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은 의구하되(문장)
도시생활을 접고 30년 만에 귀향했다. 여우도 죽으면 머리를 고향으로 둔다 하지 않았는가. 몇 장의 책을 뒤적이다 아침 여섯 시면 대문을 나선다. 서늘한 공기에 옷깃을 여미고 동녘으로 길게 뚫린 농로에 걷기 운동이다. 온 들판은 누렇게 익어가고, 코스모스가 소슬바람에 날씬한 몸매를 자랑한다.
지난날의 농촌은 온 들판이 나락의 물결로 일렁이었다.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켜면 속마저 시원했다. 공해라는 단어조차 없었다. 굳이 있었다면 간간이 다니는 버스와 트럭의 꽁무니에 매달린 흙먼지였고, 집집이 한두 마리 먹이는 가축의 분뇨 냄새가 전부였다. 깨끗한 환경 속에 사과와 홍시는 티 없이 고왔다. 깊고 푸른 하늘에는 고추잠자리가 무리지어 날았다. 농약의 개념조차 없었던 때인지라, 벼가 누렇게 익을 즈음이면 메뚜기 떼가 지천으로 까불대고, 도랑의 통발에는 튼실한 미꾸라지가 그득했다. 논바닥에 숨어든 우렁이가 칼끝에 달려오면 손뼉 치며 좋아했다.
내가 사는 들녘의 절반 이상이 과일 밭이다. 비닐하우스에는 계절과 관계없이 푸성귀가 자란다. 기업형 축사가 여기저기 들어섰다. 퀴퀴한 냄새로 인근의 땅값이 떨어졌다. 환경이 오염되어 과일에 반점이 생겨나고 수확량도 떨어졌다. 합법적인 절차를 내세워 축사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이웃의 피해는 관심 밖이다. 오직 자기 이익만 고집한다. 인적이 드문 하천을 끼고 크고 작은 공장이 들어섰다. 여기서 내뿜는 화학약품 냄새가 코를 찌른다. 들판을 가로지른 고속도로에는 질주하는 차량이 매연을 뿜으며 내 닫는다. 새끼를 업고 폴폴 날던 메뚜기는 보기 어렵고, 미꾸라지 헤엄쳤던 도랑은 시멘트로 칠갑하여 삶의 터전을 뺏어버렸다.
어릴 적 들판은 정이 넘쳐났다. 농사철에는 사람들로 온 들녘을 메웠다. 보리밟기 철이면 학교도 일찍 마친다. 농사일은 보리밭 김매기부터 가을걷이까지 철 따라 어김없이 돌아온다. 부족한 일손을 돕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고, 두레와 품앗이는 이웃을 하나로 묶었다. 논두렁 양 끝에서 '못줄 넘겨' 흥겨운 모내기는 협동의 진수이다. 새참 시간이면 이웃 부르는 소리가 논둑을 넘나들었다. 논배미에 둘러앉아 막걸리 투발을 들이켰던 낭만이 넘쳤다. '이랴 낄낄' 소 부리는 소리 정겹고, '시룩시룩'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는 지친 농부에게 응원가였다. 오늘날 들녘에는 인적이 사라지고, 육중한 농기계가 들판을 점령했다.
흉년이 자주 들었다. 어느 해는 물 부족으로, 어느 해는 병충해로. 수리 시설이 잘된 곳에는 제때 모를 내었지만, 천수답은 하늘만 쳐다봤다. 심한 가뭄으로 이삭은 하얗게 말라 절하지 아니하고, 메마른 콩깍지의 터진 입은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끼니를 거르는 것은 다반사였다. 먹는 입을 줄이고자 딸들은 시집 보내기 바빴다. 다음 해에 사용할 볍씨마저 입맛을 다셨으니까. 한센병 환자가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흉흉한 소문에 아이들을 서둘러 챙겼다. 벼가 잘 자라도 걱정이었다. 병이 들면 속수무책束手無策이다. 멸구떼가 폴폴 날며 벼잎을 갉아 먹어도 바라만 볼 뿐이다. 무서운 이삭 도열병은 다 된 농사에 치명적이다. 병균이 이삭 목에 침투하여 영양의 공급을 끊어 놓는다. 누렇게 익어야 할 벼 이삭이 하얗게 변할 때, 농부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었다.
오로지 먹는 것이 국가적 과제였다. 다수확 품종을 개발하여 가난에서 벗어난 지가 어저께다. 안타까운 것은 쌀농사를 멀리해야 하는 농부들의 마음이다. 지난여름 몇 차례 태풍으로 쓰러진 벼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지난날은 벼가 쓰러지면 넘어진 자식처럼 일으켜 세우기 바빴지만, 허탈하게 바라만 볼 뿐 일손을 놓아버렸다. 결실을 코앞에 둔 시점이라 촌노들의 가슴은 숯덩이가 되었으리라. 일으켜 세운들 형편없는 쌀값은 인건비에 못 미친다. 자유무역으로 쌀값마저 들쭉날쭉하니 일할 맛을 앗아갔다. 자빠진 벼 위에는 피와 잡초만 무성하니 황량하기 그지없다.
한 톨의 쌀이 그저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내리꽂는 뙤약볕에 수백 번 허리를 굽혔다 펴면서, 구슬 같은 땀방울은 온몸과 적삼을 적시지 않았는가. 요행이 풍년이 들더라도 추수할 때까지 마음을 졸였다. 펄벅의 대지에 '풍년의 터부'처럼. 온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들면 허수아비가 장승처럼 들어선다. 쪽쪽 빨아대는 참새떼를 내 쫓는 허수아비의 어설픈 춤사위는 정말 허수아비다. 양은 냄비를 두들겨 망가뜨려도 부모님의 꾸중은 없었다. 들쥐들의 습격을 막고자 놓은 쥐약에 잡혀야 할 놈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이웃집 닭만 맥없이 쓰러지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가.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야은冶隱길재吉再선생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고향산천은 변하지 않았지만, 사람이 낯설고 인심도 변하였다. 벼농사가 푸대접을 받고 있다. 한 때는 쌀이 남아돌아 논 작물 다양화 정책을 폈다. 올해의 쌀 수확량이 32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하니 걱정스럽다. 누가 뭐래도 우리의 주식은 쌀이다. 공장과 축사로 농지를 마구 파헤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소 몰고 논밭 갈던 평화로운 지난날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