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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 서울 가르멜 여자 수녀원 옮김 / 가톨릭출판사
1. 작가소개
- 지은이 :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1567년 8월21일, 이탈리아 국경을 접한 프랑스 동반부 지방 사부아의 한 귀족인 살레시오 후작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총명했으며 신심도 매우 깊었다. 그는 고향에서 학업을 마친 뒤 파리로 유학을 떠나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클레르몽 대학에서 6년간 수사학과 철학, 신학을 공부했는데, 그동안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 순진한 청년이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칼뱅의 예정설에 매료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영원히 지옥에 빠지도록 예정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에 사로잡혀 번민했다. 암흑 속에서 절망하던 그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고뇌를 겪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성모상 앞에 무릎을 꿇고 일생을 마칠 때까지 정결을 지키며 자신의 온 생애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봉헌하겠다고 서약했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일고 있던 폭풍우가 진정되면서 그의 마음은 감미로운 평화로 채워지게 되었다.
1593년에는 반대하던 부친을 설득하여 그의 숙원이던 성직자의 길로 들어서는 행복을 얻었다. 프란치스코는 이따금 닥쳐오는 신변의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프로테스탄트로 전향한 지방들을 순회하며 주민들을 다시 가톨릭교회로 복귀시키고자 노력했고, 학식과 덕, 온유와 인내로 온갖 고난을 극복하여 마침내 대성공을 거두었다.
1602년,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고자 파리에 가있던 그는 제네바 교구장이 사망하자 제네바 주교로 임명되었다. 35세에 주교가 된 그는 가장 먼저, 그에게 맡겨진 교구민들의 신앙교육을 장려하고, 오래된 여러 패습을 바로잡았으며, 사제 양성과 지도, 수도원 정신의 부흥에 주력했다. 또한 교구를 다스리는 동안에도 산골짜기에 흩어져 있는 벽촌들을 순회하며 강론을 하고 사람들에게 고해 성사를 주었으며, 그들을 지도하는 데 온 힘을 쏟았기 때문에 편히 쉴 날이 거의 없었다.
그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과 함께 성모방문수녀회를 창립한 것은 1607년의 일이었다. 기존의 관상 수도회는 극심한 고행이 회칙으로 정해져 있어 매우 건강한 여성만이 입회할 수 있었지만 이 수도회에서는 비교적 몸이 약한 지원자에게도 입회를 허락하였다. 이는 고행이 성덕에 도달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방법은 아니며, 완덕을 쌓는 데 필요한 것은 정신적 희생, 곧 자기 의지를 포기하고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을 따르고 일치하는 것이라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견해에 따른 것이다.
그는 자기를 찾아온 사람이 귀족이건 천민이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어느 누구도 소홀히 대한 적이 없었다. 이 책에 나오는 필로테아도 그들 중 하나였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가 그녀에게 보낸 편지들이 ≪신심 생활 입문≫의 주요 자료가 되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는 1622년 프랑스의 아비뇽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리옹에 있는 성모방문수녀회 수도원의 작은 방에서 묵던 중, 12월27일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이튿날 하늘의 아버지 품으로 돌아갔다. 그의 나이는 56세였다. 1665년 교황 알렉산데르 7세는 그를 성인 반열에 올렸고, 1877년 교황 비오 9세는 그에게 교회 학자 칭호를 내렸다.
그의 저서 중 가장 많이 애독되는 것이 ≪신심 생활 입문≫이다. 이것은 그가 성모방문회 수녀들을 위해서 쓴 ≪신애론(神愛論)≫과 일반 신자들을 지도하려고 쓴 여러 서간집에서 발췌한 것이다. ≪신애론≫은 성인이며 신비 신학자로서의 그의 면모가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책이지만, 일반 신자들에게 더 깊은 영향을 준 것은 ≪신심 생활 입문≫이다.
- 옮긴이 : 서울 가르멜 여자 수녀원
주님 탄생 예고를 받으신 성모님과 성녀 소화 데레사를 주보로 모시고 있는 서울 가르멜 여자 수도원은 1940년 국내 최초로 설립된 관상 수도 공동체로서 서울 혜화동에 있다가 1963년 수유리 산 밑으로 이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들은 채마밭을 직접 가꾸고 각 성당에 미사용 제병을 만들어 공급하고 있으며 섭리에 의탁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세상과 완전히 단절한 채 평생을 수도원 안에서만 생활하는 것이 특징이다.
2. 간추림 또는 내 마음에 다가온 구절및 느낌
하느님께 사랑받는 사람
지금까지 신심에 대한 글을 쓴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세상의 번뇌를 피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썼습니다. 그러기에 완전한 은둔 생활로 인도하는 신심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 집안일을 하거나 사회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신심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p21)
☞ 세상 속에 살고있는 우리들을 위한 신심생활 지침서이다
바닷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진주 조개 속의 진주가 한 방울의 짠물도 삼키지 않는 것처럼, 바다 한 가운데 있으면서도 첼리도니아 제도의 섬에 있는 샘에서는 단물이 솟아나오는 것처럼, 불 속을 날아다녀도 불나방의 날개가 타지 않는 것처럼 인내심 많고 용감한 사람은 세속에 살면서도 세상 풍조에 물들지 않고, 세기의 파란만장하고 쓰라린 삶의 한가운데에서도, 신심을 찾아내며, 지상의 온갖 욕망 속에서도 경건한 생활에 대한 거룩한 희망의 날개를 태우지 않고 날 수 있습니다. (p22)
☞ 알기 쉽게 비유를 들어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나는 이 글에서 필로테아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애초에는 한 사람을 위해서 쓴 글이었나 결국 여러 사람들을 위해 출간하기로 한 만큼, 누구든지 깊은 신심 생활을 지향하는 이들을 적합한 이름으로 호칭하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필로테아는 ‘하느님께 사랑을 받는 사람’ 또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단어입니다.(p23)
어떤 위대한 학자는 무언가를 더 배우고자 한다면 남의 말을 경청하고 연구도 해야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도 경건한 플로렌티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가르치는 일은 배우는 데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p26)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양 무리를 내가 거룩한 영성의 샘으로 인도하면, 하느님께서 나의 귀에 거룩한 사랑의 황금 말씀을 들려주시고, 내 팔에 그 일을 바르게 실행할 수 있는 힘을 주시며, 당신의 무한하신 자비로 내 영혼을 주님의 배필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p28)
하느님의 거룩한 사랑과 힘은 참된 신심의 정수이며, 나는 이것을 성교회의 모든 자녀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글과 행위, 말과 의지 그리고 사상은 언제나 성교회의 뜻에 따른 것입니다.(p28)
제1부 신심생활에 대한 동경
제1장 참된 신심
하느님께서 주신 사랑으로 우리 영혼의 기쁨으로 충만해질 때 이를 ‘은총’이라 하고, 그 사랑으로 우리가 덕을 행하려고 노력할 때 이를 ‘신심’이라고 합니다.(p41)
☞ 행동이 뒤따르는 것이 신심이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활동함으로써 우리가 그 사랑을 통해 열성적으로 행하는 선행이 일상적으로 될 때, 이 자연스런 행위를 신심이라고 합니다.(p42)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이 지킬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애덕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지키게 하는 것은 신심입니다.(p42)
신심깊은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면 애덕을 지녀야 할 뿐만 아니라 선을 행할 때에도 기꺼이 그리고 신속하게 해야 합니다.(p42)
사랑과 신심이란 불과 불꽃같은 관계입니다. 사랑은 영성적인 불이고, 신심은 이 불에서 타오르는 불꽃입니다. 신심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나아가 영적인 가르침과 성령의 감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실천하는 불꽃과 같은 것입니다.(p43)
☞ 신심은 사랑의 실천이다.
제2장 신심의 본질과 우월성
향기로운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꿀벌들은 쓴 액즙을 빨아 먹은 다음 그 즙을 꿀로 변화시킵니다. 이처럼 수행 중에는 쓴맛을 느낄 때가 많지만, 신심이 깊은 사람은 이를 통해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고 쓴맛을 단맛으로 변화시킵니다.(p45)
경건한 순교자들은 자신의 몸을 태우는 불꽃도, 살을 찢는 칼날과 뼈를 깎는 아픔도 아름다운 꽃이나 상쾌한 향기처럼 여겼습니다. 이와 같이 신심은 가혹한 형벌이나 죽음도 즐거움으로 변화시킵니다.(p45)
야곱의 사다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다리가 바로 신심 생활의 상징입니다. 세로로 세운 두 개의 기둥은 하느님의 사랑을 구하는 기도와 그 사랑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성사입니다.(p46)
☞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 성사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받기를 게을리 한다.
또한 두 기둥을 연결하려고 가로지르는 나무는 덕에서 덕으로 옮겨가는 사랑의 계단입니다. 우리는 관상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에 결합하고자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고, 활동을 통해 이웃을 돕고자 내려옵니다.(p46)
☞ 하느님과 이웃을 연결하는 덕행.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순수하고 진실하게, 오로지 경우에 따라 필요한 것만을 가볍게 취하기 때문에 그들은 가볍고 빛나는 옷을 걸치고 있습니다. 이런 이들이 참된 신심을 지닌 사람입니다.(p47)
☞ 두 발은 세상을 딪고, 두 눈은 하느님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제3장 신심은 모든 소명과 직업에 적합함
꿀벌은 꿀을 빨아들이면서 꽃을 조금도 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참된 신심은 더욱 그러합니다. 해야 할 일을 방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충실하게 해 줍니다. (p49)
보석을 꿀에 담그면 보석의 특성에 따라 광채가 더 밝게 빛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자신이 놓인 현실에 신심을 더하면, 그 현실은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가정은 더욱 화목해지고, 부부간의 사랑이 깊어지며, 애국심이 두터워지고, 자신이 맡은 일을 더욱 즐겁게 할 수 있게 됩니다.(p49)
☞ 성(聖)과 속(俗)이 하나이다. 세상 속에서 살면서 하늘나라를 사는 것이다.
신심을 보존하는 데 환경은 진실로 문제 되지 않습니다.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 성인은 롯이 악인들이 사는 소돔에 살 때는 순결했으나 외딴 산속에서 살 때 오히려 죄에 떨어졌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어떤 환경에 있든 완덕으로 나아갈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p50)
제4장 신심생활의 진보를 위해서는 지도자가 필요함
그대가 신심 생활을 시작하기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그대를 지도해줄 거룩한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p51)
신심 진보의 여정에는 참된 벗의 안내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신심 생활을 하는 데 적합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보내 주시도록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또 하느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토비야에게 하신 것처럼 착하고 충실한 영적 지도자를 그대에게 보내 주실 것입니다.(p54)
☞ 나도 영적 지도자를 보내달라고 기도드려야겠다.
딸이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처럼 그를 신뢰하고, 아들이 어머니를 믿는 것처럼 그를 존경하십시오. 그대와 그대의 영적 지도자의 우정은 견고하고 달콤하며, 거룩하고 신적이며 영적이어야 합니다.(p55)
하느님께서 그런 사람을 보내 주시기를 청하십시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찾았으면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십시오. 온전한 신뢰를 바탕으로 순박하고 겸손하게 생활하십시오. 그러면 그대는 기쁜 마음으로 그대의 여정을 이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p55)
제5장 영혼의 정화로 신심 생활을 시작함
그리스도의 배필이 되는 영광을 얻고자 하는 영혼은 죄에서 벗어나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콜로 3,9)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을 막는 모든 행동과 사고를 멀리해야 합니다. 병의 근원이 되는 악성 매개체를 없애는 것이 건강의 첫걸음입니다.(p57)
영혼의 정화를 위한 수행은 한평생의 과업입니다. 우리의 결점을 깨달았다고 해서 낙담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자신의 결점을 알면 완덕에 이르고자 그 결점과 싸울 수 있습니다. 결점을 깨닫지 못하면 싸울 수도 없고, 더구나 그 싸움을 승리로 이끌지도 못할 것입니다. 악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그 유혹을 극복하는 것이 승리하는 것입니다.(p58)
☞ 자신의 결점에 낙담하지 말자. 극복하면 된다.
악의 유혹을 극복하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해지려면 때때로 영적 투쟁에서 상처를 받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활력이나 용기를 잃지 않는 한 싸움에서 진 것이 아닙니다. 영적 생명은 대죄로 잃게 되지, 사소한 결점이나 죄로는 잃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용기를 잃지만 않으면 됩니다.(p59)
제6장 제1단계의 정화: 대죄에서 떠남
그대는 될 수 있는 대로 훌륭한 고해 사제를 선택하고, 올바른 고백을 하는 데 필요한 책을 읽으십시오. (p60)
그대의 양심이 어떤 병에 걸려 있는지 깨달았으면 다음과 같은 사항을 성찰하십시오. 만일 기억이 잘 나지 않으면 기록해 가며 성찰하십시오. 양심을 성찰하고 죄를 미워하며 죄지은 사실을 슬퍼하고, 온 힘을 다 기울여 깊이 통회하고 죄를 끊어 버려야 합니다.(p60)
제7장 제2단계의 정화: 죄의 경향을 피함
제8장 제2단계의 정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사소한 죄까지도 통회하면서 고백의 범위를 넓혀 가야 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회개한 다음 죄에 대한 애착과 그 쾌락을 완전히 버렸으며 두 번 다시 죄를 범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p67)
다윗은 자기가 범한 죄를 통회하여 죄뿐만 아니라 죄를 짓게 만드는 모든 거짓된 길을 피하겠다고 하느님께 맹세했습니다.(시편 119,104 참조) (p67)
제9장 묵상1: 창조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십시오. 그대는 형체가 있는 피조물들 중에서 으뜸가는 존재요, 영원한 생명을 받아 하느님과 완전하게 일치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p69)
"내 영혼아, 너는 허무의 깊은 구렁 속에 있었다. 만일 하느님께서 끌어내시지 않았다면, 너는 지금도 그 구렁 속에 있을 것이다.“(p69)
오! 먼지야, 재야, 너는 무엇을 믿고 스스로 고고한 체하느냐? 허무야, 무엇을 가지고 잘난 체하느냐?“(p69)
☞ 나는 하느님이 없다면 먼지와 재 같은 존재다.
제10장 묵상2: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
“헛되고 무익한 생각들아, 나는 너희를 버리겠다.”(p74)
“주님, 주님께서는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가 영원토록 주님의 크신 영광을 누리게 하시려고 저를 창조하셨나이다.”(p75)
제11장 묵상3: 하느님의 은혜
제12장 묵상4: 죄
하느님께서는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셨음에도 그대가 자신의 멸망을 초래하는 것만을 찾느라 늘 하느님을 피했던 그 배은망덕을 성찰하십시오.(p81)
제13장 묵상5: 죽음
우리는 죽음에 대해 아무 것도 모릅니다. 확실한 것은 한 번은 죽어야 하고 그날이 우리의 예상보다 빨리 올 수 있다는 사실뿐입니다.(p85)
그때가 되면 그대에게 이 세상은 끝난 것이고, 그대는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그대 눈앞에 있던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쾌락과 허영도, 세속이 주는 기쁨이나 헛된 애정도 환상이나 연기와 같은 것입니다. (p85)
육체를 떠나면 영혼은 오른쪽과 왼쪽 중 한쪽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대 영혼은 어느 쪽 길을 택하겠습니까? 그 길은 분명 이 세상에서 걷기 시작했던 길을 계속 걸어가는 데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p86)
☞ 내가 이 세상에서 삶의 길을 갔다면 삶의 길을 계속 갈 것이고, 만약 죽음의 길을 갔다면 죽음의 길을 계속 갈 것이다.
제14장 묵상6: 심판
제15장 묵상7: 지옥
제16장 묵상8: 하느님 나라
제17장 묵상9: 하느님 나라를 선택함
그대는 지금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천국으로 가느냐 지옥으로 가느냐 하는 것은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p100)
정의와 자비의 하느님께서는 그대를 위해 천국을 마련해 두시고 그대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또 그대의 천사도 하느님께 많은 은총과 도움을 간청하며 그대가 가는 길을 도울 것입니다. (p100)
☞ 내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시는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랑 가득한 눈길로 하늘에서 그대를 바라보시며 “나의 사랑하는 영혼아, 내게로 와서 나의 영원한 사랑의 품속에 안기는 기쁨을 누려라.”하고 상냥하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p100)
또한 성모님께서는 그대를 친자식처럼 여기시어 “용기를 내어라. 네 영혼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나의 아들의 선함과 나의 바람과 충고를 가볍게 여기지 마라.”하고 말씀하실 것입니다.(p100)
☞ 우리는 하느님께서, 예수님께서, 성모님께서 간절히 오기를 바라시는 하느님 나라에 반드시 가야 한다.
제18장 묵상10: 신심 생활의 선택과 결심
제19장 총고해
전갈에는 무서운 독이 있지만, 이것을 기름에 반죽해 두었다가 전갈에 물렸을 때 바르면 즉효를 내는 묘약이 된다고 합니다. 죄를 범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일단 고해와 보속이라는 형태로 변화되면 귀한 것이 되고 영혼 구원을 위한 수행이 됩니다. 대체로 통회와 죄의 고백은 아름다운 행위로서 죄의 더러움을 씻어주고, 하느님 앞에서 은은한 향기로 죄의 썩은 냄새를 없애줍니다.(p107)
우리가 범한 죄를 겸손한 마음으로 고백하는 것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p108)
의사에게 병의 증세를 모두 말하고 치료를 받으면 병이 차츰 낫듯이 고해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면 죄로 말미암은 상처가 치유될 것입니다.(p108)
고해 사제 앞에 가면, 골고타에서 그대의 죄를 깨끗이 씻어주시려고 피를 흘리시며 십자가 위에 매달려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아래 있는 것처럼 생각하십시오. (p108)
이때 그대가 고해 사제로부터 듣는 말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그들에게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다.”(루카 10,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p109)
제20장 하느님을 섬기고 통회를 결심하는 맹세
저는 이제 제가 예수님을 못 박은 죄인임을 깊이 깨닫고, 온 마음을 다하여 죄를 미워하나이다.(p111)
저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난을 받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니, 저는 죽음의 늪에 들어가야 마땅하며,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 큰 책임이 있는 자임을 고백하나이다.(p111)
혹시라도 제가 마귀의 함정에 빠지거나 나약한 인간 본성으로 말미암아 이 약속을 어기는 일이 있을 때에는 성령께 은총을 청해 다시 회개하고 지체없이 주님의 자비를 구하기로 미리 약속드리나이다.(p112)
제21장 정화1: 마무리
제22장 정화2: 소죄의 습성을 버려야 할 이유
성경에도 “죽은 파리 하나가 향유 제조자의 기름을 악취 풍기며 썩게 한다.”(코헬 10,1)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파리가 향유 위에 잠깐 앉아서 핥기만 했다면 괜찮겠지만 만일 향유 속에 빠져 죽으면 그 향유는 상해 버립니다. 이와 같이 신심 깊은 사람이 잠시 소죄를 지었을 경우 그 영혼이 그다지 심각한 상처를 입지 않으나, 오랫동안 반복해서 지으면 영혼은 파괴되고 맙니다.(p117)
소죄는 우리 영혼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심에 해를 끼치고 하느님의 사랑을 가로막아 우리의 신심 활동을 방해합니다.(p117)
제23장 정화3: 위해한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남
수사슴은 살이 찌면 무리를 떠나 숲속에 숨는다고 합니다. 다른 짐승에게 습격을 당할 때 몸이 무거워 빨리 달아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도 무익하고 쓸데없는 애착에 사로잡히면 진정한 신심 생활의 근원이신 하느님의 품에 신속하게 안길 수 없게 됩니다. (p119)
애착에서 벗어나 마음을 정화해야 합니다. 그 행위 자체는 신심 수행에 반하는 것이 아니지만 애착하면 신심 수행에 해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하십시오.(p119)
제24장 정화4: 영혼의 정화
사람들 중에는 성향에 따라 경솔한 사람도 있고 신중한 사람도 있습니다. 남의 충고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고집불통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욱하는 성질에 쉽게 화를 내는 사람도 있고, 쉽게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불완전하게 태어났지만 노력하고 덕을 쌓음으로써 이를 바로잡고 개선할 수 있습니다.(p121)
제2부 기도와 성사
제1장 기도의 필요성
특히 내가 그대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마음의 기도, 곧 묵상 기도이며, 그중에서도 주님의 생애와 수난에 대한 묵상입니다. 그분에 대한 묵상을 하면 그대 영혼은 주님으로 가득 차, 그분을 본받아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p125-126)
☞ 복음 묵상이다.
아기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더듬거리며 흉내 내다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말을 하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님 곁에서 주님의 말씀과 행동을 바라보고 따라 하다 보면 마침내 주님 은총의 도움으로 주님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p126)
우리가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은 그리스도뿐입니다. 마치 유리 뒷면에 주석이나 납을 칠해 놓아야 사물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려면 신성에 대한 묵상 아래 구세주의 거룩한 인성에 대한 묵상을 겸해야 합니다. 그러니 그분의 생애와 죽음은 우리가 매일 묵상하는 데 가장 적합하고 감미로우며 유익한 소재입니다.(p126)
우리가 빵과 함께 여러 가지 음식을 먹는 것처럼, 모든 기도와 행위를 하는 가운데 주님을 묵상해야 합니다.(p127)
묵상은 날마다 식사 전에, 되도록 이른 아침에 한 시간씩 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침 시간은 잠을 잔 뒤이기 때문에 정신이 가장 안정되고 맑을 때입니다.(p127)
모든 기도는 언제나 하느님 앞에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면 머지않아 기도가 신심에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 분명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p127-128)
☞ 하느님 앞에서 대화하듯이.
기도문을 빨리, 많이 외우려 하지 말고 기도문의 뜻을 마음에 새기면서 천천히 바치십시오. 주님의 기도를 정성 들여 한 번 바치는 것이 서둘러 여러 번 바치는 것보다 훨씬 더 유익합니다.(p128)
묵상할 시간이 전혀 없으면 화살기도를 바치거나 신심서적을 읽으십시오. (p129)
묵상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것이 습관화되지 않도록 다른 수행으로 보충하고, 다음 날에는 반드시 묵상을 하겠다고 굳게 결심하십시오.(p129)
제2장 묵상의 준비단계1: 하느님 앞에 있음을 묵상함
내가 알려주는 묵상 방법에는 두 가지 준비 단계가 필요합니다. 첫째 단계는 하느님 앞에 있음을 느끼는 것이고, 둘째 단계는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p130)
첫째 방법은 하느님께서 어느 곳에서나 계시다는 것을 철저히 인식하는 것입니다. 온 우주는 물론 세상 어느 곳이든 하느님께서 참으로 존재하시지 않는 곳이 없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든, 어느 곳에 있든 하느님께서는 그곳에 계십니다.(p131)
신앙으로는 하느님께서 현존하심을 알아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가끔 이를 잊고 하느님께서 멀리 계시는 것처럼 행동하기 쉽습니다. 하느님께서 어느 곳에나 존재하신다는 진리를 알면서도 이 점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이 진리를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p131)
기도를 하기 전에는 언제나 “제가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에 당신이 계시고, 저승에 잠자리를 펴도 거기에 또한 계십니다.”“(시편 139,8)라고 외쳤던 시편 저자처럼 하느님께서 앞에 계심을 기억하십시오. (p131-132)
꿈속에서 하늘에 닿아 있는 층계를 본 야곱은 “진정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구나.”(창세 28,16) 하면서, 두려움에 싸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창세 28,17) 이 말은 야곱이 하느님께서 어디에나 계시다는 사실을 평소에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기 전에 온 마음을 다해 이렇게 외치십시오. “참으로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십니다.”(P132)
하느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둘째 방법은 하느님께서 지금 그대가 있는 곳에, 특히 그대 마음과 영혼 깊은 곳에 계심을 명심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영혼이 우리 몸의 곳곳에, 특히 마음과 정신에 있듯이, 하느님께서는 온 우주와 세상 만물, 그리고 특히 우리 영혼 안에 살고 계십니다.(P132)
시편 저자는 “제 마음의 반석, 제 몫은 영원히 하느님이십니다.”(시편 73,26) 하고 노래했고, 바오로 사도도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사도 17,28)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진리를 깊이 묵상하면 할수록 이처럼 친밀하게 우리와 일치하여 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마음속에서 저절로 우러나오게 될 것입니다.(P132)
셋째 방법은 구세주께서는 하늘나라의 옥좌에서 세상 모든 사람들, 특히 당신의 자녀인 신자들, 그 중에서도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고 계심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상상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비록 우리는 주님을 직접 뵐 수 없지만 그분께서는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십니다. (P133)
넷째 방법은 그대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인성을 취하신 구세주께서 그대 옆에 계시는 모습을 그려보는 것입니다. 어떤 친구를 생각하며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라고 말하듯이, 우리는 주님의 모습을 상상하며 주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할 정도로 주님의 모습을 상상해야 합니다. (P133)
제3장 묵상의 준비단계2: 하느님께 도움을 청함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에는 그대가 존엄하신 하느님 앞에 나아가기에 부당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을 지니십시오. (P135)
그대가 하느님 앞에 오게 된 것은 주님의 자비로우심 때문임을 깨닫고 묵상하는 동안 주님을 극진히 섬기고 흠숭하기에 필요한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주님께 간구하십시오. (P135)
“저는 당신의 종, 저를 깨우치소서. 당신의 법을 깨달으리이다.”(시편 119,125)
제4장 묵상의 준비단계4: 상상력으로 신비를 떠올림
묵상하려는 신비가 실재로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상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에 대해 묵상할 때에는 그대가 실제로 골고타에 있는 것처럼 상상하십시오. 십자가 아래서 주님께서 수난당하시는 것을 직접 보고 듣는 것처럼 상상하십시오.(p137)
제5장 묵상의 제2단계: 성찰
꿀벌들이 꿀이 남아 있는 한 다른 꽃으로 옮겨 가지 않는 것처럼, 한 가지 성찰에 집중하게 되거나 그 성찰이 유익하다는 판단이 서면, 다른 것을 성찰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노력을 했음에도 한 가지 성찰에 집중할 수 없으면 초조해하지 말고 차분하게 다른 것에 대해 성찰하십시오.(p139-140)
제6장 묵상의 제3단계: 결심
예를 들면,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라고 하신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을 본받아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겠다는 결심으로 그대의 영혼을 채워야 합니다.(p142)
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결심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막연한 결심이나 노력으로 쉽게 고칠 수 없는 결점들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p142)
제7장 마무리와 영적 꽃다발
묵상 끝에는 겸손한 마음으로 그대가 힘써해야 할 세 가지 일이 있습니다. 첫째는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대가 감동을 느끼고 결심하게 해 주신 것과 묵상 중에 깨달은 주님의 자비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p143)
둘째는 선하심과 자비하심, 아드님의 죽으심과 공로에 화합하는 그대의 결심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p143)
셋째는 당신 아드님의 죽으심의 공로를 나누어 주시기를 간구하고, 그대의 결심에 축복하시어 이를 실천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청해야 합니다.(p143)
또한 성교회와 성직자들과 친척과 친지들, 그밖에 여러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특히 모든 신자들에게 필요한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바치십시오.(p143)
어떤 신비에 대해 묵상했으면 그중 그대가 감동한 것을 성찰하고, 묵상했던 것 중에서 그대의 관심을 끌었거나 그대에게 유익한 두세 가지를 선택하여 그날 하루 종일 기억하며 그 영적 향기를 즐기십시오. 영적 꽃다발을 만드는 일은 묵상을 마친 뒤 바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 위의 순서대로 묵상을 이끌어줄 메뉴얼(양식)을 만들면 좋겠다.
제8장 묵상에 관한 몇 가지 주의사항
무엇보다도 유념해야 할 점은 묵상 중에 결심한 것을 그날 중에 실천하는 것입니다. 묵상의 가장 중요한 결실은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실천이 없으면 묵상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해가 되기도 합니다.(p145)
값비싼 술병에 귀한 술을 담아 집으로 가져가는 사람은 한눈팔지 않습니다. 발을 헛디디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앞만 보고 걸으며, 술을 흘릴까봐 술병이 흔들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천천히 발걸음을 옮길 것입니다. 이처럼 그대도 묵상이 끝나면 금세 마음을 분산시키지 말고, 그대가 가야할 길을 조용히 바라보십시오.(p146)
일상의 일이나 묵상 모두 하느님의 뜻이므로 무엇을 하든 겸손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p146-147)
주님과의 대화를 통해 결심하도록 해 보십시오.(p147)
제9장 묵상중 마음의 무미건조함
묵상 중에 아무런 위안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님께 큰 소리로 하소연하고, 그대가 부도덕한 존재임을 고백하며 도움을 청해도 됩니다.(p148)
아무리 애써도 전혀 위안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냉담해진다 하더라도 조금도 실망하지 말고 계속 경건한 태도를 유지해야 합니다.(p148)
은총도 주시지 않고 마치 당신 앞에 있는 우리를 못 본 체하시는 것처럼 느껴진다 해도 우리는 하느님 앞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조용히 인내하고 기다리면 반드시 주님께서는 우리의 근면과 인내를 보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p149)
비록 묵상으로 얻는 기쁨을 맛보게 해 주시지 않는다 해도 우리가 하느님 앞에 나아가 그분을 뵙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합니다.(p149)
제10장 아침영성수련
밤새 그대를 안전하게 지켜주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하느님을 거스른 행위에 대해 용서를 청하십시오.(p150)
오늘 하루는 그대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주신 시간임을 생각하고 보람있게 보낼 것을 굳게 결심하십시오.(p150-151)
오늘 하느님을 섬기고자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또 어떤 유혹에 빠져 주님의 뜻을 거역하게 될른지 미리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하느님을 섬기고 신심을 진보시키는 기회로 삼겠으며, 하느님의 구원사업과 영광에 방해가 되는 것은 피하거나 싸워 이기겠다고 굳게 결심해야 합니다.(p151)
그 다음에는 악을 피하는 일이나 선을 행하는 일은 그대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하느님께 겸손하게 말씀드리십시오. 또한 그대의 이러한 마음과 결심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도움을 청하십시오.(p151)
제11장 저녁 영성수련과 양심 성찰
하루 동안 그대를 보호해 주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드리십시오.(p154)
하루 종일 그대가 한 행동에 대해 성찰하십시오.(p154)
선행을 했으면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이와 반대로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죄를 범했으면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고, 틈나는 대로 고백성사를 보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결심하십시오.(p154)
그대의 영혼 육신과 성교회 그리고 친척과 친지들을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고, 성모님과 수호천사와 성인들에게 전구해 주시기를 청한 다음 하느님께 은총을 내려 주시기를 청하십시오.(p154)
이 수련은 아침 수련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해야 합니다. 아침 기도는 그대의 영혼에 정의의 태양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영혼의 창문을 여는 것이고, 저녁 기도는 밤사이 지옥의 암흑이 그대 영혼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영혼의 창문을 닫는 것입니다.(p154)
제12장 영적 은둔
하루 일과 중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하느님을 생각하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과 그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성찰하십시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늘 당신을 바라보고 계시며 언제나 그대를 보호하고 계십니다.(p155)
"오, 주님. 당신께서는 언제나 저를 바라보고 계신데 어찌하여 저는 항상 주님을 우러러보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늘 저를 생각해 주시는데 저는 왜 주님 생각을 조금밖에 하지 않는지 모르겠나이다.“ ”오! 내 영혼아, 너는 어디 있느냐? 네가 진정 쉴 곳은 하느님 곁인데 어디에 방황하고 있느냐?“ (p155-156)
새들은 높다란 나뭇가지 위에 둥지를 틀고, 사슴은 나무 그늘 아래서 뜨거운 태양빛을 피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안식처가 필요합니다. 골고타나 주님의 상처에서, 또는 틈나는 대로 주님의 곁에서 바쁜 세상사를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그곳을 세상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피난처로 삼으십시오. (p156)
주님을 향해 “주님께서는 나의 피난처, 나의 산성이시며, 비를 막는 지붕이시고 더위를 피하는 그늘이십니다.”(시편 91,2.9;61,4;62,3 참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p156)
그대 몸은 세상사에 매여 있지만, 그대 마음은 종종 피난처에 숨어 있어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로 말미암아 방해를 받을지라도 그대의 마음은 언제나 하느님 곁에 머물러야 합니다. 다윗은 분주한 가운데서도 늘 이러한 수행을 계속했습니다.(p156)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는 부모님의 방해로 기도할 곳이나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가타리나의 마음안에 작은 성당을 지어 주시어 아무리 바쁜 일과 중에라도 거룩한 은둔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성녀는 어느 누가 괴롭히더라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 비밀스런 작은 성당에 숨어 하늘에 계시는 배필이신 주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p157)
그래서 성녀는 그녀의 영적 딸에게 마음속에 작은 방을 만들어 그 안에서 수행하라고 권했다고 합니다. 그대도 때때로 주위 사람들과 떨어져 하느님과 만나 마음의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그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십시오.(p157)
다윗은 “저는 광야의 펠리칸과 같아지고, 폐허의 부엉이처럼 되었습니다. 저는 잠 못 이루어 지붕 위의 외로운 새처럼 되었습니다.”(시편 102,7-8)하고 하느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은 매우 뜻깊은 말이며, 묵상을 위한 다윗 임금의 은둔의 습관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는 또한 구세주의 모습을 상징하기도 합니다.(p157)
골고타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흘리시며 돌아가신 구세주께서는, 굶주린 자기 새끼에게 자기 피를 먹이는 광야의 펠리칸과 같으시고,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께서는 적막한 곳에서 슬피 우는 부엉이와 같으시며, 또한 승천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무리를 떠나 하늘로 날아가는 한 마리의 외로운 새와 같으십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피난처를 지으면 번잡한 세상사 가운데서도 그곳에 숨을 수 있습니다.(p157-158)
제13장 열망, 화살기도 그리고 선한 지향
우리가 하느님 곁으로 은둔하려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 곁에 숨으려는 것입니다.(p159)
화살기도를 통해서 우리 마음은 하느님과 친밀해지며, 우리 영혼은 하느님 현존의 향기에 흠뻑 젖게 됩니다. 화살기도는 세상일을 하면서도 아무런 방해를 받지않고 쉽게 바칠 수 있는 기도입니다.(p160)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은 늘 연인을 생각하고, 입에서는 연인을 칭찬하는 소리가 그치지를 않습니다. 떨어져 있을 때에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리움을 달래고,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나무에 새기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도 이처럼 끊임없이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위해 살며, 주님을 열망하고 주님에 대한 말을 합니다.(p161)
‘해변의 조개껍질처럼 나약한 사람들은 운명의 물결이 밀어닥칠 때 이리저리 흔들리는구나. 이와는 달리 우뚝 서있는 저 바위처럼 신심이 굳건한 사람들은 폭풍우 속에서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그 순간 그레고리오 성인의 머릿속에 시편의 기도가 떠올랐습니다. “하느님, 저를 구하소서. 목까지 물이 들어찼습니다. 깊은 수렁 속에 빠져 발 디딜 때가 없습니다. 물속 깊은 곳으로 빠져 물살이 저를 짓칩니다.(시편 69,2-3) 이때는그레고리오 성인이 막시모에게 주교좌성당을 빼앗기고 무척 괴로워하고 있을 때였습니다.(p163)
☞ 지금 진도에서 세월호 침몰로 실종자 287명의 생사가 갈림길인 상황인데, 그들의 처지가 어쩌면 이 시편과 같은지...주님,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위대한 바실리오 성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미꽃에 가시가 있듯이 이 세상 아름다운 것에도 슬픔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즐거움 뒤에는 후회가 따르고, 결혼한 뒤에는 배우자를 잃고 홀아비나 과부가 될 때가 찾아오며, 아이를 낳으면 근심거리가 생기기 마련이고, 영광 뒤에는 치욕이 따르기 마련이며, 즐겁게 지낸 다음에는 불쾌감이 생기고, 건강하다가도 병에 걸릴 수 있다. 장미꽃은 정말 아름답지만 나를 슬프게 한다. 왜냐하면 이 땅에 가시덤불을 돋게 한 원죄를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p164-165)
프란치스카 성녀는 어느 날 아름다운 시냇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황홀경에 빠져 “하느님의 은총은 이 맑은 시냇물처럼 고요하고 감미롭게 흐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p166)
선한 지향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이런 평범한 일상에서 비롯됩니다. 피조물을 창조주 하느님으로부터 이탈시켜 죄악에 이용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창조주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 찬송하도록 피조물을 돕는 사람에게는 큰 축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 성인은 “나는 세상 만물을 나의 영적 진보에 이용한다.”라고 말했습니다. (p166)
화살기도는 영적 은둔과 더불어 신심이 진보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p167)
화살기도 없이는 관상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으며, 노력을 한다 해도 헛수고가 될 것입니다. 화살기도가 없으면 휴식은 나태로 변하고, 노력을 해도 초조함이 더할 것입니다. (p167)
제14장 미사 참여때의 유의사항
모든 영적 수련의 태양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은 희생이며, 희생 중 가장 큰 것은 희생의 성사인 미사성제입니다. 미사성제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이고 신심과 경건한 행위의 핵심이며, 하느님 사랑의 깊이를 드러내는 가장 심오한 신비입니다. 미사를 통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나누어 주시고 풍부한 은총을 쏟아 주십니다.(p168)
그대는 매일 미사성제에 참여하여, 사제와 함께 그대와 온 성교회를 위해 구세주의 존귀하신 희생을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해야 합니다. (p169)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의 말씀처럼 미사 때 제단을 에워싸는 무수한 천사들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미사에 참례한다면 좋은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p169)
제15장 기타 공적 신심
될 수 있는 대로 성무일도와 저녁기도를 열심히 바치십시오. 특히 하느님께 봉헌하는 날인 대축일과 주일에는 그분의 존엄하심과 영광을 위해 다른 날보다 더 많은 기도와 신심 행위를 바치려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그대는 많은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p172)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그의 저서 ≪고백록≫에서 자신이 회개한 뒤 처음 얼마동안은 성무일도를 마칠 때마다 감동하여 행복에 겨운 눈물을 끊임없이 흘렸다고 합니다.(p172)
하느님께서는 공적 신심을 기쁘게 받아들이십니다. 성교회에서 명하는 공적 신심은 개별적인 신심 행위보다 훨씬 더 효과가 있고 더욱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p172)
그대는 개인적으로 본받고 싶은 수호성인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인의 삶을 특별히 연구하고 모방해도 됩니다. 또한 그분께 특별히 당신을 위한 기도를 청해도 됩니다. 세례를 받을 때 정한 이름의 성인은 자연스럽게 그대를 보호해 주는 수호성인입니다.(p176)
제17장 하느님의 말씀 듣기와 읽기
‘이 모든 것을 당신 마음에 간직하셨던’(루카 2,51참조)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말씀이 헛되이 땅에 버려지지 않게 그대의 마음속에 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강론 말씀을 경청하듯이,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p177)
유익한 신심 서적을 늘 지니고 다니십시오. 매일 경건한 마음으로 읽고, 그것들을 마치 그 성인들이 천국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고 용기를 주고자 천국에서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여기십시오.(p178)
또한 그리스도교 생활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는 성인전을 애독하십시오. 그대가 놓인 상황에 따라 성인들의 언행을 본받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성인들의 언행을 완전히 따를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그대로 따를 수 있습니다.(p178)
제18장 성령의 감도
감도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원의와 의욕, 꾸짖음과 뉘우침, 광명과 지식을 가리킵니다.(p180)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강복하시고, 우리에게 선행을 하도록 권하시며,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그리워하게 하심으로써 선한 결심을 하게 만드십니다. 또한 우리를 영원한 행복으로 인도하시며 모든 행복에 대한 원의로 우리 마음을 불타게 하십니다.(p180)
외적 감도라고도 할 수 있는 하느님의 말씀을 기쁘게 듣는 것만으로도 이미 좋은 징조가 시작된 것입니다. 내적 감도를 받고 기뻐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더욱 맞는 것입니다. 아가서에서 여자가 “나의 연인이 문틈으로 손을 내밀자 내 가슴이 그이 때문에 두근거렸네.”(아가 5,4)하고 노래하는 것이 바로 이 기쁨입니다. 남자도 사랑하는 여인이 마음으로 기뻐하는 것을 알면 틀림없이 만족할 것입니다.(p182)
하느님께서 주신 감도를 하늘의 임금님께서 그대에게 청혼하려고 보내신 전갈로 알고 기쁘게 받아들이십시오. 평화로운 마음으로 그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대에게 감도를 베푸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거룩한 감도를 받게 된 것을 기뻐하십시오. 사랑의 마음을 담아 이 감도에 확실하게 동의하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에 대한 그대의 애정을 기쁘게 여기실 것입니다.(p183)
일단 감도를 받으면 그 효과를 얻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감도받은 대로 실천하면 덕을 쌓을 수 있습니다. 감도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실천하지 않으면 포도나무를 심고도 열매를 수확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아침 기도와 영적 은둔이 이를 실천하는 최상의 방법입니다.(p183)
제19장 고해성사
주님께서는 성교회에 고해 성사를 설정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언제 어떤 식으로든 죄를 범할 수 있으므로, 용서를 통해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p184)
죄를 지은 사람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모든 것을 보고 계시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한시라도 빨리 그 더러움을 씻어 내야 합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확실한 길이 있음에도 영적 죽음을 초래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p185)
양심의 가치를 느낄 정도로 큰 죄를 짓지 않았다 해도, 매주 또는 성체를 영하기 전에 겸손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고해성사를 받으십시오. (p185)
겸손과 순명, 순박함과 애덕을 수행하고 있지만, 죄를 고백하는 것만으로도 그 무엇보다 훌륭한 덕을 수행하는 것이 됩니다.(p185)
☞ 그러기위해서는 먼저 ‘영혼의 일기’를 써야겠다.
아무리 작은 죄라도 진심으로 뉘우치며 고백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확고하게 결심해야 합니다. 개선하려는 결심도 없이 습관적으로 또는 형식적으로 소죄를 고백함으로써 크나큰 영적 이익을 잃는 사람들이 많습니다.(p185)
악의 없는 거짓말이나 부주의한 말들, 과도한 재미에 빠져 있음을 고백할 때에도 이를 뉘우치고 개선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대죄든 소죄든 모두 버리겠다는 굳은 의지 없이 죄를 고백하는 것은 고해 성사를 남용하는 것입니다.(p185)
구체적인 사실을 성찰하여 단순하고 솔직하게 고백하여야 합니다. 그대가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면, 도와줄 수도 있었음에도 간절히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도와주지 않았음을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그 이유가 무관심 때문이었는지 또는 그 사람을 경멸하는 마음 때문이었는지 들을 밝혀야 합니다.(p186)
소죄를 고백할 때에도 사실만 고백하지 말고 죄를 짓게 된 이유까지 고백하는 것이 좋습니다.(p186)
다달이 또는 두 달에 한 번,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해도 그대의 상태와 성향, 예를 들면, 괴롭고 슬픈 일, 기쁘고 즐거운 일, 재정 상태 등과 같은 것에 대해서도 상담하는 것이 좋습니다.(p188)
제20장 영성체
구세주께서 당신의 살과 피로 지극히 거룩한 성체 성사를 설정하신 목적은 당신의 성체를 영하는 사람들을 영원히 살게 하시려는 데 있습니다.(p189)
우리의 영혼이 살아 있는 성체를 영하면 죽음의 세력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생명의 나무를 주셔서 우리의 조상이 낙원에서 죽지 않았던 것처럼 이 생명의 성사는 우리를 죽지 않게 할 것입니다.(p190)
제21장 영성체를 위한 준비
꿀벌이 꽃에서 하늘의 이슬과 땅의 가장 감미로운 즙을 모아 꿀을 만들듯이, 사제는 천상에서 제대 위로 내려오신, 하느님의 외아들이시며 지상에 사는 인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신 동정 성모님의 아들이신 구세주를 그대의 입을 통해 그대의 영혼에 감미로운 음식으로 나누어 줍니다.(p195)
하느님께서는 가장 소중한 사랑을 그대에게 주시니, 그대도 이 사랑을 의식하고 소중히 받아 모셔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성사를 통해 스스로 당신을 낮추시어 우리의 음식이 되시고, 우리 영혼 안에 들어오시어 우리와 한마음이 되십니다.(p196)
산토끼들은 흰 눈 속에 있기 때문에 겨울 산속에서 더욱더 하얗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름답고 선하시며 가장 순수하고 거룩한 성체 성사를 늘 흠숭하며 그대 안에 모시면, 그대 또한 사랑스럽고 순수하며 거룩하게 될 것입니다.(p196-197)
제3부 수덕
제1장 덕행의 선택1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은 ‘제때에 열매를 내는, 시냇가에 심겨져 있는 나무’(시편 1,3참조)와 같다고 했습니다. 영혼에 물을 주어 새롭게 해주면, 사랑은 제때에 맞춰 튼실한 열매인 덕이 생겨나게 합니다.(p201)
성경에서 “때에 맞지 않은 말은 초상집에 풍악과 같다.”(집회 22,6)하고 말했듯이, 어떤 사람이 덕을 깊이 연구하여 실천하면서 이를 남에게 똑같이 강요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p201-202)
사람은 누구나 덕을 길러야 하지만, 그 덕이 모두에게 동일할 수는 없습니다. 모름지기 자신에게 합당한 자질과 덕을 길러야 합니다.(p203)
특히 일정한 덕을 택하여 꾸준히 수행하는 것이 그대의 신심에 유익합니다. 이는 다른 덕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목표를 갖고 일관되게 수행하려는 것입니다.(p204)
교부 카시아노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한 신심 깊은 소녀가 아타나시오 성인에게 인내의 덕을 쌓는 방법을 묻자, 성인은 변덕이 심하고 늘 불평을 일삼는 한 노파의 시중을 들게 함으로써 그 소녀가 온유와 인내의 덕을 닦을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p205-206)
제2장: 덕행의 선택2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신심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하기 쉬운 실수가 완덕에 이른 사람들에게는 결점이 될 수 있겠지만, 이는 장차 그 사람이 진보할 수 있는 계기와 바탕이 될 것이므로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했습니다.(p208)
비록 결점이 다소 있다 해도 덕을 기르고자 노력하는 사람을 좋게 생각해야 합니다. 성인들도 역시 그랬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결점이 있다 해도 충실하고 신중하게 덕을 기르는데 힘쓰고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며, 우리 자신의 지혜를 과신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지도자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p210-211)
영성서적 중에는 여러 가지 신비 상태인 황홀경, 탈혼, 신비적 일치, 공중 부양, 모습 변화 등에 대해 기술한 책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신비 상태는 절대로 덕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덕에 대한 상으로 주시는 것입니다.(p211)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느님께서 천국에서 누릴 수 있는 영생의 기쁨을 사람들이 갈망하게 하시려고 잠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은총을 얻으려는 원의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특수한 은총이 우리의 유일한 목적, 곧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은총은 우리의 노력이나 의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p211)
☞ 평소에 궁금했던 것이다. 이런 신비 체험은 하느님이 주시는 보너스같은 것이다.
영광의 임금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종들에게 지위에 따라 상을 주시지 않고 그들이 행하는 사랑과 겸손을 보시고 상을 주십니다.(p212)
제3장 인내
주님께서 당신 수난으로 우리를 구하셨으니, 우리도 온갖 불의와 고생과 불행을 인내하고, 고통과 비애를 견뎌 냄으로써 우리 영혼의 구원이 성취된다는 진리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p214)
진정한 인내심이 강한 하느님의 종은 명예와 관계없이 모든 고통을 감수합니다. 그런 사람은 악인에게 조롱과 비난과 괴롭힘을 당해도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훌륭한 사람이나 친구, 친척에게 무시당하는 것을 참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내입니다.(p215)
파리보다 벌에 쏘이는 것이 더 아픕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훌륭한 사람이나 믿었던 사람에게서 받는 비난과 공격은 다른 이로 말미암아 받는 고통보다도 훨씬 더 견디기 힘듭니다. (p215)
지금 불행하다면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모든 방법으로는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십시오. 이러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 뒤에는 온전히 인내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처분을 기다리십시오. (p216)
만일 그렇게 해서 불행이 물러갔다면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그대에게 닥친 불행이 주님의 거룩한 뜻에서 생긴 것이라면 이를 인내하고 하느님을 찬미하십시오.(p217)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 성인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그대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게 되면, 그러한 비난을 받아도 마땅함을 겸손하게 고백하고, 만일 그 비난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를 부인하고 조용히 해명하십시오.(p217)
그러나 그대가 정직하게 해명을 했음에도 여전히 비난을 받게 되어도 결코 괴로워하거나 다시 해명하려 하지 말고, 진실로 겸손한 마음을 가지십시오.(p217)
☞ 이 글을 읽은 날 똑같은 경험을 했고 나는 해명했고, 겸손한 태도로 대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그대를 괴롭히더라도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일반적으로 자기애가 강하면 더욱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면 죄를 짓기 쉽습니다. 특히 쉽게 흥분하고 화를 잘 내는 사람에게는 화를 내지 마십시오.(p217)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요한 16,21) 그대 영혼에 잉태되신 분은 세상에서 가장 귀하신 아기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대 영혼에서 태어나실 때까지 그대는 산고를 겪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고통이 지나면 아기를 낳은 기쁨이 영원할 것이니 용기를 내십시오. 그분은 진정으로 그대를 위해 태어나실 것입니다. 그분이 사랑으로 당신 마음에 오시면 당신의 행동은 그분을 닮게 됩니다.(p219)
아플 때에는 그대의 아픔과 고통과 약함을 모두 주님께 바치고, 그대의 고통으로 그대를 위해 견디신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십시오.(p219)
알몸으로 십자가에 달려 사람들에게 온갖 모욕과 조롱을 받으시고 비탄과 슬픔에 짓눌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대가 주님을 위해 받는 그 어떤 고통도 그대를 위해 주님께서 견디신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고, 주님을 위해 온갖 고통을 감수한 옛 순교자들이 그대가 받는 고통보다 더욱 심한 고통을 견뎌냈고 또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고통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p220)
“위로해 줄 사람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으며, 견디기 힘든 괴로움과 참혹한 고통 속에서 끊임없이 죽음을 맛보고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나의 고통은 장미의 가시에 찔린 것에 불과하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p220)
☞ 세월호에 갇힌 실종자들의 상황이 왜 이렇게 절실하게 떠 오를까?(2014.4.19)
제4장 외적 겸손
겸손은 사탄을 쫓고 우리에게 성령의 은총을 고이 간직하게 합니다. 바로 이 때문에 모든 성인들과 특히 성인들의 임금이신 주님과 모후이신 성모님께서는 겸손을 다른 덕보다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p221)
어떤 사람이 현명하고 학식이 있으며 어질고 귀한 사람인지 알고 싶으면, 그의 삶이 겸손하고 온화한지를 보면 됩니다.(p223)
아름다움이란 그것에 집착하지 않을 때 더욱 매력이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하면 매력을 잃게 되며, 학식을 자랑하면 신뢰를 잃고 현학자로 전락하고 맙니다. (p223)
공작새가 자기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려고 거만하게 날개를 높이 치켜세우면 보기 흉한 부분까지 드러내 보이게 됩니다. 연꽃 향기는 멀리서 잠시 맡으면 매우 상쾌하지만,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맡으면 오히려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워집니다. 이처럼 명예도 애써 구하지 않고 그저 음미하기만 하면 향기롭지만 그것에 집착하거나 탐닉하려 하면 악취를 풍기기 십상입니다.(p224)
덕을 쌓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선을 향한 첫걸음이지만, 명예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멸시와 수치를 향하는 첫걸음입니다.(p224)
제5장 내적 겸손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가르침대로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는 참된 방법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을수록 우리는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게 됩니다.(p225)
자비로우신 하느님 앞에서 풍성한 은총을 생각하는 것보다 더 겸손한 것은 없으며, 공의로우신 하느님 앞에서 우리가 지은 수많은 죄를 깨닫는 것보다 더 겸손한 것 또한 없습니다.(p226)
성모님께서도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위대한 일을 행하심을 고백하시면서 당신을 낮추시고 하느님을 찬미 하셨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6-48) (p227)
참으로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비하하지도 않고, 또 자신이 겸손하다고 과시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겸손함을 숨기려 할 뿐만 아니라 다른 덕들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p228)
우리는 겸손을 말로 드러내지 말아야 하며, 어쩔 수 없이 말로 표현해야할 경우에는 말하는 것에 부합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시선을 내리기에 앞서 마음을 낮추고, 기쁜 마음으로 말석에 가고 싶지 않으면 상석을 사양하는 척하지 마십시오.(p228)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 “당신은 쓸모없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들어도 결코 마음에 담아 두지 않습니다. 그런 말을 들어도 부인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도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p228-229)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주시려할 때 이를 거절하는 것은 교만에 불과합니다.(p230)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의무가 있습니다. 하느님께 순종하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분의 거룩하신 뜻에 따르는 것이 참된 겸손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은 우리가 완덕에 이르고, 하느님과 일치하며, 최선을 다하여 하느님을 본받으려는데 있습니다.(p230)
겸손은 우리가 지닌 다른 모든 덕과 능력을 숨기고 있다가 사랑을 실천하는 데 필요할 때에는 그것을 드러냅니다.(p231)
나는 현명한 체하지 않으며 어리석은 척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명하는 체하는 것이 겸손을 거스르는 행위라면, 어리석은 사람처럼 행세하는 것은 순수와 진실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p232)
다윗이 임금으로서 위엄을 내세우지 않고 계약 궤 앞에서 춤을 춘 것은 어리석은 사람처럼 해동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의 마음속에 있는 무한하고 특별한 기쁨의 표현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미칼이 그의 행위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다윗 임금은 하느님께 축복받은 데 대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밝히면서 하느님을 위해서라면 멸시받아도 좋다고 말하면서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2사무 6장 참조) (p232)
참된 신심 수행 때문에 사람들이 그대를 멸시한다면, 그것은 그대의 잘못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잘못이니 안심하고 다윗 임금을 본받아 그 복된 멸시를 받게 된 것을 겸손한 마음으로 기뻐하십시오.(p232)
제6장 겸손과 비천함
비천함이란 원래 우리의 평가와 관계없이, 우리 자신의 작고 보잘것없음을 나타내는 말이고, 겸손이란 자신의 비천함을 인식할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를 실천하고 사랑하는 덕입니다. 또한 완전한 겸손은 자신의 비천함을 인식할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를 실천하고 사랑하는 덕입니다.(p234)
팔에 종기가 난 사람은 종기로 말미암은 아픔만 참으면 되지만, 얼굴에 종기가 난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혐오와 반감을 사는 고통까지 감수해야 합니다. 내가 그대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은 우리가 단지 인내를 통해 고통을 극복해야할 뿐 아니라 겸손을 통해 비천함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p235)
어리석은 행동이나 실수 같은 것은 미리 정신 차리고 조심해야겠지만, 일단 실수를 한 뒤에는 타인으로부터 비난을 받아도 이를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p236)
사려 깊지 못하거나 어리석은 탓으로 남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에는 진심으로 용서를 청하고 잘못을 바로잡고자 노력해야 합니다.(p237)
시편 저자처럼 “하느님 집 문간에 서 있기가 악인의 천막 안에 살기보다 더 좋습니다.”(시편 84,11) 하고 말할 수 있는 은총을 주님께 베풀어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p238)
우리에게 이 덕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우리를 높은 곳으로 인도하시려고 ‘사람들의 우셋거리, 백성의 조롱거리’(시편 22,7)로 사시다 돌아가신 우리 주님뿐이십니다.(p238)
제7장 겸손 실천과 명성 보존
오직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자 명성을 지키십시오. 하느님만이 우리 모든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이시기 때문입니다. (p240)
머리카락을 뿌리째 뽑아 버리면 다시 나기 어렵지만, 이를 자르고 다듬어 주면 잘 자랍니다. 그러므로 시편 저자가 말한 ‘날카로운 칼과 같은 혀’(시편 52,4참조)를 가진 독설가로부터 그대의 명성이 깎이는 일이 있어도 조금도 상심하지 마십시오. 그 명성은 전보다 더 아름답고 견고하게 자라날 것입니다.(p243)
그대가 경건한 행위와 신심 수행으로 말미암아 비난받고 모함 받는다면 조금도 신경 쓰지 말고 그들이 비난하도록 그냥 두십시오. 그런 사람들은 달을 보고 짖어 대는 강아지와도 같습니다. 그들이 그대의 인품에 관해 악평을 퍼뜨림으로써 그대의 명성이 한순간 깎인다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회복될 것입니다. 포도나무의 곁가지를 쳐 줌으로써 열매가 한층 더 풍성하게 맺히듯이 독설의 칼날은 오히려 그대의 명성을 두텁게 할 것입니다.(p243)
언제나 순수하고 신뢰하는 마음으로 십자가 위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간혹 명성이 실추되는 일이 있다면, 이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겸손을 주시려고 시련을 겪게 하시는 것입니다. 거룩한 겸손은 세상의 어떤 명성보다 더 귀중합니다.(p243-244)
이유 없이 타인으로부터 비방을 받으면 먼저 그 모함에 대해 조용히 해명하십시오. 그래도 그들이 완고하게 우긴다면 끝까지 겸손하게 해명하십시오. 그러나 그대의 명성과 영혼을 지켜줄 가장 확실한 피난처는 하느님밖에 없습니다.(p244)
그러나 어떤 죄악에 관계된 모함을 받았을 경우에는 침묵을 지켜서는 안 됩니다. 이 모함에서 정당하게 벗어날 수 있다면 이를 강하게 부인해야 합니다.(p244)
제8장 온유와 분노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애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9) 겸손은 하느님께서 마음에 들어하시는 삶을 살게 하고, 온유는 이웃들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게 합니다.(p245-246)
온유와 친절은 실로 사랑의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르나르도 성인은 인내뿐 아니라 온유와 친절의 덕을 갖추어야 완덕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p246)
참된 겸손과 온유의 덕을 지닌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무시를 당해도 아파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p246)
☞ 특히 가까운 이로부터 무시를 당했을 때, 얼마나 힘든가?
우리의 허물을 따끔하게 지적하는 사람이나 우리를 적대시하는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때 교만하게 반박하고 화를 낸다면, 우리의 겸손과 온유가 참된 것이 아니고 가식적인 것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p247)
이 ‘눈물의 골짜기’는 영원한 행복의 집을 향해 가는 여정에 불과합니다. 길에서 싸우지 말고 우리 형제이며 친구인 이웃들과 다정하고 평화롭게 걸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대에게, 될 수 있는 대로 어떠한 일에도 분노를 터뜨리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그대 마음에 분노를 일게 하는 어떠한 구실도 만들지 마십시오. 야고보 사도는 예외를 두지 않고 “사람의 분노는 하느님의 의로움을 실현하지 못합니다.”(야고 1,20)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p247)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프로후투로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정당하고 사소한 분노라 해도 우리 마음 안에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 일단 들어온 것을 내쫓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작은 씨앗 하나가 자리를 잡고 싹이 트면 자라서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분노도 사람의 마음 안에 들어와 터를 잡으면 제거할 수 없게 된다.” (p248)
분노는 해가 저물어 밤이 되면 미음으로 변하기 때문에 이를 쉽게 물리칠 방법을 찾기 어렵습니다. 또한 분노를 터뜨리는 사람은 자신의 분노가 잘못된 것인 줄도 모르고 끝없이 그릇된 생각을 하게 됩니다.(p248-249)
자신의 분노를 정당화하지 말고 절대로 화를 내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의 그릇된 성향과 나약함으로 말미암아 분노의 충동을 느끼면 주저하지 말고 신속하게 이를 몰아내십시오. 마치 뱀이 어느 틈이든 머리만 들이밀면 결국에는 온몸이 그 틈으로 들어갈 수 있듯이,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분노가 마음속으로 기어들어와 그 마음을 지배하게 됩니다.(p249)
분노를 느끼는 순간 과격하거나 거칠게 대응하지 말고, 평정을 유지하면서 신중하게 처신하십시오. 마치 회의 중에 “시끄러워요. 조용히 하세요!”라고 고함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장내를 더 소란하게 만드는 것처럼, 화를 내면 전보다 더 마음이 혼란스러워집니다. 마음이 불안한 상태에서는 결코 자신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p249)“
백발이 된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청년 주교 아욱실리오에게 한 다음과 같은 조언을 따르십시오. “그대는 다만 그대의 본분만 이행하라. 그대가 분노하여 소리치고 싶을 때에는 진노하신 주님께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기도했던(시편 6편 참조) 시편 저자를 본받아 주님께서 오른손을 펴시어 그대의 분노를 가라앉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라.”(p250)
분노 때문에 그대의 마음이 흔들릴 때에는 호수 한복판에서 폭풍을 만났던 사도들처럼 주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잠잠하라고 명하시면 분노가 사라지고 마음에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p250)
그대를 화나게 한 사람에게 즉시 온유하게 대하십시오. 거짓말을 했을 때에는 곧바로 사실을 밝히는 것이 상책인 것처럼 화를 냈을 때에는 그 즉시 분노와 반대되는 온유한 행동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p250)
☞ 이 책을 읽는 동안 실제 상황이 또 발생한다. 그런데 실천하기가 어렵다.
제9장 자신에 대한 관용
온유를 기르는 방법 중 하나는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자신과 자기 결점에 대해 너그러워지는 것입니다. (p252)
아버지가 자식을 꾸짖을 때 화를 내기보다 점잖고 사리에 맞게 훈계하는 편이 훨씬 더 효과가 있듯이, 어떤 죄를 범했을 때에도 자신을 너무 심하게 자책하거나 분노하기보다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잘못을 보속하겠다는 결심을 세워야 합니다. (p253-254)
좌절한 일에 대해 당황하지 마십시오. 병이 들면 몸이 쇠약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저 다시 용기를 내어 하느님의 말씀을 저버린 죄를 깊이 뉘우치십시오.(p255)
제10장 열성과 노심초사
조심성과 열성은 하늘에서 내려 주신 애덕의 결과이지만, 걱정과 초조함은 하늘나라의 행복과 상반되는 것입니다. 대체로 조심성과 열성은 마음의 평화와 고요함과 공존할 수 있으나 걱정과 초조함은 그럴 수 없습니다.(p256)
주님께서는 마르타를 타이르실 때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루카 10,41)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마르타가 그저 열심히 일만 했다면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았겠지만, 불안한 나머지 걱정하고 너무 조바심을 내다가 주님께 이런 책망을 들은 것입니다.(p257)
일을 할 때에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십시오. 그대가 계획한 일의 성취 여부는 하느님의 섭리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하느님을 신뢰하고 하느님의 신뢰에 따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그 결과가 어떻든 그대 자신을 위해 가장 유익한 것이라고 굳게 믿어야 합니다.(p258)
세상일을 하는 중에도 언제나 정신적인 여유를 가지고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십시오.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이 희망의 항구를 향해 노를 저어 갈 때 높은 하늘을 쳐다보듯이, 아주 중요한 일을 맡아 온 정신을 집중해야할 때에 자주 하느님을 우러러보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그대와 더불어, 그대 안에서, 그대를 위해 섭리하시어, 그대의 노력이 알찬 결실을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p259)
제11장 순명
우리를 완덕에 이르게 하는 것은 오직 애덕의 힘이지만, 이 애덕을 얻으려면 순명, 정결, 청빈이라는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p260)
순명은 우리 마음을, 정결은 우리 몸을, 청빈은 우리 소유물을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위해 봉헌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덕은 십자가 영성의 가지들로서, 네 번째 가지인 겸손보다 앞서는 것입니다.(p260)
많은 공로와 은총을 받고자 덕을 쌓으려고 서원하지만, 서원을 한다고 우리가 완덕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덕을 실천해야 완덕에 이르는 것입니다.(p261)
순명은 아름다운 덕이므로 원하지 않는 어렵고 괴로운 일까지도 순명해야 합니다.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순명으로 하십시오.(p262)
특히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명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성부께 순명하셨습니다(필리 2,8참조). 베르나르도 성인의 말대로 주님께서는 순명을 위해 당신의 생명까지 버리셨습니다.(p262)
제12장 정결
결혼 생활에서의 정결은 성욕을 완전히 끊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正道)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허용된 성욕을 나약한 인간성 때문에 정도를 벗어난 쾌락의 도구로 남용하면 방탕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p267)
우리는 정결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뵐 수 없고, 마음이 순결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거룩한 장막 안에 살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라고 말씀하셨습니다.(p269)
제13장 정결 보존
인간의 육체는 유리그릇처럼 서로 부딪치면 깨질 위험이 있습니다. 아무리 신선하고 잘 익은 과일도 힘을 주어 누르면 곧 상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장난이든 애정 표현을 위해서든 이성끼리는 신체적인 접촉을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그 접촉이 악의가 없는 가벼운 것이라 해도 그것을 계기로 정덕이 훼손될 수 있습니다.(p270)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대는 품행이 단정하지 않은 사람과 절대로 교제하지 마십시오. 행동이 신중하지 않은 사람 중에는, 추잡한 짓을 일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p272)
남녀를 불문하고 부정한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듣는 사람들의 정덕은 손상됩니다. 그들의 눈과 입김에 독사처럼 독을 품고 있습니다. (p272)
그대는 덕이 높고 순결한 사람과 교제하며, 자주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고 읽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순결한 말씀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순결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느님의 말씀을 정욕의 격정을 풀어 주는 황옥에 비유했습니다.(p272)
그대는 영적인 묵상과 영성체를 함으로써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그대 곁에 가까이 모셔야 합니다.(p272)
제14장 풍요와 가난한 마음
재물은 집안과 지갑에 넣어두되 그대 마음속에는 절대로 쌓아 두지 마십시오. 재물이 있지만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재물을 유익하고 바르게 써서 후세를 위한 청빈의 공로를 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p274)
그대가 재산을 잃고 몹시 애통해하며 슬퍼한다면, 그것은 재산에 대한 미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슬퍼하고 한탄하는 것은 잃어버린 물건에 대한 집착 때문일 것입니다.(p277)
제15장 부유한 환경속에서 가난한 마음을 지니는 방법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재산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하느님께서 주신 것입니다.(p279)
그대는 재산 중 일부를 언제든지 기꺼이 포기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줄 알아야 합니다. 가진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많이 나누어 줄수록 그대는 청빈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후세에서뿐만 아니라 현세에서도 그대의 자선 행위를 보상해 주십니다.(p280)
가난을 사랑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십시오. 그대는 가난한 이들을 사랑함으로써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이 됩니다. 성경 말씀대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아지기 때문입니다.(p280)
재물이 우리 마음에 뿌리 깊게 박혀 있으면, 폭풍우나 도둑이나 소송인 등에게 재산을 빼앗길 때 얼마나 큰 분노와 고통을 느끼겠습니까? 그러나 이와 달리 하느님의 거룩한 뜻에 따라 재산을 관리하고 지킨다면, 타인에게 재산을 빼앗긴다 해도 그 일 때문에 마음의 평정을 온전히 잃지는 않을 것입니다.(p284)
제16장 가난 중의 정신적인 부유
그대에게는 선량한 동료들이 있으니 실망하지 마십시오.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사도들과 수많은 성인들께서 모두 가난한 생활을 하셨고, 풍족한 경우에도 재물에 연연해하지 않으셨습니다.(p285)
그대가 요청하거나 애를 쓰지 않았는데도 이처럼 귀한 청빈의 덕이 그대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시어 가난한 삶을 사시다가 가난하게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스런 동반자로서 그분의 삶을 본받으십시오.(p286)
우리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비우고 작아질수록 하느님의 것은 더욱 커지기 마련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기쁘게 받아들이면 가난의 고통은 그만큼 정화됩니다.(p286)
우리는 가난을 불평하거나 한탄해서는 안 됩니다. 한탄한다는 것은 가난을 싫어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우리가 가난을 싫어하면 우리는 이미 청빈의 정신을 잃고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p287)
제17장 해롭고 그릇된 우정
제18장 연애
제19장 진실한 우정
내가 말하려는 것은 단순히 모든 사람을 향한 우리의 의무로서의 사랑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신심과 영적 희망을 함께 나누며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영혼을 결합시키는 영적 우정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축복을 받은 사람이 “보라,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거운가, 형제들이 함께 사는 것이!”(시편 133,1)하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도 당연합니다.(p297)
세상에 살아가면서 신심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거룩하고 특별한 우정을 맺을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정을 통해 서로 격려하고 도우며, 선을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야를 걸어갈 때에는 서로 손을 잡을 필요가 없지만, 미끄러운 산길을 오를 때에는 손을 잡아끌어 주어야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듯이, 험난한 길이 많은 이 세상에서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우정이 필요합니다.(p298)
제20장 진실된 우정과 그릇된 우정의 차이점
일반적으로 세속 우정에는 꿀처럼 지나치게 달콤한 말, 열정적인 속삭임, 아름다운 모습과 우아한 자태, 그 밖에 육감적인 매력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룩하고 영적인 우정은 담백하고 단순하며, 거기에는 모든 덕의 유일한 바탕이신 하느님의 은총을 찬미하는 대화만 있을 뿐입니다.(p302)
순수한 우정은 상대에게 충실하고, 예의바르고 정중하며, 친절하게 대하고, 하늘나라에서의 축복받은 우정의 형태인 완전하고 순수한 일치를 추구합니다.(p303)
성모님께서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에게까지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셨습니다. 천사가 혼자 있는 그분에게 극찬하는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p303)
오! 구세주님, 지극히 순결하신 동정녀께서는 사람의 모습을 한 천사도 경계하셨는데, 저희는 왜 부정한 이들의 관능적이고 인간적인 찬사를 경계하지 않는지 모르겠나이다.(p303)
제21장 그릇된 우정을 피하는 길
마음은 혀로써 자기 생각을 드러내고 귀를 통해 다른 사람의 사상을 흡수합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마음은 어느 틈엔가 그 독기를 들이마시게 될지 모릅니다. 경박한 말에는 절대로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그러고자 한다면 무례한 행동을 해도 괜찮습니다.(p305)
그대는 이미 그대의 마음과 사랑을 하느님께 바쳤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니 하느님을 모독하는 짓은 조금도 하지 마십시오, 끊임없이 새로운 결심과 맹세를 반복하면서 하느님께 간구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는 그대를 구원해주시고, 그대가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면서 살도록 당신 사랑으로 그대를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p305-306)
제22장 우정에 관한 다른 교훈
강가에서 사금을 채취하는 사람들이 황금과 모래를 분리하여 금은 취하고 모래는 강가에 버리듯이, 우정을 나눌 때에도 친구의 선한 점만 받아들이고 결점의 모래는 분리하여 버리십시오.(p311)
진정한 우정은 죄악에 빠져 있는 친구를 방관하지 않습니다. 불도마뱀이 불 속에 들어가면 불이 꺼지듯이, 우정 안에 죄가 개입되면 그 우정은 파괴되고 맙니다. 친구의 죄악이 일시적인 것이라면 우정 어린 충고로 죄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지만, 그 죄가 상습적인 경우에는 우정이 사멸될 수밖에 없습니다.(p312)
우정은 참된 덕의 기초 위에만 유지됩니다. 우정 때문에 죄를 짓게 한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죽이는 행위이므로 그와의 우정은 끊어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p312)
"절개없는 자들이여, 세상과 우애를 쌓는 것이 하느님과 적의를 쌓는 것임을 모릅니까?“(야고 4,4)
제23장 외적 고행
나는 자신을 새롭게 하려고 할 때마다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을 비롯한 외모를 먼저 바꾸려고 할 것이 아니라 내면부터 새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요엘 2,12)하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p314)
하늘에 계신 우리의 짝이신 주님께서는 우리 영혼에게 “인장(印章)처럼 나를 너의 가슴에, 인장처럼 나를 너의 팔에 지녀라.”(아가 8,6 참조)하고 말씀하십니다. 진정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간직하는 사람은 머지않아 그의 모든 외적 행위에서 이를 드러낼 것입니다.(p314-315)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그대 마음속에 사시면 그분은 그대의 모든 행위 안에서 사시며, 그대 몸의 곳곳에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대도 바오로 사도처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p315)
성경에는 아침이 하루 중 가장 유익한 시간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자 저녁에 일찍 자는 것이 현명합니다. 이른 아침 시간은 가장 상쾌하고 즐거우며 고요하여 기도하기가 가장 좋을 때입니다. 일찍 일어나면 건강에도 좋고 영적으로도 좋습니다.(p319-320)
제24장 대화와 침묵
다른 사람을 방문하거나 대화할 일이 없을 때에는 그대의 마음과 대화하십시오. 그러나 그대의 이웃이 그대를 찾아오거나 그대가 이웃을 방문할 때에는 따뜻하고 기쁜 마음으로 이웃과 대화하십시오.(p323-324)
무례하거나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아야겠지만 지나치게 침묵을 지키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p324)
훌륭하고 신심 깊은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언제나 유익한 것입니다. 올리브 나무 사이에서 자란 포도 열매에서 올리브 향과 맛이 나듯이, 덕이 있는 사람들과 교제하면 그들의 인격과 덕에 감화를 받게 될 것입니다. (p324)
☞ 성인은 풍부한 비유를 들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준다.
여왕벌 혼자서는 꿀을 만들 수 없지만 꿀벌과 함께하면 꿀도 장만할 수 있듯이, 신심 깊은 사람들과의 대화는 신심을 진보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p324)
☞ 특히 꿀벌에 대한 비유가 자주 나온다. 아마 꿀벌의 생태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듯 보인다.
남을 함정에 빠뜨리거나 모함하는 말, 그밖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농담이나 비꼬는 말은 아무리 재미있더라도 어리석고 무례한 것입니다.(p325)
나지안조의 위대한 주교인 그레고리오 성인은 “나는 해가 저물면 혼자 바닷가를 거닐면서 그날의 걱정을 털어 버리고 피로를 풀곤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대도 이와 같이 하십시오.(p326)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와 그들이 한 모든 일들과 가르친 것들을 다 말씀드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 6,31) (p326)
☞ 활동할 때가 있고 침묵할 때도 있다.
제25장 옷차림
옷차림을 보면 그 사람의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겉모습은 내면의 정결함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제단에서 당신을 가까이 모시며 거룩한 일을 하는 이들이 옷차림을 단정히 하기를 바라십니다.(p327)
언제나 단정한 옷차림을 하십시오. 단정하지 않거나 지저분한 모습을 보이지 마십시오. 지저분한 옷차림으로 다른 사람을 방문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실례를 범하는 것입니다.(p328)
제26장 하느님에 대한 대화
의사가 환자의 혀를 보고 그의 건강 상태를 진단하듯이, 우리의 대화 역시 우리 영혼의 상태를 진단하는 좋은 척도가 됩니다. 구세주께서도 “네가 한 말에 따라 너는 의롭다고 선고받기도 하고, 네가 한 말에 따라 너는 단죄받기도 할 것이다.”(마태 12,37)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통증이 느껴지는 곳에 자연스럽게 손이 가듯이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주로 말하기 마련입니다.(p330)
☞ 어떻게 이런 비유를 찾을 수가 있을까!
그대가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대화중에도 자주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십시오. 왜냐하면 의인의 입은 지혜를 자아내고 그의 혀는 올바른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시편 37,30 참조).
하느님에 대한 말을 할 때에는 하느님의 뜻에 맞게 해야 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존경과 믿음을 잃지 않고 교만한 태도나 훈계하는 듯한 말투를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말을 할 때에는 아가서에 나오는 여인처럼 사랑과 온유와 겸손으로 이야기해야 하며, 마치 향기로운 꿀을 한 방울씩 먹이듯 경건한 말을 상대방의 귀에 부어 주어야 합니다. 또한 그 사람의 영혼에 하느님 나라의 이슬이 깊이 스며들게 해 주시기를 하느님께 기도드려야 합니다.(p331)
☞ 말씀의 봉사자가 마음에 새겨야할 말이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신심에 대해 대화할 때는 형식적이거나 무성의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진지하게 정성을 다하여 말하십시오.(p331-332)
제27장 신중한 대화와 상대에 대한 존경
비록 말하는 그대에게 악의가 없다 해도 듣는 사람은 그대의 말을 오해할 수 있습니다. 수건 위에 떨어진 기름 한 방울이면 번져 수건을 얼룩지게 하듯이, 나약한 사람의 마음에 떨어진,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가 때로는 그 사람의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혀 끊임없이 망상에 사로잡히게 할 수도 있습니다.(p333)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는 귀로 들어가 마음을 망가뜨립니다. 독설은 사람의 마음에 독을 주입하여 죽이는 것입니다.(p333)
☞ 정말 말은 조심하여 하여야 한다.
사람의 말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사실 마음에 가득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마태 12,30)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우리에게 악의가 없다 해도 마귀는 어김없이 그 말을 날카로운 무기로 삼아 은연중에 사람의 마음을 찌르게 합니다.(p334)
교묘하고 은밀하게 악의 있는 말을 속살일 때에는 그 독성이 특히 강합니다. 마치 칼날이 예리하고 뾰족할수록 물건이 잘 잘리듯이, 악으로 날을 세운 말 한마디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습니다.(p334)
어리석은 사람이 그대에게 무례한 말을 하면 적당한 방법으로 그대의 불쾌감을 드러내야 합니다.(p335)
☞ 무조건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상대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말은 가장 사악한 것 중의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죄를 혐오하시며 예전에는 이 죄를 특별한 방법으로 벌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조롱하고 경멸하는 것만큼 애덕을 거스르고 신심에 해를 끼치는 것은 없습니다.(p335)
제28장 그릇된 판단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루카 6,37) 이것은 우리 구세주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바오오 사도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1코린 4,5)
남을 판단하는 행위는 하느님의 뜻을 크게 거스르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서로를 판단할 자격이 없습니다. 함부로 남을 판단하는 행위가 잘못인 이유는 인간을 판단하는 것은 주님의 고유한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p337-338)
인간을 심판하시는 하느님의 의지와 목적은 하느님의 신비에 속하며, 그러므로 이웃을 우리 마음대로 판단하는 것은 하느님의 권능을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오히려 자신을 성찰해야 함에도 섣불리 남을 판단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행위입니다.(p338)
☞ 하느님과 맞서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교만 때문에 습관적으로 그릇된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교만하고 허영심으로 가득 차서 다른 사람의 명예를 손상시키면 자신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과시하기를 좋아하고,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루카 18,11)라고 말한 어리석은 바리사이처럼 행세하며, 남을 모두 비열하고 무가치한 자로 얕봅니다.(p339)
겉으로 교만을 드러내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결점을 보면서 은밀히 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도 달리 자신은 덕이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그 점을 사람들 앞에서 과시함으로써 만족을 느끼며 그 점을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p339)
☞ 나 자신을 말하는 것 같다.
남을 선의로 판단해야 하며, 어떤 일에 다양한 면이 있다면 그중 가장 아름다운 것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의인은 어떤 사람이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의심스러울 때에도 이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하느님께 맡깁니다.(p342)
십자가에 매달리신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는데도 그들의 죄를 탕감해 주시려고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이 잘못했을 때 그 사람의 무지와 나약함 등을 고려하여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p343)
☞ 무한히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는 주님이시다.
결코 남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함부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죄인을 판단하실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십니다.(p343)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의 귀에 당신의 심판을 알리시고자 법관을 이용하십니다. 법관은 단지 통역자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전달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감정으로 다른 사람을 판결하는 사람은 훗날에 하느님의 심판 대상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것을 엄금하셨기 때문입니다.(p343)
남에게 의혹을 품는 것은 반드시 죄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삼가야 할 것은 함부로 판단하는 것입니다.(p343)
꿀벌은 구름이 많이 낀 날에는 밖에 나가지 않고 벌집을 튼튼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의인은 자신이 모르는 분명하지 않은 일에는 호기심을 갖지 않고, 마음속으로 자기 발전에 필요한 일을 생각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활을 이러쿵저러쿵 비평하며 즐기는 것은 게으른 사람들이 하는 형태입니다.(344)
제29장 비방
성급하게 판단하면 자기만족과 교만에 빠지고 타인을 불신하고 경멸하는 등의 많은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비방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해치는 페스트균과 같아 온갖 잘못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비방을 없앨 수 있다면, 불의와 죄악의 대부분을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p345)
우리에게는 세 가지 생명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에 달려있는 영적 생명과 영혼에 좌우되는 육적 생명, 그리고 명예에 달려 있는 사회적 생명이 있습니다.(p346)
☞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문제되지 않겠지만, 사회적으로 영향력있는 사람에게는 명예도 생명이구나!
죄는 영적 생명을 빼앗고, 죽음은 육적 생명을 소멸시키며, 비방은 사회적 생명을 죽입니다. 특히 타인을 비방하는 사람은 혀로 세 번의 살인죄를 범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방은 비방하는 자신과 듣는 사람의 영혼을 죽게 하는 동시에 비방당하는 사람의 사회적 생명을 죽이기 때문입니다. (p346)
베르나르도 성인은 비방하는 사람의 혀와 이를 듣는 사람의 귀는 마귀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뱀의 혀는 끝이 둘로 나뉘어져 있는데, 비방하는 자의 혀도 이와 같아 한번 입을 놀릴 때마다 듣는 사람의 귀에 독을 넣어주는 동시에 비방당하는 사람의 명예를 해친다고 했습니다.(p346)
직접이든 간접이든 절대로 다른 사람을 비방하지 마십시오.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거나 결점이나 잘못을 들추어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이미 사람들에게 알려진 잘못이라도 이를 과장하여 부풀리거나 타인의 선행을 나쁘게 해석하는 짓, 그리고 타인의 덕을 부인하거나 악평하고 또는 은폐하는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모든 행위는 아무리 자신이 무고하다고 변명하거나 타인이 입은 상처를 부정한다 해도 거짓으로 그에게 해를 끼쳤으므로 하느님을 심하게 모욕하는 것입니다.(p346-347)
☞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것은 하느님을 심하게 모욕하는 것이다.
궁수는 목표물을 명중시키고자 화살을 건 시위를 세차게 잡아당깁니다. 마찬가지로 비방에 앞서 칭찬하는 것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고자 시위를 당기는 것입니다.(p347)
비방하는 것에 대해 시편 저자는 “살무사의 독을 입술 밑에 품습니다.”(시편 140,4)라고 말했습니다. 살무사에게 물린 자국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고 약간 따끔할 뿐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독소가 든 혈액이 심장과 신경계를 거쳐 모든 기관에 퍼져서 치료할 수 없게 됩니다.(p348)
어쩌다 한 번 저지른 잘못을 근거로 그 사람에게 영원한 낙인을 찍어서는 안 됩니다. 여호수아가 아모리족을 정복하던 날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 멈추어 온종일 지지 않았고(여호 10,12-13 참조), 우리 주님께서 돌아가실 때 대낮임에도 어둠이 온 땅을 덮었다고 해서 태양이 움직이지 않았다거나 암흑천지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p348)
오! 하느님의 자비는 헤아릴 수 없고, 용서와 구원을 받는 데에는 한순간이면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면, 어떻게 과거의 죄인을 보고 오늘도 죄인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습니까? 어제의 일로 오늘의 일을 판단하거나 오늘의 일로 어제의 일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일생에 대한 심판은 최후의 날에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을 악인이라고 말할 때에는 항상 거짓을 말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p349-350)
비방하지 않고자 한다는 핑계로 다른 사람이 저지르는 죄를 잘하는 일이라 아첨하며 부추기지 말아야 합니다. 모름지기 악은 악이라고 정직하게 말하고, 꾸짖을 것은 단호하게 꾸짖어야 합니다. 이러한 자세야말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는 참된 행위입니다.(p350-351)
☞ 하지만 비방과 꾸짖음은 다르다. 꾸짖을 것은 단호하게 꾸짖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할 때에는 수술칼로 힘줄과 신경을 분리하는 외과 의사처럼 정확해야 하며, 사실에 티끌만큼이라도 보태거나 빠뜨리지 않아야 합니다. 다른 이의 잘못을 꾸짖을 때에는 될 수 있는 대로 그 사람을 용서하려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p352)
사람들은 편협한 감정으로 다른 사람을 비방하거나 비난합니다. 그대는 결코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느님 앞에 죄를 짓는 것일뿐 아니라 많은 분쟁의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p352)
제30장 대화때의 주의사항
하느님께서는 진리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별다른 의도 없이 거짓을 말했을 때에는 어렵더라도 그 자리에서 해명하고 사실을 밝혀야 합니다.(p354)
때로는 진실을 감추는 것이 지혜로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특별한 경우에만 허용되며, 특히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나 하느님께 봉사하고자 하는 데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입니다.(p354-355)
세속적인 신중함과 술책은 이 세상 자녀들의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올바른 심성을 지녀야 합니다. 구약의 현자는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마음 편안하게 걷는다.”라고 말했습니다.(p355)
그리스도인은 참으로 진실하며 명쾌하고 단순하게 말해야 합니다. 시편 저자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는 말하였네. ‘내 혀로 죄짓지 않도록 나는 내 길을 지키리라. 악인이 내 앞에 있는 동안 내 입에 재갈을 물리리라.”(시편 39,2) "주님, 제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제 입술의 문을 지켜 주소서.“(시편 141,3) (p355-356)
루도비코 성인 임금은 죄악이나 중대한 피해를 묵인하는 셈이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코 남과 다투지 말라고 훈계했습니다. (p356)
'말은 되도록 적게 해야 한다.‘는 옛 현인들의 교훈은 말수를 적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무익한 말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말은 그 양보다도 질을 고려해야 합니다.(p356)
제31장 건전한 오락
오락에 너무 빠지지 마십시오. 아무리 건전한 놀이라도 그것에 애착하면 악한 것이 되고 맙니다. 오락을 금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락을 위한 오락이 될 정도로 정신이 팔리거나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p359)
제32장 금지된 오락
어떠한 종류의 도박이든 나쁘고 해롭기 때문에 교회는 이를 금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로 말미암은 이득이 재주나 노력 여부에 관계없이 요행으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p360)
제33장 춤과 그 외의 오락
제34장 춤과 오락의 건전한 이용
내기를 거는 오락은 해롭지만 때로는 사람들 사이에 친밀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p366)
제35장 성실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으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정성을 다해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사랑과 성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p368)
신심을 수행할 때 느끼는 약간의 수줍음과 같은 사소한 고통을 기꺼이 감수한다면, 사마리아 여인에게 냉수 한 그릇을 받으시고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행복을 약속하신, 자애로우신 주님의 마음을 한없이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p369)
가타리나 성녀가 자주 묵상한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리를 할 때에는 아버지를 마르타에게서 봉사를 받으시는 주님으로, 어머니를 성모님으로, 형제들을 사도들로 생각했습니다. 성녀는 주님과 모든 성인들에게 봉사하겠다는 사랑의 정신으로 집안의 궂은일을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p370)
비록 작은 일이라도 그것을 통해 하느님을 섬길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루카 16,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일을 주님의 이름으로 하면 다 잘될 것입니다. 식사나 취침, 휴식, 집안일 등 매사를 주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에 따라 행하면 하느님 나라에 많은 공로를 쌓을 수 있을 것입니다.(p371-372)
☞ “모든 것을 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다면” 하느님 나라의 공로를 쌓을 수 있다.
제36장 올바른 처신
마음은 착하지만 외모가 못생겨 구박받는 자식도 있고, 성격과 버릇이 나빠도 얼굴이 귀엽게 생겨 재롱둥이로 귀여움을 받는 자식도 있습니다.(p374)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는 친절하고 관대한 마음을 갖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완고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편에서는 이런 성향을 “저마다 제 이웃에게 거짓을 말하고 간사한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합니다.”(시편 12,3)라고 꼬집었습니다. (p375)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면 모든 일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건을 살 때에는 파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고, 자기 물건을 팔 때에는 사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면 사고파는 데 부정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p376)
다른 사람이 그대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을 그대가 다른 사람에게 베푼 적이 있는지 자주 성찰하기 바랍니다.(p376)
☞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으로 행동해야 된다.
제37장 희망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고관들 위에 군림하고 싶어 하는 허세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특별한 영적 계시나 신비한 탈혼을 체험하고 싶어 하는 것도 허영이므로 그런 원의를 품어서는 안 됩니다.(p377)
☞ 그것은 그 사람에게 주는 영적 선물이다. 우리가 그것을 간구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능력과 거리가 먼 것이나 실현 불가능한 것을 바라면 정신만 피로해지고 현재 하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여 불평과 불안감만 갖게 됩니다.(p377)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은 주어진 현실과 다른 삶을 바라면서 자기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헛된 원의는 마음을 산란하게 하여 해야 할 일을 방해할 뿐입니다.(p378)
하느님께 봉사할 때도 자신에게 없는 삶의 양식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신의 능력에 따라 주어진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p379)
주님께서 현재 그대에게 주신 십자가도 잘 인내하지 못하면서 더 많은 십자가를 청하지 마십시오. 남에게 받은 모욕을 인내할 용기도 없으면서 순교를 꿈꾼다면 이는 허황한 망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p379)
맛이 뛰어나고 영양이 풍부한 음식이라도 너무 많이 먹으면 위장이 약한 사람은 금방 탈이 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대 영혼을 너무 과중한 의욕으로 채워서는 안 됩니다.(p379)
☞ 좋은 일이라도 자기 능력과 정도에 맞게 해야 한다.
제38장 결혼한 이들에게
신약 시대의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처럼 오늘날의 모든 혼인 잔치에도 성자 그리스도께서 초대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격려와 축복의 술이 그 집에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혼인의 축복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은 주님 대신에 아도니스를, 성모님 대신에 비너스 여신을 혼인에 초대하기 때문입니다.(p382)
행복란 결혼 생활을 바라는 사람은 혼인 성사의 신성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실제 혼인 잔치에서는 오락과 잔치와 대화 중에 무수한 추태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혼인 문화가 문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p382)
☞ 오늘날의 혼인문화도 여기에 벗어나지 않는다.
“오, 남편과 아내들이여, 하와를 아담에게 데려다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혼인을 통해 그대들로 하여금 신성한 인연을 맺게 해 주시고 남편과 아내로 정해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p383)
하느님께서는 남자로부터 다정한 사랑을 한껏 받게 하시려고 남자의 심장에서 가까운 부위에 있는 갈비뼈로 최초의 여자를 만드셨습니다.(p385)
잘 익어 맛이 좋은 사과에 벌레가 잘 꼬이듯이, 부부간의 사랑이 열렬할수록 질투가 파고들기 쉬워서 반목과 불화와 다툼이 잦아지고 끝내는 사랑이 부패되기에 이릅니다.(p386)
질투가 사랑의 외적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표준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의 순수성과 품성을 잴 수 있는 척도는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참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믿는 데서 생기는 반면에 질투는 그 사람을 불신하는 데서 생겨나기 때문입니다.(p387)
몸을 중독 시키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고 마음을 해롭게 하는 것은 귀로 들어간다는 점을 명심하십시오.(p388)
베르나르도 성인의 어머니도 자녀들에게 매우 훌륭한 어머니였습니다. 그녀는 아이를 출산하자마자 예수 그리스도께 봉헌한 다음, 그 아이를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신성한 선물로 생각했고 끔찍하게 사랑하고 보살폈습니다. 그 결과 일곱 자녀 모두 성덕이 출중한 사람이 되어 어머니의 수고를 한층 더 빛나게 했습니다.(p390)
자식이 세상에 태어난 뒤 자기 이성으로 활동할 나이가 되면, 부모는 자식의 마음에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과 공경을 새겨 주고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p390)
☞ 요한 바오로2세 성인 교황에 따르면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은 ‘자녀로서의 두려움’이다.
히브리인의 전통에는 남편이 아내와 함께 성전에서 기도드리면 하느님께서 남편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서로 격려하며 열렬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경건한 부부의 일치보다 더 귀하고 유익한 일치는 없습니다.(p392)
부부가 함께 독실한 신앙심으로 주님을 경외하고 덕을 쌓아 가는 것은 하느님의 더할 나위없는 축복의 선물입니다.(p393)
부부는 매사에 서로 도와야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분노하거나 반목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요란한 곳에는 꿀벌이 집을 짓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께서도 싸움이나 말다툼이 그치지 않는 집에서는 거처하시지 않습니다.(p393)
부부는 결혼기념일에 고해 성사와 영성체를 하고, 특별히 그들이 결혼 생활을 하느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p393)
제39장 혼인의 신성함
제40장 과부들에게
제41장 미혼 여성들에게
제4부 일상적 유혹
제1장 세상의 비평에 대한 자세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사랑은 친절하나(1코린 13,4 참조), 세상은 친절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으나(1코린 13,5 참조), 세상은 언제나 약점을 들추어내기에 급급하며, 우리 행위에 비난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경우에도 우리의 의도를 나쁘게 추측하고 판단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세상은 반드시 우리를 헐뜯습니다.(p414)
우리는 세상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세상을 십자가에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어리석다고 폄하해도 절대로 흔들리지 마십시오.(p415)
제2장 용기
내 말을 믿으십시오. 이러한 유혹을 견뎌 내면 머지않아 그대는 환희로 충만해질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행복에 비하면 세상의 즐거움은 쓰디쓴 쓸개와 같고, 하루의 신심 생활에 비하면 천년의 세속 생활도 하잘것없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p417)
제3장 유혹을 받는 것과 유혹에 동조하는 것
우리가 죄의 유혹을 받는다 해도, 또 그 유혹이 일생 동안 계속된다 해도 죄에 현혹되지 않고 동의하지 않으면 하느님께서는 이를 책망하지 않습니다. 유혹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탓이 아닙니다. 유혹에 줏대 없이 움직이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습니다.(p420)
유혹을 받아도 결코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유혹을 극복하면 결코 패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하며, 유혹을 받는 것과 동의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영혼 구원의 원수인 마귀가 아무리 간교한 수법으로 우리를 기만하려 해도, 끊임없이 우리 마음의 문턱을 서성거리며 안으로 들어오려고 여러 가지 수단으로 유혹해도, 우리가 이에 동의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있는 한 하느님을 모독할 염려는 없습니다. (p421)
모닥불의 잿더미 속에 묻혀있는 조그만 불씨는 모닥불이 꺼지고 몇 시간이 지난 뒤에도 다시 불이 붙을 수 있습니다. 우리 영혼의 생명이신 하느님의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 영혼이 심한 유혹 중에 있을 때에도 하느님의 사랑의 불씨로 우리 영혼은 되살아납니다. 유혹이 우리 영혼에 쾌감을 던지면 우리 영혼은 모두 재로 변하며,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은 아주 작아지고 마음과 정신 속에 깊이 파묻혀 겨우 눈에 뜨일 정도가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엄연히 살아 있습니다.(p422)
제4장 유혹 극복의 예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도 가끔은 하느님께서 자기 안에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를 몰라서,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서 애쓰건만 그 사랑의 불꽃이 이미 꺼졌는지 아직도 타오르고 있는지를 몰라서 매우 곤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p427)
☞ 누구나 영혼의 어둔 밤은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그 사랑을 위해서 노력하고 그 사랑 안에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그 사랑을 누리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도 참고 견디며 분투하기를 요구합니다. 이것이 바로 완전한 하느님 사랑의 본질입니다.(p427)
제5장 유혹받는 영혼을 위로함
어떠한 유혹을 당하거나 이로 말미암아 어떠한 쾌감을 느낀다 해도 그대의 의지가 유혹과 쾌락을 용납하지 않는 한,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은 아니므로 불안해할 필요는 없습니다.(p429)
제6장 유혹과 죄
제7장 유혹에 대처하는 법
그대가 어떤 유혹에 사로잡히기 시작할 때에는 곧바로 하느님께 의탁하여, 그분의 자비와 도우심을 간구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일어나 기도하여라.”(루카 22,46)하고 강조하셨습니다. (p433)
기도를 드렸는데도 유혹이 사라지지 않고 점점 더 강해지면, 그대 눈앞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것처럼 생각하고, 마음으로 거룩한 십자가에 달려가 입술을 대며 절대로 유혹에 넘어가지 않겠다고 주님께 맹세하십시오.(p433)
그대의 원수인 악마와 말을 주고받지 마십시오. 우리가 악마에게 할 말은 주님께서 악마에게 하신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 분만을 섬겨라.’”(마태 4,10)라는 말씀이면 족합니다.(p435)
제8장 사소한 유혹들
제9장 사소한 유혹에 대처하는 법
우리는 허영, 의심, 불평, 시기, 질투, 기호 등과 같이 사소한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 눈앞에서 어른거리며 뺨이나 코에 앉아 성가시게 하는 쇠파리와도 같습니다. 쇠파리가 사람을 해치지 못하듯이, 우리가 하느님께 봉사하려는 확고한 결심을 가지고 있으면, 사소한 유혹들은 우리를 번거롭게 할 수는 있어도 결코 우리 영혼을 해칠 수는 없습니다.(p438)
유혹의 정체를 파악할 여유가 있으면 그것과 상반되는 덕을 하나 실천하고, 마음으로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주님께 대한 사랑의 표시로 그분의 십자고상에 입을 맞추십시오. 이것이 크고 작은 온갖 유혹을 퇴치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p439)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는 다른 모든 사랑이 안에 내포되어 있어 온갖 악을 저항하기에 그 사랑은 가장 좋은 명약입니다.(p439)
악마는 자기의 유혹이 모두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동기가 되는 것을 보면 곧바로 유혹을 그만 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유혹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p439)
제10장 영혼을 강하게 하는 법
그대는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실을 자주 성찰하여 그대의 영혼을 산란하게 하는 주된 성향들을 점검한 다음, 그러한 성향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전향시켜야 합니다.(p440)
재물이란 낭비해서는 안 되겠지만, 아무리 아낀다 해도 죽을 때 가져갈 수 없는 것이니 인색하게 굴지 말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겠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재산을 늘리는데 혈안이 되거나 세상의 물질적인 부를 움켜쥐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자주 자선을 베풀어야 합니다.(p441)
제11장 마음의 불안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번민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사람은 끈기 있고 온유하며, 자신의 수고나 노력보다는 하느님의 섭리에 겸손하게 따르려고 해야 할 것입니다.(p442-443)
시편 저자는 언제나 “제 목숨이 늘 위험 속에 있으나 당신의 가르침을 잊지 않겠습니다.”(시편 119,109)라고 말했습니다. 적어도 아침저녁으로 한 번씩은 과연 그대의 영혼이 주님의 손안에 있는지, 또는 어떤 욕망이나 불안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귀중한 것이 있으면 이를 잃지 않으려고 단단히 움켜쥐고 있듯이, 그대도 시편 저자를 본받아 “제 목숨이 늘 위험 속에 있으나 당신의 가르침을 잊지 않습니다.”하고 말해야 합니다.(p444-445)
불안감이 엄습할 때에는 하느님께 기도드십시오. 또한 급박한 일이 아니라면 불안감이 완전히 진정된 뒤 그대가 바라는 일을 실행하십시오. 곧바로 착수해야만 할 상황이라 해도 감정을 진정시킨 다음, 온유하고 차분한 가운데 일의 순리에 따라 처리해야 합니다.(p445)
제12장 슬픔
“하느님의 뜻에 맞는 슬픔은 회개를 자아내어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세적 슬픔은 죽음을 가져올 뿐입니다.”(2코린 7,10) 근심은 그 결과가 좋은 것도 있고 좋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좋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좋은 결과는 자비심과 회심 두 가지뿐이지만, 좋지 않은 결과는 고뇌, 태만, 분노, 질투, 시기, 성급함 등 여섯 가지나 됩니다.(p446)
비관에 빠질 기미가 보이면 전력을 다해 이를 물리쳐야 합니다. 기도할 의욕도 없어지고 서글픈 생각이 들 때에도 기도를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p448)
악마는 우리를 비관에 빠지게 함으로써 우리의 신심 수행을 방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에 굴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기도에 매진한다면 악마는 이내 훼방하던 짓을 멈출 것입니다.(p448)
그대 자신을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고 그대의 근심을 과거의 헛된 환락에 따른 벌로 알고 인내하면, 하느님께서는 그 시련이 끝난 뒤에 틀림없이 그대를 불행에서 구해 주실 것입니다.(p450)
제13장 영적이고 감성적인 위안
인생은 한순간도 한결같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런 변화 속에서도 하느님을 향한 변함없는 마음을 지니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환경이 끊임없이 요동을 쳐도 우리는 항상 하느님을 바라보며 하느님께 지시하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p452)
한여름 소낙비가 지나치게 많이 쏟아져 내리면 그 빗물이 미처 땅속 깊이 스며들지 못하여 쓸모없고 이름 모를 곰팡이만 돋아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시련을 당할 때 흘리는 감상적 눈물은 그의 사악한 마음을 적신다 해도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지 못하기 때문에 신심 생활에 유익하지 않습니다.(p454)
“당신 말씀이 제 혀에 얼마나 감미롭습니까! 그 말씀 제 입에 꿀보다도 답니다.”(시편 119,103)하고 노래한 것은 이 영적 행위에 대한 감미로움을 나타낸 것입니다. 우리가 신심을 통해 받는 매우 작은 위안은 세상의 행복보다 훨씬 더 진한 맛이 납니다. 우리 영혼의 천상배필이신 주님의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의 젖은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술보다도 훨씬 감미롭기 때문에, 일단 이것을 맛본 사람은 다른 것들을 쓰디쓴 것으로 느끼게 됩니다.(p456)
일반적으로 마음의 상태는 그 열매에서 드러난다고 합니다. 우리 마음을 나무라고 한다면, 감정이나 정서는 이 나무의 가지이고 행동은 그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좋은 마음에서 좋은 정서가 나오고, 좋은 정서에서 선하고 거룩한 행동이 나옵니다.(p458)
제14장 영적인 무미건조
어머니는 이가 썩은 아이에게 사탕을 주려 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위안에 집착하여 헛된 기쁨을 느끼고 교만해질 때에는 하느님께서 그 기쁨을 빼앗아 버리실 때가 있습니다.(p463)
고해 성사때 고해 사제에게 자신의 정신 상태를 허위로 고백하거나 과장하면, 그로 말미암아 영혼이 무미건조해지기도 합니다. 그러한 행위는 성령을 속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를 속인 아이가 어머니에게 사탕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그대가 성령으로부터 위안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p464)
그대가 이 세상 쾌락에 만족하면 분명 영적 기쁨이 싫어지게 될 것입니다.(p464-465)
주님께서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르 4,25; 마태 13,12; 루카 8,18 참조)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의 은총을 지킬 줄 모르고 자기 잘못으로 은총을 잃은 사람은 주님께서 주시려고 준비하신 은총까지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비는 무성한 초목에게 푸르른 생기를 주지만, 이미 죽은 나무는 썩게 할 뿐입니다.(p465)
폴리뇨의 복녀 안젤라는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기도는 자기를 잊고 바치는 기도라고 했습니다. 곧 기분에 따라 기도하지 말고 무미건조할 때도 오직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는 의지를 가지고 기도하라는 뜻입니다.(p470)
☞ 가슴이 뜨끔하다. 나는 얼마나 기분에 따라 기도를 해왔던가!
제15장 예화 한 토막
그대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하느님과 악마는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시련을 허용하시는 목적은 그들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온갖 이기심을 제거하여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따르고 순수하게 하느님을 섬기게 하시려는 것입니다.(p474-475)
그러나 악마는 견디기 힘든 시련으로 우리를 낙담하게 만들고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게 함으로써 참된 신심에 해를 끼치려고 기를 씁니다.(p475)
제5부 영혼의 쇄신
제1장 수행을 위한 쇄신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쇄신의 필요성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인간 본성의 나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선한 결심을 잃기 쉽습니다. 우리 영혼의 선한 결심을 쇄신하여 높이 비상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 육체의 허약함과 악한 경향은 무거운 저울추가 되어 우리 영혼을 아래로 끌어내릴 것입니다.(p479)
새가 날개를 움직이지 않으면 땅에 떨어지는 것처럼 그대도 하느님을 섬기려고 한 최초의 결심을 자주 쇄신하지 않으면, 예전의 악한 상태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영적 타락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신심은 비상을 시도하던 그 이전 상태보다 더 아래로 떨어지게 됩니다.(p479)
영성을 중시하는 사람은 앞에서 말한 대로 아침저녁으로 하느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영성 상태를 점검하며 성찰하고 바로 잡아야 합니다. 또한 적어도 1년에 한두 번은 자신의 마음을 분석하고 자신의 정신과 감정 등을 세밀하게 살펴보아 결함이 발견되면 곧바로 이를 바로잡아야 합니다.(p480)
☞ 적어도 1년에 한번은 피정을 통하여 자신의 영성 상태를 살피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신심 수행에 뜻을 둔 사람도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여 쇄신하고자 고해성사와 성체성사의 기쁨으로 도유해야 합니다. (p480)
제2장 신심 생활로 부르신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성찰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과 은총으로 그대의 작은 배를 구원의 항구로 끌어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사와 독서 그리고 기도 중에서 당신 사랑의 감미로움을 표시하시고, 그대를 손수 이끄셨습니다.(p484)
그대가 자고 있는 동안에도 하느님께서는 그대의 마음에 평화를 주시고 그대를 끊임없이 사랑하고 계심을 잊지 마십시오.(p484)
제3장 신심 생활의 점검
제4장 하느님에 대한 마음가짐의 점검
제5장 자신의 태도에 대한 점검
그대가 하늘나라의 영원한 삶을 사랑한다면, 주님께서 예정하신 날에 이 세상을 떠날 때에 이 세상에 대해 아무런 미련도 갖지 않을 것입니다.(p494)
우리를 멸망시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올바르지 않은 사랑입니다. 올바른 사랑이란 육체보다 영혼을 더 사랑하고 세상 영화보다 덕을 쌓으려고 희망하고 노력하는 것이며, 세상 명예보다 하늘 나라의 영광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p494-495)
진정한 겸손은 자신과 남을 비교하고서는 자신이 우월하다고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의 찬사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p495)
제6장 타인에 대한 애덕의 점검
남편과 아내는 서로 감싸 주고 편안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또한 서로 믿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계명이므로 부부는 누구보다도 자기 배우자를 사랑해야 하고, 그 사랑이 자녀, 친척, 친구로 이어져야 합니다.(p496)
이웃에 대한 애덕은 말과 행위로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을 사랑할 때 드러납니다. 그대는 마음을 비우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들을 대할 수 있습니까?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습니까? (p496)
제7장 자신의 감정에 대한 점검
바이올린 연주자가 현을 조율하듯이, 우리도 자신의 감정을 조율하여 영혼에 합당하지 않은 증오, 좌절, 집착, 편견 등의 요소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연주하려는 하느님의 영광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감정을 발견한다면 하느님의 은총과 지도 신부의 지도를 받아 이를 조율해야 합니다.(P499)
제8장 양심 성찰 뒤의 마음가짐
제9장 결심을 새롭게 하기위한 성찰과 묵상
제10장 성찰과 묵상1: 영혼의 가치
마치 노아의 방주에서 벗어나 광활한 세상으로 날아간 비둘기처럼, 우리 마음도 자신의 본향인 하느님께 돌아가지 않으면 그 어느 곳에서도 평화로운 안식을 찾을 수 없습니다.(P504)
그대의 영혼에게 이렇게 타이르십시오. “영원한 생명을 차지할 수 있는 데 어째서 한순간 지나가 버릴 현세의 것에 희롱당하고 있느냐? 탕자가 뼈저리게 후회한 것 중 하나는 아버지 식탁에는 맛있는 음식이 풍부한데 지저분한 돼지 먹이로 배를 채워야 하는 신세였다. 내 영혼아,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하느님에게서가 아니라 다른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너에게 화가 미칠 것이다.” (P505)
제11장 성찰과 묵상2: 덕행의 탁월함
신심 생활을 하지 않으면 선도 악이 되고, 그대의 마음에서 기쁨이 사라지고 불안과 번민으로 가득 차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대는 신심 생활을 통해 사마리아 여인처럼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요한 4,15)라고 간청할 수 있습니다.(P507)
제12장 성찰과 묵상3: 성인들의 모범
성인들이 보여 주었던 여러 가지 모범적인 삶을 살펴보십시오. 그분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신심 생활을 위한 일이라면 어떠한 희생도 주저하지 않고 바쳤습니다. 순교자들은 신앙을 지키려고 온갖 형벌과 고문을 감수했습니다.(P508)
제13장 성찰과 묵상4: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께서는 따뜻한 사랑의 눈길로 그대를 주시하고 계십니다.(P510)
사랑하올 예수 성심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그대 마음을 바라보시고 사랑하셨으며, 이 사랑으로써 그대 마음을 차지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께서 나를 점지하시기 전에 나를 뽑아 세우셨다.”(예레 1,5 참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P511)
어머니가 아직 낳지 않은 아기를 위해 요람, 의복, 기저귀에서 유모까지 미리 준비하는 것처럼, 주님께서는 그대를 사랑으로 품으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셨으며, 그대를 당신의 아기로 만드시려고 그대에게 유익한 모든 것, 곧 그대 영혼이 완덕에 이르는 모든 방법과 은총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p511)
그대는 다음 사항을 깊이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합니다. 구세주께서 그대를 마음속 깊이 사랑하시고 그대를 위해 마련하신 여러 가지 기회를 그대가 과연 얼마나 사랑하고 노력하며 이용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p511)
☞ 우리는 신심생활을 꾸준히 열성적으로 해야 한다.
오! 그대는 진정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사랑하올 하느님의 성심께서 그대를 사랑하시며 그대에게 모든 구원의 방법을 알려 주시니, 그대처럼 주님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p512)
이는 태양이 지상의 한 곳을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실 때에는 다른 일은 모두 잊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갈라 2,20)이라고 바오로 사도는 고백했습니다. (p512)
☞ 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제14장 성찰과 묵상5: 하느님의 영원하신 사랑
하느님께서는 언제부터 우리를 사랑하셨겠습니까? 그분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실 때부터 사랑하셨습니다. (p513)
하느님께서는 영원으로부터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실 모든 은총과 은혜를 마련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다. 그리하여 너에게 한결같이 자애를 베풀었다.“(예레 31,3) 이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인 동시에 특히 그대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p513-514)
오! 하느님께서는 이 말씀을 영원으로부터 계획하시고 예정하신 것입니다! 그대는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과 자애를 받고 있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p514)
그러므로 그대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라면 어떠한 고통도 견뎌야 합니다. 온 세상을 다 얻는다 해도 영혼의 가치와는 비교될 수 없으며, 영혼의 진정한 가치는 결연한 마음가짐에 있습니다.(p514)
제15장 성찰의 결실인 결심, 그리고 영적 수업의 마무리
그대가 좌지우지했던 그대의 마음과 의지를 하느님께 봉헌하고 희생하며, 하느님께 바친 것을 되찾으려 하지 않고 언제나 하느님 손에 맡기며, 어떤 일이 있어도 하느님의 지시에 따르겠다고 약속드리십시오.(p516-517)
제16장 신심 수행 뒤 되새겨야할 결심
“나는 내 것이 아닙니다. 사나 죽으나 나는 구세주의 것입니다. 나 자신이나 나의 것도 없습니다. 나의 자아는 예수님이시고, 나의 것은 예수님의 것입니다.”(p518)
제17장 의혹에 대한 응답
제18장 마지막 세 가지 주요 교훈
누구에게나 임종의 시간은 다가옵니다.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 성인은 “나팔소리가 울린다. 무두 준비하라. 심판날이 가까이 왔다!”하고 말했습니다. 또한 순교자 심포리아노 성인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형장으로 끌려가 순교할 때 “얘야, 영원한 생명을 잊지 마라. 짧은 이 세상 삶이 곧 끝날 터이니 하늘을 우러러 온 세상을 다스리시니 하느님을 바라보아라.”하고 소리쳤다고 합니다.(p525)
"하늘을 쳐다보십시오. 이 세상 때문에 하늘을 잃지 마십시오. 지옥을 내려다보십시오. 일시적 쾌락 때문에 지옥 속으로 들어가지 마십시오. 늘 에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십시오. 세속 영화 때문에 주님을 배반하지 마십시오. 신심생활이 그대에게 너무 괴롭게 느껴지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하늘나라의 보화를 생각하면 제가 하는 모든 일들이 즐겁기만 하나이다’하고 노래하십시오.“(p525-526)
3. 이 책을 읽고 앞으로 내 삶에서 실천할 것
- 예수성심 전교수도회의 재속회 회원으로서 신심생활을 꾸준히 하겠다.
- 이 책에서 제시한 내용들을 실제 적용할 수 있도록 매뉴얼로 정리하겠다.
첫댓글 친교회 회원으로써 자신을 돌아보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긴글 정리해서 올려 주신 마음지기님 항상 감사합니다.
함께 읽어주시는 분이 있으니 고맙습니다..^^*
신심 생활을 하는 데 적합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보내 주시도록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또 하느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저도 영적 지도자를 보내달라고 기도할려고 합니다..^^*
@마음지기 늘~~
영적 도움되는 책 추천 해 주시고
간추려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적으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실천할 수 있는 지혜와 성령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책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는 것 같습니다..