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회 리토피아청소년온라인백일장 입상자 명단입니다
입상자 명단은 리토피아 가을호에 발표되었으며, 작품 및 수상소감, 심사평 등은 겨울호에 수록될 예정입니다.
입상작은 '문학상'-'청소년온라인백일장'-'제6회~'에 올려져 있습니다.
시상식은 리토피아 창간15주년기념식이 열리는 11월 28일 오후 5시 인천 수림공원웨딩홀부페입니다. 전국에 산재해 있어 시상식 참여가 여려운 학생은 상장을 우송해 드릴 예정입니다.
장원
장원 : '파란 꿈' 김도연(소설, 고양예고)
운문부
차상 : 권예림 '태풍'(혜원여고)
차하 : 김연수 '단추'(인천 세원고)
신윤하 '쉼표'(광주 대성여고)
이다현 '전염'(여의도여고)
장려 : 이소윤 '파꽃'(양재고)
신소현 '울음'(부산 경남여고)
김한솔 '뱀의 기억'(용인 동백고)
산문부
차상 : 이소희 '풍경'(수필, 안양예고)
차하 : 이민아 '눈'(소설, 은광여고)
김성호 '미리보기'(소설, 고양 가좌고)
장려 : 주광호 '검은 방충망엔 온기가 가시길'(수필, 진해고)
이동원 '무관심'(수필)
구예진 '오래된 편지'(수필, 양재고)
김수진 '시소'(수설, 경기 운정고)
운문 예심 심사위원 : 정미소(시인), 박하리(시인), 정령(시인), 정치산(시인), 양진기(시인)
산문 예심 심사위원 : 김영덕(문학평론가), 이외현(시인), 허문태(시인), 정무현(시인), 천선자(시인)
운문 본심 심사위원 : 장종권(시인), 백인덕(시인), 권경아(문학평론가)
산문 본심 심사위원 : 강인봉(소설가), 유시연(소설가), 김영식(수필가, 번역작가)
장원 수상작
김도연
파란 꿈
도심의 한 제약회사.
사람들이 밤이 깊도록 퇴근을 하지 않고 일을 한다. 사람들의 얼굴엔 피곤하다는 기색 하나 없다. 그 중에 눈에 띄게 피곤해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책상에는 피로회복제가 여러 병 뒹굴고 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고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온다. 그럼에도 피로가 가시지 않는지 괴로운 표정이 역력하다. 그는 자신의 허벅지를 여러 번 꼬집더니 담배를 꺼내 밖으로 나간다.
그는 불이 꺼지지 않는 사무실을 지나 옥상으로 올라간다. 조용하다. 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사무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가끔 화장실을 가는 사람들만 자리에서 일어날 뿐. 그는 답답한 마음에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순간 그는 굳어버린다. 그의 눈동자에 푸른빛이 비췬다.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다. 파란 달이다. 파란 달! 달이 파랗다. 달빛을 받은 나뭇잎들이 푸르게 보인다. 그의 속이 울렁인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바다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아름답다. 세상 그 어떤 누구라도 파란 달을 있는 모습 그대로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린 그는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급하게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다리가 엉켜 넘어질 번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본 것을 보여주고 싶다. 모두에게 파란 달을 보여줘야 한다! 그는 농담 한마디도 들려오지 않는 사무실 문을 활짝 열었다. 활짝 웃고 있는 그와는 달리 사원들의 표정에는 웃음기 하나 없다. 그가 쾅 소리 나게 문을 열었음에도 아무도 문 쪽을 쳐다보지 않는다. 고개도 들지 않은 채로 일에 열중할 뿐이다.
“파란 달이 떴습니다!”
큰 소리로 외치는 그의 모습은 흡사 영웅이다. 하지만 사원들, 영웅의 말에 관심 없다. 몇 명만이 그를 힐끗 쳐다보고 다시 고개를 숙일 뿐이다. 그는 다시 한 번 외친다.
“지금 하늘에 파란 달이 떴다고요!”
조용한 사무실에 자판 치는 소리와 종이 넘기는 소리만 사악사악 들린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붙잡고 얘기하기 시작한다.
“서현 씨 지금 밖에 파란 달이 떴어.”
“저 바빠요.”
“도원 대리, 파란 달 본 적 있어?”
“조용히 하세요. 시끄러워요.”
“오금 과장님 파란 달이 얼마나 큰지 아세요?”
“이것 좀 놓고 얘기하지.”
“부장님 제가 방금 밖에서 무얼 봤느냐면요…….”
“신금호 대리 나랑 얘기 좀 하시죠.”
그는 부모에게 혼나러 끌려가는 아이처럼 시무룩하게 부장의 뒤를 따른다. 어질러져 있는 인형들, 허공을 가리키며 유령이 했다고 이르는 아이. 엄마 아빠는 거짓말을 하는 아이를 혼낸다. 하지만 인형은 정말 유령이 어지르고 간 건데. 부모들은 커피를 마시며 자기들끼리 상상 친구라고 비웃을지라도 정말 있었다니까 그 유령은.
“신금호 대리, 사내 분위기 흐리지 마세요. 파란 달은 무슨 파란 달.”
“부장님 정말이에요. 지금 저 커튼만 걷으면…….”
“그만해. 신금호.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야. 프로젝트 참가자 중에 너만 아직도 대리인 거 몰라? 윗선에서 너 자르라고 난리야. gm-akd 복용 거부는 건 퇴사 사유인 거 알지?”
그는 부장실에 있는 커튼을 생각했다.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검은 암막 커튼.
“정신 좀 차려. gm-akd도 복용하고, 종일근무 신청해.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야.
저 커튼만 걷으면 되는데. 저 커튼만 걷으면 푸른빛이 꿈처럼 들어오는데.
몇 년 전 신금호는 어떤 프로젝트에 참가한 적이 있다. 나라에서 진행하는 극비 프로젝트. 일반인은 프로젝트의 유무도 알지도 못했고, 연구원들도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맡은 부분만 하고 넘길 뿐이었다. 이것의 결과물은 gm-akd라는 이름의 하얀 알약.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알약 하나만 먹으면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시험 전날이나 마감 전날에 상상하던, 잠을 자지 않는 밤이 오는 것이다. 나라에선 이 약물을 싼값에 공급했고 사람들은 앞 다투어 gm-akd을 사다먹었다. gm-akd이 상용화된 지 몇 주 만에 약은 모두 팔렸고, 신금호의 회사는 돈방석에 앉았다.
gm-akd은 사람들이 더 많은 시간을 누리기 위해 개발된 약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 전에는 잠을 줄이면서 경쟁자를 제쳤지만, gm-akd을 복용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남보다 앞서가기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을 내놓아야했다. 쉬는 시간, 먹는 시간, 씻는 시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gm-akd을 복용하게 되면서 경쟁은 과열되어만 갔다. 주말에도 회사에 나오고 휴일에도 쉬지 않았다. 퇴근도 하지 않았고, 쉬는 시간도 아껴서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신금호 빼고. 그는 꼬박꼬박 퇴근을 했고 약을 복용하지도 않았다. 가끔 커피를 마시러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왜 다른 사람들 같이 살지 않느냐고 물었다.
“꿈을 꾸고 싶어요.”
아무도 그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를 설득하려고 했던 사람들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부장의 충고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부장은 자신이 할 말만 하고 그를 부장실에서 내보냈다. 그는 책상 앞에 고개 숙인 부장을 보며 방을 나갔다.
내가 틀린 게 아니야. 그는 파란 달조차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거라고 생각했다. 일의 능률을 위하여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게 창문을 가린 사무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파란 달도 보지 못할 거면 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자리로 돌아가 사표를 썼다. 부장은 그에게 몇 마디 말을 하더니 사표를 수리했다. 사원들은 짐을 챙겨서 나가는 그의 뒷모습도 쳐다보지 않았다.
집에 가는 내내 그는 하늘을 보며 걸었다. 죽을 때까지 파란 달만 보며 살고 싶다. 그는 머리맡에 있는 창문으로 달을 보며 침대에 누웠다. 내일이면 파란 달이 뜨지 않을 까봐 겁이 났다. 그는 집 안의 커튼을 모두 걷은 채로 잠을 잤다. 푸른빛이 밤을 채웠다. 그는 파란 꿈을 꾸었다.
“엄마, 파란 달 봤어요?”
그는 잠에서 깨자마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창밖은 해가 쨍쨍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네가 전화할 시간이 어디 있어서 전활 한 거니? 빨리 끊고 일해라. 너 아직까지 잠 안 자게 하는 약 안 먹는 건 아니지?”
“나 회사 그만 뒀어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회사 가서 싹싹 빌고 다시 일해라.”
“이제 일 안 할 거예요.”
“일을 안 하면 뭘 할 거냐? 뭐 먹고 살려고 돈이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든?”
“다른 일 찾아볼게요.”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 그만둔 이유가 뭐니?”
“꿈을 꾸고 싶어요.”
“아직도 꿈 타령이니 정신 좀 차려라. 헛소리도 그만하고. 나도 일해야 돼. 전화 끊는다.”
그는 전화를 끊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자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데, 꿈을 꾸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데. 사람들이 왜 이걸 포기하는 지 알 수 없다. 햇빛은 따사로웠다. 잠이 온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가 잠에서 깼을 때는 푸른빛이 그의 머리맡으로 떨어지고 있을 때였다. 그는 밖으로 나갔다. 달빛을 받으면 힘이 솟는 것 같다. 이제 이 도시에는 꿈을 꾸는 사람이 없는 걸까. 그는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이 바빠지면서 들리지 않게 되었던 노랫소리가 조용한 거리에 퍼졌다.
다음날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잠에서 깬지 얼마 되지 않아 푸른빛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일어나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그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직장을 새로 구하지 않을 거냐며 그를 쏘아댔다. 어머니가 바빠서 잔소리가 빨리 끝난 게 다행이었다.
전화통화를 끝낸 그는 또 노래를 불렀다. 어렸을 때 부르던 노래다. 아침에 유치원에 가면 모두 함께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는 그의 출근길에 보던 유치원으로 갔다. 노랫소리가 듣고 싶었다. 하지만 유치원도 조용했다. 아이들은 노래를 하지 않았다. 24시간 내내 일을 하는 부모를 기다리며 학습지를 풀고 있었다. 아무도 놀이터에 나가 놀고 싶다고 조르지 않았다. 놀이터는 비어 있고 먼지가 쌓여 있었다. 그는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는 다시 파란 달이 뜰 때까지 노래를 불렀다. 밤이 되자 그는 간단하게 짐을 싸서 집을 나왔다. 죽은 듯이 조용한 도시는 그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꿈을 꾸는 곳으로 가고 싶어. 그는 기차를 탔다. 기차는 밤을 지나쳐 덜컹덜컹, 도시에서부터 점점 더 멀어졌다. 사람들은 기차 안에서도 바빴다. 서류나 신문,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몸을 뒤척였다. 밝은 형광등에 눈을 감아도 눈이 부셨다. 그는 잠을 자기를 포기하고 밖을 구경했다. 도시를 벗어난 지 한참 되었지만 불이 꺼진 곳은 보이지 않았다. 요즘에는 시골에서도 gm-akd를 복용한다는 말을 들었다. 식물을 빨리 자라게 하기 위해 24시간 동안 불을 켜놓는 다는 것이었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꿈을 꾸는 곳으로 가고 싶어. 밝은 기차가 어둠을 향해 달려갔다.
그가 깜박 잠이 들 동안 기차는 불빛이 없는 곳에 다다랐다. 그는 기차에서 내렸다. 그곳의 불빛이라고는 가로등과 달빛뿐이었다. 그는 마을로 내려갔다. 길목마다 푸른빛이 내렸다. 그는 걸어가다가 마을 입구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여자는 길 위에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에 푸른빛이 감돌았다. 여자가 그를 보더니 이리와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는 여자의 옆에 가 앉았다. 여자가 손끝으로 달을 가리키며 말했다.
“달빛이 참 예쁘죠?”
“달을 볼 줄 아시네요?”
“당연하죠. 눈이 있는데.”
“아, 아뇨 그 뜻이 아니라…….”
달을 보는 사람을 찾았다. 그의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노트북과 서류를 들여다보느라고 바로 위에 떠있는 달을 보지 못한 사람이 한 둘이었나. 그런데 지금은 밤늦은 시간이다. 여자는 왜 알약을 먹으면서 일을 하지 않고 있을까. 그가 본 gm-akd 복용자들은 모두 일을 하느라 바빴는데.
“이름이 뭐예요?”
여자가 물었다.
“저요?”
“그럼 당신 말고 누구한테 하는 소리란 말이에요 지금?”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신금호요…….”
“성이 신? 이름은 금호?”
“아뇨. 그냥 이름이 신금호.”
“아, 전 나명에요. 저도 그냥 이름이 나명.”
“뭘 하려고 gm-akd를 복용하시는 건가요?”
“gm-akd요? 그 잠 안 자도 되는 알약? 전 그 약을 먹지 않아요.”
“늦은 밤까지 깨어 있잖아요.”
“졸려도 참는 거죠. 오늘은 파란 달이 뜨는 날이잖아요.”
다행이다. 그는 안도했다. 그리고 마음이 설레었다.
“여기 사람들은 모두 gm-akd를 복용하지 않나요?”
“네. 저를 포함한 모두가 그래요. 사람이 밤이 되면 자고, 꿈을 꾸고 그러는 거죠 뭐. 다른 곳은 식물도 쉬지 못하게 하지만 저희는 안 그래요. 식물도 쉬어야 더 건강해진다고 저희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어요.”
그녀는 쉴 새 없이 조잘거렸다. 다른 사람과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나눈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그는 기분이 한껏 들떴다. 둘은 달을 보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그가 더 이상 피곤함을 참지 못하고 하품을 하자, 나명은 그를 마을로 데려가서 방을 하나 내주었다.
그는 그 마을에서 별다른 걸 하지 않고 지냈다. 낮이면 농사일을 도왔고, 밤이면 나명과 마을 입구에 앉아 달을 바라보았다.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행복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행복한 일상을 보내면서도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느 날 나명이 한 말이 그가 방법을 찾도록 해주었다.
“우리 동네에 기자가 한 명 와있어. 명일이라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범죄도 일어나지 않잖아. 그래서 뭐 할 일도 없고 기삿거리도 없고 해서 요양 겸 와있대.”
그 말을 듣자마자 그는 굉장한 걸 깨달은 사람처럼 몹시 기뻐하고 흥분했다. 그날로 그는 도시와 마을을 왔다 갔다 하며 무언가를 준비했다. 나명이 뭐냐고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는 며칠 간 바쁘게 지냈지만 밤이 되면 나명과 꼬박꼬박 산책을 했다. 며칠 뒤 그는 골방에서 나와 나명을 불렀다.
“명일을 불러줘.”
그는 방안에서 명일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방을 나온 명일은 흥분해서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다음날 아침 신문에 나온 기사는 세상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gm-akd, 심각한 부작용 밝혀져
일 년 전, 약 한 알만 복용하면 아무런 부작용 없이 24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고 광고했던 gm-akd에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것이 밝혀졌다. …(중략) gm-akd의 개발처인 지하제약은 장기간에 걸쳐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를 입증했다고 발표했으나 핵심 연구원의 폭로로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는 게 밝혀졌고 …(중략) 지하제약 측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gm-akd의 부작용은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만큼 수명이 반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현재 gm-akd를 복용한 사람들의 연이은 사망 소식에…(중략) gm-akd의 복용을 중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명일기자
“gm-akd를 복용하지 않는 사람이 늘고 있고, 파란 달을 목격했다는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아!”
도시에 갔다 온 명일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사람들에게 그걸 주고 싶었어.”
그가 웃었다. 그때까지 매일 밤 달은 파란 달이었다.
기사가 나고 며칠 후, 마을 입구에 경찰차가 여러 대 왔다. 경찰은 몰려드는 주민들을 막고 신금호를 찾았다. 그들은 그를 찾자마자 차에 태웠다. 그는 아무런 반항도 없었다. 영문을 모르는 나명과 명일만 양복 입은 남자들을 말릴 뿐이었다. 나명이 남자의 양복 끝을 잡고 떨어지지 않자, 남자가 입을 열었다.
“신금호씨는 조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나명의 손이 양복 끄트머리에서 떨어졌다.
“왜…….”
나명은 슬픈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으나 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환했다.
“오늘도 파란 달이 떴어.”
그의 웃음 위로 파란 빛이 쏟아져 내렸다. 그가 마을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 날 뜬 파란 달은 언제나처럼 아름다웠다.
수상소감
김도연
글을 쓸 때는 혼자 쓴다고 생각했는데 상을 받고 나니 고마운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저를 믿어주시는 부모님, 선생님, 새로운 자극을 주고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친구들. 그리고 제 글을 좋게 평가해주신 심사위원분들도 감사합니다. 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3년 동안 학교에 다니면서 알게 됐습니다. 제 재능은 글을 쓰려고 하는 사람이면 대부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글, 전에는 없던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엔 너무 많은 글이 있어 쓰이지 않은 글은 없는 것 같고, 쓰다 보니 내 스타일에 내가 갇히는 모순이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글이 재능 있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쓰는 사람이 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끝까지 써보지 않은 제가 알 수 없는 거지만, 어차피 제가 글을 쓸 거라면 이렇게 믿고 계속 쓰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겠습니다.
심사평(산문)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 9편을 정독하며 느낀 소회는 문학에 대한 청소년들의 관심과 열정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입니다. 산문 부문에서는 수필 외에 소설 응모가 많았는데 한 마디 첨언하자면 소설은 분명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이지만 일상 언어와는 다른 언어를 구사해야 합니다. 등장인물에게 존칭을 붙이는 것도 어색합니다. 작가는 등장인물을 창조하는 절대자입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경어를 쓰면 안되듯이 모든 등장인물은 객관적으로 서술하여야 합니다. 또한 현실에서 있었던 일이라도 얼개를 짜서 뼈와 살을 입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구성이라고 합니다.
소설문장은 화자와 등장인물 간의 거리가 있어야 설득력이 있습니다. 화자가 앞서서 추측 짐작을 하는 문장은 감동이 줄어듭니다. 영화 기법처럼 보여주기식으로 묘사를 하면 거리감이 생겨서 독자가 읽기에 편안합니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남의 것을 그대로 베껴내면 자기 것이 아닙니다. 본심에 올라온 작품 중에서도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일부가 아닌 통째로 갖다 쓴 글이 있어서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다소 거친 표현일지라도 학생답게 진정성 있는 글을 쓸 때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파란 꿈>은 짧은 소설 구조 속에 소설로서의 짜임새가 부족함이 없는 작품입니다. 파란 달이라는 상징을 통해 현대인의 잃어버린 꿈을 드러내는 이 작품은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삭막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파란 달은 인간 구원이자 인간성 회복의 상징으로 주제의식이 돋보입니다.
<풍경>은 깔끔한 수필입니다. 정제된 문장, 사유의 깊이가 남다른 이 작품은 할아버지의 죽음을 사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필자의 시선과 할머니의 대화가 정감있게, 절제된 언어로 빚어진 조선 백자항아리 같은 글입니다.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킵니다.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 <다시 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도 군더더기 없는 문장에 필자의 사유가 무리없이 녹아들고 있습니다.
<눈>은 열입곱 살 소녀의 짧은 일탈과 방황을 그린 작품입니다. 소설 언어가 어떤 것인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작품입니다. 소설이 잘 읽히고 문장력이 있지만 열입곱 살 소녀와 모텔을 대입시킨 필자의 의도에 잠깐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현실에서 열일곱 살 소녀가 모텔을 드나드는 것에 대해 읽는 이가 불편을 느낀다면 시점을 바꾸어 써보는 것도 생각해 봐야합니다. 본문에서는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나오는데 삼인칭이나 이인칭 시점이 이를 해소하는데 무리가 없습니다.
<미리보기>는 우울증 최면치료를 받는 열여덟 살 주인공의 현실과 여전히, 십 년 후에도 암담한 현실을 상상해서 그린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최면술이라는 매개체를 등장시켜 십 년 후의 미래를 상상하며 소설 습작을 하고 문학을 꿈꾸는, 그러나 그 문학에도 ‘전망없음’에 회의를 하며 미래에 자살을 시도하려는 무기력한 청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소설이, 문학이 왜 이렇게 진지해야 하는지, 왜 이렇게 경직되어야만 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모든 분야, 예술이든 뭐든 소설을 통해서라도 개인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순수함이 있다면 가난하든 부자로 살든 독자에게 어떤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져 주어야 하겠지요. /본심 산문심사위원 유시연(소설가, 글), 강인봉(소설가), 김영식(수필가, 번역작가)
심사평(운문)
본심에 오른 작품들에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청소년기의 삶과 인식이 그대로 녹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구체적인 생활이나 환경, 그리고 그들이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시적 대상으로 하고 있어 거칠고 투박하면서도 신선함을 보여주고 있다. 어설프게 기성세대의 삶을 그려내는 것보다 자신들의 현실 속에서 고민하고 사유하는 방식이 잘 드러나고 있었다.
권예림의 <태풍>은 어둡고 스산한 학교에 대한 기억을 태풍의 날씨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학교를 휩쓸고 있는 태풍은 우기의 유년을 상징한다. 학교는 “왜 오르막에 있을까”라고 시인은 말한다. 학교는 항상 오르막에 있었다고 기억한다. 항상 오르막을 오르는 것 같은 힘겨움으로 기억되는 것, 그것이 당시의 학교에 대한 기억이다. 이 시는 우기의 유년을 보내는 성장의 코드를 완성도 있는 시적 형상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학교와 태풍의 이미지를 적절한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시적 구조에서도 안정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한다.
김연수의 <단추>는 옷에서 떨어져 나간 단추에 대한 단상을 기록하고 있다. 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는 형식이 잘 그려진 시이다. 떨어질 것 같았던 단추를 보고도 그저 지나쳐버린 것에 대한 반성, 단추의 빈곳을 보며 느끼는 허전함과 아쉬움 등은 삶속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는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사소한 일상에서 삶을 끌어내는 힘이 느껴진다.
신윤하의 <쉼표>는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편의점을 배경으로 ‘쉼표’의 의미를 그려내고 있다.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삶 속에서 ‘마침표’가 그리운 것은 잠시의 휴식이 그리운 것이다. 이 시는 ‘쉼표’와 ‘마침표’의 대조를 통해 삶의 의미를 돌아보고 있다.
이다현의 <전염>은 10대들의 스마트폰 언어가 번져가는 현실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그들만의 상징”이 되어버린 낯선 언어가 선생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처럼 학교에 퍼져가는 과정을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은 시작 초기에서 중시되는 주제에 대한 일관된 초점을 비교적 잘 잡아내고 있었다. 위의 작품들은 그 중에서 상징이나 이미지, 묘사 등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시적 대상을 객관화시켜 표현하고 있다. 이들의 시는 미래의 한국 시단을 이끌 시라 할 수 있다. 아직은 서툴고 어설픈 점이 없지 않지만 기성시인들의 세련됨보다 이들의 소박하지만 섬세한 감각이 미래를 열어 갈 것임을 확신한다./운문 본심 심사위뤈 권경아(문학평론가, 글), 장종권(시인, 본지 주간, 백인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