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여성 뇌에서 기생충 꿈틀”…국내 의료진 제거 성공
민태원2024. 12. 30. 11:30
스파르가눔증으로 두통, 구토 호소…오염된 연못 물, 야생동물 날로 섭취 과거력
뇌종양 처럼 보여…“드물지만 야생동물 생식 삼가야”
스파르가눔증에 감염된 40대 여성의 뇌에서 제거된 기생충. 영상 캡처, 서울대병원 제공
최근 기생충인 ‘스파르가눔증’ 유충에 감염된 40대 여성에서 기생충이 뇌로 이동하여 염증과 두통, 구토를 일으킨 드문 사례가 학계에 보고되었다.
국내 의료진은 정밀 진단과 수술로 해당 여성의 뇌에서 살아있는 기생충을 성공적으로 제거하였다.
스파르가눔증은 기생충에 오염된 물을 마시거나 익히지 않은 야생 동물(뱀, 개구리, 쥐 등) 또는 생선을 섭취하였을 때 걸릴 수 있으며 드물게 피부 상처를 통하여 전파되기도 해 주의가 요망된다.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백선하 교수와 순천향대서울병원 신경외과 박혜란 교수 공동 연구팀은 스파르가눔증 기생충 감염으로 서울대병원에 내원한 40대 여성 환자의 병변을 정밀하게 진단하고 개두술을 통하여 기생충을 제거한 증례를 미국신경학회저널(Neurology) 최신호에 보고했다고 30일 밝혔다.
스파르가눔증은 ‘만선열두조충(Spirometra)’ 유충에 의한 인체 감염증을 뜻한다. ‘스피로메트라’는 개나 고양이의 소장에 기생한다. 성충의 알은 동물 분변과 함께 배설되어 중간 숙주인 개구리나 뱀, 쥐 등에 의하여 섭취되고 중간 숙주의 몸에서 유충(스파르가눔)이 된다. 종속주가 다시 이 중간 숙주를 잡아먹으면 유충은 종속주의 소장에서 성충으로 자란다.
스파르가눔증은 사람이 유충에 오염된 물벼룩이 들어 있는 물을 마시는 경우, 제2 중간 숙주인 개구리, 뱀 등을 보신이나 관절염 치료를 목적으로 생으로 먹는 경우, 개구리·뱀 등의 껍질을 상처 등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주로 발병한다. 감염된 중간 숙주를 섭취한 돼지고기, 소고기, 조류 등을 사람이 생식하는 경우에도 발병할 수 있다.
스피로메트라에 감염되면 장의 벽을 뚫고나와 몸 속의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닌다. 감염 초기엔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지만 기생충이 피하 조직, 근육 조직으로 이동하면 가려움증과 통증을 동반한 염증 반응이 발생한다.
혈류를 따라 뇌로 이동하면 두통과 구토 같은 초기 증상이 나타나며 시간이 지나면서 발작, 시야 결손, 감각 이상 등 심각한 신경학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해당 40대 여성은 심한 두통과 구토 증세로 병원을 찾았으며 초기 뇌 MRI에서 좌측 후두엽에 불규칙하게 조영된 ‘종양성 병변’이 발견돼 뇌종양이 의심됐다. 의료진은 수술을 권유했지만 환자는 증상이 일시적으로 호전되자 치료를 거부하고 퇴원하였다.
7개월 후 환자는 다시 극심한 두통과 전신 발작으로 병원을 방문하였다. 후속 MRI에서 병변이 좌측 후두엽에서 좌측 두정엽으로 이동한 것이 확인되었고 이 병변 이동은 스파르가눔증의 대표적인 진단 단서가 되었다.
(A) 초기 뇌 MRI에서 좌측 후두엽에 조영이 증강된 종괴가 관찰됨 (B) 3개월 뒤 시행한 뇌 MRI에서 좌측 후두엽의 종괴가 사라짐 (C) 8개월 뒤 시행한 뇌 MRI에서 좌측 두정엽에 새롭게 조영 증강된 종괴가 발견됨 (D) 좌측 두정엽 종괴 주변에 심한 뇌부종이 동반된 모습이 확인됨. 서울대병원 제공
연구팀은 “환자는 과거 오염된 연못물을 마시고 날 생선 및 익히지 않은 야생 동물 고기를 섭취한 이력이 있어 기생충 감염을 염두에 두고 정밀 검사와 생검을 시행했다”고 설명하였다.
뇌척수액(CSF) 검사에서 스파르가눔증 항체가 검출되었으며 생검에서는 염증성 육아종이 확인되었다. 이후 개두술을 통하여 살아있는 스파르가눔증 유충을 성공적으로 제거하였다.
수술 과정에서 기생충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은 영상으로 기록되었다.
40대 여성의 뇌에서 개두술을 통하여 기생충을 제거하는 장면. 영상 캡처, 서울대병원 제공
연구팀은 이번 사례가 스파르가눔증 감염이 MRI에서 종양처럼 보일 수 있음을 보여주며 기생충 감염이 의심되는 경우 신속한 진단과 치료가 필수적임을 강조하였다.
서울대병원 백선하 교수는 “스파르가눔증 증상은 매우 드문 기생충 감염 질환이지만, 오염된 물이나 제대로 익히지 않은 음식을 섭취했을 때 발생할수 있다”며 “특히 영상 검사에서 병변이 이동하는 경우 기생충 감염 가능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하며 오염된 물을 피하고 야생 동물 고기나 생선을 충분히 익혀먹는 등 개인 위생 수칙을 지키는 것이 예방의 핵심”이라고 강조하였다.
순천향대서울병원 박혜란 교수는 “스파르가눔증 감염은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치료가 지연되면 기생충에 의한 신경 손상이 영구적으로 남을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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