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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2:1
머리로는 알 수 없고 어떤 논리로도 설득이 안 되는 진실도 있습니다. 겪어 봐야 알고 살아 봐야 아는 것 말입니다. 실제로 그것이 구현되는 것을 통해서만 확인되고, 그래서 수용되고 난 다음에야 그 논리를 아는 경우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그렇습니다. 공주야! 지난 번 복음의 내용에 이어 오늘은 전도의 방법에 대한 것을 다룰 것이다. 고린도 교회 당시 어떤 철학자나 웅변가가 어느 도시에 가면 여러 선생들이나 학파와 논쟁을 했다.
There are truths that cannot be understood by the head and cannot be persuaded by any logic. You have to experience it to know it and live it to know it. In fact, it is only confirmed through its implementation, so there are cases where the logic is only known after it has been accepted. So is the gospel of the cross. Princess! Following the last gospel content, today we will talk about how to evangelize. At the time of Corinthian church, a philosopher orator argued with various teachers and schools when he went to a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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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능력을 보여주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자리 잡기 위해서다. 고린도 역시 그랬다. 복음을 전하는 바울도 당시 사람들에게는 그런 사람의 하나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말과 능력을 바울에게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 인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복음을 전했다. 바울이 전한 것은 예수의 십자가와 성령의 능력이었다. 복음은 십자가다. 십자가는 불편하고 거북하다. 세상으로 가득 채워진 사람 속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
It is to demonstrate one's abilities to gain recognition and establish oneself. So was Gorin. Paul, who preaches the gospel, must have been perceived by people at the time as one of those people. Because of this, people must have expected Paul to speak and have the ability to make a strong impression. However, he preached the gospel in a completely different way from those expectations and perceptions. What Paul delivered was the power of the cross of Jesus and the Holy Spirit. The gospel is the cross. The cross is uncomfortable and uncomfortable. You cannot enter a person filled with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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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십자가뿐이다. 그래서 바울은 지혜의 아름다운 것(화려한 웅변술과 수사법)을 사용하지 않고 눌변가라는 혹평을 받더라도 오직 십자가를 전한다.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들어야 할 말을 전했고, 자신을 드러내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말을 전했다. 십자가를 전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처럼 거절과 조롱을 무릅써야한다. 그게 당연하다. 바울은 그걸 피하려고 지혜의 말과 노리를 동원하지 않은 것이다.
Of course, the only thing that saves us is the cross. This is why Paul does not use the beautiful things of wisdom (oratory and rhetoric) and delivers the cross only when he is criticized as a "null speaker." He delivered what he needed to hear, not what he meant to reveal himself, but what he said that revealed Christ. Anyone who delivers the cross must risk rejection and ridicule like Christ. It is natural. Paul did not use words of wisdom and ridicule to avoid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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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십자가를 전했고, 성령께서 성도들 안에서 능력으로써 역사하시도록 맡겼다. 영에 속한 일들은 오직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는 성령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기에, 혼적인 존재(자연인)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뿐 아니라 그 원리대로 사는 성도가 미련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니 세상이 이해 못하고 잘못 판단하더라도 거리낄 것이 없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급조된 임기웅변의 지혜가 아니다.
He delivered the cross and entrusted the Holy Spirit to history as a power within the saints. Because the things that belong to the spirit can only be realized through the Holy Spirit, who understands the deep things of God, the spiritual being (natural people) will be seen as stupid not only the cross of Christ but also the saint who lives according to that principle. So, even if the world does not understand and misjudges, there should be nothing to distance. God's plan for salvation through Christ is not the wisdom of improvised epiph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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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 전부터 정하신 것을 ‘때가 차 매’ 이루신 하나님의 지혜다. 이 세상에서 없어질 어리석은 지혜를 이용하여 오히려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 예비하신 모든 것이 성취 되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가 바로 십자가다. 내 티칭은 십자가가 중심인가? 십자가의 복음을 깨달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나의 열망은 왜 잠잠해졌는가? 나는 영의 사람인가, 근데 왜 육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가? 나의 영성은 비틀거리고 있지 않는가, 왜 그런가?
It is the wisdom of God, who has achieved what he has decided before the hooray. The cross is the wisdom of God, who has used the foolish wisdom that will disappear from this world to achieve everything you have prepared for the one who loves him. Is my teaching centered on the cross? What is the way to realize the gospel of the cross? Why has my desire for God's plan been silenced? Am I a spiritual man, but why am I so interested in physical things? Is my spirituality not staggering, why is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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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전도방법(1-5)
a.전도 방법1, 예수 메시아와 그의 십자가만 증거:1-2
b.전도 방법2, 오직 성령의 능력의 나타나심으로:3-5
성령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지혜(6-16)
a.우리는 참 지혜를 전한다:6-7
b.하나님의 지혜를 얻는 방법 대조:8-13
c.자연적 사랑과 영적 사랑의 대조: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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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아 내가(1a)
너희에게 나아가(1b)
하나님의 증거를(1c)
전할 때에(1d)
말과 지혜의(1e)
아름다운 것으로(1f)
아니하였나니(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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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 중에서(2a)
예수 그리스도와(2b)
그의 십자가에(2c)
못 박히신 것 외에는(2d)
아무 것도(2e)
알지 아니하기로(2f)
작정하였음이라(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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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 가운데(3a)
거할 때에(3b)
약하며 두려워하며93c)
심히 떨었노라(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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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과 내 전도함이(4a)
지혜의 권하는 말로(4b)
하지 아니하고(4c)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4d)
능력으로 하여(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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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믿음이(5a)
사람의 지혜에(5b)
있지 아니하고(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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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하나님의(5d)
능력에 있게(5e)
하려 하였노라(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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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가(6a)
온전한 자들 중에서(6b)
지혜를 말하노니(6c)
이는 이 세상의(6d)
지혜가 아니요(6e)
또 이 세상의 없어질(6f)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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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7a)
하나님의 지혜를(7b)
말하는 것이니(7c)
곧 감춰져 있던 것인데(7d)
하나님이(7e)
우리의 영광을 위하 사(7f)
만세 전에(7g)
미리 정하신 것이라(7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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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혜는(8a)
이 세대의 관원이(8b)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8c)
만일 알았다면(8d)
영광의 주를(8e)
십자가에 못 박지(8f)
아니하였으리라(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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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된바 하나님이(9a)
자기를 사랑하는(9b)
자들을 위하여(9c)
예비하신 모든 것은(9d)
눈으로 보지 못하고(9e)
귀로도 듣지 못하고(9f)
사람의 마음으로도(9g)
생각지 못하였다(9h)
함과 같으니라(9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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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님이(10a)
성령으로 이것을(10b)
우리에게 보이셨으니(10c)
성령은 모든 것(10d)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10e)
통달 하시느니라(1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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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사정을(11a)
사람의 속에 있는(11b)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11c)
이와 같이(11d)
하나님의 사정도(11e)
하나님의 영 외에는(11f)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1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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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의 영을(12a)
받지 아니하고(12b)
오직 하나님께로 온(12c)
영을 받았으니(12d)
이는 우리로 하여금(12e)
하나님께서 우리에게(12f)
은혜로 주신 것들을(12g)
알게 하려 하심이라(1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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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것을(13a)
말하거니와(13b)
사람의 지혜의(13c)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13d)
오직 성령의(13e)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13f)
신령한 일은(13g)
신령한 것으로(13h)
분별하느니라(13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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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에 속한 사람은(14a)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14b)
받지 아니하나니(14c)
저희에게는(14d)
미련하게 보임이요(14e)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14f)
이런 일은(14g)
영적으로라야(14h)
분변함이니라(14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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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한 자는915a)
모든 것을 판단하나(15b)
자기는(15c)
아무에게도 판단을(15d)
받지 아니하느니라(1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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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16a)
주의 마음을 알아서(16b)
주를 가르치겠느냐(16c)
그러나 우리가(16d)
그리스도의 마음을(16e)
가졌느니라(1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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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말로는 안 된다_ Beautiful words won't do.
인간적인 지혜로는 안 된다_ Human wisdom won't do.
하나님의 지혜임을 믿으라_ Believe in the wisdom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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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계속해서 알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제가 나의 언변과 술수로 하지 않고 성령님의 능력과 지혜로만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제가 변질되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성령님이 내 가운데 내주 하시는 도덕적인 삶을 삼으로 내 영이 살아나게 하시고 이로 말미암아 이웃과 화해하게 하시고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선하고 온전한 삶을 척 척 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Thank you for giving me the spirit of wisdom and revelation to let me know God's will and to keep me informed. O Lord, I will not speak and speak my words, but I will preach the gospel only through the power and wisdom of the Holy Spirit. Please help me not to go bad. I hope that my spirit will be brought to life through the moral life of the Holy Spirit in my midst, and through this, I will make peace with my neighbors, and live a good and complete life that our Lord is pleased and wants.
2026.6.4.thu. Clay
신학 비평//
왜 우리는 복음을 알면서도 여전히 육적인 것에 더 끌리는가? 당신의 글은 단순한 성경 해설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끝내 넘어설 수 없는 한계를 십자가 앞에 세워놓은 실존적 묵상에 가깝습니다. 특히 고린도전서 2장을 단순히 “전도 방법론”으로 읽지 않고, “인간 지혜의 실패와 성령의 사건성”으로 읽어낸 점이 인상적입니다. 바울은 웅변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설득 체계 자체를 의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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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야! 세상은 여전히 “잘 말하는 사람”을 원한다. 고린도는 수사학과 철학의 도시였다. 누가 더 논리적인가, 누가 더 매혹적인가, 누가 더 사람을 끌어모으는가가 권력이었다. 그런데 바울은 정반대로 간다. 그는 자신의 약함과 떨림을 숨기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철저한 신학적 선언이다. “복음은 인간 능력의 연장이 아니다”라는 선언 말이다. 여기서 당신의 문장은 아주 중요해진다.“겪어 봐야 알고 살아 봐야 아는 진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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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은 단순한 경험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십자가의 역설을 정확히 건드린다. 십자가는 개념 이전의 사건이다. 머리로 납득하는 순간보다 먼저 삶을 찢고 들어온다. 그래서 바울은 “설명”보다 “나타남”을 말한다. 고전2장의 핵심은 논리가 아니라 현현(epiphany)이다. 성령은 정보를 주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감각 자체를 바꾸시는 분이다. 당신은 이것을 아주 잘 붙들고 있다.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들어야 할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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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가 놓치는 것이 바로 이것 아닐까. 복음은 점점 “불편하지 않은 언어”로 가공된다. 십자가는 삭제되고 성공담과 자기계발만 남는다. 고난 없는 영광, 회개 없는 위로, 성령 없는 감동이 넘쳐난다. 그러나 바울은 끝까지 십자가를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십자가만이 인간 자아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당신이 던진 질문들이 좋다. “나는 영의 사람인가, 근데 왜 육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가?” 이 질문은 자기비하가 아니라, 이미 영성과 욕망 사이의 전쟁을 자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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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역시 로마서에서 같은 탄식을 한다. 인간은 단번에 영적인 존재가 되지 않는다. 십자가는 한 번 믿고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평생 자기중심성을 해체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영성은 “신비 체험”보다 방향성에 가깝다. 완전함보다도, 어디를 향해 걸어가는지가 중요하다. 당신의 글에는 그 긴장이 살아 있다. 성령을 말하면서도 자기 욕망의 잔재를 숨기지 않는다. 이것이 오히려 건강하다. 가장 위험한 상태는 육적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육성을 모르는 종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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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인상 깊은 부분은 이것이다. “바울은 자신을 드러내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말을 전했다.” 현대는 “자기 브랜딩”의 시대다. 심지어 신앙도 자기 과시의 도구가 된다. 그러나 십자가는 자기 연출을 거부한다. 십자가는 인간의 영광을 벗겨내고, 오직 하나님 지혜만 남긴다. 그러니 십자가를 오래 붙든 사람은 화려해지기보다 오히려 단순해진다. 말은 줄고 존재는 깊어진다. 당신의 글은 바로 그 지점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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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고전2장은 “어떻게 전도할 것인가?” 이전에 “무엇을 신뢰할 것인가?”를 묻는다. 언변인가? 지식인가? 카리스마인가? 아니면 성령의 역사인가? 바울은 알고 있었다. 인간은 논리로 회심하지 않는다. 존재가 무너질 때, 성령이 그 틈으로 들어오신다. 그래서 복음은 설명이 아니라 침투이고, 설득이 아니라 사건이다. “변질되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어쩌면 신앙의 성숙은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끝내 변질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십자가를 처음 붙들었던 그 떨림을 잃지 않는 것. 인간 지혜보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을 더 신뢰하는 것. 그것이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의 마음”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