌 르에, 왕자의 보좌인 뮌과 함께 섬나라에서 열리는 지팡이 경주에 참여한다.
스물하루 동안 벌어지는 지팡이 경주는 지팡이를 가장 잘 키워내는 사람이 우승하는 경기. 지팡이는 그 주인의 마음과 정신, 겉모습까지도 따라 닮아간다고 한다. 아현은 말을 하는 지팡이가 어색하지만 곧 마음을 열고 소중히 지팡이를 키워나간다.
바다 속 유적, 꿀벌마을, 땅종이 동굴 등 섬나라 곳곳의 접점을 찾아 지팡이를 꽂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아현 자신 또한 지팡이와 더불어 조금씩 변해간다.
그러나 지팡이 경주 참가자들 사이에 지팡이를 빼앗아 먹는 괴물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떠돌고, 아현은 함께 경주에 참여한 르겔 왕자가 저주에 걸렸다는 소문까지 듣게 된다. 말이 없고 안색이 좋지 않으며 모든 일에 무관심해 보이는 르겔 왕자는 정말로 저주에 걸린 것일까? 르겔 왕자는 호수섬 사람들에게까지 배척당하고, 왕자의 일행인 아현 또한 따돌림을 당한다. 호수섬의 귀족 소녀인 르네는 왕자에게 왕이 될 자격을 증명해 보이라고 요구하고, 그 요구를 따라 빛나무숲으로 간 일행은 갑자기 나타난 해결사들과 마주친다.
해결사들은 왕자가 아니라 보좌인 뮌의 지팡이를 빼앗아 가고, 지혜롭게 일행을 이끌어 온 뮌은 지팡이를 빼앗긴 후 빈껍데기처럼 변해 버린다. 아현은 르겔 왕자를 도와 뮌의 지팡이를 찾기 위해 '근원'으로 향하는데……. 모든 지팡이들이 비롯되었다는 '근원'에는 더 큰 위험이 아현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아무도 모르는 색깔-3탄
삼 남매의 첫째인 아진은 이제 막 고 삼이 된 여고생. 엄마 없이도 씩씩하고 바르게 자란 두 동생이 뜬금없이 털어놓은 '완전한 세계'라는 곳의 이야기에 아진은 혼란스러워 한다. 아진은 동생들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어 하면서도, 뭔가 잊은 듯한 답답함 또한 느낀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든 아진에게 완전한 세계 꿈의 사막으로부터 꿈과 함께 잃어버린 기억들이 돌아온다. 바로 7년 전 엄마가 돌아가신 날 완전한 세계로 갔던 열두 살 때의 기억이.
엄마가 돌아가신 여름날 밤, 아진은 혼자 병원 도서실에 와서 마음을 달래다 '완전한 세계의 이야기' 책을 발견하고 완전한 세계로 가게 된다. 아진이 도착한 곳은 한겨울의 색채나라. 초록왕의 요청에 따라 다른 나라 손님들까지 광장에 모아 놓고 책을 읽은 아진은 불완전한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달고 있던 브로치를 빼어 책에 도로 꽂지만, 책과 브로치만이 불완전한 세계로 가고 아진은 완전한 세계에 남게 된다.
색채나라의 최초존재 색채의 뜰은 아진이 너무 완전해졌기 때문에 불완전한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것이라 밝히고, 아진에게 불완전함을 되찾기 위해서는 '아무도 모르는 색깔'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도 모르는 색깔은 순수한 색깔들인 색불과 색돌과 색물, 그리고 색바람을 차례로 잡아내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타오르는 색불의 불풀가마, 가라앉는 색돌의 얼음광산, 흐르는 색물의 색의 강, 불어오는 색바람의 바람새협곡까지 아진이 가야하는 길은 아득하기만 하고……. 완전해진 아진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황금의 켈로니스, 아무도 모르는 색깔이 발견되는 것을 막으려는 하얀 가문의 나머지인 여백들이 아진을 쫓는 가운데 아진은 검정가문의 소녀 까미에, 까미에의 약혼자인 유리성 소년 즈카, 그리고 색깔을 잃은 투명한 소년 테히사와 함께 아무도 모르는 색깔을 찾는 모험을 시작한다.
열두째 나라 - 4탄
김혜진의 ‘완전한 세계’ 시리즈는 한국 아동문학사에서는 보기 드물게 몇 년에 걸쳐 꾸준히 쓰여지고 있는 판타지 작품으로, 『아로와 완전한 세계』(2004), 『지팡이 경주』(2007),『아무도 모르는 색깔』(2008)로 이어지는 동안 수많은 독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켜 왔다. 아로, 아현, 아진 삼남매가 차례로 판타지 공간인 ‘완전한 세계’로 건너가 현실 세계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갖가지 모험을 겪고 돌아온다는 이 시리즈는 탄탄한 서사와 놀라운 상상력으로 읽는 재미를 주었을 뿐 아니라, 주인공이 내적 성장을 이루어내기까지의 진지한 성찰과 삶에 대한 긍정적 이해 등 아동문학으로서의 기본에도 충실한 작품으로 평가받아 왔다.
매 권마다 500페이지를 훌쩍 넘는 분량의 판타지 작품이 어린이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 온 까닭은 무엇보다도 작가가 창조해낸 ‘완전한 세계’가 가진 매력 때문이다. 저마다 다른 생김새와 존재방식을 갖고 있는 열두 종족이 사는 열두 나라라니, 그 안에는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여기에 ‘불완전한 세계’라고 불리는 현실 세계로부터 건너간 아이들이 맞게 되는 여러 위기와 시험은 그 자체로 흥미롭기도 하려니와 통과의례와 성장에 대한 은유로 읽기에도 충분했다. 또한 엄마를 잃은 삼 남매가 ‘완전한 세계’에 다녀온 후 현실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판타지가 가진 치유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1편 『아로와 완전한 세계』가 나온 지 10년 만에, 3편 『아무도 모르는 색깔』이 나온 지 5년만에 선보이는 4편『열두째 나라』에는 ‘불완전한 세계’에서 건너간 ‘읽는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1, 2, 3편이 시간 순서대로 놓여 있었던 것과 달리 『열두 째 나라』는 아예 1편보다도 훨씬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로 삼남매가 ‘완전한 세계’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독자라면 잠시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또 현실세계에서 판타지세계로 건너갔다 오는 것이야말로 ‘판타지’ 장르의 모범적인 문법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잠시 어리둥절할지도 모르겠다. 요컨대, 『열두 째 나라』는 ‘완전한 세계’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인 동시에 새로운 이야기이며, 이미 존재하는 ‘완전한 세계’ 시리즈의 열혈 독자들을 위한 ‘외전外傳’인 동시에 새로 진입하는 독자들을 위한 친절한 ‘전사前史’이기도 하다.
아주 먼 옛날, ‘완전한 세계’가 불완전했던 때가 있었으니……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에 앞서 제시된 프롤로그에서는 “아주 먼 옛날, 아로와 아현과 아진이 완전한 세계에 가기 훨씬 전” 완전한 세계가 열두 나라로 이뤄졌다는 것을 몰랐던 때,한 소년이 열두째 나라를 발견해냈다고 이야기한다. 이 ‘열두째 나라를 찾아낸 이’는 오랫동안 두고두고 영웅으로 칭송되지만 사실은 지극히 평범한 소년이었다는 설명은 『열두째 나라』 주인공인 ‘참’에 대한 핵심적인 요약이라고 볼 수 있다. 공중도시로부터 버림받은 문지기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라는 사실은 참에게 주어진 사명이 운명적이고 필연적인 것이라고 말하지만, 날개가 있는데도 날지 못하고 자기가 누구인지조차 선명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참이 가진 치명적 약점이 된다. 그리고 참이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이 작품의 기본적인 뼈대가 된다.
이야기는 꿈의 사막에서 자란 날개 달린 소년 참이 자기의 고향인 공중도시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데서 시작된다. 여기에 ‘꿈잣는이’ 소년 명이 따라나서면서 이들의 본격적인 모험이 펼쳐지는 것이다. 여간해서는 꿈의 사막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는 꿈잣는이가 밖에 나가기를 꿈꾼 이유는 누군가의 간절한 소망을 이루어주고 싶어서이다. 완전한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소망은 상자에 담겨 꿈의 사막에 보관되고 있었던 것. 바깥세상으로 길을 떠난 소년들이 겪는 모험에 강력한 동기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전체 줄거리를 이끌어나가는 힘이 되어 주지만, 그 동기가 다른 사람의 소망을 이루어주기 위해서라는 사실은 이 이야기의 주제가 뜻밖에도 무척이나 숭고하고 철학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진정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나 다른 사람의 희망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소망을 이루는 일의 부당함 같은 것들은 자신의 욕구와 소망에 충실한 어린이들이 한번쯤 꼭 생각해봐야 할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열두째 나라』의 진짜 장점은 참과 명, 두 소년이 겪는 모험 이야기가 정말로 흥미진진하다는 점이다. 작가가 후기에서 밝혔다시피, 이 작품의 주요 배경이 되는 ‘꿈의 사막’ ‘공중도시’ ‘불의 나라’는 이전 시리즈들에서 그리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곳으로, 꿈을 통해서 오갈 수 있다거나 하늘에 떠 있다거나 땅 속에 있다거나 하는 등의 기본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이다. 여기에 참과 명의 캐릭터는 물론, ‘소망상자 주인 찾기’ 미션에 동참하는 탐험대의 면면도 모두 뚜렷한 개성을 갖고 있어 읽는 재미를 준다. 또 중요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인물들에게는 모두 나름의 절실한 이유가 있고, 쉽게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선한 의도를 갖고 있었다는 점은 아동문학으로서 이 책이 가진 중요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과 세계를 최대한 이해하려는 긍정적인 세계관은 어린이 독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에게 모험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
무려 500페이지를 넘는 엄청난 분량과 수많은 하위 플롯의 결합으로 짜여진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어린이들에게는 고된 과제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세 권의 책을 읽고 보여준 어린이 독자들의 반응은 무척 뜨거운 것이었다. 알고 보면, 분량 자체는 독서를 방해하는 본질적인 장애 요인은 아닌 것이다. 더구나 ‘불의 나라’를 둘러싼 미스테리(‘불의 나라’는 진짜로 존재하는 곳인가?), 빈땅이라는 으스스한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상쩍은 음모, 상시 비상사태를 맞고 있는 공중도시가 숨기고 있는 부끄러운 역사 등그 안에 담겨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거대한 톱니들처럼 딱딱 맞아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다. 결국 『열두째 나라』는 판타지가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이상의 문학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분명한 증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공중도시와 불의 나라가 보여주는 극단적인 공간적 대비, 사회적 약자들이 갖게 되는 분노와 그 비극적 결말, 궁극적인 해결책은 언제나 정반대의 방향에서 찾아진다는 아이러니,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우정이나 배려와 같은 보편적 가치 등 이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의미는 하나 둘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해석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무엇보다도 진정한 모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험은 언제나 결과보다는 과정을 눈여겨보게 하는 법,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의 자세도 이와 같다. 어쨌든 푹 빠져서 즐겁게 책 읽기! 완전한 세계 시리즈의 이 놀라운 ‘프리퀄’은 완전한 세계라는 하나의 세계를 보다 탄탄하게 뒷받침해주는 동시에, 독자들에게 만족스러운 독서 체험을 제공해준다.
■ 작가 소개
작가가 된 도서관 키드, 김혜진
김혜진은 신인 발굴과 육성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어린이 책 출판을 시작한 바람의 아이들과 묵묵히 5년째 함께 걷고 있는 작가이다. 그 동안 써 낸 작품의 양만으로도 충분히 주목받을 만하지만 동화와 청소년 소설<프루스트 클럽, 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 번역<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대학이 이런 거야?> 그리고 일러스트레이션<아로와 완전한 세계, 지팡이 경주 등>이라는 범주를 넘나들며 아동문학계에서 전방위적으로 활약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작가가 아닐까 한다. 한 때 '하자센터'에서 사서로 활동한 적도 있는 그녀는 청소년들에게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엄마 아빠랑 같이 살면서도 '작품'을 쓸 수 있어요?'라는 질문을 받고 당황한 적도 있다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그녀는 여전히 '예술적'이라기보다는 '모범생'같은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5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안에 그녀가 작가로서 훌쩍 성장하는 것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있는 바람의 아이들은 그 비결이 바로 '모범생' 기질이 아닐까 한다.
그녀는 항상 쓰고 또 그린다. 완전한 세계의 이야기 첫 권인『아로와 완전한 세계』에 처음으로 삽화를 그리면서 좌절했던 그녀는 그림 공부를 해 보겠다며 영국 유학에 도전할 정도로 정면대결형이다. 결국 같은 클래스의 학생들로부터 너는 숨도 안 쉬고 그림을 그리느냐는 질시어린 찬탄을 받기도 했다고.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미덕이 많은 숨어 있는 김혜진을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저절로 생기는 어린 마니아들 때문이다. 완전한 세계의 이야기는 권장목록에 들어가거나, 교사나 학부모의 권유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가 찾는 책이 되었다. 권당 원고지 1,500매가 넘는 두꺼운, '그림도 없는 책'을 저학년 아이들도 푹 빠져서 읽는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이 신기해서 어른들도 그 책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부산에서부터 혼자 기차를 타고 작가를 만나러 오는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마음을 내어 주는, 거품이라고는 찾아 볼 길 없이 '착한' 작가는 평론가들의 외면과 저조한 판매 부수에도 불구하고 어린 독자들의 자그만 성원에 마냥 행복해하고 있다.
■ 독자들이 열광하는 완전한 세계의 이야기 시리즈!
바람의 아이들이 운영하는 미래의 독자 카페, 여러 인터넷 서점, 인터넷 사이트 검색창에 책 제목만 쳐도 '완전한 세계의 이야기'에 관한 독자의 반응을 엿볼 수 있다. 지금도 어린 독자들은 미래의 독자 카페에서 작가를 찾고 있으며, 작가는 기꺼이 그들과 소통하며 어린 독자들의 멘토가 되는 듯하다. 김혜진 작가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어린 독자'들의 반응은 작가뿐 아니라 한국 어린이 문학에도 신선한 촉매제가 될 것이다.
500쪽이 넘는 책의 분량만 보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이면 이틀 만에 후딱 읽어 치울 수 있을 만큼 재미있고 경쾌한 판타지 동화다._조선일보
대중매체로 오히려 상상의 폭이 좁아진 지금 책은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넓혀 주며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_세계일보
현실은 불완전하기에 변화와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비루한 현실과 신나는 환상의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여타 판타지류와 차별되는 지점이다._중앙일보
심각한 존재론적 고민을 독특하고 매력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서 멋진 판타지로 풀어낸 작가 김혜진은 데뷔작으로 뛰어난 문학적 성과를 거둔 셈이다. 앞으로 그가 쓸 작품이 기대된다._한국일보
빨리 내용은 알고 싶은데 페이지가 줄어 가는 건 아까운 이 기분… 캐릭터들도 정말 매력적이라서 읽을 땐 정신없이 빠져서 읽었거든요. 저는 특히 르겔 왕자님, 너무 좋아요!! _다음 미래의 독자 카페 하로
나 오늘 완전 망함 ㅜ. <지팡이 경주> 라는 아주~ 재미있고 굵은 책을 하루 만에 다 봤지. 나의 자는 시간을 쪼개어서 죽어라 보았어. 내가 살다 살다 책 읽는다고 잠을 못 잔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래도 중간에서 끊지 못하겠더라 신기한 건 책 읽는 동안 잠이 안 와. 책 다 읽고 잘 때 몇 분 동안 잠 안 오는 거 있지 결국 잤지만… 그나저나 다크써클 어떻게 없애ㅜㅠ_네이버 미키
아로와 완전한 세계를 적어도 다섯 번은 반복해서 읽은 사람입니다. 오늘 컴 키고 할 일이 없어서 아로와 완전한 세계를 검색해 봤는데요. 3탄 언제 나와요?_네이버vtm
<아로와 완전한 세계> 책 이름인데 진짜 재밌다^^ 두께가 | |이래. 진짜로! 하지만 재밌으면 된 거야._네이버 삘수히윤
아무리 계속 읽어도 항상 재미있는 이 책 정말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정말 강추해 드립니다~~ㅋㅋ 많이들 읽어 보시구요… 재미있고 흥미로운 완전한 세계에 빠져 보시길…_다음 홍기마눌아
3편이 남아 있기 때문에 끝났어도 끝나지 않은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지금은 돌아온 아현이처럼 완전한 세계에 대한 추억과 지팡이 경주에 대한 미련을 서랍 한 켠에 곱게 접어 두고… 밀린 숙제를 처리해야 할 때다._네이버 청월
전작에서 보여 줬던 '진실'과 '이름'의 중요성에 대해 이 작품에서도 시종일관 묻고 있다. 이 세남매의 마지막 이야기는 판타지의 세계를 얼만큼 확장시켜 줄 수 있을지 내심 기대해 본다._알라딘 망상
못 만나고 지나칠 뻔했다. 이 놀라운 책을. 내 짧은 독서 이력으로 우리 나라에는 제대로 된 판타지가 거의 없다고만 생각는데, 이런 책이 있었다니 뿌듯한 기분이 가득 차 올라온다._알라딘 고운파란흙
<아로와 완전한 세계>를 읽은 사람이면 <지팡이 경주> 또한 읽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완전한 세계에 매료됐을 것이고, 김혜진 작가의 역량에 대한 기대를 떨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편을 읽고 난 지금 나는 3편 <아무도 모르는 색깔>의 출간을 기다리는 중이다. _yes24 파란흙
완전한 세계 시리즈의 전작은 읽지 않고, 두 번째 작품을 읽었다. 시리즈라고는 하지만 전작을 읽지 않아도 이해가지 않는다거나 어렵다는 것을 느낄 수 없어서 좋았다. 책을 보면 어른들도 얼핏 두께에 눌려 쉽게 손이 가지 않을 것 같다는 소리를 하게 될 정도이다. 그러나 첫 장을 펼쳐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끝까지 읽지 않고서는 쉽게 손에서 책을 뗄 수 없게 된다. _교보문고 이태정
책에 재미를 붙여 가는 아들 놈이 마냥 기특합니다. 더구나 두께가 상당함에도 아로와 완전한 세계를 읽고, 지팡이 경주는 알아서 찾아 있으니 이쁠 수밖에요^^_yes24 희망으로
아로와 완전한 세계 책 아시나요? 굉장히 재미있는 책이어서 제가 한 3번 읽었던 것 같은데. 나머지 후속작들도 빨리 읽어 보고 싶어요._네이버 ssyangca
아로와 완전한세계 정말 재미있었어요. 저번에 바람의 아이들 책을 보다가 2권을 본 것 같은데 출간은 안 되었군요. 빨리 출간했으면 합니다._다음 미래의 독자 카페 한자동자
■ 작가 노트
불완전한 세계와 완전한 세계 사이 김혜진
나는 좁고 넓은 길을 걸으며 길가에 꽃처럼 피어 있는 이야기들을 꺾고 눈처럼 내리는 이야기들을 잡아 가방과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집에 돌아와서는 가방을 뒤집고 주머니를 털어 이야기들을 책상 위에 쏟아 놓는 것이다. 해가 지면 투명한 어둠이 창밖에 차오르고, 나는 별처럼 빛날 등불을 켠다.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이야기들을 뒤적이고, 때로는 휴지통에 버리고 때로는 책 사이에 끼우며 때로는 심는다. 책상 한쪽에는 구겨진 종이 같은 노랗고 붉은 꽃들이 꽃병에 꽂혀 있고, 어깨에 닿도록 쌓인 책들과 유자차 찌꺼기가 말라붙은 찻잔과 먼지 묻은 잉크병이 있다. 아로와 아현이에게 코코아를 대접했던 곳, 완전한 세계와 불완전한 세계 사이 경계 어딘가에 있는 나의 방.
『아로와 완전한 세계』, 『지팡이 경주』,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색깔』로 이어질 완전한 세계의 이야기들을 쓰게 된 첫 질문은 도로시에서 비롯했다. 대학에서 수업을 들을 때, 이야기를 쓰게 될 줄은 전혀 몰랐던 때다. 문득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를 떠올렸다. 도로시는 왜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려 했을까? 노란 벽돌길에서 한 걸음만 내려온다면 더욱 놀라운 세계가 펼쳐졌을 텐데. 나라면, 서슴없이 벽돌길을 떠나 더 깊고 넓은 세상으로 걸어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날 제발 오즈로 보내 줘요, 라고 속으로 수십 번 외쳤다.
나는 언제나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바랐다. 문을 열면, 모퉁이를 돌면, 버스에서 내리면, 그리고 책을 펼치면 갑자기 눈앞에 펼쳐질 수도 있는 세상을 늘 그리워했다. 바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그곳으로 찾아가겠다고 결심했을 때,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아로와 완전한 세계』는 처음 써 본 장편이었고 동화였는데, 정말로 많이 헤매고 길을 잘못 들었다가 빠져나오곤 했다. 그래도 뭐가 더 나은지 더 편한지 몰랐으니까 되는 대로 써 나갔다. 『아로와 완전한 세계』를 대산창작기금에 응모하여 기금을 받게 된 것은 글을 쓰겠다고 결심한 지 일 년도 되지 않은 때였는데, 그때 대학 때의 유일한 은사이신 선생님은 "더 바닥으로 내려가야 했는데 너무 일찍 되었다"며 안타까워하셨다. 나는 그런 선생님에게 꽤 섭섭한 마음을 품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말씀을 조금이나마 알아듣겠다. 내가 본격적으로 바닥에 내려가기 시작한 것은, 기금을 받고 바람의 아이들에서 『아로와 완전한 세계』를 출판하기 위해 수정 작업을 하면서부터였다.
원래 『아로와 완전한 세계』는 원고지 600매 이상의 분량이어야 한다는 대산창작기금의 규정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 딱 600매 정도 되는 길이였다. 그것이 1년 여의 수정 작업을 거친 뒤에는 1,400매 정도로 늘어났다. 제대로 된 글쓰기 수업을 받아 본 일이 없는 내게는 그 시간이 가장 중요한 훈련의 때였다. 고친 원고를 보내고 평가를 받기 위해 출판사 사무실로 가는 길은 참 가시밭길 같았다.
동시에 일러스트를 그리기 시작하면서는 가시가 두 배로 늘었다. 원래 그림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역시 배워 본 적이 없었다. 『아로와 완전한 세계』에 직접 일러스트를 해 보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꿈은 부풀었는데 현실은 꿈과는 달랐다. 그림을배우러 다니고, 일러스트를 수십 번 고쳐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글을 쓰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저기 뭔가 있다는 걸 알긴 하겠고 내가 뭘 그리고 싶은지도 대충은 알겠는데 거기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답답함. 그 답답함이 오기가 되어서, 『아로와 완전한 세계』가 나온 직후에 나는 영국으로 그림을 배우러 갈 계획을 세웠다. 책이 나오고 나서 몰려온, 감당하기 힘든 막막함과 허무함 때문이기도 했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완전한 세계에서 떠나오기 위해 아주 다른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이듬해에 『프루스트 클럽』이 나왔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영국으로 떠났다.
영국에서 그림을 그리며 보낸 1년은 기대치의 백 배쯤 행복했다. 그래서 글은 거의 안 쓰고, 못 썼다. 바람단편집에 내려고 단편을 썼다가 되돌려 받은 뒤로는 계속 그림만 그렸는데, 그림만 그리고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반 년쯤 지났을 때부터 매일 고민했다. 여기 남아 더 그림 공부를 할 것인가, 아니면 원래 계획대로 1년만 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올 때까지는 그림이 더 강했는데 봄이 지나면서부터는 머릿속이 근질근질해지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싶었다. 몇 번이나 되물어보아도 돌아오는 대답은, '올 가을에는 그림이 아니라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글을 쓰고 싶다, 뒤돌아보지도 않고 빠져나왔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그 방, 완전한 세계와 불완전한 세계 사이의 그 방에 가고 싶다, 책상 앞에 앉아 불을 밝히고 사각사각하는 연필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글을 쓰고 싶다고 간절하게 바라게 되었던 것이다.
학기가 끝난 여름부터 가을까지 4개월 정도는 그대로 런던에 머물면서 글을 썼다. 미뤄 두었던 번역을 마무리하고, 『지팡이 경주』의 서툰 초고를 썼다. 어른거리는 것은 검정과 푸른빛이 도는 잿빛, 그리고 반짝이는 하양. 그리고 가끔 빛나는 주홍빛깔. 그렇지만 1년이나 손을 놓았더니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때의 작업 노트들을 보면 이게 맞나? 예전엔 어떻게 썼지? 하는 고민들로 가득하다. 한국어로 된 책을 거의 읽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더 막막했다. 그토록 익숙했던 곳이 어떻게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게 되었을까. 나는 길을 잃은 채 한참 헤맸다. 어떻게든 써 보겠노라고 작업 노트를 쥐고 런던의 골목들과 공원들을 헤매고 다니다가 돌파구를 찾은 것은,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던 바로 그때였을 것이다. 정든 친구들의 배웅을 뒤로 하고 공항 안으로 걸어 들어갈 때- 이곳에서 정말 즐겁고 행복했고 많은 것을 배웠지만 여기서의 내 시간은 끝났음을 인정해야 했을 때, 그때서야 나는 지팡이 경주를 마친 아현이 두 채의 집에서 문을 열고, 닫는 그 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지팡이 경주』의 마무리를 하던 지난 봄은 정신없이 바쁘고 혼란스러웠다. 마음이 사슬에 매인 듯한 상황 속에서 『지팡이 경주』라는 이야기 자체가 내게는 붙들고 가야 할 지팡이와 같았다. 이야기를 붙들고 마지막까지 갔지만, 책이 나오고 나서는 과연 내가 제대로 경주를 해낸 것일까, 내 지팡이인 이 이야기는 제대로 잘 쓰였을까, 무섭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경주는 끝났고, 내 이야기는 바다로 돌아갔으며 나는 아름답고도 쓸쓸한 길을 터덜터덜 걸어 '이곳'으로 돌아왔다.
처음 『아로와 완전한 세계』를 쓰기 시작했을 때에는 판타지 동화의 일반적인 특성들에서 출발해, 다르게 끝을 맺어 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앨리스나 도로시나 웬디처럼 주인공은 여자 아이, 그리고 다른 세계에 가서 임무를 완성하는 것. 떠나서 모험을 겪고 성장하여 돌아온다, 는 정석과 같은 공식을 다르게 써 보고 싶었다. 도로시에 대해 생각했던 것처럼,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 머물렀다면, 웬디가 네버랜드에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로와 완전한 세계』를 쓰면서 아로 역시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어한다는,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팡이 경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언제나 결국은, 이 세계로 돌아올 수밖에 없지만 그게 그리 끔찍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 세계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이 상실과 슬픔과 무거운 짐일지는 몰라도, 함께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마주치는 불완전함으로 인해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건 그리 나쁜 게 아니라고. 언제나 '저곳'으로 가고만 싶었던 내가 '이곳'도 '저곳'만큼이나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완전한 세계의 이야기를 쓰면서 도리어, 내가 사는 이곳 불완전한 세계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불완전한 세계가 있기 때문에 완전한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그게 책 안의 문장일 뿐인 게 아니라 정말 그렇다는 것을 마음 깊이 깨닫는다. 완전한 세계와 불완전한 세계 사이를 오가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계속 잘못 짚어야 바른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그러니까, 바른 길을 찾으려면 잘못 짚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헤매야 한다는 것을, 힘들게 써야 한다는 것을, 안 하겠노라 집어치워 봐야 한다는 것을. 또한 절대적인 시간의 양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고,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잊되 책임지는 법을 배운다. 내가 쓴 이야기에 대한 책임, 그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 그러니까, 내가 밟아 다진 길을 따라 완전한 세계와 불완전한 세계의 사이, 이 경계로 들어온 사람들에 대한 책임. 누군가 이 이야기를 읽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는 놀랍고 신기하고 부끄러웠다. 지금도 그렇다. 내가 제대로 썼을까? 제대로 보일까? 들릴까? 나는 경계의 내 방에 앉아, 저 멀리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사람들이 과연 내가 닦아 놓은 길에 만족했을지 궁금해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 방을 향해 즐겁게 손을 흔들어 주고 어떤 사람은 못마땅해하며 고개를 젓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거나…… 책상 밑으로 기어 들어가기도 한다.
지금은 완전한 세계의 세 번째 이야기인 『아무도 모르는 색깔』을 쓰고 있다. 삼 남매의 첫째인 아진이 주인공이고,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주요한 무대는 색채나라이다. 세 나라 정도가 더 등장할 것이고 아로와 아현도 잠깐 얼굴을 내민다. 책이 나온 뒤의 즐거움을 위해, 여기까지만. 쓰고 있는 나는 지금 참 즐거운데 이 즐거움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이번엔 정말 잘 쓰고 싶다, 하고 매일 책상 밑에서 다짐한다.
이렇게 완전한 이야기의 삼 부작이 완결되는 것이지만, 두 편 정도가 더 남아 있긴 하다. 네 번째 이야기는 불완전한 세계 사람들이 아니라 완전한 세계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 그리고 다섯 번째는…… 이건 아직 비밀. 넷째 편과 다섯째 편을 언제 쓰게 될지는 모르겠다.
완전한 세계와 불완전한 세계 사이의 경계는, 완전한 세계에서 나라들의 경계가 그러하듯 때로는 넓고 때로는 무척 좁아서 나는 바람 한 줄기에, 햇빛 한 모금에 '이곳'과 '저곳'을 오간다.
괜히 집을 나섰다 후회할 만큼 추웠던 겨울날, 여느 때처럼 시청역에서 내려 도서관까지 걸어 올라가며 몸을 잔뜩 움츠리는데, 아로도 저기까지 못 가겠다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불의 나라에서 받아 온 망토자락을 움켜쥐었다. 두더지와 미솔파도 금방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깃은 잠깐 인상을 썼다가 온기를 품은 노란 안개를 만들어 내 주었다. 나도 좀 그 안에 들어가게 해 줘! 하고 얼어붙은 입술로 중얼거렸던 것과 매섭게 머리카락을 헤집던 찬바람을 기억한다. 몇 주 동안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아 풀들이 노랗게 말라 갔던 런던의 여름, 어느 날 아침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오늘도 더울까? 오늘은 좀 낫지 않을까?" 하고 아현이 물었다. 그러자 뮌은 비가 올 것 같다고 대답했고 르에도 날씨거울을 보며 비가 올 것이라 말했다. 나 우산 안 가져왔는데, 진짜 비 올 거 같아? 하고 내가 물었던 것과 얇은 흰 옷을 뚫고 따갑게 팔에 내려앉던 햇빛을 기억한다.
그때 나는 불완전한 세계와 완전한 세계 사이의 경계에서 눈송이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을 테다. 어떤 것들은 손에 닿자마자 사륵 녹아 버리기도 했지만 어떤 것들은 녹지 않을 단단한 결정이었고 나는 그것들을 심고 싹이 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채 심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을 붙잡고 있고 지금도 팔랑팔랑 하늘을 맴도는 이야기들이 보이기에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다. 기지개를 켜고, 다시 방을 나선다. '이쪽'으로, 혹은 '저쪽'으로. 오늘은 어떤 길로 가 볼까, 누구와 마주치게 될까. 어떤 이야기들을 주머니에 담아 방으로 돌아오게 될까.
경계를 오가는 여러분, 내 방에 놀러오세요. 여러분이 발견한 새로운 길에 대해서, 그리고 그 길에 피어난 꽃들과 바람에 날리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들려주세요. 우리가 함께 차 한 잔 마실 시간 정도는 있겠지요. 코코아가 싫으면, 유자차도 있으니까요!
* 이글은 바람의 아이들이 펴내는 『바람개비』 2008년에 실린 글을 재수록 한 것입니다.
■ 창작 후기
그 도서관 -장편동화 『아로와 완전한 세계』
나는 글을 쓸 곳을 찾고 있었다. 누가 그 도서관에 대해 말해 주었더라, 그건 잊었지만 그곳에 처음 가 보았던 1월의 어느 날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문학실에서 책을 읽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어두운 주황빛이 되더니 몰아치듯 눈바람이 불었다. 나는 읽던 책을 내려놓고 창문만 바라보았다. 바로 앞 건물조차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눈보라가 쳤다. 몇 분 후에 하늘은 점점 밝아져 환한 미색이 되고 바람은 기세를 잃었다. 눈은 여전히 펑펑 쏟아졌다. 잠시 후, 하늘은 티 한점 없는 흰색. 바깥이 너무 눈부시게 밝아 창 안 조명이 어둡게 보였다. 부서진 하늘 조각 같은 하얀 눈송이들이 창유리에 기대어 쉬었다.
여기 있어 봐도 좋겠다, 마음에 든다고 느낀 건 바로 그때였던 것 같다. 그날부터 나는 거의 매일 같이 도서관에 왔다.
『아로와 완전한 세계』의 대부분을 이 도서관에서 썼다. 그렇게 긴 이야기를 쓰는 것은 처음이었고 글만 쓰는 나날도 처음이었다. 막막하고 불안했다. 뭔가를 손에 쥐고 있는데 그게 뭔지 몰랐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만 하면서 선뜻 문장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가 알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혀 도서관 앞의 작은 문구점에 들어가 두툼한 연습장을 산 것은 눈이 녹고 다시 내리고 얼고 또 녹았을 때다. 어느 따뜻한 칸막이 열람실에서, 아로 일행이 호수섬에 들어가 불의 용으로 얼어붙은 호수의 얼음을 녹이는 장면을 썼다. 글씨는 날리고, 제멋대로. 그래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막연했던 무언가가 글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 연습장은 곧 질려 쓰지 않게 되었지만 어쨌든 그게 시작이었다.
겨울과 봄, 두 계절 동안 이 이야기를 쓰면서 줄곧 도서관에 갔다. 하지만 도서관이 내게 작업 공간 이상의 의미가 된 것은 『아로와 완전한 세계』의 수정 작업을 할 때였다. 가을이 지나 겨울에 이르도록, 수정 작업을 시작하겠다고 마음을 먹고도 생각만 했다. 섣불리 글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확신, 충동. 더 참을 수 없는 어느 지점.
그러던 날, 이제는 준비가 되었다는 갑작스런 확신으로, 그래도 여전히 조심스럽게 도서관 정보 검색실의 컴퓨터에 앉아 두더지와 아로가 별꽃나라를 탈출하는 장면을 썼다. 두더지가 이야기 벌레들을 꺼내어 아로에게 보여 줄 때는 아로만큼이나 나도 놀랐다. 내 안에 그런 이야기가 있는 줄, 그 순간까지 몰랐다.
그 초겨울에 나는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시청역에서 부터 도서관까지 걸어갔다. 도서관 앞뜰 벤치에 앉아 그날 쓸것들을 공책에 휘갈겨 쓰고, 나의 베이스캠프가 된 인문ㆍ사회과학열람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 노트북으로 작업을 했다. 문득 창을 돌아보면 어두웠다. 밤에 도서관 길을 걸어 내려 올때면, 골목은 희게 얼어붙은 서리로 반짝였고 어둠은 투명하게 맑았다.
명쾌하고, 외롭고, 산뜻했다.
언제나 내가 충분히 미쳐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휘몰아치듯 몰두하고 글을 쓰고 싶었다. 언제나 부족해서였다. 그 때 도서관에서, 나는 충만함이 가장자리에 닿은 것 같았다. 조금이나마 목마름이 가셨다. 그 11월 한달이, 그래서 참 행복했다.
글 수정이 대충이나마 마무리가 되고 나서는 그림에 몰두해야 했기 때문에 한참 도서관에 가지 않았다. 시간이 있을 때면 습관처럼 들르곤 했지만 글을 쓰지는 못했다. 막연하게 답답했다. 뭔가 남겨놓고 온 것 같은데, 그래서 자꾸 가야할 것 같은데 잡히는 것은 없었다.
그곳 도서관에서의 내 몫, 나의 시간은 끝나 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아로와 완전한 세계』가 책으로 나오고 나서 다시 11월이 되었을 때였다.
*이 글은 대산문화재단에서 펴내는 서평문화에 10호에 실린 글을 재수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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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얼른 5부가 나왔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