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완벽한 국어사전을 만드는 일이 국어 교육을 비롯한 모든 교육을 올바르게 해서 슬기로운 국민을 길러, 우리 문화를 빛내고 후손에게 자랑스러운 나라를 물려 주는 길의 첫걸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존 사전들이 완벽과는 너무도 까마득히 먼 거리에 있어서 고민하던 9년 전에 국립국어연구원에서 백 억원 예산으로 10 년 동안에 완성할 ‘표준 국어 대사전’ 편찬에 착수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못 큰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혹시라도 기존사전과 별로 나을 것이 없는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겨서, 민중서림에서 편찬한 국어대사전을 뒤적거려, 대충대충 눈에 띄는 문제점들을 뽑아내서, 간략하게 체계를 세워 정리해 ‘국어사전과 국어순화’라는 제목을 불여 국립국어연구원 계간지 ‘새국어 생활’(5 권 제 1호 1995, 봄)과 한국 교열 기자회의 계간지 ‘Vol,64 1995. 가을호’에 기고했다. 연구원에서 내 원고를 실은 책을 보내주었는데, 그 내용은 사전 편찬하는 일을 시작해 그동안 진행해 온 과정 일의 영역별로 보고하는 글들인데, 그 문장이 한결같이 국어답지 못하고 졸렬해서 오싹 전율을 느끼고, 모두 붉은 잉크 펜으로 고쳐서 송 민 원장에게, 글을 이렇게 치졸하게 쓰는 사람들이 사전다운 사전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니, 편찬하는 작업을 일단 중지하고 상당 기간을 두고 연구원들의 자질을 월등히 놑인 뒤에 계속하기를 권하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내고, 그 후임 이익섭 원장에게도 똑같은 뜻을 수시로 전했다.
정년 퇴임한 교사로 공무에 관여할 자격이 없는 몸이 이러쿵 저러쿵 간섭하는 것이 어쭙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국어가 병들어가는 모습을 못 본체하는 것은 국민된 도리를 어기는 일이라는 자책감을 이기지 못해, 내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자나 깨나 관심을 끊지 못하고, 연구원 사람들의 성의 있는 처사를 기대하면서 출간을 고대하던 끝에, 신문에서 출간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생기는 것 없이 밤낮으로 바쁘고 생계가 궁색해서 즉시 사지 못하고, 책방에 가서 수박 겉 핥기 식으로 간간히 살펴 보다가 지난 여름에 종로 도서간에 가서, 내용을 자세히 살펴 보고는 망연자실했다. 장인정신이 투철한 도자기장이들은 비싸게 구한 흙을 땀흘려 이기고 모양을 빚어 조심성 있게 물기를 말려, 노심초사하면서 구어 내서 망치로 하나 하나 두드려 보고는, 테밖 사람의 눈에는 아무런 흠이 없는 작품의 상당부분을 미련없이 깨뜨려 버리고 다시 만드는데, 국립국어연구원이라는 이름으로 백 십이억이나 되는 엄청난 국민의 혈세를 쏟아 부어서 해낸 작품이 기존 사전들에 있는 병폐를 총망라하고도 부족한 듯, 무지한 자신들이 억지로 창조한 지식과 논리를 동원해 만신창이 기형사전을 내놓았다. 샅샅이 뒤져서 고치려면 사전을 새로 만드는 품이 들어야 할 지경이어서, 이 늙은 인간이 혼자 하기에는 너무 힘이 부쳐, 그 동안에 모은 재료를 대강 정리했는데, 권세 없는 사람의 쓴 소리를 용납하지 않는 관료들에게 보내 시정을 촉구해봐야 헛고생만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모든 지성세계에 호소해 협조를 구하면서, 단언하건대, 이 사전을 팔지 말고, 이미 판 것은 모두 값을 물러 주고 거둬들여 다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