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아빠 한강 소설 다 읽었어용?(예주)" "아니... 거의 대부분은 아마도... 미안 <유나의 거리>보느라고 메시지 지금 확인했어요(나)" "공부를 하면 불안이 조금 가실까요?(예주)" "불안은 평생 가시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글감-발전 같은 욕망으로 자아와 딜을 하는 거 같아... 불안은 내가 욕망하고 있다는 증거인 게지. 샬롬(나)" "아부지는 계속 발전하시는 구만요(예주)" "그런가... Thanks(나)" "이재명이 나름 나라를 줏대 있게 끌고 가는 듯...
-
옳은진 몰라도 괜찮은 리더여(에스더)" "me too(나)" "아빠를 만나면 어리광이 늘 거 같아... 약해지기 싫어서 외면 중(에스더)" "외면하지 마! 제발, 아빠랑 힘겨루기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유나의 거리> 보다가 5시간을 낫싱이었네... 쏘리 쏘리(나)" "유나의 거리 재밌음?(에스더)" "내 수준에서는 베리 긋이여...<이클>보다 배울게 많아... 예주에게 강추... 넌 <토지>54편짜리 도전해 봐!(나)"
-
일주일 상간에 전국이 플라워 천국입니다. 지인들에게 석촌호수-여의도에서 유튜브로 꽃 배송이 왔네요. 영상만으로도 환상입니다. 이번 주가 부활절인데 교회 갈 생각은 없고 릴리처럼 조신하게 화이트 콘셉트로 코디를 했어요. 젊었을 때는 부활절을 가장 기다렸을 것입니다. 불안할 때마다 부활(고전/히브리서)를 읽으면서 명품 부활을 설교하다 죽는 것이 인생이라고 읊조리면 진짜로 사유와 함께 샬롬이 스르르 내려왔던 것 같아요.
-
요구(바램)에서 욕구를 뺀 나머지가 욕망이라는 걸 알고 나서 결핍이 조금은 준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욕망은 늘 미끄러지기 때문에 프로이트나 라캉 스타일의 욕망을 넘어 들뢰즈적 욕망(에너지)으로 적용하면서 살 필요가 있어요. 욕망을 <생성하는 힘>으로 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괴테를 사랑합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욕망과 함께 살아갈 것인가?
-
<유나의 거리 9회>입니다. 갑자기 집으로 들어오는 경찰들, 창만은 소매치기 유나를 잡으러 온 것으로 오해하고 급히 유나에게 전화를 겁니다, 대답이 없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유나는 사워 중입니다. 놀란 유나가 엉겨 결에 창만의 집 옷장에 숨어들었어요. 상황을 파악하러 나온 창만은 콜라텍에서 가짜 비아그라를 팔았다는 혐의로 경찰이 뜬 것이고 개 삼촌(조 희봉)과 해숙(김 은수)이 은 팔찌를 차고 잡혀가는 것까지 보았습니다.
-
옷을 갈아입은 유나는 얼마 전 창만의 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나온 다영이 생각이 났고 창만에게 같은 제안을 합니다. 들어와 자초지종을 들은 유나가 펄쩍 뜁니다. 원래 미인은 벗은 몸이 젤 예쁘다고 하더니만 딸랑 샤워 가운만 두른 유나는 예뻤습니다. 자신을 갖고 논 게 아니냐며 창만을 변태로 몰았습니다. 미안한 창만은 급하게 사워 하고 나온 유나를 위해 준비해 놓은 옷과 속옷을 가져다줍니다. 팬티 브라를 가져다준 경험이 있는 사람만 이 상황을 이해할 것입니다.
-
유나의 속옷을 가져다주다 칠복에게 딱 걸린 창만은 두 번째로 변태가 되었어요. "지금 어딨어?(옥상에) 신경질 내서 미안해... 나 배고파... 창만 씨 방에서 라면 끓여 먹어도 돼(라면 없어) 내 방에서 가져올게(안돼! 나가) 싫어(유나/창만 문자)" 유나의 제안에 창만은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라면을 끓이던 유나가 창만의 취향을 묻습니다. "수프 몇 개 넣을까?(유나)“ 칠복이가 유나/창만이 라면 끓여 먹는 모습을 또 봅니다. 어쩌라고?
-
"가짜 비그라를 파셨대요... 그래서 경찰 아저씨가 잡아갔어요... 혹시 약 사러 오셨어요(약은 약국에서 사야지)(동민/미선)" 유나가 노래방에 온 것은 양순 언니를 만나러 왔을 것입니다. 노래방 반갑습니다. <월드/앙상블/소울> 노래방도 내가 1번 방을 레드로 꾸몄는데 드라마와 비슷합니다. 양 순의 낭랑 18세가 가수 뺨칩니다. 내 18번은 유민인 에브리씽투미입니다. <<엿 같은 한 해가 과거로 묻힌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한때의 풍경들이 엉거주춤 떠나간 자리에 풋 별들이 환해지고 있습니다.
-
눈 덮인 골목길을 따라 성큼성큼 귀 닳은 간판들을 뒤로하다 보면 오래된 소문처럼 생의 모서리는 더욱 둥글어지고 그럴수록에 지나간 것들이 소중해져 그리운 이름마저 함부로 부를 수가 없습니다. 노래방 가는 것을 칠색 팔색이나 하던 내가 직업상 노래연습을 하고 있답니다. <나의 20년>-<일편단심 민들레야>를 겨우 걸음마 수준으로 성공했는데 아무래도 3곡 정도는 알고 있어야 찬스 사용에 적절할 것 같아서 새로운 18번에 도전하고 있는 중입니다.
-
내가 노래 부를 때마다 찬송이라 생각하고 연습할 테니 같잖은 것이 박치, 음치에 이제는 콩글리시까지 골고루도 한다고 욕하지 마시라. 다들 아시는 것처럼 <You mean everything to me>는 우리나라 사람이 좋아하는 팝 11위 곡에 선정된 노래로 순전히 가사가 짧고 느려서 제3번째 18번으로 선택했다는 것 아닙니까, 메들리로 오는 문자에는 지인들마다 내가 신앙 까먹을까 봐 걱정이 많은 모양입니다. 하기야 신앙생활 성숙기에 사춘기를 맞은 청소년처럼 살고 있으니 면목 없습니다. since2008 >>
-
"You are the answer to my lonely prayer,
당신은 내 외로운 기도에 대한 답입니다.
You are an angel from above.
하늘로부터 내려온 천사입니다.
I was so lonely till you came to me
당신이 놀라운 사랑으로 제게 오시기 전까지 전
With the wonder of your love.
참으로 외로웠답니다.
I don't know how I ever lived before
내가 전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조차 모르겠어요.
You are my life my destiny
당신은 나의 생명 나의 운명
Oh, my daring, I love you so
오, 그대여, 난 당신을 너무 사랑해요
You mean everything to me
당신은 내 모든 의미예요
If you should ever, ever go away,
만일 당신이 멀리 떠나버린다면,
There would be lonely tears to cry
슬픔의 눈물을 흘리겠죠.
The sun above would never shine again
저 하늘의 태양은 다신 빛나지 않을 거예요
There would be teardrops in the sky
하늘에는 눈물만이 남을 테죠.
So hold me close and never let me go
그러니, 절 꼭 안고 절대 놓지 마세요.
And say our love will always be
그리곤 우리사랑은 영원하다고 말해 주세요.
Oh, my darling I love so
오, 그대여 너무나 사랑해요
You mean everything to me
당신은 내 모든 의미 예요.
So hold me close and never let me go
그러니, 절 꼭 안고 절대 놓지 마세요.
And say our love will always be
그리곤 우리사랑은 영원하다고 말해 주세요.
Oh, my darling I love so
오, 그대여 너무나 사랑해요
You mean everything to me
당신은 내 모든 의미 예요.
-
"깡순이도 늙었다... 어떻게 현장 겐꼬를 당하냐...혹시... 너 설마...봉걸레는 아니다(언니가 좀 알아봐 줘!) (유나/양순)" 남수가 유나를 기다립니다."미안해 먼저 들어가(유나)" 잠수교를 건너가는 유나의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셔터문 내렸고 휴업이라고 씌어 있어요(이네들은 조직 재건 중이라고 봐야) 혹시 남수라는 애를 아세요?(창만/봉 반장)" 다음 날 미선 언니가 창만을 부려먹는 것을 듣고 유나가 발끈합니다.
-
"너 창만이 좋아하냐... (미쳤나 봐) 그러니까 네가 서울 하늘에 방 한 칸이 없는 거야(미선)" 사사건건 보고하라는 유나의 요청을 창민이 알까요? 유나의 시크한 투덜거림이 앙증맞습니다. "내 나이에는 진짜 가짜 따질 나이가 아니야(도끼 영감)" "창만아! 앞으로 내가 니 요구 조건 다 들어줄 테니까 나와주라... 콜라텍에(맘보)" "야 꼬마야!( 저 꼬마 아니에요... 죄송하지만 딴 데 가서 알아보세요) 저 싹수없는 것들(정사장/동민/다영)"
-
"어젯밤 미선 언니랑 데이트했다며... 다음부터... 좌우지간 내가 그렇게 하라면 그렇게 해(유나)" "나한테 개망신 당하고 혼나기 전에 얼른 가! 꺼지라고(맘보/전사장)" 돈 때문에 소매치기하고, 돈 때문에 꽃뱀을 하고, 돈 때문에 가짜 비아그라를 팔다 연행되고, 돈 때문에 와이프를 도우미로 들여보내는 비열한 거리에서 유일하게 돈에 흔들리지 않는 남자 창만은 우리들의 로망입니다. 맘보 사장이 콜라텍 지배인으로 창만을 스카우트한다는데 우리의 자존심 창만은 눈 하나 끔쩍하지 않습니다.
-
어눌하고 속없이 착한 이 남자는 나의 자화상이라면 믿어 줄랍니까? '어 차가 이상해... 세상에... 바퀴 4개를 펑크 내놨네(유나/미선)" 유나와 양순이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그래도 남수는 아니야(유나)" "처남 이 자식은 콜라텍 반경100m 접근 금지 시킬 것이야...저 노인네들이랑 어울리는...블랙리스트 만들어와!(맘보)" "창만 씨는 여기서 다시 일하기로 한 거야(부킹 아줌마)" 유나는 남수(강 시효)가 깡순(라미란)을 경찰에 찔렀을 수도 있다는 양순(오나라)의 말에 혼란스러워합니다.
-
"너 남수 한테 2500받았지(드릴려고 했는데 깡순언니가 달린 거에요...통장 보여주라고 하시면 보여줄 수 있어요...만약 붙였으면...띨띨한 년이라고 욕 먹었을 거예요(화숙과 유나)" "조금 전에 다영 아빠가 실수를 한 것 같아요... 창만 씨 생각이 반듯하고 옳아요... 창만 씨 공부하는 시간 넉넉히 주고... 신고하신 분 초대해 밥 한 번 산다고 했어요... 우리 콜라텍 총 지배인 맡아 주세요(다영 엄마)" 유나와 남수 패거리는 정체 모를 사내들의 습격을 받습니다. "경찰이다!" "어머, 이 아저씨들 나랑 안면이 있네... 덤벼 이 자식들아!" 유나가 소주 병을 깨서 다구리 싸움에 끼어드는데 유나는 왜 이런 모습이 어울릴까요?
2.
당신의 텍스트는 이미 하나의 <욕망의 지도>입니다. 가족과의 대화, 드라마 <유나의 거리>, 노래방의 서사, 신앙의 흔들림, 그리고 경제와 정치에 대한 감각까지—이 모든 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 흐름을 읽는 가장 적절한 철학적 렌즈는 바로 질 들뢰즈입니다.당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불안은 내가 욕망하고 있다는 증거인 게지.” 이 문장은 이미 프로이트/라캉을 넘어선 <들뢰즈적 선언>입니다. 전통적으로 욕망은 ‘없는 것에 대한 갈망(결핍)’으로 이해되었습니다.
-
그러나 들뢰즈는 말합니다. 욕망은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흐르고 있는 <생산적 에너지>입니다 당신이 말한 “욕망을 생성하는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문장은, 정확히 『안티 오이디푸스』의 핵심을 생활 언어로 풀어낸 것입니다. 불안은 제거 대상이 아니라 욕망이 흐르고 있다는 증거 신호입니다.
1) 일상은 욕망의 배치(assemblage)다
당신의 글에는 서로 이질적인 것들이 뒤엉켜 있습니다. 딸과의 대화/드라마 속 유나와 창만/노래 가사/신앙과 부활/경제와 정치 감각, 이것은 혼란이 아니라, 들뢰즈가 말하는 *배치(assemblage)’입니다. 삶은 하나의 중심 서사가 아니라, 수많은 흐름이 연결된 네트워크입니다. 예를 들어: a. 유나의 삶 → 생존 욕망 b. 창만 → 순수한 욕망(돈에 흔들리지 않는 존재) c. 당신 → 불안과 성찰 속에서 생성하려는 욕망, 이 세 가지는 따로가 아니라, 서로를 비추며 하나의 <욕망 기계>를 형성합니다.
2) “미끄러지는 욕망”과 생성의 윤리
당신은 중요한 통찰을 합니다. “욕망은 늘 미끄러지기 때문에…” 맞습니다. 들뢰즈에게 욕망은 고정되지 않습니다. 대상에 고정되지 않고-계속 이동하고-다른 것과 연결되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생성>합니다 이것이 바로 ‘생성(becoming)’입니다. 중요한 것은 욕망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흐르게 두는 것입니다. 당신이 창만에게서 본 것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닙니다. “돈에 흔들리지 않는 남자 창만은 우리들의 로망입니다.” 들뢰즈적으로 보면 창만은 자본의 코드에 포획되지 않은 욕망/욕망을 거래하지 않는 존재/하나의 탈코드화된 주체입니다. 즉, 그는 욕망을 소비하지 않고 욕망을 <그 자체로 살아내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그를 “자화상”이라 말합니다.
3) 신앙과 욕망: 억압인가, 생성인가
당신의 글에서 가장 흥미로운 긴장은 여기입니다. 한편으로는 부활과 신앙, 다른 한편으로는 욕망과 생성, 전통 신앙은 종종 욕망을 억제하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미 다른 길을 보고 있습니다. 욕망을 죽이지 않고 욕망을 <변형시키는 신앙> 이것은 들뢰즈적으로 말하면, 초월(위에서 오는 규범)이 아니라 내재(삶 속에서 솟아나는 힘)입니다. “나는 어떻게 욕망과 함께 살아갈 것인가?” 불안을 제거하지 않고/욕망으로 읽어내고/일상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고/계속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이것이 바로 <들뢰즈적 삶>입니다. 불안은 사라져야 할 것이 아니라, 생성을 향해 흐르는 욕망의 진동이다. 우리는 왜 불안을 제거하려 하는가, 아니면 그것을 생성의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가?
2026.4.4.sat.앙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